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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43화 (42/1,590)

# 43

회귀자 사용설명서 043화

미친년(1)

히죽거리는 미소를 숨길 수가 없는 상황이다.

악수를 건네는 것은 특이하게도 붉은 머리를 하고 있는 여자.

노출도가 곧 방어력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대담한 복장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돌아갔다.

‘아….’

실수라고 느낀 것은 순식간.

나와 차희라라는 여자를 빤히 바라보는 정하얀의 존재 때문이다.

평소에 이런 부분에 대해서 조심하며 행동했지만 너무 불가항력이라 이쪽이 어떻게 대처할 수가 없었다.

‘그야….’

가슴과 배를 거의 훤히 내보이는 복장, 자신감이 있을 만한 외모와 몸매, 염색을 한 것인지 아니면 어떤 마법적인 효과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붉은색 머리와 붉은색 입술은 묘하게 야한 느낌을 풍긴다.

그녀가 매력적인 외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깐 고개를 흔들고 마음의 눈으로 그녀를 들여다보니 곧바로 여러 가지 정보들이 눈에 비쳤다.

[플레이어 차희라의 상태창과 잠재 능력을 확인합니다.]

[이름-차희라]

[칭호-피에 미친 광녀, 붉은 용병, 신성제국의 붉은 광녀]

[나이-28]

[성향-예측 불가능한 혁신가]

[직업-용병여왕-전설 등급]

[직업효과-기초 검술 지식 습득]

[직업효과-중급 무기 지식 습득]

[직업효과-고급 무기 지식 습득]

[직업효과-고급 쌍수 무기 지식 습득]

[직업효과-고급 마력 운용 지식 습득]

[능력치]

[근력-97/성장 한계치 전설 이상]

[민첩-82/성장 한계치 영웅 이하]

[체력-85/성장 한계치 영웅 이하]

[지력-67/성장 한계치 희귀 이상]

[내구-90/성장 한계치 영웅 이상]

[행운-56/성장 한계치 희귀 이상]

[마력-82/성장 한계치 영웅 이하]

[장비-없음]

[특성-피에 미친 광녀-영웅 등급]

[지력 스탯을 일시적으로 깎아 공격력을 상향시킵니다.]

[총평-가까이 하기에는 조금 위험해 보이는 사람이군요. 찢겨 죽지 않게 조심하세요.]

직업은 영웅 등급의 용병여왕. 칭호는 피에 미친 광녀.

당연하지만 뭔가 좋은 느낌은 아니다. 예측 불가능한 혁신가라는 성향이 가장 그렇다.

‘뭔 능력치가….’

97의 근력 능력치와 90의 내구 능력치가 인상적이다.

이상희보다 강하다.

다만 그녀와 얼핏 비슷한 수준으로 보이는 것을 보니 상위 기준을 그녀들로 보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90대를 넘는 능력치와 영웅 등급의 직업과 아이템, 여러 가지 조건들이 더 있겠지만 아마 이 정도가 최소한의 조건이리라.

악수를 하기 위해 조용히 손을 뻗은 채로 싱긋 웃는 모습은 솔직히 말해서 매력적이다.

그러나 티를 낼 수는 없다.

정하얀의 심기가 불편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대놓고 드러내고 있지는 않다.

아직 자신이 이 여자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어쩌면 조금 더 철이 들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 팔을 꽉 잡은 손은 저 여자의 손을 맞잡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대형 길드의 귀빈이다.

‘이것 좀 놔… 하얀아….’

이런 자리에서 무안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 손을 꽉 잡고 있는 정하얀의 손 때문에 위치를 옮기기가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한 번만 이해해 달라는 심정으로 정하얀의 손을 잠깐 뿌리친 이후에 차희라의 손을 꽉 맞잡았다.

“반갑습니다. 이기영이라고 합니다.”

“이번 회 차의 스타들을 이렇게 직접 보게 되니 정말로 영광이네요.”

“반… 갑습니다. 정하얀… 이라고 합니다.”

“방금의 시연은 정말로 인상적이었습니다.”

“감… 사합니다.”

뭔가 호흡이 거칠어진다.

맞잡은 손을 살짝 떨어뜨리자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내 팔을 꽉 붙잡았다.

“두 분이 정말로 사이가 좋으시네요. 혹시 밖에서부터?”

“아. 그런 것은 아닙니다. 처음 본 건 튜토리얼 던전이었고 그 이후에 조금씩 가까워져서 좋은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정말로 부럽네요.”

시선을 처리하기가 정말로 힘들다.

‘부끄럽지 않은 건가?’

당연하지만 그녀의 자신감의 원천은 자신의 외관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가슴을 반절 이상 드러내고 다니는 것은 그녀의 취향이겠지만 저런 행동을 하는 내면에는 아마 용병여왕 차희라라는 플레이어로서의 자신감일 것이다.

그녀는 그만큼 강하다.

지금까지 내가 본 이들 중에서도 가장.

단순한 능력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녀 주위로 그 누구도 접근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아… 자기소개를 한 번 더 드려야 될 것 같네요. 붉은용병 길드의 단장. 직업은 용병여왕 차희라라고 합니다.”

‘역시.’

“직접 오셨군요.”

“네. 인재에는 조금 관심이 많아서요. 특히나 이번에는 재능 있는 분들이 많이 들어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던 터라… 마침 여유도 있었고요.”

“아. 그렇군요. 좋게 봐주시니 정말로 감사합니다.”

“아뇨. 당연한 걸요.”

“그렇지만 이야기를 나눠도 괜찮은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아직까지 교섭권은 파란 길드가….”

“어머… 교섭이라뇨. 어디까지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인데. 물론 영입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기야 하겠지만 저희 붉은용병 길드는 파란 길드의 교섭권을 존중하고 있답니다. 어디까지나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도와드리기 위한 조언자라고 생각해 주시면 편하실 거예요.”

“아아아아.”

말하자면 눈 가리고 아웅 하겠다는 소리다.

아직 협상 테이블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들이 어디까지 맞춰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우리뿐만이 아니다.

박덕구도 어딘가에서 다가온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김현성은 대놓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파란 길드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

힘 없는 길드가 어떤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만약 저들이 귀빈들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면 애초에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동정심이 들지는 않는다.

무소속인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이기도 했고 이곳에서 끈을 만들어 놓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었으니까.

“아마도 모르시는 게 많으실 거예요. 보통 1차 교섭권을 가지고 있는 길드들은 타 길드에 대한 정보를 통제하려는 성향이 강한 터라… 제가 운영하고 있는 붉은용병에 대해서는….”

“네. 듣지 못했습니다.”

“어머, 어쩔 수 없이 조금 설명 드려야겠네요. 저희 붉은용병은 근접 직군들이 모여 만든 길드입니다. 이름에서 보이는 것처럼 용병 성향을 가지고 있어 여러 의뢰는 물론, 던전이나 몬스터 사냥, 심지어는 소규모 전투나 전쟁에 대한 의뢰까지 받고 움직이는 길드라고 이해하시면 편할 겁니다.”

“아, 근접직군….”

“네. 정확히 말하면 근접직군으로 이루어진 용병 길드였었죠.”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네. 자세하게 말씀드리는 것은 어렵지만 길드 내부에서 마법사 및 사제를 양성하고 보조 직업군에도 투자를 해야 된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어서 말이죠. 조금 딴 이야기겠지만 마침 많은 예산이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랍니다. 다른 길드에 비해서 조금 늦은 만큼 더욱 투자를 해야 된다고 어찌나 간부들이 재촉하는지…. 사실 제가 여기까지 온 배경도 저희 투자자들 때문이고….”

“아아아아. 그렇군요.”

뭘 말하려는 건지 알 것 같다.

“얼마나 투자를 하실 생각인지 궁금하네요.”

“한화로 말씀드리는 게 편하시겠죠?”

“네. 아직은 그편이….”

차희라는 싱긋 웃으며 내게 말을 이었다.

“20억.”

‘어….’

“네?”

“한 사람당 20억.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추가 예산도 마련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물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투자할 예정이고요. 적어도 연간 5억 정도는 쏟아야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오지 않겠어요?”

대충 해석하자면 계약금 20억 이상에 연봉 5억이다.

이곳을 기준으로 하면 계약금 2만골드에 연봉 5천 골드인 셈.

추가 예산을 마련해 준다는 것을 보니 지금 말해준 것보다 더욱 맞춰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당황스러워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20억?’

처음에 파란 길드에게 제시 받았던 금액과 비교하면 그 갭이 너무 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가격이 뛸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대충 계산해도 20배가 뛰었다.

연봉 같은 경우에는 5배.

이쯤 되면 파란 길드 개잡놈들이 우리를 호구로 본 것은 아닌지에 대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째서 함께 공략을 헤치고 나온 이들이 찢어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금액이 이 정도라면 흔들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무려 20억이다.

일반인은 평생을 일해도 모을 수 없는 액수.

당장 나조차도 이쪽으로 가는 게 어떤지에 대해 계산하고 있다.

“다만… 근접직군 여러분들한테는 투자하기 조금 힘이 들지도 모르겠네요. 저희 쪽에서도 조금 무리하고 있다는 입장이라….”

“아.”

“저희 길드에는 유능한 인재들이 정말로 많거든요. 물론 김현성 같은 사람이 탐이 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한곳에 집중하고 싶어서요.”

이건 좋지 않다.

“그렇군요.”

“기영 씨와 하얀 씨도 저희 길드의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서 조금 관심을 가지실 것 같은데… 생각이 어떠신지 여쭙고 싶네요.”

김현성과 박덕구를 버리고 자신 쪽으로 붙으라는 이야기가 된다.

아마 근접직군으로 다져진 길드인 만큼 검사나 탱커들은 이미 포화상태일 터.

박덕구와 김현성에게는 투자하지 않겠다는 것도 이해가 간다.

일단 본인이 가장 완벽한 방패이자 검이다.

내가 그녀의 입장에 있었어도 정하얀 쪽에 조금 더 무게를 뒀으리라.

“프로젝트 자체는 정말 흥미롭습니다만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을지가 조금 걱정됩니다. 아무래도 튜토리얼 던전을 같이 공략한 친구들과 정이 들었던 터라… 한곳에 집중하기에는….”

“흐음… 의외네요.”

조금 흥미롭다는 표정이다.

왠지 모르게 고양이 앞에 쥐가 된 기분이 들었다.

“다른 곳에도 투자할 여력이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저희 길드도 요즘 힘들어서 말이죠. 떠나간 사람은 붙잡지 않는 주의이기는 하지만 저엉말로 아쉽네요. 옆에 있는 정하얀 씨도 마찬가지지만… 이기영 당신, 당신도 조금 아쉽단 말야….”

“뭘….”

“이건 선물.”

이쪽으로 가까이 온 차희라가 품 에 무언가를 집어넣는 것이 느껴진다. 제대로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어떤 아이템처럼 보였다.

‘뇌물?’

아마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정말로 선물의 의미로 던져준 것 같은 느낌.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려고 한다.

대형 길드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여자가 준 선물이니 아마도 꽤나 값어치가 나가는 물건일 것이다.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지 이야기해도 돼요.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니까요. 같은 제국 소속이니 함께 던전에 들어가거나 전선에 설 일도 많지 않겠어요? 그리고… 음… 하얀 씨?”

“…….”

“하얀 씨는 살기 좀 죽이는 방법도 배워야겠어.”

“아…….”

차희라가 이쪽으로 다가온 것은 순식간.

내가 깜짝 놀라기도 전에 입술에 촉촉한 감촉이 느껴진다.

‘이런 미친….’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돌발행동에는 정신을 못 차릴 지경.

다급하게 손으로 차희라를 밀쳐봤지만 연약한 내 몸으로 근력 97의 차희라를 밀칠 수 있을 리가 없다.

심지어 입 안으로 뭔가 들어오는 느낌에 당황스러워 말도 나오지 않았다.

발버둥 치며 정하얀을 봤지만 마력의 유동이나 살기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라라도 잃은 것 같은 표정.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사고가 정지된 것이다.

“이것도 선물. 그럼 다음에 봐요.”

‘제기랄.’

갑작스러운 소란에 주변 사람들이 모두 이곳을 바라보고 있다.

심지어 박덕구도 깜짝 놀란 표정이다.

왜 녀석도 하늘이 무너지는 표정을 짓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이 일은 곧바로 수습해야만 했다.

‘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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