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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40화 (39/1,590)

# 40

회귀자 사용설명서 040화

계약

사실 결코 나쁜 이야기는 아니다.

한화로 1억 5천만 원.

이곳의 화폐 단위로는 1,500골드의 계약금 그리고 연봉 700골드까지. 연봉은 한화로 무려 7천만 원이다.

이곳에 들어온 신입이 어느 정도의 평가를 받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겠지만 솔직히 신경 써줬다는 느낌은 있다.

당장 듣기에는 액수가 꽤나 크게 느껴졌으니까.

그렇지만 이들은 나를 환영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내 잠재 능력이 일반 이하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눈앞에 있는 이들의 상태창에 마음의 눈과 비슷한 특성은 없다.

연금술사라는 직업 그리고 상대적으로 미약한 마력 정도가 감점 원인이 됐으리라.

굳이 설명하자면 계륵 같은 느낌.

먹기에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버리자니 뭔가 아쉬운 것이 있는 것이다.

‘맞아.’

‘이 파티 전체를 영입하기 위해서 나 하나에게 이 정도로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라는 느낌이다.

머릿속으로 잠깐 상황을 정리하는 사이 이상희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지금 다 설명 드릴 수는 없지만 여러 가지 복지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지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대표적으로는 상해보험이나 사망보험 등의 여러 기본 보험은 물론, 길드 내에 있는 무료 시설들을 이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개인 코치 역시 붙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만약에 결혼하거나 아이가 생겼을 때에도 기본적인 지원금이 나가게 됩니다. 사실 결혼하시는 분들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아아 그렇군요. 따로 이유가 있습니까?”

“아마도 알 수 없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일 겁니다. 튜토리얼 던전 자체보다는 상황이 좋을지도 모르지만 이곳에도 몬스터와 던전 같은 것이 존재합니다. 파란 길드는 주로 던전 탐험이나 몬스터 사냥을 통해 길드를 유지하는 편이라…. 물론 사냥을 나가는 만큼 성과제도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냥이 끝난 뒤에 나오는 몬스터의 부산물은 길드와 사냥을 나간 파티가 약 40%에서 60%의 비율로 나누게 됩니다. 정확한 수치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말이 되는군요. 계약금과 연봉에는 위험수당까지 포함되어 있는 겁니까?”

“네. 아마 체감하시는 것보다 조금 큰 금액이실 겁니다.”

조금은 솔직하다.

사실 꽤나 전문적이라고 느껴졌다.

지구인들이 이곳에 자리 잡은 지 시간이 얼마나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혀 있는 느낌.

특히나 보험의 존재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똑똑하네.’

“연금술사로서 필요한 촉매 역시 이쪽에서 최대한 지원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가격이 값비싼 물건들은 지원해 드리기 힘들 수도 있기는 하지만….”

“이상희 님….”

“솔직하게 말씀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흠….”

“저희 파란 길드에서 맞춰 드릴 수 있는 건 이 정도입니다.”

그나마 이 이상희라는 여자의 태도는 나쁘지 않다.

이쪽을 존중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나름대로의 절박함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양옆에 앉은 나이든 할배들이 문제.

연신 한숨을 내쉰다든가 이쪽의 등급을 매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들은 틀림없이 고인물이고 썩은 물이다.

애초에 이쪽이 박덕구나 정하얀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공략을 함께한 동료들이라는 건 꽤나 무게감 있는 울림인 줄 알았는데 바깥은 또 그게 아닌 모양이다.

‘비일비재했겠지.’

어쩌면 던전에서 함께 나온 이들이 조건이나 돈, 혹은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찢어지는 상황을 많이 봐왔을지도 모른다.

사실 말이 좋아 생사를 함께한 동료들이다.

불과 3개월 전까지만 해도 생판 모르던 남이었던 걸 생각해 보면 주변 환경에 의해 찢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구에서도 형제들이나 가족, 둘도 없는 친구들이 이해관계 때문에 무너지는 것을 보면 그런 어른의 사정은 여기나 그곳이나 똑같을 것이다.

물론….

‘우리 파티에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야.’

절대로 아니다.

돈독이 오를 대로 오른 박덕구는 상상이 안 가기도 하고 무엇보다 정하얀이 나를 내팽개칠 리가 없다.

이미 이쪽에 투자한 것들이 많은 김현성도 마찬가지.

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는 조금 더 끈끈하고 저들이 알지 못하는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나에게 이런 태도를 보내는 것 자체가 우스울 정도.

그나마 네 명을 포섭하기 위해 이쪽에도 좋은 조건을 들이 밀었다는 건 칭찬할 만한 이야기가 되지만 정말로 절박했다면 조금 더 저 자세로 나왔어야 했다.

기분이 나쁘기는 하지만 나쁘지 않기도 하다.

오히려 이런 상황은 내게 무척이나 즐겁게 다가온다.

‘멍청이들.’

조금 더 나를 홀대하고 무시해 줬으면 좋겠다.

그게 더 유리하니까.

“사실 잘 모르겠지만 좋은 조건처럼 보이는군요. 많이 신경 써주셨다는 걸 알겠습니다.”

“네. 섭섭하지 않으실 겁니다.”

“혹시 파란 길드 내에는 비전투직군이 있습니까?”

“네.”

슬쩍 운을 띄어보자 역시나 옆에 있던 할배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기영 씨.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연금술사는 비전투직군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연금술사에게 이 정도로 계약 조건을 걸 길드는 없을 겁니다.”

“아. 그렇군요. 그거 참 이상하군요. 분명히 연금 마법이라는 선택지가 있을 텐데….”

“별로 효율이 좋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촉매를 이용해 마법을 발동시킨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몬스터의 부산물들은 가격이 비쌉니다. 연금술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연성진도 그다지 효율적이지는 않지요.”

“아.”

“연금술사 본인이 마력에 여유가 있다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집니다만… 혹시 마력 스탯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8입니다.”

“으음… 전직을 두 번 한 것치고는 그리 높은 것 같지 않군요. 혹시나 마력의 성장이 조금 더딘 것은 아닌지….”

“네. 지력에 비해서 빠르게 오르는 것 같지 않더군요. 동료 마법사에 비해서 말입니다.”

“아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다.

아무래도 방금의 대화 때문에 내부 평가가 조금 더 내려간 모양이다.

그나마 김현성이나 정하얀 때문에 이쪽을 받아준다는 것 같은 말투.

“다른 분들에게도 말씀을 잘해주신다면 조금 더 섭섭하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리슬쩍 계약서를 이쪽에 보이는 모습은 가관.

나는 일단 계약서를 힐끗 본 뒤 천천히 말을 이었다.

“글쎄요. 조금 더 생각해 봐야 될 것 같군요.”

“그게 무슨….”

“아. 일단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만 조금 생각해 볼 여유를 주셨으면 합니다.”

“아아아. 비교적 빨리 답을 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도 시간이 남아돌지는 않은지라….”

“네. 최대한 빠르게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께도 잘 이야기 해주셨으면 합니다.”

“네. 물론입니다.”

슬쩍 몸을 일으켰을 때 이상희가 조금 급하게 말을 걸어왔다.

“파란 길드의 카탈로그와 계약서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생각하시는 동안 읽어보시면… 아마 도움이 될 겁니다.”

“나중에 읽어보겠습니다.”

굳이 읽어볼 필요도 가치도 없다.

‘어차피 며칠 내에 모든 내용이 뒤바뀌어 있을 테니까.’

밖으로 나가자 나를 기다리고 있는 박덕구와 정하얀 그리고 김현성이 보였다.

잘하고 왔냐고 물어보는 듯한 눈빛에는 아무 말하지 않고 웃음으로 대답했다.

“형님은 뭐 별다른 시험 같은 건치지 않았소?”

“뭐. 그렇지.”

“사실 대우가 꽤나 괜찮은 모양이요.”

“그래?”

“네. 그렇습니다, 기영 씨. 개인적으로 조금 알아봤습니다만 다른 대형 길드도 이 정도 조건을 제시해 주지는 않는 것 같더군요. 아마 이들의 말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성장 가능성이 확실하게 보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 정도라면….”

“네. 사람들도 좋으신 분들 같더라고요, 오빠.”

“아마 저들의 입장에서도 나름대로 도박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영입을 성공적으로 마쳐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겠지요. 사람이 곧 자원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니 말입니다.”

별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놈들처럼 보이지 않았다.

“조금 이른 판단일지도 모르지만 어떻습니까? 대형 길드에 있는 것 보다는 이곳에서 확실한 지원을 얻는 게 조금 더 좋을 겁니다.”

“형님만 좋다면 나는 찬성이오.”

“저도….”

역시나 우리 충성스러운 덕구와 사랑스러운 하얀이는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문제는 김현성이 파란 길드에 꽤나 우호적이라는 것.

게다가 조금 급해 보이기까지 하다.

아무래도 개인적으로 세력을 형성하는 것보다는 이쪽에 기반을 마련하는 걸 생각하는 느낌이었다.

나 같아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세력을 형성한다면 확실히 장점은 있다. 온전히 우리 뜻대로만 움직이는 것은 물론, 선택지가 꽤나 넓어진다.

그렇지만 파란 길드에 들어가는 것 역시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이 길드가 쌓아온 인프라를 한꺼번에 꿀꺽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

김현성이나 정하얀 정도라면 길드의 주축 세력이 되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고 순식간에 녀석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놈의 선택은 확실히 합리적이다.

“물론 급할 이유는 없습니다.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기는 하지만… 저는 이 길드가 조금 마음에 드는군요.”

김현성이 뭔가 대답을 바라는 눈빛을 보냈다.

굳이 초조해하지 않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금 더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 혹시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아뇨. 딱히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예.”

“몸값을 조금 더 불릴 수 있을 겁니다.”

“네?”

“저희의 몸값 말입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인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아마도 조금 더 확실하게 몸값을 올릴 방법이 있을 겁니다.”

“아….”

혹시나 김현성이 파란 길드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딱히 그런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녀석도 어디까지나 세력이 필요할 뿐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조금 깜짝 놀란 것을 보니 뭔가에 쫒기는 것 같이 보였던 녀석도 제정신으로 돌아온 모양.

자신이 어느 정도에 위치에 있는지를 이제 실감한 것 같았다.

녀석의 계획이 뭔지 모르겠지만 우리 파티는 아직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

튜토리얼 던전에서 빨리 나온 만큼, 놈이 생각하는 미래에 차질은 없을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알 것 같군요.”

“네. 계약은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현성 씨. 질질 끌수록 초조해지는 건 저쪽이 될 겁니다.”

김현성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확실히 알아들었다.

“그럼… 거기에서 더 받을 수 있다는 거요? 사실 돈은 별로 그다지 상관이 없기는 한데….”

“뭐. 그렇지.”

“혹시 말이요…. 혹시나 형님은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인 거 아니요?”

“그, 그건 안 돼요. 오빠!”

“그런 건 아니야. 나도 너희와 함께하고 싶다. 물론 현성 씨도 같이. 그렇지 않습니까?”

“예. 비록 이런 이상한 장소가 맺어준 인연이지만… 기영 씨와 덕구 씨 그리고 하얀 씨와는 함께 가고 싶군요.”

꽤나 훈훈한 모습이다.

김현성을 바라보니 나도 모르게 히죽 웃음이 나왔다.

‘형이 돈 많이 벌게 해줄게, 현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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