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회귀자 사용설명서 038화
새로운 환경(1)
“튜토리얼에서의 생환을 축하드립니다. 이번 튜토리얼 던전의 담당자 이상희라고 합니다.”
꽤나 예의 바른 모습이었다.
조용히 고개를 숙이는 것은 물론 이쪽을 향해 살짝 미소 짓는 것을 보면 적어도 이상희를 비롯한 저 인간들이 우리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품고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오히려 조금 호의적인 느낌이다.
“튜토리얼 던전의 담당자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말 그대로입니다. 저는 베니고아 제국의 자유 길드 파란의 부길드 마스터로서 이번 회 차의 튜토리얼 던전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당신들이 우리를 이곳으로 불렀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닙니다. 저희들 역시 당신들과 같은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튜토리얼 던전으로 소환되었고 같은 시험을 겪었지요. 저희는 그냥 여러분보다 조금 더 먼저 이곳에 왔을 뿐입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어째서 소환 의식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지요.”
“으음….”
“저희의 임무는 이 튜토리얼 던전의 공략이 끝난 이후에 여러분들을 모시는 것과 아직 안에 있는 생존자들을 구출하는 데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 살아가야 하는 여러분들을 적응시키고 교육하는 것은 물론, 기본적인 생활권을 보장하는 것에 그 의의를 두고 있지요.”
“기본적인 생활권 말입니까?”
“네. 기본적인 생활권 입니다.”
“그렇군요. 공략이 끝난 이후에야 당신들도 이곳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게 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튜토리얼 던전의 문이 개방되어 있는 시간은 공략 직후 3일 정도입니다. 정확히 3일이 지난 이후에는 다시 던전의 문이 닫히게 됩니다. 어째서 그런 건지는 아직 저희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아무튼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는 안에 들어가서 나누시죠.”
조금은 어안이 벙벙하다.
사실 나온 이후로 이런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의아한 것은 저 여자의 태도였다.
[플레이어 이상희의 상태창과 재능 수치를 확인합니다.]
[이름-이상희]
[칭호-철혈]
[나이-33]
[성향-이상적인 중재자]
[직업-성스러운 기사]
[직업효과-기초 검술 지식 습득]
[직업효과-기초 방패 지식 습득]
[직업효과-중급 검술 지식 습득]
[직업효과-고급 검술 지식 습득]
[직업효과-기초 신성 지식 습득]
[직업효과-중급 신성 지식 습득]
[능력치]
[근력-82/성장 한계치 영웅 이상]
[민첩-52/성장 한계치 희귀 이상]
[체력-90/성장 한계치 영웅 이하]
[지력-30/성장 한계치 일반 이하]
[내구-91/성장 한계치 영웅 이상]
[행운-33/성장 한계치 희귀 이하]
[마력-77/성장 한계치 희귀 이상]
[장비]
[세인트 칼리버-영웅 등급]
[철혈의 방패-영웅 등급-기사 전용]
[힘의 띠-희귀 등급]
[특성-철혈]
[총평-능력치 자체가 굉장히 훌륭하군요. 이미 어느 정도 성장을 마쳐 자리를 잡은 것처럼 보입니다. 내구 능력치와 근력 능력치에서 조금 더 성장할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다른 능력치는 더 이상의 성장이 힘들지도 모르겠군요. 결코 나쁜 것은 아니지만 뭔가 조금 아쉽습니다. 그렇지만 그녀를 무시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플레이어 이기영과는 비교자체가 불가능하니까요.]
‘무시?’
당연하지만 내가 그녀를 무시할 리가 없다.
‘괴물.’
지금 우리가 전부 달려들더라도 그녀를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주위를 둘러봐도 마찬가지.
능력치를 놓고 판단해 본다면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났다.
마음만 먹는다면 우리를 이 자리에서 죽이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호의적이야.’
지나치게 호의적이다. 아니, 오히려 조금 자신을 낮추려고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화연 씨?”
“네.”
“안에 있는 생존자 수색을 시작하도록 해주세요. 저는 이분들과 함께 잠깐 동안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던전 안으로 진입하는 병사들을 보니 쉼터에 있는 이지혜를 비롯한 이들이 구출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사람뿐만이 아니라 외국인들도 보인다.
입고 있는 옷의 양식과 생김새를 보니 현대인과는 조금 거리가 멀어 보이는 느낌.
저들은 아마 이곳에 현지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보며 길을 걷고 있던 와중에 앞서 걸었던 이상희가 입을 여는 것이 보였다.
대답한 것은 파티의 리더인 김현성.
직접 대화에 참가하기보다는 이들의 대화를 듣고 정보를 수집하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한 나는 조용히 그들의 목소리를 귀담았다.
“무척 빠르게 공략을 완료하신 것 같더군요.”
“보통은 이렇지 않습니까?”
“예. 보통 공략이 끝나는 시점은 약 육 개월 정도입니다. 삼 개월 안에 던전의 공략을 완료한 것은 확실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아마 다른 곳에 있는 던전보다 이곳에 있는 던전이 훨씬 더 빨리 공략되었을 겁니다.”
“다른 곳에서도 던전이 있는 거요?”
“예. 공화국이나 왕국 연합에서도 몇몇 개의 튜토리얼 던전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소속되어 있는 베니고어 신성제국에서는 총 3개의 튜토리얼 던전을 관리하고 있지요. 한국인뿐만이 아닙니다. 다양한 국적을 가지고 있는 인종이 보통 각자 정해진 위치에서 소환되고 튜토리얼을 치릅니다.”
“그렇군요. 저희가 가장 빨리 던전을 공략한 것이 되는 겁니까.”
“예. 설명하자면 그렇습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 것은 보통 금기입니다만 어떻게 이렇게 빨리 돌파하실 수 있으셨는지 정말 궁금하군요. 그것도… 4명밖에 안 되는 소규모 인원이 말입니다.”
“여러 가지 사정이 많았습니다. 모두 말씀드리는 건 힘들겠지만… 그다지 큰 무리는 없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덕구 씨와 기영 씨 그리고 하얀 씨가 제 역할을 해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공략이었죠. 아, 그리고 지상 1층에 쉼터가 마련되어 있을 겁니다. 그곳에 있는 인원들도 구출을 부탁드립니다.”
“네?”
“형씨가 만든 쉼터요. 생존자들을 따로 모아놨지. 사냥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내버려두고 공략조를 따로 만들어 운영했소. 안전한 장소에 성벽 비스무리 한 것을 만들고 운영했으니 아마도 아직도 잘 살아 있을 거요. 식량도 충분했으니까. 음!”
“아….”
조금은 얼이 빠진 것 같은 표정.
‘아아아.’
이제야 뭐가 뭔가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우리를 둘러싼 상황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가 된다.
“그… 그렇군요.”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 듯한 이상희의 표정이 시야에 비쳤다.
‘김현성, 이 여우같은 놈.’
아무래도 우리 파티의 에이스이자 주인공은 힘을 숨기는 답답한 짓거리는 하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슬쩍 뒤를 돌아 튜토리얼 던전을 바라보자 하나둘 구출되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
쉼터 안에 있는 이들이 아닌, 혼자 숨어 있던 사람들인 것 같다.
당연하지만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울부짖는 사람도 있었고 이곳이 어디냐고 따지듯 묻는 사람도 보인다.
아마 저게 일반적인 반응일 것이다.
심지어 무장을 하고 있는 이들이 다른 이들에게 보내는 태도 역시 이쪽과는 묘하게 다르다.
조금은 강압적이고 아래로 보는 태도.
“여기가 어딥니까? 지, 지금… 도대체….”
“엄마… 엄마… 어어어엉….”
“곧바로 모일 수 있도록 합니다. 설명은 이후에 충분히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단은 바깥으로 함께 갑니다. 어이! 거기! 조용히 안 해?!”
“여기가! 어디야! 여기가 어디냐고!”
“야! 저 새끼 당장 끌어내!”
“이거 놔!”
“어어어엉… 여긴 어디예요?”
“설명은 한꺼번에 드릴 수 있도록 한다고 이야기 드렸습니다. 통제에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일단은 통제에 따라주셔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안전합니다. 더 이상의 위험은 없습니다. 모두 통제에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좋네.’
우리를 대하는 태도와는 180도 다르다.
저게 일반적인 반응이다.
울고불고 살려달라며 패닉을 일으키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파티는 조금 다르다.
지나치게 침착한 김현성은 물론, 정하얀도 내 옆에 꼭 달라붙어 있을 뿐, 새로운 환경에 대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궁금한 게 많다는 듯 계속해서 질문 세례를 날리는 박덕구 역시 마찬가지.
이상희의 입장에서 본다면 조금은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이 파티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튜토리얼 던전을 최단 시간에 클리어했다.
심지어 고작 네 명이서.
그뿐만이 아니다.
눈에 띄게 침착한 것은 물론, 다른 생존자들을 따로 모아 쉼터까지 만들었다.
그녀가 조금 황당해하는 모습도 이해가 간다.
‘대우가 다른 거구나….’
싸우지 않고 숨어 있고 도망치며 살아왔던 이들과 대우가 다를 만하다.
애초에 공략조로 참가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길드니 제국이니 공화국이니 하는 것을 보면 이 곳에는 틀림없이 이익집단이 있다.
적절한 예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몸값이 오를 대로 오른 신인 스포츠 선수인 셈.
이들은 우리를 스카웃하려고 하는 구단이다.
우리같이 싹수가 좋은 선수들이 별로 없다는 가정 하에 구단의 숫자가 많다고 한다면 예상할 수 있는 건 한 가지.
‘우리가 갑이야.’
지금 당장은 우리가 갑이다.
김현성이 어째서 자신을 숨기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있는지도 예상이 간다.
여우처럼 은근슬쩍 우리의 활약상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을 보면 녀석 역시 몸값을 올리고 싶은 모양.
어차피 팔릴 거라면 최대한 비싸게 팔리는 것을 기대하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당장 김현성의 계획이 뭔지 이쪽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어느 쪽을 선택하든지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은 꽃길뿐이다.
괜스레 입꼬리가 올라간다.
‘좋구나. 회귀자 파티라는 거.’
“들어가시죠.”
이상희가 우리를 안내한 곳 역시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방.
튜토리얼 던전 근처에 있는 곳이라고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다.
“음료는… 아, 필요하다면 식사도 내어 드리겠습니다.”
“먹을 게 있소?”
“네. 지구에서 먹던 것과는 조금 다르겠지만 아마 던전 안에서 먹던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겁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푸른색 깃발과 방 안에 있는 소품들은 이번 던전을 관리하는 파란 길드의 위상을 최대한 보여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늘을 위해 꽤나 신경을 쓴 것 같은 느낌.
당장 영입제의를 하는 건지, 아니면 무슨 여러 가지 절차가 남아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충 봐도 이쪽에 긍정적인 인상을 남기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 그러고 보니 여러분들의 이름을 듣지 못했군요. 만약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성함을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김현성, 검사입니다.”
직업명까지 말하는 것은 꽤나 의외.
그에 질세라 박덕구도 입을 열었다.
“방패병 박덕구요.”
“정, 정하얀이라고 합니다. 직업은 마법사예요….”
자연스럽게 시선이 내게로 꽂혀 날아온다.
직업을 숨기는 것이 좋지 않을까, 잠깐 고민했지만 별로 숨길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몸값을 올리는 이 대열에 합류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이기영. 연금술사입니다.”
다른 셋과는 다르게 벌써 2차 전직을 마쳤다.
아마 내부 평가가 올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을 때 보인 것은 뭔가 아쉽다는 얼굴의 이상희.
‘어?’
틀림없이 잘못 본 것이 아니다.
분명히 잠깐이지만 무척 아쉽다는 반응이 스쳤다.
“아. 대… 단하시군요. 벌써 2차 전직까지….”
대단한 것 치고는 조금 가슴 아프다는 목소리.
자연스럽게 김현성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연금술사 좋다며, 이 나쁜 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