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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32화 (32/1,590)

# 32

회귀자 사용설명서 032화

퀘스트(5)

“밖에는 뭐가 있을 것 같습니까?”

“글쎄… 아무래도 이곳에서 먹는 음식보다는 훨씬 맛있는 게 있지 않겠소.”

“흐으윽….”

“아마 덕구 씨가 원하는 것도 있을 겁니다.”

“흐그윽….”

“….”

“….”

“괜찮다니까.”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던 이들이 묘하게 조용해졌다.

이제는 연례행사가 되어버린 상황이다.

나를 빤히 쳐다보다 눈물을 참지 못했는지 또 한 차례 눈물을 쏟아내는 정하얀이 시야에 비쳤다.

맨 처음처럼 격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끔씩 이렇게 뚝뚝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지는 걸 볼 때마다 기분이 조금 이상해졌다.

물론 상황은 나쁘지 않다.

김재준과 정진호가 이쪽의 눈치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티의 분위기를 조금 좋게 끌고 나가기 위해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정하얀이 이런 식으로 눈물을 쏟아내니 분위기가 조금 숙연해 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

누가 보면 뒈진 게 이기철이 아니라 나인 줄 알았을 것이다.

실제로 정하얀이 김재준 쪽을 째려보는 것도 일과가 되어버렸다.

김재준이 얼마나 불편해할지 감도 제대로 오지 않을 정도다.

이미 저들은 이쪽에 설설 기어야 할 입장이 됐다.

이기철이 예기치 않은 사고를 당하면서 유지되던 힘의 균형이 무너졌다.

정진호 파티는 사실상 이쪽을 사냥하는 것을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정말로 기회라고 생각하지 않는 순간이 오지 않는 한 무난하게 공략을 끝내는 게 좋다고 판단한 것이다.

‘나였어도 그랬을 거다.’

내가 정진호의 입장이었어도 김현성 파티를 죽인다는 계획을 전면 취소했을 것이다.

그들이 조금의 갈등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진호 씨. 조금 민망하군요. 사실은 계속 사과 받아야 하는 입장에 있는 건 제가 아닌데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사과를 해오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제가… 흥분했었습니다.”

“당연히 흥분할 만합니다. 저도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둘이 무슨 이야기가 오갔을지는 알 수가 없지만 정진호가 사과를 해올 때마다 김재준 역시 미안하다는 의사를 표현하고는 했다.

문제는 조금씩 조금씩 정하얀이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는 것.

“미, 미안할 짓을 어째서….”

들으라는 듯이 혼잣말을 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저러다 진짜 속마음을 말하는 게 아닌가 걱정되기는 했지만 그 정도 사리 분별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재미있었던 것은 유석우의 반응이었다.

“…….”

처음 내가 정하얀과 가까운 사이라는 걸 밝혔을 때부터 놈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역시나 정하얀과 내가 붙어 다니기 시작하자 불편하다는 기색을 드러내곤 했다.

특히나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고 있는 모습을 정하얀이 나를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한 답으로 인식한 것 같았다.

‘유석우….’

애초에 녀석은 정하얀에게 성범죄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실제로도 미수에 그쳤으니 이곳에 있는 게 조금 황당한 인원 중 한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놈이 전에 한 짓을 생각해 보면 범죄자 집단과 어울리는 것도 이해하지 못 할 일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정진호들은 녀석에게 무엇인가를 약속한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뒤늦게 직업을 얻고 그들과 같이 다니며 경험을 쌓은 것일 수도 있다.

이를 테면 정하얀이라든가.

성공적으로 일을 끝내면 사랑하는 내 님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겠지만 계획이 전면 취소되게 생겼으니 질투 어린 시선을 보내는 것도 이해는 간다.

아무튼 간에 이 파티는 최소한 겉으로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분쟁을 최소화하고 다툼이 없고 싸우지 않는 아름다운 파티 말이다.

이 모든 결과물은 정진호와 김재준이 이쪽에 설설 기며 형성된 분위기였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그다지 놈들처럼 하하 호호 지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김현성은 가끔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나로서는 그게 정진호를 어떻게 처분할지에 대한 고민이 아니길 바란다.

놈들은 박혜영을 죽인 살인자들이고 이곳에서 죽는 게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김현성이 정진호를 처음 봤을 때 보여준 반응을 생각해 본다면 그럴 확률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정진호와 유석우 그리고 김재준은 아직까지 가면을 쓰고 있다.

이곳에서 이쪽이 먼저 선공을 날린다면 미친놈이 되는 것은 당연히 김현성.

최소한 나와 박덕구 정하얀에게는 자신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것이 확실한 만큼 명분이나 기회를 노리는 중일 수도 있다.

아니, 분명히 그럴 것이다.

놈들을 죽일 수 있는 기회, 혹은 명분, 김현성이 간혹 인상을 찌푸리는 것은 그런 걸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도와줘도 될까.’

김현성은 도움이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그럴듯한 상황이나 우리와 떨어져 녀석들과 남을 수 있는 상황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를 테면….

‘먼저 공격 받는다든가.’

하는 일 말이다.

아마 그게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갑자기 습격해 온 비겁한 범죄자 무리에 맞서 싸우는 정의의 용사들, 어감이 꽤나 좋다.

문제는 이기철을 잃은 정진호와 똘마니들이 이쪽을 공격하지 않을 거라는 것에 있지만, 한 명은 분노 조절 장애자에 한 명은 질투에 미친 남자라는 걸 고려해 보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어쩌면 하품이 나올 정도로 쉬운 작업일 수도 있다.

‘도발은 특기니까.’

특히나 유석우 같은 경우에는 정진호의 똘마니로 들어간 지 얼마 안 되는 만큼 정진호도 예측 못 한 돌발 행동을 해올 가능성도 있다.

생각을 계획으로 옮기는 것은 순식간.

일단은 정하얀을 이용해 놈의 속을 살살 긁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보였다.

무슨 커다란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

단지.

스킨십.

이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오빠….”

정하얀이 작게 속삭였다.

조금 당황한 것 같은 목소리였지만 굳이 손의 위치를 옮기지는 않았다.

허리와 골반의 경계선에 손을 대고 있는 것만으로도 조금 떨리는 모양.

누가 보면 내가 정하얀을 지지대 삼아 길을 걷고 있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손 위치의 애매함을 느끼고 있는 것은 정하얀이나 유석우가 전부일 것이다.

허리도 아니고 골반도 아니고 둔부도 아니다.

뭐라고 딱히 설명하기 애매한 그 경계선을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반응이 온다.

‘풉….’

이쪽에 분노를 보내고 있는 게 느껴진다.

“아, 하얀아. 미안….”

“괜, 괜찮아요. 편하신 곳… 잡으시면 돼요….”

“그래도.”

“괜찮아요….”

마치 사랑하는 여자친구라도 빼앗긴 것 같은 표정은 내가 봐도 참담할 지경이다.

김현성과 정진호, 박덕구와 똘마니 김재준이 던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놈은 이쪽만 바라보고 있다.

슬쩍 손을 더 아래쪽으로 내리자 정하얀은 고개를 숙이며 입꼬리를 올렸다.

‘너무 좋아하는데….’

이런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와 반대로 유석우는 속이 뒤집어 질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슬쩍 눈이 마주치는 것은 순식간.

당연하지만….

입가에 미소를 띄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부럽지.’

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낄 것이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행동이나 표정은 가끔은 훌륭한 대화수단이 되어주기도 하니까.

“고마워, 하얀아. 힘들지는 않아?”

“아! 아니에요. 오빠가 도와주신 거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놈이 병신 같은 코스프레까지 하며 잡고 싶어 하고 만지고 싶어 했던 정하얀이다.

그런 정하얀의 이곳저곳을 떡 주무르듯이 만지는 것처럼 보일 테니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애초에 놈이 정하얀에게 진지하든 진지하지 않았든 그런 여부는 별로 상관 없다.

놈의 찌질함을 생각해 본다면 어쩌면 진지했을 거라고도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달달하네.’

본인이 뿌린 씨앗이다.

이것 외에도 보여줄 것은 많다. 당장 나를 걱정하는 정하얀의 눈빛이나 달콤한 목소리.

물론 나에게는 달콤하게만은 들지 않지만 마치 꿀을 바른 것 같은 목소리는 놈의 아픈 가슴을 더욱더 후벼 팔 거라고 생각했다.

‘손을 붙잡고.’

몸을 밀착시킨다.

허리나 어깨에 손을 올리거나 적당히 긴장감을 유지한다.

‘몸의 대화라는 건 좋지.’

성적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대화 방법이다.

정하얀의 얼굴은 이미 붉어질 만큼 붉어진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가에 매달려 있는 미소는 도무지 사라지질 않는다.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는 것 같아 그만 해야 된다고 생각을 했지만….

이 행동을 끊을 수가 없다.

결국에는 놈이 참지 못했는지 말을 걸어왔다.

“하얀 씨, 많이 힘들어 보이시는데… 제, 제가.”

“…….”

“풉.”

하고 웃음소리가 나도 모르게 뿜어져 나오는 상황.

완벽하게 유석우를 무시하고 있는 정하얀이 보였기 때문이다.

정하얀과는 다른 의미로 붉어진 유석우의 얼굴이 보인다.

뒤에서 일어난 작은 소란에 살짝 뒤를 돌아보는 김현성과 정진호 그리고 박덕구.

정하얀이 조금 숨소리를 거칠게 내뱉는 것을 본 박덕구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거, 누님 이제 힘들면 교대해도 되는데….”

“그래, 하얀아. 사실 그렇게 많이 다친 것도 아니….”

“아! 아니에요! 제, 제가 할 거예요. 제가… 같이….”

“거, 우리 누님이 아무래도 형님이랑 붙어 있고 싶은 모양인 것 같은데… 힘들면 꼭 말해줘야 됩니다.”

“네.”

꽤나 좋은 타이밍에 박덕구가 개입해 줬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정하얀이 원하고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 알린 것이나 다름없다.

정하얀의 허리에 손을 올리며 슬쩍 뒤를 바라보자 다시 한번 눈이 마주친다.

히죽.

거리는 미소를 보는 건.

놈에게는 참기 힘든 일일 것이다.

“달콤하네.”

“네?”

“아무것도 아니야, 하얀아.”

“네….”

부들부들 떨고 있는 놈의 모습이 보인다.

애초에 자제력이 있는 놈이었다면 쉼터에서도 그딴 일을 벌이지 않았을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정진호 혼자였으면 오히려 더 까다로웠을 뻔 했다.

자신의 검을 꽉 잡는 것을 보니 당장에라도 나를 검으로 쑤셔 박고 싶어 보였지만 일단은 참고 있는 모습에는 칭찬을 보내고 싶다.

자극이 조금 부족했던 건지, 아니면 기회를 보이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필요한 것은 아마 둘 다일 것이다.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며 정하얀의 허리를 붙잡았을 때였다.

“키에에에에엑!”

“전투 준비합니다.”

타이밍 좋게 좋은 기회가 찾아온다.

나는 힘없는 표정으로 창을 들어 올렸고 정하얀 역시 잠깐 떨어져 주문을 외우기 시작.

박덕구와 정진호, 김현성은 전방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푸흐흐흐흣….”

놈에게만 들릴 만한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린다.

“부러울 거야. 그렇지?”

“이….”

“정말 부드럽더라. 우리 하얀이.”

입꼬리를 올리고 계속해서 히죽거리는 얼굴을 멈추지 않는다.

“숫자는 다섯. 전투 준비 하겠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이 개새끼야!!!”

놈이 검을 들어 올리는 것은 순식간.

정확하게 배를 향해 들어오고 있는 칼날이 보여 도망가야 하는지 고민했지만….

‘맞는 게 나아.’

살 수 있다.

정하얀이 가지고 있는 치유 반지라면 이런 검상쯤은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푸욱 하는 소리와 함께 소름끼치는 느낌이 전해져 오기 시작.

“아아아아아아악!”

얼굴을 맞은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통.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워지는 고통 때문에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지사.

정진호나 김재준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 그렇지만 뭔가 사건이 터졌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유석우가 나를 찔렀다.

정진호가 유석우를 미친놈 취급하며 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는 했지만….

놈이 커다랗게 외친 소리에 내 걱정이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제… 제가! 해냈습니다! 진호 형님!! 재준 형님!! 이 개새끼를 해치웠습니다!”

사천왕 중 최약체를 잘라낸 것 치고는 너무나도 위풍당당한 목소리.

정진호가 가지고 있었던 패 중, 적어도 하나는 완벽한 지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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