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회귀자 사용설명서 029화
퀘스트(2)
사방에서 몰려들어오는 괴물들은 대충 보기에도 질려버릴 정도였다.
개체 하나하나가 강해보이지는 않지만 그 양이 워낙 많다 보니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위험하단 생각을 하게 될 정도다.
일전에 김현성이 이곳에 들어오기 위한 인원이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알 수 있었다.
김현성과 박덕구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겨우 두 명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정진호 일행의 표정 역시 똥 밟았다는 표정.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적어도 정진호 녀석은 당황하지 않는다.
‘살아남을 수 있어.’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
마법에 쓸 마력을 아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이다.
끊임없이 입으로는 주문을 외워가면서도 나는 두 손으로 창을 꽉 쥐었다.
“덕구야.”
“알고 있소.”
전위로 나서는 것은 박덕구와 김현성, 정진호.
가장 가운데를 박덕구가 제대로 틀어막고 최대한 밀집 대형을 유지한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던 두 집단이 똘똘 뭉치기 시작한 것이다.
당장 뒤가 걱정되기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우리 뒤를 칠 정도로 놈들은 멍청하지 않다.
그건 김현성 역시 마찬가지.
일단은 눈앞에 닥친 현실을 벗어나야 된다는 생각으로 모두가 검을 잡고 달려 들어오는 괴물들과 몸을 부딪쳤다.
쾅!
“키에에에에에엑!”
“징그러운 놈들!”
한꺼번에 두세 마리가 달려 들어오는 것은 기본, 박덕구는 최대한 방패를 쥐고 몸을 웅크리며 녀석들을 막아내는 중이다.
딱히 창이 맞지 않는 상황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사방이 표적이니까.
푸욱 하는 감촉이 느껴지지만 그런 감촉을 느낄 여유도 없다.
반복적으로 창을 내지르며 어떻게든 박덕구와 김현성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
“최대한 밀집합니다! 최대한!”
“형님이랑 누님은 뒤에 딱 붙으쇼! 떨어지면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알, 알겠어요.”
“키에에에에엑!”
계속해서 달려드는 녀석들을 견디기 힘든지 점점 철문으로 몸이 밀리는 듯한 느낌.
박덕구는 그 거대한 몸으로 방패를 휘두르며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김현성과 정진호는 자신들에게 달려드는 놈들을 차분히 검으로 찌르거나 밀어내는 중.
‘강해.’
확실히 놈들은 강하다.
작은 방패로 막아내고 검을 찌르는 정진호도 물론 이지만 김현성 같은 경우에는 저쪽을 보면서도 나와 정하얀을 신경 쓰고 있다.
혹시나 놈들에게 칼을 맞지는 않을지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걱정할 필요 아무것도 없다, 이 자식아.’
“으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
정진호의 똘마니들도 필사적이다.
이쪽을 노릴 여유 따위는 없는 것이 당연하다.
입술을 꽉 깨문 채로 자신들의 목을 노리고 오는 괴물들을 막아내려 최대한 힘을 쓰고 있다.
괴물 새끼들의 혈액이 계속해서 창과 얼굴에 튄다.
내장 따위의 신체기관도 철퍽 철퍽 바닥에 떨어지자 바닥이 미끄러워진다.
역겨운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게 되지만 계속해서 돌아가는 정신없는 상황 때문인지 그것 역시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다.
“키에에에에에엑!”
괴물들이 내지르는 거슬리는 소리와 공포를 이겨내기 위한 비명이 하나로 합쳐진다.
“흐으읍!”
쾅!
방패가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한 녀석이 나가 떨어지는 모습은 꽤나 장관.
‘이 돼지! 아주 좋아.’
잠재 능력은 그렇게 높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현재의 박덕구는 진짜다.
김현성 정진호와의 강함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강함이었지만 30대 중 후반을 바라보는 내구 능력치는 기가차서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
스치는 종류의 공격은 아예 몸으로 받아버린다.
‘과소평가했어.’
내가 재능 수치로만 녀석을 판단해 과소평가했다.
오히려 김현성이나 정진호보다 더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지금의 박덕구다.
거대한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존재감.
근력 수치는 높다고 할 수 없고, 마력 역시 가지고 있지 않지만 제자리에 서 있는 이 방패병은 단순한 고기 방패가 아니다.
어디를 막아야 할지, 어디를 때려야 할지 알고 있다.
수를 가늠 할 수 없는 놈들을 몸으로 막으면서도 불편하다는 기색이 없다.
‘이놈은 인간 맞는 건가?’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해버릴 정도였다.
당연하지만 박덕구 역시 겁에 질리지 않은 것은 아니다.
녀석은 마음이 약하기도 했고 처음 나와 사냥을 다녔을 때에도 놈들을 피해 다니기 급급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은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조금 질렸다는 표정을 하면서도 무섭다는 표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처음처럼 도망치지는 않는다.
자신감이 붙거나 대형이 무너지는 걸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근육으로 꽉 찬 저 뇌에 그런 사고방식 따위는 들어가 있지 않다.
단순한 예상에 불과하지만 박덕구 저 돼지 새끼는 나와 정하얀이 다치거나 죽는 걸 원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나한테 떨어지지 마쇼! 형님! 떨어지지 마쇼!”
“뒤에 계속 있다, 돼지야. 집중해.”
“딱 달라붙어야 하는 거요! 딱!”
“알았다.”
계속해서 이쪽의 안부를 물어보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돼지 새끼….’
조금 걱정되는 것은 괴물들의 공격이 지나치게 박덕구 쪽으로 집중되고 있다는 것.
아직까지 큰 상처는 없어보였지만 분명히 크고 작은 자상 정도는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의 싸움 말고도 이후에 벌어진 일을 생각해 본다면 이런 흐름은 좋지 않다.
정하얀의 주문이 튀어나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바람 폭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들이 바깥으로 크게 튀어 올랐다.
바닥에 부딪치거나 천장에 부딪친 녀석들은 바람이 보낸 압력 때문에 피떡이 되지만 그렇게 기분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아껴야 하는데….’
나와 정하얀은 최대한 마력을 아껴야 한다.
물론 정하얀이 나보다 마력양이 많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마법을 무한정으로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정진호 무리보다 이쪽이 먼저 체력이 떨어지면 안 된다.
놈들을 최대한 막아내면서도 마력의 소비를 최소화해야 된다.
뭐라고 말을 전해야 할지 잠깐 고민하던 와중에 전황을 살피던 나는 슬쩍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푸핫.’
아마도 의도된 것이리라.
정하얀의 마법이 떨어진 범위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정확히 박덕구와 김현성이 막고 있는 괴물들 사이에 내리 꽂힌 마법.
다시 이야기하자면 정진호 집단이 막고 있는 왼쪽은 마법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소리가 된다. 간접적으로 왼쪽에 집중하고 있는 정진호를 비롯한 똘마니들에게 부담이 가중된다는 소리다.
악을 쓰고 괴물들을 막고 있는 녀석들을 보니 조금은 불쌍할 지경.
그에 비하면 이쪽은 조금 여유가 생겼다.
정하얀의 마법 덕분에 괴물의 숫자가 크게 줄기도 했고, 잠깐의 공백이기는 했지만 숨을 돌릴 여유를 얻었다.
‘정하얀 나이스.’
가끔 모자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기는 하지만 정하얀은 내 생각보다 더 똑똑하다.
한결 여유로워진 박덕구와 김현성은 당연히 왼쪽으로 지원을 갈 생각 따위는 없다.
“대열을 유지해야 됩니다!”
아마 대열을 유지하지 않을 수도 없을 것이다. 아직까지 왼쪽 지역에는 놈들의 물량공세가 계속되고 있으니까.
“숨 좀 돌려라, 덕구야.”
“안,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요. 누님 때문에 살았소.”
이쯤 되자 바빠지는 것은 정진호 쪽이다.
마법은 정진호 역시 사용할 수 있기는 하지만 놈은 자신이 마검사라는 걸 숨기고 싶어 하는 만큼 자신의 똘마니들을 위해서 마법을 사용하진 않을 것이다.
결국 놈들의 입에서 비명소리 비슷한 고함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원 좀 부탁드립니다!”
“이쪽도 지원 좀!”
“방금 같은 마법 부탁드립니다!”
마법을 쏴주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슬쩍 나를 바라보는 정하얀.
그러나 나는 슬그머니 고개를 저었다.
정진호가 있다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 팔이 물리거나 영 좋지 않은 쪽을 공격당할지도 모르지만 이 정도라면 놈들도 버텨낼 수 있다.
유석우 역시 정하얀을 향해 소리를 질러댄다.
“하얀 씨!”
“잠, 잠깐만요. 마, 마력을 채우고 있는 중이라….”
“제길… 아아아아아악!”
그 와중에 놈의 팔에 상처를 입히는 멋진 괴물의 모습은 탄성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은 검을 멈추지 않는다.
왜.
멈추면 죽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큰 소리로 소리 내어 웃지 못하는 게 아쉬울 정도,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버틸 수 있습니다!”
한 명씩 상처가 쌓이기 시작하는 왼쪽 진형.
‘이건 좋아. 아주 좋아.’
정진호의 몸에도 상처가 쌓인다.
아무리 놈이 내 생각보다 강하다고 한들, 이 장소는 김현성조차 혼자 들어가기를 꺼려했던 장소다.
고작 정진호 따위가 모든 것을 혼자 할 수밖에 없다.
나는 커다랗게 다시 한번 소리를 내질렀다.
“버틸 수 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기영 씨는 아직입니까?”
“조금만 더….”
“빨리!”
“버틸 수 있습니다. 분명히 막아낼 수 있을 겁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한결 여유로워진 창을 내지르며 긴박한 듯이 소리 지르자 이쪽도 정말로 긴박한 줄 아는 모양.
이미 저쪽의 상황은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바라보기도 힘든 상태다.
“으아악! 제길!!”
한 녀석은 다리를 물렸다.
모르긴 몰라도 이후의 전투는 절뚝거리며 진행해야 할 것이다.
“제기랄 빨리! 빨리!! 마법을!”
“거, 거의 다 됐습니다!”
사실은 이미 한참 전에 캐스팅이 끝난 마법, 정말로 뚫리기 전에 한 번쯤은 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지만 놈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조금 꺼려진다.
내가 쓸 수 있는 마법의 획수 제한은 많아야 두 번.
뒷일을 고려하지 않았을 때는 세 번이 한계다.
상황상 도움을 줘야 되기는 하지만, 동시에 놈들에게 부담을 안겨줘야 한다.
인간이 다섯 명이나 모이면 꼭 쓰레기가 한 명쯤은 있게 마련.
아마도 오늘의 쓰레기는 내가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화염구!”
콰광!
“키에에에에에엑!”
거대한 불덩어리가 왼쪽 진형에 떨어지기 시작.
거대한 굉음을 내며 왼쪽 진영에 잠시 동안 여유가 생긴다.
순식간에 놈들을 불덩어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물론, 그 파편에 맞은 이들까지 여파가 미친다.
아무래도 화력은 화염계 마법이 조금 더 쓸 만한 모양.
꽤나 많은 마력을 쏟아 부은 만큼 저 정도의 효과도 생기지 않는다면 조금은 섭섭해질 것이다.
확실하게 떨어진 마법을 본 정진호 집단은 조금 다행이라는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도 여유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마법의 여파는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키에에에에엑!”
녀석들의 표정이 점점 구겨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마법이 떨어져서 여유가 생겼고, 잠깐 동안 쉴 수 있는 여유를 얻었다.
다만.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밀집된 아귀들에게 불이 옮겨 붙고 있다는 것.
불덩이에 휩싸인 괴물들이 서로 뒤엉키며 화려한 불꽃놀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괴로워하는 것도 잠시.
처먹는 것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놈들은 결국 자신들이 향하던 곳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조금 더 흥분한 모습으로 말이다.
“키에에에에에에엑!”
비명인지 즐거움인지 모를 괴물 새끼들이 불덩이가 된 채로 정진호 무리에게 달려드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
‘불타는 아귀다, 이 살인자 놈들아!’
“제길!!”
“죄, 죄송합니다! 이,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이곳에는 없는 종류의 괴물.
놈들은 전혀 새로운 종류의 몬스터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