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회귀자 사용설명서 0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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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는 거요. 형씨.”
“그걸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어?”
아까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이다.
신경질적으로 입을 열자 박덕구가 조용히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스타트 포인트에서 사건이 터진 이후 계속해서 반말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쪽에 따로 이야기가 없는 것을 보면 내가 반말을 하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한 모양이다.
“일단은 이곳이 정확히 어떤 곳인지도 모르니까. 주변에 뭐가 있는지부터 살펴봐야지.”
“밖, 밖으로 나갈 거요?”
“당장은 아니야.”
“그, 그럼 언젠가는 밖으로 나간다는 거요?”
“당장은 아니라고 말했잖아.”
마치 미로와도 같은 내부에서 겨우 찾은 숨겨진 공간이다.
녀석과 내가 함께 위치하기에는 조금 비좁지만 나쁘진 않다.
일단은 최소한의 안전은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 식량 그리고 무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버틸 수는 있다.
문제는 언제까지 버텨야 하냐는 것.
또 이곳이 정말로 안전하냐는 것.
생각할 것이 무척이나 많다.
“정말로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는데….”
“상태창이랑 괴물 새끼들 봤잖아. 홀로그램도 아니도 게임도 아니야. 엄연한 현실이라고… 나도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다.”
“끄으응….”
지금 처한 상황은 엄연히 현실이다. 스타트 포인트에서의 일을 언급하지 않고 있을 뿐이지 실제로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해 보기도 했고,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괴물 새끼들이 들이닥치는 것도 확인했다.
현실을 부정해 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
“틀, 틀림없이 이 튜토리얼의 목표가 생존이니 뭐니 말한 것 아니요? 그, 그 이상한 여자가 분, 분명히 그렇게 이야기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 이곳에 계속 숨어 있다 보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뭐가 또 있소?”
“지금 이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 거라고 예상할 수 없는 게 문제지. 식량이랑 물은 어떻게든 챙겼지만 일주일도 버티기 빠듯하다고…. 그리고 이곳이 마냥 안전하리라는 보장은 없고. 우리가 지금 몸을 숨기고 있는 곳이 아까 봤던 괴물들의 쉼터인지 누가 알겠어.”
“정말이요?”
“말이 그렇다는 소리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튜토리얼을 나간다고 해도… 이후에는 어떻게 버틸 건데?”
“무, 무슨 소리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튜토리얼이 끝난 이후에 우리는 대륙이라는 곳으로 간다. 말인즉슨 지금 이 던전이 천국같이 느낄 정도의 상황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거야. 이곳을 벗어난 이후에 들어갈 장소가 이곳보다 더 안전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어. 단순히 버틴다고 능사가 아니라고….”
녀석이 입을 꾹 다물었다. 내 말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물론, 이후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여자의 말처럼 우리가 정말 대륙을 구하기 위해 선택받은 플레이어라면 지금 이게 끝이 아닐 것이다.
아까 봤던 괴물들을 수없이 마주쳐야 될지도 모르고 같은 인간끼리 싸워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앞으로는 더한 상황을 마주할 수도 있다.
“지금 당장 웅크려 봤자 결국 이곳을 떠나면 뒤지는 건 똑같다는 소리다.”
“뭐, 다, 다른 생각이라도 있는 거요?”
“싸워야 돼.”
“그 괴물들이랑 말이오?”
“게임해 봤어?”
“게, 게임 안 해본 인간도 있소?”
“상태창, 스탯, 칭호, 장비, 직업. 어디서 많이 봤다는 생각 안 들어? 지금 게임 속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해 봐. 뭘 해야 되겠어.”
“모르겠….”
“레벨업이다. 최소한 우리 몸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해져야 된다는 거야. 몸을 움직이고 괴물을 죽이면 스탯이 오르고 그 여자 말처럼 직업도 구할 수 있어. 특성이라는 것도 당연히 열릴 거고 힘들겠지만 그런 상황이 온다면 우리가 더 이상 그 괴물들을 피해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아….”
“일단 도망치는 와중에도 검이랑 방패는 챙겼고 식수랑 식량도 가지고 있는 상태지. 남들보다 상황은 조금 더 나아.”
“그, 그렇지만….”
역시나 녀석은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사실 모든 인간이 똑같을 것이다.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새끼들과 마주치고 싶어 하는 인간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다. 도태되면 잡아먹힌다. 살아남을 수 없다.
“그것도 생각해 본다.”
“답이 있기는 한 거요?”
“답이 없으면 만들어야지.”
답이 없으면 만들어야 한다. 아니, 생각보다 답은 쉽다.
“죽일 수 있어.”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을 무슨 수로 이긴단 말이오….”
생각해 보면 이기지 못할 녀석들은 아니다.
첫 번째 전투에서 기억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방에서 덮쳐온 괴물들 때문에 모두가 겁에 질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에 감촉은 남아 있다.
창을 찔러 넣었을 때의 소름 돋는 감촉. 제대로 힘을 주고 찔러 넣은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 창은 너무나도 쉽게 놈의 피부를 뚫고 들어갔다.
단지 공포에 질렸을 뿐이다. 그 상황에, 처음 보는 괴물에 당황하고 싸울 의지를 잃어버렸을 뿐이다.
내가 그랬고 옆에 있는 박덕구가 그랬고 그곳에 있는 모두가 그랬다.
‘이기지 못할 상대는 아니야.’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이기지 못할 상대는 아니다.
“단순하게 생각해야 돼. 최대한 단순하게.”
“무슨 소리요.”
“공포에 떨지 말고 있는 그대로 놈들을 봐야 된다는 소리다. 물론 쉽지 않겠지. 지금 당장도 몸이 떨려서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겠으니까. 너도 그리고 나도 말이다. 그러나 둘러싸이거나 갑작스럽게 뒤에서 덮쳐오는 공격만 아니라면 승산은 있어. 피부는 연약하고 운동 능력도 높지는 않아. 우리가 도망칠 때 뒤따라오던 녀석은 없었어. 중간에 전부 나가 떨어졌지. 스타트 포인트인지 뭔지 하는 곳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던 건 어디까지나 수적으로 열세했기 때문에. 그리고 공포에 질려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게 원인이야.”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기 전까지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러나 내 추측이 아마 맞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신체 능력에 비교해서 녀석들이 나은 것은 턱 힘이나 손톱이다.
신체 능력은 이쪽이 우위에 있을 지도 모른다.
맨몸으로 달려드는 녀석들과는 다르게 이쪽은 창이나 검 따위도 가지고 있다. 사실상 모든 부분에서 앞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이길 수 있어.”
문제는 박덕구 녀석이 덩치 값을 못하고 있다는 것.
내 설명이 끝난 이후에도 불안한 듯 침을 삼켜 넘기고 있었다.
‘답답한 놈.’
그때였다.
“게엑.”
어디에선가 목소리가 들려온 것.
순간적으로 숨을 들이마신 것은 당연한 일.
나뿐만이 아니라 옆에 있는 박덕구 녀석도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게엑!”
녀석들이 본래 무리생활을 하지 않는 건지 아니면 녀석이 무리에서 떨어진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소리는 들려온다.
“진짜 여기가 놈들이 사는 곳은 아니오?”
‘슈바….’
마음속으로는 욕이 절로 튀어 나왔다.
‘할 수 있나?’
어차피 한 번은 마주쳐야 할 놈이다.
심장을 누군가가 몽둥이질 하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곳에서 피한다면 죽도 밥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몬스터 게걸스러운 아귀의 상태창을 확인합니다.]
[이름-없음]
[칭호-없습니다. 조금 더 노력하셔야겠네요.]
[나이-5]
[성향-본능]
[직업-백수입니다.]
[능력치]
[근력-11]
[민첩-15]
[체력-14]
[내구-12]
[행운-10]
[마력-00]
좁은 틈새사이로 보이는 놈의 정보가 시야에 비친다.
‘된다.’
몬스터를 상대로도 이 능력은 발동한다.
조금은 반가운 소식.
‘이길 수 있어.’
극복해야 하는 것은 공포다.
앞전에는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확실히 징그럽다. 벌거벗고 있는 상체와 하체는 그렇다고 치고 녹색 눈과 툭 튀어나온 턱과 이빨이 눈에 너무 거슬린다.
저 턱과 이빨로 이름 모를 여자의 목을 물고 있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재생된다.
‘그렇지만.’
형편없는 능력치다.
이쪽도 그렇게 능력치가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녀석의 능력치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낮다.
저 정도라면 가능하다.
괜스레 창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박덕구가 초조한 듯이 나를 바라봤지만 내뺄 생각은 없다.
이길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된다.
“나, 나가면 안 되는 거 아니오?”
“…….”
굳이 대답하지는 않는다.
땀으로 등이 흠뻑 젖었기 때문이다. 손과 다리가 덜덜 떨렸다.
‘젠장….’
실수하면 죽는다. 아마도 죽을 것이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수가 없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필연적으로는 이 자식들과 부딪쳐야 한다.
“안 나가도 어차피 죽어.”
숨을 한 번 참고 곧바로 밖으로 튀어나갔다.
“게엑!”
‘제길!’
어느 정도 거리에 나서면 눈치챌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내 생각보다 빠르다.
움직임과 동시에 창을 휘둘러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당연지사.
그렇지만 손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공포에 몸이 굳어버린 것이다.
“으아아아악!”
결국에는 악에 바치듯 소리를 지르며 다가오는 놈의 머리를 향해 창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이쪽이 공격한다는 것을 예상했는지 녀석은 곧바로 몸을 숙인다.
창의 진로를 바꾸기가 쉽지가 않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에 힘을 주고 다시 창을 내리자 우연히 놈의 어깨에 창이 박혔다.
“게에에엑!”
푸욱!
하는 소름끼치는 감각에 손을 놓을 뻔했지만 멍하니 있을 시간은 없다.
“으아아아!”
그대로 창을 벽에 밀어 넣자 놈이 창에 꽂힌 채 벽에 처박혔다.
버둥거리는 녀석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지만 옆에 있는 돌을 들어 그대로 놈의 머리를 내려치기 시작.
발버둥치는 놈의 손톱에 상처가 나기는 했지만 고통은 없었다.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콰직!
손과 몸에 튀는 이상한 점액질과 혈액이 소름끼친다.
내려치는 손은 멈춰지지가 않는다.
“제기랄!”
콰직!
“죽어!”
콰직!
“게에에엑….”
콰지직!
“후우….”
결국에 녀석의 얼굴이 피떡이 된 이후에야 손에 들고 있던 커다란 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후우… 후우….”
심장이 빨리 뛰고 진정이 잘 안 되었다. 팔은 녀석의 타액인지 혈액인지 모를 액체로 범벅이다.
생명체를 죽이는 것 자체가 처음이다.
턱을 덜덜 떨다 좁은 틈새로 날 보는 박덕구와 눈이 마주쳤다.
깜짝 놀랐다는 눈.
정말로 내가 해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던 것이다.
나 역시 믿겨지지 않는다.
[근력 스탯이 1 상승했습니다.]
예상이 맞아 떨어졌다.
입꼬리를 위로 치켜 올렸을 때 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거, 이름이 뭐요.”
“이기영.”
“거, 기영이 형님이라고 불러도 되겠소?”
대답하는 대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놈에게 나는 똑바로 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할 수 있으면 너도 할 수 있어. 아니, 넌 더 잘할 수 있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소. 기영이 형님. 맡겨주쇼. 그럼 지금부터 뭘 하면 되는 거요?”
일단 나쁘지 않은 녀석을 얻은 것 같다.
할 일은 많다.
나는 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은 백수부터 탈출해 보자고.”
직업을 구한다. 그게 첫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