# 1
회귀자 사용설명서 001화
내 재능 수치는 일반 이하다(1)
[튜토리얼을 시작합니다.]
“이게 무슨….”
욕을 내뱉으려다 살짝 주변을 둘러봤다. 시야에 비치는 것은 어두컴컴한 건축물의 내부다.
희미한 빛 사이로 뭐가 뭔지 모를 문양들이 보였다.
지구에 있는 건물 내부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 생전 처음 본 듯한 그것들로 인해 자연스럽게 입이 벌어졌다.
피라미드의 안을 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이런 모습을 하고 있으리라.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상황에 잠깐 동안 눈동자를 굴렸다.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여동생과 함께 밥을 먹고 있었던 장면이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도대체….’
기억해 보자면 이렇다.
핸드폰으로 뭐가 뭔지 모를 카톡이 날아 왔다.
-게임에 참가하시겠습니까?-
친구가 보낸 게임 초대 메시지라고 생각했고 아무 생각 없이 버튼을 눌러버렸다.
겨우 그걸로 끝.
기억나는 것은 그것밖에 없다.
괜스레 턱과 다리가 덜덜 떨려왔다. 너무나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탓이다.
갑작스럽게 생전 처음 보는 곳에 와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눈에 띄는 것은 이곳의 분위기.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 덕분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있었다.
다른 생각을 채 하기도 전에 주변에서 여러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 여기가 어디죠?”
“저한테 묻지 마세요. 저, 저도 잘 모르겠단 말이에요.”
“거, 거기 다른 사람들도 있나요? 이곳은 도대체… 그리고 검이랑 무기들은 왜 여기에 있는 거죠?”
“그걸 알면 우리가 이러고 있겠어요? 다들 똑같은 상황인 것 같은데 뭐 기억나는 거 없나요?”
“저기요! 거기 누구 있어요? 저기요!”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사람들.
바닥에 앉아 있는 사람, 이것이 꿈인 줄 아는지 볼을 꼬집는 사람.
모두 제각각이다.
‘꿈은 아니야.’
꿈도 아니고, 나 혼자 이곳에 떨어진 것도 아니다.
빌어먹을 위화감이 없다.
잠깐 침을 삼켰을 때 다시 한번 작은 동굴이 울렸다.
[플레이어들은 이세계로 초대되셨습니다. 저희는 플레이어에게 초대장을 보냈고 플레이어는 그 초대에 응했습니다. 죽어가는 대륙을 살리기 위한 용사로 선택받은 것입니다.]
“제기랄! 무슨 용사야!”
“거지같은 장난치지 말고 빨리 나와 이 개 같은 놈들아!”
“경,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경,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당신들 몰래카메라 하는 거야? 이건 고소감이야. 고소감이라고!”
[그렇지만 모두가 대륙으로 향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륙으로 갈 자격이 있는 것은 튜토리얼을 통과한 소수의 인원입니다.]
“무슨 개소리야!”
[앞으로의 제 말에 집중해 주세요. 여러분들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입니다.]
갑작스레 정신이 번쩍들었다.
뭔가 묘한 분위기에서 생존이라는 단어가 귀에 꽂혀 들어왔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대륙으로 갈 자격이 있는 것은 이번 튜토리얼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생존자입니다.]
“뭐… 그럼 죽이기라고 하겠다는 거야?”
[그 역시 여러분에게 달린 일입니다. 제가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것은 여러분들의 생존. 그리고 앞으로의 생활에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요소들입니다. 지금 이 상황은 꿈이 아닙니다. 엄밀히 여러분이 처한 현실입니다. 부정하시는 건 추천드리지 않겠습니다. 저 역시 이 튜토리얼에 안내자로서 여러분들에게 도움을 드려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장난치지 말라고! 제기랄!”
“제, 제발 꺼내주세요. 제발요.”
여러 가지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빌어먹을 여자의 설명은 차분하게 진행됐다.
[안내를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지금 있는 곳은 튜토리얼을 시작하기 전 여러분들이 대기할 수 있게 만들어진 스타트 포인트입니다. 대기실이라 생각하시면 편하실 겁니다. 스타트 포인트에는 여러분들에게 필수적으로 필요한 물품이 들어 있습니다. 식수, 식량 그리고 앞으로 여러분이 사용할 무기들입니다. 무기의 등급은 일반, 희귀, 영웅, 전설로 이곳에 있는 무기들은 모두 일반 이하 등급의 무기들입니다.]
확실히 몇 가지가 눈에 띈다. 지구에서 보던 패트병이 아니라 가죽으로 만들어진 수통이었지만 한쪽 구석에 비치되어 있다.
뿐만이 아니다.
역시나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생소한 무기들이다.
활과 화살, 검과 방패, 창과 메이스까지.
중세 시대에서나 사용할 것 같은 여러 가지 무기들이 즐비해 있는 모습은 확실히 이질적이었다.
‘진짜야.’
가짜가 아니다.
이가 빠진 검이나 오래된 무기가 대부분이었지만 날카로워 보인다.
괜스레 현실감이 닥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곳에 있는 무기들로 여러분은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튜토리얼의 목표는 생존과 공략입니다. 이곳에는 여러분뿐만이 아니라 대륙의 주민, 몬스터라고 부르는 생명체도 함께 있습니다. 그들은 여러분을 노릴 것이고 여러분은 그들에게 맞서야 할 것입니다.]
마치 판타지 소설 같은 설정이다.
재미있는 것은 조금씩 조금씩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
이곳을 울리는 저 목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간헐적으로 욕지기가 튀어나오기는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물론 여러분들의 힘으로 그들에게 맞서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안심해 주세요. 여러분들을 위해 준비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니까요.]
“이게 도대체 뭐냐고….”
[여러분은 선택 받은 플레이어입니다. 각기 다른 곳에서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이곳에 왔습니다. 이 장소는 그 개성을 극대화해 주며 여러분의 성장을 도와주지요. 상태창이라고 말씀해 보시면 제 이야기가 뭔지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일단은 상태창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뭔지 모를 상황에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시나 타이밍 좋게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상태창.”
“상태창? 어? 이게 뭐야.”
“꺄악!”
허공을 향해 비명을 지르는 여자나 깜짝 놀랐는지 이것저것 살펴보는 이들이 눈에 보였다.
[상태창은 여러분들을 상태를 그대로 표현해 주는 지표입니다. 여러분들이 얼마만큼 노력하는지에 따라서 여러분들의 능력치는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다음은 직업입니다. 크게는 전사, 마법사, 사제, 궁수로 분류되며 이후 업적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예를 들면 전사는 야만전사로 야만전사는 광전사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수많은 성장 방향이 있고 이 성장 방향을 결정하는 것 또한 오로지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아….”
[직업의 등급은 일반, 희귀, 영웅, 전설입니다. 다만 마법사나 사제 같은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신성력이나 마력에 대한 친화력이 필요합니다. 일부 직업은 선택할 수 없다는 점 또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할당된 임무나 숨겨진 퀘스트 혹은 보이지 않는 경험치를 쌓았을 때 여러분은 직업을 선택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직업.’
들으면 들을수록 어딘가에서 들었던 이야기와 굉장히 유사하다. 온라인 게임과 비슷한 구성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잘 어울리리라.
이곳에서도 사제나 마법사가 희귀하다면 희귀하다고 말할 수 있는 모양.
만약에 정말로 몬스터라는 것들이 있고 그 괴물들이 이쪽을 노린다고 한다면 대부분이 전사를 기피할 거라고 생각했다.
모두를 대신해 앞서 싸우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상태창.”
[이름-이기영]
[칭호-없습니다. 조금 더 노력하셔야겠네요.]
[나이-25]
[성향-용의주도한 전략가]
[직업-백수입니다.]
[능력치]
[근력-10]
[민첩-11]
[체력-11]
[지력-19]
[내구-12]
[행운-21]
[마력-00]
[장비-없음]
갑작스럽게 눈앞에 떠 있는 화면은 익숙하지가 않다.
뭔가 게임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에 조용하게 입을 벌렸을 때 다시 한번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은 한 가지는 특성입니다. 여러분들이 일정 수준에 도달했을 때마다 특성이 열리게 됩니다. 특성은 각 플레이어들마다 다르며 직업과 마찬가지로 플레이어 각자의 개성에 따라 결정되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플레이어 고유의 개성입니다. 등급은 직업과 마찬가지로 일반, 희귀, 영웅, 전설 4가지로 분류되어 있으며 위로 올라갈수록 좋은 성능을 가지게 됩니다.]
“어….”
[특성 역시 직업과 유사한 방향으로 열립니다. 직업과 마찬가지로 특성 또한 성장 방향에 아주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부디 선택에 유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사실 마지막 말에는 집중할 수가 없었다.
상태창에서 하단에 빛나고 있는 글자가 보였기 때문이다.
[특성-영웅 등급-열람하시겠습니까?]
‘어?’
보라색으로 빛나고 있는 영웅 등급이란 글자.
분명히 일반, 희귀, 영웅, 전설 등급으로 분류된다고 말했던 특성이다. 심지어 플레이어의 개성에 따라 이후에 발현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던 그 특성이다.
‘좋아.’
어째서 시작부터 이런 게 들어가 있는지, 정말로 지금 처한 상황이 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나쁘지 않다.
[특성]
[마음의 눈-영웅]
[자신과 타인의 상태창과 숨겨진 재능 등급을 열람할 수 있습니다.]
좋은 것인지 아닌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무언가 하나를 얻고 시작한다는 것은 커다란 이점일 것이다.
분명히 여자는 목표가 생존이라고 이야기했다.
‘생존.’
살아남아야 돼.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
지금 이 상황이 거짓말이든 진짜든 간에 일단은 할 수 있는 건 무엇이든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율하는….’
집에 혼자 남아 있을 여동생을 떠올리자 괜스레 입술을 꽉 깨물게 된다.
주변의 반응은 모두 제각각이다.
특성을 얻었는지 다른 이들과 특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이도 있었고 검을 만지작거리거나 방패를 찾는 남자들도 시야에 비쳤다.
무슨 상황인지는 알 수 없지만 위협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자신들 나름대로 살 길을 찾고 있는 것이다.
주저앉아 울고 있는 여자.
계속해서 고함을 지르는 중년 남성.
심지어는 아직 학생으로 보이는 꼬마도 보인다.
나 역시 주저앉아 소리를 지르고 싶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주저앉아 있을 시간은 없다.
‘재능?’
정확히 뭘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특성이라는 것을 얻은 것만 해도 커다란 성과.
남들과는 다른 출발점에 서 있는 것이다.
소년 만화 혹은 판타지 소설 같은 상황에 주인공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묘한 기대감도 있었지만 금방 고개를 흔들어 버렸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플레이어 이기영의 재능 수치를 확인합니다.]
[이름-이기영]
[근력-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민첩-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체력-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지력-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내구-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행운-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마력-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총평-플레이어가 가지고 있는 재능 수치는 최하입니다. 열심히 노력해도 소용없겠군요.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3류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어 보입니다. 거의 모든 수치가 절망적입니다. 선천적으로 몸치인 것은 물론 마력 쪽으로도 발달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그나마 지력과 행운은 괜찮지만 글쎄요…. 플레이어의 미래가 심히 걱정될 정도입니다. 굳이 검을 휘두르거나 다른 걸 시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결과는 뻔하니까요.]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기대와는 너무 다른 수치.
눈을 비비고 보고 또 봐도 결과는 같다.
“어?”
살아남는 것이 최종 목표다.
어차피 주인공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현실과 만화는 다르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너무나도 절망적인 수치에 나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제기랄.”
내 재능 수치는 일반 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