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회귀자 사용설명서 005화
회귀자(2)
다시 한번 놈의 능력치를 천천히 읽어봤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플레이어 김현성의 상태창과 잠재 능력을 확인합니다.]
[이름-김현성]
[칭호-알타누스의 회귀자, 이회차를 시작하는 검사, 이겨내지 못한 자, 희생을 등에 업은 자. 깨달은 자.]
[나이-22]
[성향-선의의 중재자]
[직업-검사-일반 등급]
[능력치]
[근력-19/성장한계치 전설 이상]
[민첩-28/성장한계치 전설 이상]
[체력-23/성장한계치 전설 이상]
[지력-18/성장한계치 영웅 이하]
[내구-22/성장한계치 영웅 이하]
[행운-23/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마력-11/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특성-검술 전문가-영웅 등급]
[총평-놀랍군요. 눈으로 보고 믿지 않으셔도 할 말은 없습니다. 근력과 민첩, 체력 스탯의 잠재력은 정확한 측정이 불가능합니다. 그 밖에도 다른 스탯 또한 놀라운 잠재 능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마법사로서도 무서울 정도의 성장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근접전사로서의 가능성이 더욱 큽니다. 이미 일반 등급의 직업을 얻었지만 더욱 크게 성장할 기회가 열려 있습니다. 플레이어 이기영 님에 비교한다면… 아니, 비교하는 것 자체가 저분에게 죄송한 일입니다. 저분과 말을 섞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아시길 바랍니다.]
‘말도 안 돼….’
눈을 씻고 봐도 회귀자라는 칭호는 변함이 없다.
‘시간 역행, 정말로 했다고?’
믿겨지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괴물의 존재가 드러난 지금 누군가 나를 대상으로 몰래카메라를 진행하고 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2회 차를 시작하는 검사.
당황스러워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고유 능력 마음의 눈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내 눈앞에 있는 녀석은 이 상황을 이미 이전에 경험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고 보니 스타트 포인트 지점에서도 녀석은 겁에 질린 얼굴이 아니었다.
‘제기랄….’
괜스레 욕이 튀어나왔다.
본래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이런 곳에서까지 그런 불공평함을 느낄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높은 스탯, 높은 잠재 능력치, 직업과 영웅 등급의 특성.
‘특성 열람도 가능한가.’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곧바로 정보가 떠올랐다.
[특성, 검술 전문가]
[검을 사용하는 모든 행동에 대해 가산점을 부여합니다. 검을 휘두르는 시간과 비례해 일정 비율로 공격력이 상승합니다.]
‘좋다.’
공격력을 산출하는 공식은 알 수 없지만 수련 시간으로 확실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은 특성처럼 느껴졌다.
앞으로 어떤 특성을 보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녀석이 가지고 있는 특성은 검사로서의 기반을 다지기에 아주 유리하다.
뭔가 불공평한 것 같은 느낌에 입술을 깨물었지만 녀석이 정말 시간을 역행해 이곳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한다면 녀석의 저 잘난 모든 것이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형씨는….”
“제 이름은 김현성이라고 합니다.”
“박덕구요.”
“이쪽은….”
“저쪽은 기영이 형님이요.”
“싸운 게… 처음이 아니시군요.”
“뭐, 보시는 것처럼 그렇소. 가죽 갑옷도 형님이 만들어 줬고, 이제는 사냥도 조금은 익숙해졌지. 그렇게 많이 싸운 것은 아니지만 말이오. 형님이 먼저 창으로 괴물 새끼들 머리통을 박살냈다오. 그걸 보고 조금 용기를 얻었지.”
“그런 것치고는 조금… 익숙해 보이시더군요.”
“뭐, 모든 게 다 형님 덕분이오. 그보다는 형씨가 더 익숙해 보이는데…. 방금 한 번에 찔러 넣지 않았소?”
“운이 좋았습니다.”
이쪽으로 녀석의 시선이 틀어와 박혔다. 박덕구의 말에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쓸데없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연기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머릿속으로는 별별 생각이 다 들었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눈이 마주치자 왠지 놈이 나를 꿰뚫어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발가벗겨진 듯한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그보다는 묘한 느낌에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살기, 마력?’
뭐가 뭔지 알 수 없으니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뭔가 이상한 감각이다.
“뭘….”
‘혹시 내가 상태창을 읽고 있다는 걸… 알고 있나?’
무언가를 읽고 있는 것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상태창에 나와 있는 녀석의 성향은 선이었다.
그러나 그저 무골호인이라는 법은 없다.
놈은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 과거로 돌아왔다. 가능성은 낮지만 이쪽이 적이라고 판단한 순간 검을 휘두를지도 모른다.
아니, 그전에 괜한 의심을 받는 것은 일단 사양이다.
때마침 박덕구가 조용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형님, 거 상태창 좀 그만 쳐다봐도 되지 않겠소? 직업이라도 받은 거요?”
‘나이스, 박덕구.’
“비슷해. 조금 있다 말해주마.”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듯한 느낌.
녀석과 곧바로 대화하기보다는 나는 일단 정하얀이라는 여자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놀랐는지 숨을 거칠게 쉬던 그녀는 이윽고 나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마침 저희도 생존자를 찾고 있던 와중이었습니다.”
“아….”
“일어나시죠. 부축해 드리겠습니다.”
“아, 아니요. 더 이상 폐를 끼칠 수는….”
그녀는 이미 한계다.
조용히 그녀에게 손을 뻗으니 그녀가 못 이기는 척 내 손을 맞잡았다.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김현성의 시선 때문에 얼굴이 따갑다.
나는 녀석을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기영이라고 합니다. 세 마리는 처음이었는데 …이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김현성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본 적이 있는 얼굴이군요.”
“스타트 포인트에서도 도움을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 그때….”
“네. 그때는 도망치고 있었죠.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때의 상황을 떠올려 보면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괜스레 내가 구해주지 못한 여자가 녀석들에게 뜯어 먹히는 장면이 떠올랐다.
고개를 한 번 흔든 이후에 아까의 말을 이었다.
“현성 씨는 혼자 다니시는 겁니까? 힘드실 텐데….”
“일단은 그렇지만… 지금은 생존자를 모으고 있습니다. 함께 움직이는 이들도 있지요.”
“네?”
“생존자를 모으고 있습니다. 마침 근처를 지나가고 있는 차에 비명소리가 들려서…. 일단은 함께 가시도록 하죠. 적당한 곳에 캠프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박덕구가 나를 조용히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하겠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녀석도 자신의 말이 조금 실례라는 걸 깨달았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아, 제가 실례했군요. 같이 가시겠습니까?”
그제야 덕구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조금은 고민해 볼 문제.
“인원은 몇이나 됩니까.”
“약 30명 정도 될 겁니다.”
“싸울 수 있는 인원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만약 덕구 씨와 기영 씨가 들어와 준다면 지금 보다는 조금 상황이 나아지겠군요. 마음 같아서는 제발 와주셨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걱정되는데….’
예상했던 대로다.
상태창에 있는 성향이 얼마나 들어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선의의 중재자라는 녀석의 칭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호구 같은 놈.’
좋은 말로 포장하자면 천사. 나쁜 말로 말하자면 호구다.
생존자 캠프에 있는 대부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비명을 지르는 것뿐이라면 사태는 심각해진다.
아마 그곳에 있는 인원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것은 물론, 매번 공포에 떨면서 살고 있을 것이다.
인원이 많아진다고 유리해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다섯 명이나 모이면 한 명은 꼭 머저리가 있게 마련이다. 하물며 이런 상황에서 삼십 명이나 모인다면 문제는 더 커질 거라고 생각했다.
분명히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온다.
불침번이나 갑작스러운 상황이 생겼을 때 대처할 힘은 커지겠지만 지킬 것이 많아진다면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진다.
그렇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
궁금한 것이 무척이나 많았기 때문이다.
회귀는 뭔지, 직업은 어떻게 구한 건지, 어떻게 남들과 다른 출발을 할 수 있었던 건지, 마력은 또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이 튜토리얼에 얽혀 있는 비밀은 뭔지.
김현성은 이곳의 공략법을 알고 있고 더 나아가서는 대륙에 대한 정보를 쥐고 있는 녀석이다.
죽이든 밥이든 일단은 따라가는 것이 맞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곧바로 출발하도록 하죠. 아마 놈들이 몰려올 겁니다.”
“네.”
“아. 이분은….”
“정하얀이라고 합니다. 그, 저….”
“아. 반, 반갑습니다. 김현성이라고 합니다. 정하얀 씨.”
대충은 서로 인사를 나눴다.
나는 정하얀을 부축한 채로 천천히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나 박덕구를 바라볼 때와는 표정이 조금 다르다.
놈의 시선이 정하얀에게 꽤나 오래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은 깜짝 놀란 것 같은 얼굴.
묘한 성취감이 김현성의 얼굴에 감돈다. 제대로 비유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막에서 오아시스라도 발견한 것 같은 표정.
이산가족이라도 만난 것 같은 느낌이다.
정하얀 역시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김현성의 시선을 인지했는지 경계심 가득한 눈빛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야 저 정도까지 빤히 쳐다본다면 그 누구라도 경계할 것이다.
‘찾고 있었나.’라는 생각을 해볼 정도였다. 아니, 어쩌면 정말로 찾고 있었던 사람일 가능성도 있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네. 문제없어요.”
“혹시라도 불편한 점이 있으시다면 언제라도 말씀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괜, 괜찮습니다. 정, 정말로 괜찮아요.”
조심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둘을 잠깐 뒤로 하고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가정해 보자.’
조금 우습지만 한번 가정해 보자.
만약 내가 다시 한번 똑같은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말이다.
녀석의 끝이 어땠는지는 모른다.
행복했을 수도 있고 불행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본의로 다시 시작한 것이 아니라면 녀석은 이전 생에 미련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겨내지 못한 자’
녀석의 칭호 중에 하나다.
설사 본의가 아니라고 해도 마찬가지.
인간은 후회하는 동물이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머릿속으로는 스타트 지점에서 봤던 여자를 구하면 어떻게 됐을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
만약 힘이 있었다면 그 여자를 데리고 박덕구와 함께 도망치는 선택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앞으로 일어날 미래를 전부 알고 있고, 앞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재들을 전부 알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어떨까?
내 경우에는 후회하는 일들을 바꾸려고 노력할 것이다. 당연히 그뿐만이 아니다.
시작부터 이득을 취하기 위해 모든 것을 선점한다.
인재, 보물, 직업은 물론 앞으로 사용할 재화까지 말이다.
앞으로 마주치게 될 적이나 위협이 되는 이들 역시 사전에 제거한다.
‘우습지만….’
그런 의미에서 놈이 나와 박덕구를 보고 별 다른 반응이 없는 것을 보면 적어도 나와 박덕구가 미래에 김현성의 앞을 막거나, 혹은 세상을 뒤흔들 악인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뭔가 중요한 역할을 맡을 캐릭터는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인원 중에 하나였음이 틀림없다.
“하얀 씨라고 불러도 될까요?”
“아… 네. 감사합니다. 호, 호칭은 편하신 대로 하세요.”
그러나 지금 나에게 얼굴을 붉히고 있는 이 여자는 다르다.
정하얀.
마법사, 혹은 사제로서 폭발적인 잠재 능력을 가지고 있는 여자.
내 특성 마음의 눈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본다면 금방 눈치챌 수 있다.
‘보물이구나.’
어디까지나 가정이다.
그러나 작은 정보를 종합해 결과를 추론해 보면 그럴듯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 민폐녀는 미래에 세계를 뒤흔든다.
뭘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무척이나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된다.
단순한 망상일 수도 있다.
어쩌면 김현성의 은인일 수도 있고 살리지 못해 후회했던 동료였을지도 모른다.
나나 박덕구처럼 별일 못 하고 뒤지는 캐릭터 중에 한 명일 수도 있다.
그러나 비벼볼 만한 가치는 있다.
‘이 여자.’
더 이상 민폐 덩어리가 아니다. 소중한 보물이 굴러들어왔다.
제 발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