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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6화 (16/1,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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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 016화

인간이 다섯이나 모이면 꼭 하나는 쓰레기가 있게 마련이다(1)

‘나쁘지 않은데.’

마법을 보여준 건 나쁘지 않은 선택지였다.

김현성이나 박덕구는 확실히 강하다. 그러나 그 강함이 시스템에서 오는 강함인지, 아니면 본래 강한 것인지 애매하게 비칠 때가 있다.

당장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다고 광고하며 방패를 들어봤자 그다지 와닿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그에 비교하면 마법은 조금 다르다.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서 불덩어리가 튀어나왔다.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파괴하는 모습이고 눈으로 보고도 제대로 믿지 못할 광경이다.

웅크려 있던 이들을 굴속으로 빠져나오게 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다.

조용히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자 김현성이 중얼거렸다.

“성공적이군요.”

“아마 조금 달라진 정도일 겁니다. 싸우기 싫어하는 사람은 여전히 두려워할 거고…. 어쩌면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다소 무리하는 이들도 생기겠지요.”

“그래도 굶어 뒤지는 거보다는 나을 거요, 형님.”

“응. 그럴지도.”

박혜영이 단상으로 올라오고 있는 게 시야에 비친다. 많은 이의 축하를 받고 있는 모습.

“혜영 씨와 하얀 씨가 성공적으로 귀환한다면 아마 그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겁니다.”

그만큼 이번 원정은 김현성에게 중요하다.

도대체 이 던전의 공략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김현성 혼자만의 힘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

애초에 지금 당장의 능력치는 박덕구보다 조금 나은 수준.

마력이 높지만 몇십 마리의 놈들을 한꺼번에 상대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혼자서 많은 일을 떠안고 있는 만큼, 최소한 쉼터 주위의 놈들을 처리하는 건 타인에게 맡기고 싶을 것이다.

‘쓸데없는 책임감.’

그것만 아니었다면 놈은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갔을지도 모른다.

잠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이쪽으로 올라온 박혜영은 김현성과 박덕구, 내 손을 차례대로 잡으며 인사를 했다.

“잘 부탁드려요.”

“저야말로.”

친화력이 꽤나 좋은 건 인정한다.

대충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자 박혜영 역시 이쪽의 손등을 만지며 신호를 보내는 것이 보였다.

그녀보다는 정하얀이 더 중요한 것이 당연하다.

고개를 돌리자 조용히 이쪽을 응시하는 정하얀을 바라볼 수 있었다.

‘뭐.’

지금까지 봐왔던 표정과는 조금 다른 표정이다.

가라앉은 표정으로 박혜영을 바라보는 정하얀의 눈을 들여다본 순간 잠깐이지만 등 뒤로 찌릿한 감각이 느껴졌다.

‘제길.’

순간적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은 것이다.

‘뭐야. 방금 뭐야.’

“형님 어디 아프쇼. 식은땀이….”

“조금 몸이 안 좋아서….”

“거, 내일이 당장 원정 날인데 오늘은 푹 쉬쇼. 매일 그렇게 공부하니까 그런 거 아니요.”

“알겠다.”

“쯧. 누가 샌님 아니랄까 봐… 요즘 먹는 게 부실한 거요? 딱, 딱히 형님이 걱정되는 건 아닌데… 뭐, 내 몫이라도 좀….”

박덕구가 중얼거리는 건 관심 없다.

서둘러 고개를 돌려 다시 한번 정하얀을 바라본다.

평소와 같은 눈.

‘착각인가?’라고 생각해 봤지만 틀림없이 잘못 본 게 아니다. 이쪽을 바라보며 바보처럼 웃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뭐야.’

뭔가 잘못됐다.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불안한 느낌에 나는 침을 삼켜 넘겼다.

* * *

“다시 한번 말씀 드리겠습니다. 덕구 씨는 가장 앞, 그 뒤로는 현성 씨와 혜영 씨가. 뒤로는 하얀 씨와 제가 따라가겠습니다. 전투 방법은 간단합니다. 방패로 앞을 막고 제가 뒤를 막습니다. 현재 쉼터 주변에는 녀석들이 많이 몰려 있지 않은 만큼 이곳에서 조금 앞으로 나아간 이후에 사냥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질문은?”

“없소.”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네, 네….”

벌써 몇 번째 같은 브리핑의 반복이다.

본래 나, 박덕구, 김현성이 나갈 때와는 그 내용이 다르다.

김현성이 이번 원정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려주는 대목이리라.

새로운 인원 2명을 들인 게 전부가 아니다.

이번 사냥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성공하느냐에 따라서 쉼터 안에 있는 집단의 향방이 달라진다.

모두가 무사 생환한다면 쉼터 안에 있는 이들은 조금 더 자신감을 얻을 것이고 만약 무슨 일이라도 터진다면 일이 조금 복잡하게 흘러갈지도 모른다.

인원 배치 역시 의도가 숨어져 있다.

‘점수라도 따고 싶은 거겠지.’

김현성의 목적도 내 목적과 상당히 비슷하다.

정하얀을 얻는 것.

물론 이성적으로 그녀를 노리는 것은 아니다. 녀석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이미 확정되어 있는 미래에 강자와 친분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정하얀.’

정리하자면 집단의 무사 귀환 그리고 전설급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마법사와의 친분.

굳이 위치 선정 하나에 반발할 이유도 없고 초조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상황을 지켜봐야 돼.’

그때 봤던 정하얀의 눈.

내 착각이라면 좋겠지만 정하얀에게서 조금 떨어져 그녀를 지켜봐야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얀 누님을 안쪽으로 집어넣는 게 더 낫지 않겠소? 형님이랑 같은 포지션에 있는 게 가장….”

“아니, 이대로 간다. 이게 가장 좋은 포지션이야.”

“뭐, 형님이 그렇게 말한다면 야….”

“현성 씨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해. 애초에 전방에서만 놈들을 사냥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만큼 하얀이를 가장 뒤로 두고 현성 씨로 보험을 둔다. 둘러싸이는 경우만 아니라면 이게 가장 효율적일 거다.”

“네. 그 말이 맞습니다.”

김현성이 내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점수 딴 느낌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살짝 표정이 구겨져 있는 정하얀을 바라보며 김현성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아… 네.”

“그럼 저는 기영 씨와 함께 오붓하게 있으면 되는 건가요?”

“혜영 씨는 기영 씨를 잘 보조해 주시면 됩니다. 무기는 창이 적당하겠군요.”

“네. 알겠어요.”

“그럼 이만 출발하도록 하죠. 길은 미리 알려드린 대로….”

“어, 어디였더라….”

“제가 알려주도록 하겠습니다.”

이곳 지리 정도는 이미 머릿속에 넣어두었다.

박덕구가 고맙다는 눈길을 보내왔다.

애초에 주변에 관심이 없는지 아니면 나를 지나치게 의지하는지 모르겠지만 머리 쓰기가 귀찮은 모양이다.

커다란 나무 방패를 들고 일어선 녀석을 보니 굉장히 듬직해 보인다.

단순히 외관으로 본다면 김현성보다는 박덕구에게 더 점수를 많이 주고 싶을 정도.

장비는 내가 만들어준 엉성한 가죽갑옷이나 스타트 포인트에서 주워온 방패가 전부지만 그리 나쁘지 않아 보인다.

“그럼 출발해 볼까.”

“그렇게 하도록 하죠.”

다들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박혜영이나 정하얀 같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조금 긴장한 모양새다.

스타트 포인트에서 만났던 괴물을 직접 만난다고 생각하면 두려운 것이 당연하다.

나는 바로 옆에 있는 박혜영에게 툭 던지듯 위로의 말을 내뱉었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티 났나요?”

“스타트 포인트 때처럼 놈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미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지역이기도 하고 전방에서 덕구가 막고 있는 괴물들을 차분하게 창으로 찌르시면 끝입니다. 조금 무섭겠지만 아마 해낼 수 있을 겁니다.”

“생각보다 상냥하시네요.”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네가 패닉을 일으키면 뒈지는 건 나니까.’

전투 중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혹시라도 내가 저 여자의 눈 먼 창에 찔릴지 누가 알겠는가.

살짝 뒤를 돌아보니 정하얀에게 말을 거는 김현성이 시야에 비친다.

역시나 이것저것 신경 써주는 모양인 것 같았지만 정하얀은 김현성에게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조용히 고개를 숙여 외면하거나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바람에 의사소통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 같았다.

정하얀과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했던 인고의 시간이 떠오른다.

살짝 눈을 마주치며 웃자 정하얀 역시 무척이나 기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적어도 그녀와의 관계에서는 내가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어머, 한 눈 파는 거예요? 파트너는 나 아니었나.”

“잠깐 후방을 확인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동 중에 지나친 잡담은….”

“네. 알고 있어요.”

그때였다.

“놈입니다. 준비를.”

“뭐, 알겠소.”

뒤쪽에서 김현성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앞에서 박덕구가 중얼거렸다.

여전히 긴장하는지 박덕구의 몸에 힘이 들어간 것이 보인다.

“덕구 씨가 놈을 막고 있는 사이 혜영 씨가 놈을 처리합니다. 기영 씨는 혹시 일어날 상황에 대비를.”

고개를 끄덕인다.

여유로워 보였던 박혜영의 얼굴에 조금의 공포심과 긴장감이 감돈다.

아무리 우리가 있다고 해도 마무리를 해야 하는 것은 박혜영, 그녀다.

무섭지 않은 것이 이상하리라.

왼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하나.

“덕구야, 왼쪽에 바로 있을 거다.”

“알고 있소, 형님.”

뛰어든 박덕구가 곧바로 코너를 돌아 방패로 놈을 밀어 붙였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이 막다른 벽과 방패 사이에 막힌다.

박혜영은 나를 따라 들어오기는 하지만 여전히 당황한 듯한 모습.

“게에에에엑!”

“제기랄… 여전히 짜증나는 면상이구만.”

“뭐 해요?”

부들부들 떨고 있는 팔, 후들거리는 다리.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오줌을 지리지 않은 게 용할 지경.

“어, 어떻게.”

“찔러요.”

“거, 빨리 해결하쇼. 버티기 힘겹소.”

“아….”

지금껏 보여줬던 다소 여유로운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그나마 눈은 살아 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조차 자신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멍청해가지고… 센 척하더니.’

나는 그녀의 팔을 뒤에서 살짝 붙잡았다. 떨리는 손으로 창을 붙잡고 있는 박혜영의 손을 꽉 잡으니 그녀의 떨림이 잦아든다.

그녀의 귀에 속삭인다.

소리를 지를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윽박지르는 것보다는 조용히 전달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음번에도 이렇게 하면 다 뒈지는 거야. 알아듣지?”

“네.”

“팔에 힘줘.”

“…….”

팔에 꽉 들어간 힘.

박덕구가 막고 있는 놈의 몸통을 향해 창을 천천히 내지르니 박혜영의 팔이 그대로 딸려 들어온다.

내지르는 것은 나지만 그녀 역시 감촉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푸욱!

하는 소리와 함께 정체불명의 액체들이 울컥울컥 튀어나오기 시작.

소름이 끼쳤는지 창을 놓아버리려고 하는 박혜영의 팔을 다시 한번 꽉 붙잡았다.

“아직 안 죽었어. 힘 빼지 마.”

“게에에에엑!”

아직까지 발버둥을 치고 있는 녀석은 고통스러운지 아니면 화난 건지 자신을 막고 있는 박덕구를 할퀴려고 했다.

다시 한번 박혜영의 손을 위에서 잡은 채 창을 내지른다.

역시나 기분 나쁜 감촉이다.

“고기라고 생각해.”

“네. 네.”

푸욱!

콰직!

계속해서 창을 내지른다.

이미 놈은 미동이 없지만 이렇게라도 적응시키는 게 효과적이다.

조금 시간이 지난 이후에 박덕구는 살짝 방패를 떼고 괴물과 멀어졌다.

나 역시 박혜영의 손을 붙잡고 있는 팔을 살짝 내려놨다.

자연스럽게 괴물은 허물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계속해서 놈을 향해 창을 내지른 중이다.

공포심에서 벗어나기 위함인지는 모르겠지만 입술을 꽉 깨문 채로 창을 부여잡은 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이해할 수 있지.’

애초에 생명의 빼앗는 행위 자체가 낯설 수밖에 없다.

아무리 상대가 괴물이라고 한들, 그게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결국 소름끼치는 소리가 한참이나 들려온 이후에야 탈진한 듯 헐떡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속으로는 별별 생각을 다 하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주저앉아 있는 박혜영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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