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회귀자 사용설명서 041화
몸값을 올리자(1)
파란 길드가 우리에게 제시한 것은 이른바 긁지 않은 복권에 대한 투자였다.
신입들에게 과할 정도로 느껴질 정도의 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고작 4인 파티로 이루어진 공략조가 최단 시간 안에 튜토리얼 던전을 공략한 건 저들 입장에서도 놀랄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 조건을 제시한다는 것은 파란의 수뇌부가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다는 이야기가 된다.
‘멍청하지는 않아.’
오히려 유능한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으리라.
슬쩍 옆을 바라보자 박덕구가 뭔가를 열심히 읽고 있는 것이 보여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카탈로그 읽고 있어?”
“뭐, 그렇소. 아무래도 우리가 지내야 될 곳일지도 모르니까 읽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여기 길드 식당이 그렇게 끝내 준답니다.”
“음?”
“거, 지구에서 있었을 때 스타 쉐프 레이먼 박인가 뭔가 하는 양반이 식당을 책임지고 있다는데…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게….”
“아아아아.”
“숙소도 끝내주는 것 같고… 크으. 이런 곳에서 박덕구가 이리 출세하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소. 우리 할배가 이 모습을 봤어야 되는데….”
진담으로 던진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박덕구의 할아버지는 녀석이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걸 원하지 않을 것이다.
“길드가 아주 으리으리한 것 같은데… 도대체 다른 길드는 얼마나 크다는 거요?”
“아마 별 차이는 없을 거야. 본인들 입으로 예전 같지 않다고 말했지만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가는 법이니까. 그동안 쌓아온 게 있다면 버틸 수 있다는 여력이 있다고 봐야지. 우리를 영입하려는 것 역시 예전과 같은 영광을 되찾고 싶어서 인지도 모르고….”
“오. 뭔가 대접받으니까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소, 형님.”
“앞으로는 더 대접받게 될 거야.”
“정말이요?”
“물론.”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긁지 않은 복권, 그 말이 맞다.
우리는 긁지 않은 복권이다.
그것도 꽤나 당첨 확률이 높은 상품이다.
지금 위치에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이 정도, 당연하지만 당첨 사실이 확실해진다면 우리의 가격은 이전보다 상상도 할 수 없을 뛸 수 있을 것이다.
“그것보다 누님 표정이 조금 좋지는 않은 것 같았는데… 역시 누님은 형님이랑 떨어지기 싫은가 보오. 거, 누님 좀 잘 챙기쇼.”
“네가 그런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이건 필요한 일이라니까. 어쩔 수 없어.”
“그래도.”
‘네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돼….’
굳이 박덕구가 저런 식으로 설계를 하지 않아도 정하얀에 대한 중요성은 그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김현성 파티라는 복권이 당첨이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 중에 하나였으니까.
전설 등급의 마력 능력치 재능을 가지고 있는 미래에 대마법사 정하얀 그리고 두말 하면 서러운 회귀자 김현성까지.
잠재 능력이라는 건 단순히 능력치의 한계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잠재 능력이 높은 플레이어는 스탯이 오르는 속도가 그만큼 빠르다.
내 지력이나 행운이 바로 그러한 케이스.
정하얀의 경우에는 무서울 정도로 마력 능력치가 성장하고 있었고 이미 2차 전직을 마치기도 했다.
‘원소 마법사.’
김현성과 내 추천으로 선택한 2차 직업이다.
애초에 화염 마법사 하나만 열렸던 나와는 다르게 정하얀은 모든 원소에 친화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연금술사는 정하얀의 전직 목록에서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애초에 정하얀이 가지고 있는 특성 ‘마법사가 되는 방법’은 마법사로서의 성장을 장려하는 특성이다.
튜토리얼에서 잊고 있었던 퀘스트 완료에 대한 보상, 스탯 포인트 2와 정하얀의 재능을 생각해 본다면 이미 그녀가 성장한다는 것은 정해져 있는 수순이다.
필요한 것은 약간의 계기. 아주 약간의 계기였다.
던전에서 있었던 일이 트라우마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본인이 가장 열의가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여기에 플러스로 나와 정하얀 사이에 자리 잡을 수 있는 무언의 규칙을 만들었다.
마치 말 잘 듣는 학생에게 조금씩 상을 주는 것처럼 정하얀이 성과를 낼 때마다 이쪽에서 먹이를 던져주는 것이다.
‘…….’
물론 효과는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다.
단순히 칭찬하는 것을 시작으로 조금씩 스킨십의 강도를 올리는 것.
처음에는 머리를 쓰다듬고 깍지 손을 잡아주는 게 고작이었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 수위를 올려나가자 미친 듯이 성과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본인이 강해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칭찬을 받고 보상을 받는 것이 목적인 것 같다.
성과가 없을 때에는 다소 냉랭한 반응을 보여주는 것 역시 정하얀을 꽤나 절박하게 만들었다.
아마 박덕구가 말한 것은 이번에 생긴 일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시연회를 앞뒀을 때는 거의 얼굴을 보지 않았으니까.
애초에 밥만 먹어도 마력 능력치가 오르는 종류의 인간이다.
이런 인간이 눈에 불을 켜고 성과를 올리려고 하는데 능력치가 오르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우리 중, 개인 훈련 시간에 가장 시간을 쏟고 있는 것은 박덕구도 나도, 김현성도 아닌 정하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아까의 말을 이었다.
“애초에 내가 같이 있으면 하얀이가 집중을 못 하니까. 그래서 잠깐 떨어져 있었던 것뿐이야.”
“끄응… 그건 그렇지만….”
“파란 길드의 중역들과 다른 대형 길드의 스카우터들도 모이는 곳에서 하는 시연회인데… 괜히 나 때문에 일을 망치면 안 되니까. 안 그래도 이번 일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함께 있기로 했어.”
“거 밤마다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와서….”
“조금 떨어져 있는 법도 배워야 돼. 언제까지 내가 붙어 있을 수는 없으니까. 마침 이번이 좋은 계기가 된 거지. 고작 일주일뿐이었으니까.”
“끄응… 애초에 이런 시연회를 왜 하는 건지….”
“운동선수에겐 일상이야. 우리가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지 저들도 알아야 정확한 가격을 책정할 수 있을 테니까. 조금 안 됐지만… 나 때문에 이번 일을 망치는 건 하얀이에게도 안 좋을 거다.”
“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누님이 형님을 정말로 좋아하는 것 같소.”
정말로 좋아하는 정도로 끝났으면 그나마 나았을 것이다.
단순히 좋아하고 사랑하는 감정을 넘어선 지 이미 오래다.
그것도 박덕구의 설계 덕분에….
모르는 척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모르는 건지 궁금할 지경.
나는 슬쩍 몸을 일으킨 이후에 녀석에게 입을 열었다.
“그럼 가자.”
“거, 같이 갑시다, 형님.”
“빨리 와.”
“끄응….”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여러 가지 풍경이 스치고 지나갔다.
튜토리얼 던전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고급스럽고, 안전하고, 대우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창문 밖을 보니 쉼터에 있었던 이들이 모여 뭔가 하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아마도 기본적인 교육이나 이곳에서 필요한 교육을 받고 있으리라.
이지혜가 잠깐 생각이 나긴 했지만 가볍게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기니 눈에 들어온 것은 내부 연무장.
벌써부터 사람들이 꽤나 많다.
마음의 눈으로 주변을 한 번 훑어 본 것은 당연지사.
능력치의 높고 낮음 이전에 입고 있는 옷들이 꽤나 고급스럽다. 파란 길드의 중역뿐만이 아니다.
각자 다른 깃발을 내걸고 마치 어딘가에 대기업의 이사님처럼 연무장 주변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은 확실히 대형 길드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이들처럼 보였다.
‘스카우터?’
그래, 아마 스카우터일 것이다.
저들의 시선을 따라가자 시야에 비친 것은 잔뜩 긴장한 표정의 정하얀.
꽤나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파란 길드의 1차 교섭권이 마무리 지어진 채로 시연회가 결정된 것이 벌써 일주일 전.
중간에 상태를 한번 확인하기 위해 본 것을 제외하면 정하얀을 보는 것은 정확히 3일 만이다.
겨우 3일 못 본 게 뭐가 대수냐고 말하자면 할 말 없지만 적어도 정하얀에게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조금 마른 것 같지 않소?”
“조금.”
말랐다는 느낌보다는 조금 피곤한 느낌이다.
밤마다 훌쩍거렸단 덕구의 말도 정말이었는지 눈시울이 묘하게 붉어져 있었다.
시연회가 있는 날 보러 온다고 미리 말해놨기 때문에 제법 자신을 가꾼 것처럼 보였지만 전체적으로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주변을 계속해서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니 날 찾고 있는 모양.
조금 불안해 보이는 모습에 수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으으음…. 기대했었는데….”
“조금 상태가 이상해 보이지 않습니까?”
“아마 긴장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던전에서 나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요. 저 정도면 그나마 조금 양호한 편입니다.”
“최단 시간이라서 조금 기대했었는데… 뭔가 정신적으로….”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 하나는 제대로 봤다.
‘안 좋은데….’
어딜 봐도 뭔가 불안한 것 같은 모습이다.
2층에 있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여전히 초조해 보인다.
결국 슬쩍 손을 들자 나를 발견한 정하얀이 활짝 미소를 보내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망치면 안 돼.’
그만큼 이번 이벤트는 그만큼 중요하다.
-아아. 정하얀 님께서는 준비가 되셨다면 신호를….
들려온 목소리에는 정하얀이 고개를 끄덕인다.
천천히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 모습은 조금 불안전해 보이기도 하다.
제발 잘되게 해달라고 어딘가에 기도라도 드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본 이들이 다시 한번 혀를 차는 것을 보고는 어쩌면 내 계획이 실패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너무 몰아붙인 건가….’라고 후회하는 순간 느껴진 것은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마력의 유동.
“어?”
“어어…?”
어처구니없지만 정하얀의 주변에 있는 먼지들이 흩날리는 것이 눈에 보인다.
몸 안에 있는 마력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저런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지경.
뭐라고 주문을 외우는지는 모르겠지만 영창이 꽤나 길다.
혀를 차던 대형 길드의 중역들은 모두들 입을 벌리고 정하얀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중간 중간 당황스럽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장 보고해! 빨리!”
“어이! 여기 빨리 저 여자 프로필 좀 가져와!”
그야 놀라울 것이다.
아니, 애초에 저들보다 내 입이 더욱더 크게 벌어져 있다.
어느 정도 성취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문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웅성거리는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리기 시작.
저 멀리 보이는 파란 길드에 이상희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정하얀을 바라보고 있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뭐야, 저게….’
정하얀이 짧게 입을 연 그때였다.
“원, 원소 폭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소리와 함께 정하얀의 손에서 터져 나오는 울림.
귀를 막아야 할 지경이었다.
고막이 파열되는 느낌 때문에 급하게 마력으로 귀를 감쌌다.
연무장 중간에 위치한 커다란 표적으로 날아가기 시작한 정체불명의 마법은 굉음을 내며 처박혔고 정하얀과 표적을 이어주는 길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된다.
“이게 뭐야….”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 이후로 터져 나온 2차 폭음에 표적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
환호성은 없었다.
다만.
장내를 뒤엎은 침묵은 오히려 환호성보다 더욱더 시끄럽게 들려왔다.
“쟤… 뭐야….”
박덕구도 슬쩍 내게 입을 열어왔다.
“형님.”
“…….”
“이거 실화요?”
내가 내뱉고 싶은 대사다.
저런 건 상으로 뭘 해줘야 하는 건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