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회귀자 사용설명서 019화
인간이 다섯이나 모이면 꼭 하나는 쓰레기가 있게 마련이다(4)
“꺄아아아아악!!”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괴물 새끼가 게걸스럽게 입을 벌리며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애초에 창을 먼저 내지르지 않았으면 어그로가 튈 일도 없었을 것이다.
놈들의 지능은 결코 높다고 할 수 없고, 침착하게 상황을 지켜본다면 박덕구가 달려오는 괴물을 막아줄 수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박혜영 이 망할 년은 침착하게 상황을 지켜보는 대신 자신의 공포심을 있는 대로 해방하는 것을 선택해 버렸다.
“제길!”
박혜영이 그림으로 그린 것처럼 이 상황을 꼬아 버렸다.
놈들은 소리에 민감하다.
평범한 대화 정도야 멀리 있는 곳까지 닿지 않겠지만 이 정도로 큰 비명이라면 당연히 놈들도 이쪽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다.
아마 주변에 있는 놈들이 전부 달려올지도 모른다.
김현성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상대하고 있던 괴물의 머리를 날려버린 이후에 박덕구가 붙잡은 녀석의 가슴에 칼을 찔러 넣었다.
인간이 낼 수 있는 속도와 조금 동떨어진 것 같기는 했지만 김현성도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느낀 만큼 그런 걸 신경 쓸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부들부들거리는 괴물 놈의 모습이 보이기는 했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당장 이곳을 벗어나겠습니다.”
“제기랄….”
“죄, 죄송….”
“기영 씨는 혜영 씨와 하얀 씨를…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덕구 씨가 길을 뚫는 걸로 하겠습니다.”
“거, 형씨는 어쩔 거요.”
“저는 괴물들의 주의를 끌도록 하겠습니다. 표식을 남겨두시면 찾아가도록 하죠. 곧바로 쉼터로 향하는 것보다는 조금 우회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기영 씨.”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쪽으로 관심이 끌린 괴물들을 전부 쉼터로 끌고 간다면 놈들에게 뷔페를 선물해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김현성은 나름대로 이 사태를 해결하려는 모양이지만 표정이 썩 좋지 만은 않았다.
회귀자라고 하더라도 아직 김현성은 성장 중인 루키다.
어느 정도는 감당할 수 있겠지만 녀석들이 일정 수 이상 몰린다면 이렇게 폐쇄적인 공간에서 놈들을 상대하기 무리가 있을 것이다.
“형님 어느 쪽으로….”
“조금 돌아서 갈 거다.”
“알, 알겠소.”
이제야 자신이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 알게 된 모양인지 박혜영이 창백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진심으로 비명을 지르게 될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일어나.”
“네. 네….”
“이쪽에 딱 붙어서 달린다.”
“알, 알겠습니다.”
정하얀은 말이 없다.
다만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멍하니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얀아.”
“아… 네! 오빠.”
별로 겁먹은 것 같지 않은 모습.
그러고 보니 장차 대마법사가 되실 정하얀의 존재가 떠오른다.
정하얀 역시 마법사인 만큼 만약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쳐올 경우에는 이쪽에 도움을 줄 수도 있으리라.
‘생존 가능성은 높아.’
충분히 살아 돌아갈 수 있다.
“그럼 무운을.”
“거, 형씨나 조심하쇼.”
“괜찮을 겁니다.”
곧바로 박덕구가 방패를 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박혜영 역시 겁에 질린 표정으로 우리를 뒤 따라오기 시작.
순간적으로 짜증이 치솟았지만 여기서 실랑이를 벌일 시간 따위는 없다.
그 대신 외우기 시작한 것은 주문.
마력으로 탑을 쌓는다. 아주 적은 마력이지만 위기의 순간에 이쪽을 한 번 구해줄 수 있는 마법.
“달리면서도 외울 수 있는 거요? 형님?”
“말 시키지 마라. 머리 아프니까.”
그만큼 주문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발과 손을 놀리면서 머릿속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애초에 해내기 힘든 일이다.
‘어려운데….’
“나, 바라노니….”
자꾸만 쌓으려고 하는 마력의 탑이 무너진다. 집중이 잘 안 되는 탓이다.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느낌. 뇌가 과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 같았다.
‘천천히 하나만.’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외운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다시 한번 천천히 탑을 쌓는다.
어차피 아직 괴물 새끼들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외울 시간은 충분히 있다.
“주여, 나, 바라노니, 내 목소리에, 답해, 적들을 태울, 힘을 내려, 주시옵소서.”
영창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영 짜증나는 주문이기는 하지만 확실히 내 머릿속에 각인된 주문이 손으로 발현된다.
불의 구체. 사람 머리만 한 불의 구체가 내 손 안에 들어온 것이다.
“거, 죽이는구만! 그런 건 언제 배운 거요!”
“말 시키지 마라, 덕구야. 집중하기 어려우니까.”
주문을 외우는 것도 일이고 유지하는 것도 일이다.
계속해서 흔들리는 마력의 탑을 무너지지 않게 보수하고 균형을 잡아줘야 한다.
‘엄청 복잡하네.’
만화나 애니메이션, 소설 따위의 창작물에서는 이 마법이라는 게 굉장히 간단하게 툭툭 던질 수 있는 걸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사용해 보니 머리가 깨질 지경.
오죽하면 마법사가 되는 선행 조건에 마력보다 중요한 것이 지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음은 어디요?”
“왼쪽.”
이런 상황에서 박덕구에게 길까지 알려줘야 하니 짜증이 치솟아 오른다.
“게에에에에엑!”
저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괴물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멀리 떨어진 놈들이라 그런지 몇 마리인지 자세히 확인할 수가 없다.
“몇 마리.”
“두 마리쯤.”
“혼자서.”
“해보겠소, 형님.”
“못 죽여도 상관없으니까 길만 뚫어.”
“맡겨주쇼.”
콰직! 푸욱!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계속해서 달리는 박덕구의 등을 보니 꽤나 듬직하게 느껴진 것은 당연지사.
조금 탱크 같은 놈이라고 생각해 버렸다.
“다음은!”
“오른쪽.”
“게에에에에에에엑!”
“몇 마리.”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 같….”
곧바로 팔을 뻗는다.
“화염구.”
내 손에서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었던 불꽃의 구체가 멈칫 하더니 일직선으로 날아가기 시작.
반동이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풍압 때문인지 내 손이 잠깐 하늘 로 향했다. 마법이 날아가는 과정에서도 머릿속으로는 주문 술식 연산을 멈추지 않는다.
기껏 외워 놓은 주문이 중간에 이상한 쪽으로 휘어들어가는 건 사양이었으니까.
퍼엉!
괴물 새끼 하나의 몸에 부딪친 구체는 조금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퍼졌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구체에 맞은 괴물 들이 불에 휩싸인 채로 주변으로 튕겨지는 것이 보인다.
폭발의 여파로 이쪽까지 바람이 불어왔다.
박덕구가 슬쩍 방패로 우리의 앞을 막은 것은 당연한 일.
벽에 부딪치거나 불길에 휩싸인 괴물들 대다수가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지는 것을 보고, 녀석이 다시 한번 놀랐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봤다.
좁은 공간이기도 했고 놈들이 밀집되어 있어서 운 좋게 맞은 것뿐이지만 주변에 퍼진 마법의 여파에 놀란 것이리라.
“워메… 형님.”
“후우… 후우….”
순간적으로 마력이 빠져나간 영향으로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길은 뚫어냈다.
“다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바로 그때.
“아!”
박덕구 역시 무심코 뒤를 돌아보다 깜짝 놀랐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하얀, 박혜영.’
둘이 무리에서 떨어진 것이다.
“언제부터…. 둘 못 봤어?”
“아, 아까까지만 해도 분, 분명히 따라오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너.”
잠깐 동안 짜증을 내려다 목에서 흘러나오려는 욕지거리를 다시 집어 삼켰다.
이건 내 잘못이다.
머릿속으로 주문을 외우느라 둘이 언제 이쪽과 떨어졌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박덕구도 몰랐단 사실은 조금 예상 외였지만 분명히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이쪽을 따라오고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녀들이 길을 알고 있느냐에 대한 것.
정하얀이라면 어쩌면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박혜영, 그 트롤러가 머릿속에 길을 외워 두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따라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찼을 테니까.
“어, 어떻게… 미, 미안하….”
“네 잘못이 아니다, 덕구야. 내가 조금 더 신경을 썼어야 했어. 시발.”
“이제는 어떻게 하면 되, 되는 거요?”
내가 나에게 묻고 싶은 질문.
무리에서 떨어진 게 박혜영 하나뿐이라면 당연히 버리고 간다.
그렇지만 그녀와 함께 있는 정하얀이 문제다.
그녀는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복권이다. 이런 곳에서 어처구니없게 그녀를 잃었다가는 헛웃음도 나오지 않으리라.
도박은 싫어하는 편이다.
그러나 필요할 때는 움직여야 한다.
“분명히 살아 있을 거다.”
“그, 그러면.”
“생각이 있으면 이쪽이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만들어놨겠지. 일단 다시 되돌아간다.”
“잘 생각 하셨소, 형님.”
아마 뒤쪽에서 따라오는 괴물들은 김현성이 처리해 주고 있을 확률이 높다.
중요한 것은 사방에서 몰려오고 있을 떨거지들.
주문을 다시 외우기는 힘들다.
마력 상태는 이미 바닥이지만 어떻게든 쥐어짜면 한 번 정도는 더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쯤 떨어진 건지는 기억나?”
“아, 아까 두 놈을 만났을 때만 해도 같이 달려오고 있는 것 같았소. 분, 분명히 눈으로… 비명 소리도 안 들렸었는데….”
나 역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주문을 외우고 있을 때만 해도 둘이서 함께 나를 따라오던 기억이 있다.
마법을 유지하는 동안 그녀들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게 옳다.
“일단 간다.”
“알겠소.”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뭔가 이상한 것 같은 기분이다.
박덕구가 둔하기는 해도 따라오던 둘이 한꺼번에 없어졌다는 걸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병신은 아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
애초에 박덕구의 민첩 수치는 높지 않다. 정하얀이면 몰라도 박혜영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괴물에게 발목이 잡힌 것도 아닌 상황.
어쩌면 던전 자체에 있는 함정에 걸려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확률이 낮다.
애초에 한 번 지나갔던 길.
만약 이곳에 함정이 있었다고 한다면 김현성이 언질을 줬을 것이다.
갑작스레 정하얀이 박혜영을 바라보던 눈빛이 떠오른다.
‘아니겠지.’
아직 판단을 내리기에는 시기상조지만 정하얀 그녀가 이쪽과 떨어지길 원했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어떤 주문을 외웠는지는 이쪽이 알 수 없지만 내가 주문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 옆쪽에서 다른 주문을 외웠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확률도 있다.
주문을 유지하고 앞쪽에 상황을 살피기에도 여유가 없었던 상황.
애초에 마력이 없는 박덕구야 정하얀이 무슨 짓을 하는지 눈치채지 못했을 거다.
김현성이야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으니 논외.
이런 생각을 하기는 싫지만 정하얀이 박혜영과 단둘이 있고 싶은 상황을 만들고 싶어 했다는 가정도 후보로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왜.’
안 좋은 생각을 하기는 싫지만 자꾸만 불안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박덕구와 함께 앞쪽으로 달려가던 그때, 던전의 입구를 발견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희미한 마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개….’
“덕구야, 더 빨리.”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요?”
단순한 가정이다.
그렇지만 희미하게 느껴지는 마력의 향은 내 가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