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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9화 (9/1,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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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 009화

순수한 것은 물들이기 쉽다

“마법사.”

“으으음….”

“지, 지휘관이….”

양쪽의 반응은 뭔가 비슷했다.

박덕구는 정말로 실망한 것 같은 표정, 김현성은 조금은 아쉽지만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분위기였다.

확실히 활을 사용할 수 있는 궁수가 더 끌리기는 하지만 궁수의 강함에 밑바탕이 되는 민첩 수치가 낮은 것이 흠. 이후에 민첩 수치가 늘어나리라는 전망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내 민첩 잠재 능력 수치는 최하다.

아니, 그 이전에 몸을 쓰는 건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 궁수로 직업을 얻고 도둑으로 전직한다고 하더라도 비슷한 일로 고민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한 일.

사실 마법사도 비슷하다. 마력 재능이 높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부분이지만….

‘장점을 살려야 돼.’

그나마 높은 지력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후에 뻗어나갈 수 있는 직업을 생각해 본다면 낮은 마력으로도 효율을 낼 수 있는 직업이 분명히 나올 것이다.

“어째서 마법사를 선택했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냥 감입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지휘관을 선택한다고 해도 얻을 수 있는 스탯 포인트는 겨우 +1이 끝.

내게는 생소한 영역으로 보였던 마력을 3이나 올려준다는 건 엄청난 메리트다.

“그렇군요.”

뭔가 납득한 거 같다는 느낌.

대놓고 재능 수치가 낮아 희망이 없다는 소리를 할 수 없어 조금은 씁쓸했다.

[기초 마법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합니다.]

[직업의 효과로 인해 마력 스탯이 3 상승했습니다.]

[플레이어 이기영의 상태창과 재능 수치를 확인합니다.]

[이름-이기영]

[칭호-없습니다. 조금 더 노력하셔야겠네요.]

[나이-25]

[성향-용의주도한 전략가]

[직업-마법사]

[직업효과-기초 마법 지식 습득]

[능력치]

[근력-10/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민첩-11/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체력-12/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지력-19/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내구-12/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행운-21/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마력-03/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장비-없음]

[특성-마음의 눈]

[총평-여전히 절망적입니다. 그렇지만 직업이라도 구했다는 것에 의의를 둬 박수를 보냅니다. 마법사는 굉장히 괜찮은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플레이어 이기영의 재능으로는 마력을 느끼기도 힘들었을 테니까요. 마력 스탯이 3이나 올라간 것은 무척이나 희망적입니다만 마법사로서의 성장은 기대하지 않으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기대하는 만큼 실망도 큰 법이니까요.]

‘이 자식….’

왠지 눈에 들어오는 총평도 나쁘지는 않은 느낌이다.

여전히 악담을 퍼붓고는 있지만 그래도 마력을 얻었다는 건 고개를 끄덕일 만한 부분.

상태창에서도 확실히 변화가 있다.

기초 마법에 대해 습득한다는 것 또한 무슨 뜻인지 대충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머릿속으로 전혀 새로운 지식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말 그대로 기초라서 그런지 복잡한 술식이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전혀 새로운 마력이란 개념, 마력을 움직이는 방법, 마력으로 마법을 발현하는 것 그리고 수인과 영창에 대한 개념까지 들어왔다.

“나쁘지 않은 것 같네.”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다.

정확히 뭐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공식을 푸는 것 같은 느낌이기도 했고 마력으로 탑을 쌓는 것 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그 공사 현장에 도움을 주는 것이 영창이나 수인, 전혀 생소했던 개념이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쌓여간다.

‘당장 쓸 만하겠어.’

지휘관과는 다르게 이 힘은 적응한다면 곧바로 전력으로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천천히 눈을 감고 안에 있는 마력을 느껴보니 곧바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비록 손톱만 한 마력이지만 내 뜻에 따라 움직여주는 녀석들은 고맙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

그렇게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마력을 운용하고 있었을 때 김현성 녀석이 이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만 돌아가도록 하죠. 시간을 많이 지체했군요. 식량은….”

“가방 두 개면 충분합니다.”

“네.”

박덕구는 가방 두 개를 챙긴 이후에 나머지 가방을 김현성에게 건넸다.

잠깐 고개를 끄덕인 녀석은 이윽고 조금 고맙다는 눈으로 우리를 봤다.

아마 우리가 자신을 배려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 스타트 포인트에 있었던 가죽 가방의 개수는 12개 정도, 괴물들의 어그로를 끌어준 박덕구의 공헌도를 생각해 본다면 2개 정도면 싸게 먹히는 장사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뭐, 고마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현성 씨가 없다면 저희도 이것들을 얻지 못했을 테고… 여러 가지 도움 주신 걸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죠.”

“그래도….”

“거, 가서 사람들이나 먹이슈.”

“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요? 계속 저렇게 둘 수는 없지 않소.”

“아예 싸울 의지가 없는 사람들은 아마 방해만 될 겁니다. 쓸데없는 희생자가 나오면 안 되니… 일단 적응 훈련을 마친 이후에 순차적으로 괴물 사냥에 데려가는 게 좋은 방법으로 보입니다.”

“그게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소.”

생각해 본다면 박덕구 녀석도 일종의 적응 훈련을 마친 셈이다.

그러나 나는 굳이 머릿속에 있는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아마도 효과가 없지는 않을 겁니다. 일단은 시험 차 한 분을 데리고 다니는 게 좋겠군요. 물론 두 분이 허락하신다면 말입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나는 상관없지만… 형님은 어떻소?”

“저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인원은 이쪽에서 선별해도 되겠습니까?”

“혹시 마음에 두신 분….”

“만약 본인이 원한다고 한다면 정하얀 씨를 생각하고 있기는 한데.”

“아.”

잘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김현성의 모습이 보였다.

정하얀은 이미 당첨이 예정되어 있는 복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특성, 마음의 눈으로 잠재 능력을 확인하기도 했고 김현성 역시 미래의 정하얀에 대해서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대놓고 기뻐하는 녀석의 얼굴을 보니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쉼터로 향하는 길은 꽤나 안락했다. 다른 스타트 포인트까지 가기 위해 쉼터를 조금 오래 비워둬야 했기 때문에 미리 정리한 효과이리라.

역시나 쉼터로 다가서자 이지혜를 포함한 몇몇이 밖으로 뛰어 나와 김현성을 맞았다.

“아 현성 씨! 덕구 오빠랑 기영이 오빠도 수고 많으셨어요. 짐은 저희가….”

자연스레 김현성이 가지고 온 짐을 받아드는 녀석들이 눈에 보인다.

다리를 다친 것처럼 보이는 남자가 이쪽으로도 슬그머니 손을 뻗는 것이 보였기 때문에 나는 녀석의 손을 뿌리친 이후 입을 열었다.

“저희 짐은 저희가 들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 네….”

이쪽의 물건은 이쪽이 관리한다는 선을 그어놓은 셈이다.

우습게도 조금은 아니꼽다는 표정이 시야에 비친다.

직역해 보자면 ‘니들이 뭔데?’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잠깐 입꼬리를 올렸지만 녀석은 그걸 보지 못한 모양. 그런 나와 상관없이 김현성은 조용히 이지혜에게 전달 사항을 전달하고 있었다.

“다른 스타트 포인트에서 구해온 식량입니다. 지혜 씨가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분배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네! 맡겨주세요, 현성 씨. 혹시 그쪽에 다른 생존자들은….”

“없는 것 같더군요.”

“그, 그렇군요. 아쉽게 됐네요.”

“아마 근처에 몇몇이 살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조만간 다시 한번 그쪽 부분을 수색하러 가야겠지요.”

“아! 네….”

아마 식량의 양이 넉넉하지는 않을 것이다. 김현성이 가져온 가방은 겨우 10개.

30명의 인원이 앞으로 저걸 나누어 먹는다고 주린 배가 채워지지는 않으리라.

당장은 버틸 수 있겠지만 배고픈 것은 마찬가지다.

박덕구와 나는 가방 두 개를 들고 김현성을 둘러싸고 있는 새로운 아귀들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와중에도 계속해서 묘한 시선들이 떨어진다.

걸어가는 와중에 박덕구가 조금 불안한 듯이 말을 건넸다.

“형님 진짜로 안 나누어 먹을 거요?”

“우리는 자원봉사자가 아니야.”

“뭐, 그건 알고 있기는 한데… 조금 나쁜 놈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별로 좋지만은 않소. 아까 밖에 나왔던 사람들의 표정도 조금 마음에 걸리고….”

“왜 그 사람들 표정을 네가 신경 쓰는 건데.”

“그, 그냥 모양새가 조금 그렇지 않소….”

“죽을 고비를 넘기며 식량을 구해온 우리에게 감사해야 하는 건 저들이다, 덕구야. 자연스럽게 짐을 받아드는 것도 웃기는 거야. 우리가 지내는 이곳은 엄연히 김현성의 쉼터다. 저들이 아니라. 우리는 도움을 받은 만큼 도움을 줬고 그것도 모자라 우리가 얻기로 한 식량의 일부도 양보했다. 이 정도면 최소한의 도리는 한 거라고 생각한다. 김현성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별 말 없는 거고….”

“으음….”

“저들이 더 좋은 대우를 받고 싶다고 한다면 저들도 검을 들면 돼. 뭐 아마도 그렇게 하지는 못할 테지만… 어쩌면 김현성도 우리를 보고 다른 이들이 자극을 받았으면 하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말이다.”

“아아… 거, 우리가 식량을 많이 챙겨가는 것을 보면, 싸워야 대접받는다는 걸 깨달을 거란 작전인거요?”

“그런 효과도 바라는 거겠지.”

녀석은 멍청하지 않다. 아마 그런 효과를 일부 바라고 있을 수도 있으리라.

우리가 지낼 곳으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 사이에도 정하얀이 눈에 띄지 않는다.

사냥을 나가지 않는 이들이 이곳에서 할 일이 있을까 싶지만 일하지 않는 이는 없는 모양.

주변을 정리한다든지 혹은 무거운 돌을 옮겨 방책을 쌓는 이들 역시 눈에 띈다.

아마 정하얀 역시 그런 종류의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없는 동안 이곳을 관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불 보듯 뻔한 일.

‘이지혜.’

그녀가 이곳에 있는 이들을 담당한다.

배급도, 김현성에게 무엇인가를 보고하는 것도 그녀의 일이다.

김현성을 가장 처음 반기는 것 역시.

대충 어떤 생각을 하는지 느낌이 왔기 때문에 괜스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덕구야.”

“왜 부르쇼?”

“정하얀 씨 기억하지?”

“그 다리 쩔뚝거리면서 형님한테 안겼던 아가씨 말하는 거 아니요?”

“맞다.”

나는 가방에 있는 것 몇몇을 꺼내 박덕구에게 내밀었다.

“그 여자한테 이것 좀 전해주고 여러 가지로 신경 좀 써줬으면 좋겠다.”

“형님이 웬일… 아….”

뭔가 표정이 심상치 않은 느낌.

“이해했소. 뭐, 이런 거라면 맡겨주쇼!”

단번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캐치하는 녀석.

그렇게 오랜 시간을 붙어 있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함께하다 보니 내가 뭘 원하는지 눈치챈 것 같다.

그녀를 얻기 위해 작업을 치고 있는 것이라는 걸 이해한 것이다.

물론 연애적인 감정이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멀지만 한 인간을 이쪽에 기대게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다.

특히나 이런 상황에서는 말이다.

정하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녀의 성향은 순수한 옹호자.

김현성의 성향, 선의의 중재자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둘은 확연히 차이가 있다.

순수한 것과 선한 것은 분명히 다르다.

“순수한 건 물들이기 쉬우니까.”

“무슨 소리요?”

“아무것도 아니다.”

아마 작은 실험에서 그녀가 방금의 말을 증명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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