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회귀자 사용설명서 002화
내 재능 수치는 일반 이하다(2)
“제기랄….”
[이상으로 모든 안내를 마치겠습니다. 곧 스타트 포인트가 개방됩니다. 몬스터의 공격에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길….”
정신이 없다.
나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전에 계속해서 일이 진행되고 있었던 탓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짐승들이 내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오고 있다.
공포에 질린 이들은 점점 벽 쪽으로 붙기 시작했고 최소한 자신의 몸이라도 보호하려고 하는지 무장하는 이들도 시야에 비쳤다.
나 역시 마찬가지.
무기는 부족하지 않다.
곧바로 달려가 창을 집어든 것은 당연지사.
검도 남아 있었지만 짐승들과 가까이에서 얼굴을 마주보는 것은 사양이었기 때문이다.
‘어떡하지?’
‘어쩌지?’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당연하지만 당황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여기저기에서 비명이라 해도 무방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밖에서 들리는 짐승들이 우는 소리와 밀폐된 공간이라는 특수성이 공포감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살려주세요!”
“제, 제발 꺼내주세요. 제발….”
“장난치지 말고 빨리 문 안 열어? 당신들 전부 고소할 거야! 고소할 거라고! 빨리 문 열어!”
“엉엉…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요….”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경찰에!”
“무기 들어! 밖에서 나오는 소리 안 들려? 무기 들라고!”
“당신이나 들어요! 당신이! 남자들은 빨리 방패라도 들어요. 빨리요!”
“뭣 하는 거야! 지금! 이상한 분위기 조장하지 말고 빨리 이 거지 같은 장난 안 끝내?”
“장난은 뭐가 장난이야! 다들 눈앞에 떠 있는 상태창 못 봤어? 빨리 무기 들라고! 어이 거기 아재! 이게 장난으로 보이쇼?”
발악하듯 외치던 덩치 큰 남성이 나무 방패를 들어 올렸다.
싸우자고 외치는 사람은 많지만 놈은 조금 더 적극적이다.
내가 채 어떤 것을 발동시키기도 전에 남자의 전체적인 정보가 시야에 비쳤다.
[플레이어 박덕구의 상태창과 재능 수치를 확인합니다.]
[이름-박덕구]
[칭호-없습니다. 조금 더 노력하셔야겠네요.]
[나이-23]
[성향-단순무식한 열정가]
[직업-백수입니다.]
[능력치]
[근력-21/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민첩-16/성장한계치 희귀 이하]
[체력-21/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지력-10/성장한계치 희귀 이하]
[내구-30/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행운-11/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마력-00/성장한계치 일반 이상]
[총평-전체적으로 나쁘지 않게 밸런스가 잡혀 있습니다. 근력과 내구의 잠재 능력 수치가 높아 전사로 성장한다면 나쁘지 않게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나 내구와 체력의 잠재력은 엄청나군요. 마력과 민첩이 낮은 것이 흠이지만 다른 부분으로 보완할 수 있겠죠? 플레이어 이기영에 비교한다면 무척이나 훌륭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딴 것까진 안 알려줘도 된다고….’
23살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는 외모다.
거대한 키와 덩치, 살이 찐 체형이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뚱뚱하다는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온몸이 근육질로 뒤덮인 느낌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일단 근력 포인트와 내구 포인트가 10인 나와는 다르게 근력은 20포인트, 내구는 30포인트다.
재능 수치만 최하위일 뿐만이 아니라 기본 스탯마저 최악이라는 것을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특성 마음의 눈으로 읽은 것과 마찬가지로 전사, 고기방패로는 쓸 만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대놓고 친한 척한다면 상대방의 경계를 살 수 있음이 분명.
일단은 창을 들고 녀석 근처에 서성거리는 것이 첫 번째다.
역시나 창을 들고 싸우겠다는 액션을 취하자 박덕구라는 녀석이 반가운 듯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형씨도 싸울 참이요?”
“그렇습니다. 일단은 그래야 될 것 같습니다. 바깥에 뭔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대로 주저앉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말 한 번 시원하구만, 형씨. 비실비실해 보이는데 말이야.”
“고맙습니다. 일단은 준비를 하도록 하죠.”
실례되는 말을 한 건지도 모르는지 녀석은 썩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이렇게 말 한 마디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나는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대중들을 향해서였다.
“지금 이 상황을 부정해 봤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일단은 앞서 닥친 일부터 해결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밖에서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이게 현실이든 몰래카메라든 아니면 꿈이든 뭔가를 해야 합니다. 모두들 무기를 드세요. 일단은 저항해야 합니다.”
“이딴 장난질 그만하라고!”
“장난이 아닙니다. 저도 이런 장난 하고 싶지도 않고, 차라리 장난이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모두들 일단 무기를 들어주세요. 만약에 장난이라면 그때 다시 대처해도 됩니다.”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들이닥칠 적의 숫자도, 종류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그, 그래 일단은 무기를 듭시다. 일, 일단은 저 밖에 있는 것들을 처리한 다음에 상황을 살펴보는 게 맞을 겁니다. 분, 분명히 이길 수 있을 거라고 했으니 그, 그렇게 될 겁니다.”
“옳, 옳습니다!”
“일단은 싸웁시다!”
당연히 싸움에 익숙한 이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둘 검을 들기 시작한다. 단순히 분위기에 이끌린 자도 있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장을 하는 이도 있다.
분위기는 조금씩 좋아진다.
‘나쁘지 않아.’
이런 흐름은 괜찮다.
“여자들도 무기 들어요.”
“네?”
“앞에 나가서 싸우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 일단은 무기라도 들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지켜줄 거라고 기대하면 안 됩니다. 이건 현실이에요.”
“아. 네, 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들었을 것이다.
결국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무기를 들기는 하지만 그것뿐이다.
여전히 뒤에 서성거리고 있는 몇몇 무리는 확실히 아니꼽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그런 말을 대놓고 할 수는 없는 노릇. 결국에는 침을 삼키며 다가올 적들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이길 수 있을까?’
당연히 무리.
그렇지만 버틸 수는 있을 것이다.
사망자가 많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이 베이스캠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튜토리얼. 분명히 튜토리얼이라고 말했으니까.’
분위기도 좋고, 모두 싸울 의지가 있다. 눈동자에는 모두들 살아남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하다.
‘할 수 있어.’
[잠시 후 스타트 포인트가 개방됩니다. 5, 4, 3, 2, 1.]
[스타트 포인트를 개방합니다. 여러분의 무운을 빕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뭔가 버텨내거나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오로지 내 착각이었다.
“꺄아아아아아악!”
앞쪽이 아닌 뒤쪽에 있던 석문이 열리며 인간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괴물이 몸을 뒤로 빼려던 여자의 목을 물어뜯었다.
상대적으로 후방에 위치한 이곳까지 피가 튈 정도.
다른 이들의 눈이 공포에 질리기도 전에 사방에서 괴물들이 들이닥쳤다.
“아아아아아악! 살려줘!”
“도망쳐!”
‘제기랄!’
순식간에 비명소리가 가득 울려 퍼지기 시작.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싸우자고 먼저 외쳐댔던 박덕구 자식도 정말로 저런 괴물이 찾아올 거라고는 몰랐는지 검과 방패를 든 채로 멍하니 전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 한 번 잡아본 적이 없는 일반인, 심지어 싸움에도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다.
이런 상황을 버텨낼 수 있을 리가 없다.
모두들 눈앞의 현실이 믿기 힘든 것이다.
나도 모르게 멍하니 전방을 바라보고 있는 박덕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뭐 해? 죽고 싶어!?”
“형, 형씨!”
다리와 창을 든 손이 후들후들 떨린다.
그렇지만 입술을 깨물며 일단은 창을 내질렀다.
얻어 걸렸는지 괴물의 머리를 정확히 관통한 창.
박덕구는 악에 받쳐 방패로 괴물들을 밀어냈다.
진형이 붕괴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순간적으로 아군과 괴물들이 뒤섞이고 열린 공간으로 도망치는 인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도망쳐야 돼.’
이곳에 있다가는 죽는다.
‘죽어.’
틀림없이 전멸.
‘죽을 거야.’
다른 생각을 할 시간 따위는 없다.
“뛰어!”
“어? 어? 어?”
“망할 돼지야! 뛰라고! 내 말 안 들려?!”
일단은 점찍어둔 녀석을 향해 고성을 내질렀다.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곧바로 방패를 들고 내빼기 시작한 녀석.
나 역시 좁은 틈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몸을 내던졌다.
‘아!’
발걸음을 옮기던 와중에 떠오른 것은 식량과 물.
비교적 가까운 거리다.
이곳에 다른 쉼터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수 없는 만큼 저것들은 무조건 챙겨놔야 한다.
“형, 형씨! 어디로!”
“물 챙겨!”
“알, 알겠!”
여러 목소리가 뒤섞이는 와중에도 비명소리만은 분명히 들려왔다.
좀비에서 붙잡혀 어깨를 물린 여자와 눈이 마주친다.
“살, 살려….”
“제길.”
순간적인 고민.
그러나 창을 맞잡은 두 손은 여자의 기대를 배신한다.
절망으로 가득 찬 여자의 눈동자를 쳐다보지 않는다.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는 가죽 가방을 두세 개 집어 들고 고개를 돌리자 개떼같이 달려든 괴물들이 여자를 덮치는 광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 덕분에 내가 살 수 있으니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 맞으리라.
‘미안하다.’
대답이 들려오지 않을 사과를 마음속으로 중얼거린 이후에 곧바로 발걸음을 옮긴다.
“형씨!”
박덕구가 힘껏 외친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이쪽으로 몸을 날리는 괴물.
“씨….”
푸욱!
“게엑!”
마침 어디에선가 날아온 검이 녀석의 머리에 틀어박혔다.
행운 수치와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은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는 상황.
잠깐 동안 검을 날린 남자와 눈이 마주친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정보를 확인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확실한 것은 굉장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
‘뭐지?’
겁에 질린 얼굴도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 눈도 아니다. 절박해 보이기는 했지만 삶에 대한 집착은 아니었다.
‘착각인가.’
무척이나 기억에 남는 얼굴.
순간적으로 녀석과 스쳐지나가니 방패를 든 채로 나를 기다리는 박덕구가 보였다.
“물 챙겼어?!”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그러나 녀석의 오른손에 들려 있는 가죽 주머니를 보니 확실히 챙길 건 챙긴 모양.
시킨 일은 잘하는 타입이다.
“안, 안에 아직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닥치고 뒤지기 싫으면 뛰어! 돼지 새끼야! 뒤에 괴물들 안보여?”
“아, 알겠소. 형, 형씨!”
녀석과 함께 넓직한 공간을 튀어 나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도망치다 잡히는 사람도, 애초에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 모두 시야에 들어온다.
살짝 뒤를 돌아보니 쫒아오는 괴물들은 없다.
모두 안쪽에 있는 먹이한테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저항하고 있는지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그냥 귀를 막아버렸다.
“살, 살려줘!”
“맞서 싸워아아아악!”
“게엑!”
“꺄아아아아아악!”
“살려주세요. 엉엉… 살려주세요. 엉….”
“으아아아아아악!”
녀석 역시 눈을 질끈 감는 것을 보니 두고 온 사람들이 눈에 밟히는 것 같았다.
“죄책감 가지지 마. 어쩔 수 없었으니까.”
“그,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어. 어쩔 수 없었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녀석 역시 그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제길….”
그러나 박덕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욕지거기는 막을 방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