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
회귀자 사용설명서 055화
가난하다고 해서 착한 것은 아니다(4)
괜스레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손과 발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화가 난 것은 아니다. 단순히 이해하기 힘들었을 뿐이다.
‘나는 잘못되지 않았어.’
당연하다.
사람을 돕는 것은 무척이나 당연한 일. 그래, 무척이나 당연한 일이다.
‘아무 것도 모르고 있어.’
빈민촌에 들어오고 싶어서 들어오는 사람은 없다.
모두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뿐이다.
길드나 클랜의 컨택을 받지 못한 자들도 있고 사냥을 나가다 어딘가 불구가 되어 어쩔 수 없이 찾아온 이들도 있다.
병든 가족 때문에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일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말하자면 이 사회가 저들을 거리로 이끈 것이다.
린델은, 신성제국은, 아니, 이 대륙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
약자를 배려할 줄 모르는 사회. 그리고 이기적인 사회.
복지혜택이 있다고는 하지만 빈민들은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움직이고 있는 이 대륙에서 누군가는 나서야 했다.
“위험하실 겁니다.”
“아니요. 위험하지 않을 거예요.”
“뭐,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그건 사제님의 자유입니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으니까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오히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으신 건지 묻고 싶군요.”
“당신이 저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신이 저들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제 대답도 같습니다. 오히려 저들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은 사제님입니다. 저들은 그저 불쌍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아닙니다. 도움이 필요한 것은 일어서려고 하는 이들이지 자의로 누워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더는 그 궤변을 듣고 싶지 않네요.”
“네네. 궤변으로 들리시겠지요. 어련하시겠습니까.”
“그럼 말씀하신 대로 이만 떠나보겠습니다. 약속해 주신 것은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부디 안녕히 다녀오시길.”
굳이 대답할 가치도 없다.
아니, 애초에 이런 모습으로 빈민촌에 간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도 없다.
사실 이런 장난 같지도 않은 제안에 응할 필요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홀로 빈민촌에 들어가는 이유는 하나이리라.
‘나는 틀리지 않았어.’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으니까.
저 남자가 잘못되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으니까.
단순히 멀리서 지켜보는 것과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생활한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모두가 바보같이 순진한 사람들뿐이다.
별것 아닌 도움에도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인사를 하던 노부부도 있었고 보답이라며 꽃을 꺾어 주던 꼬마아이도 있었다.
그 남자가 보지 못했던 많은 것을 근 2년 동안 지켜봐 왔다. 함께 소통하고 대화하며 오랜 시간을 지내왔다.
‘보지 않았으니까 저런 소리를 할 수 있었던 거야.’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 저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이리라.
조금씩 발걸음을 옮기자 어느덧 분위기가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매일 같이 왔던 곳이지만 조금은 낯선 기분.
식사를 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함께 봉사하는 이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오늘은 뭔가 사정이 있는 모양이다.
이곳은 언제나 같다.
코를 찌르는 악취가 느껴지기는 했지만 이제는 적응된 지 오래다.
처음과 비하면 적응이 된 덕분인지 아무렇지도 않게 다닐 수 있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자 여전히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이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잡담을 나누고 있는 이들도 보이고 다른 지역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아이들을 챙겨주는 사람들도 눈에 들어왔고 함께 팔짱을 끼고 걷고 있는 연인들도 눈에 비친다.
그 남자의 말이 맞다.
이곳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다.
무척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곳.
편의시설도 없고 변변치 않은 식당도 없고, 제대로 된 집도 없지만.
괜스레 웃음이 나온다.
‘좋아.’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서자 역시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광장.’
제대로 된 광장이라고는 볼 수 없다.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고 자신이 이곳을 찾기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 공간이라 광장이라고 부르는 것뿐이다.
말하자면 이곳은 빈민들이 쉼터라고 부르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한쪽에 조용히 자리를 잡자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히.’
분명히 그 남자가 데려간 남자 중에 한 명.
어째서 일터에 있어야 할 그가 지금 이곳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 무언가 사정이 있었으리라.
그렇게 조용히 주변을 살피고 있었던 그때, 귓가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김씨! 오늘은 일 안 나갔어?”
“무슨 일.”
“그 눈 째진 놈이 고용한다고 해서….”
“아아아. 때려 쳤어.”
“뭐?”
“거 드럽게 힘들더라고. 무슨 바위를 옮기라고 하는데 솔직히 나랑 맞는 일은 아니야.”
“뭐? 이제는 진짜 새로 시작한다고 어쩌고 하지 않았어?”
“잠깐 그런 생각을 하기는 했지. 근데 거기서 쌔빠지게 일하나 여기서 그년이 주는 밥 처먹으면서 지내나 별로 차이도 없는 것 같더라고.”
“누가 들으면 욕해, 이 사람아.”
“들으라지. 분위기 보니까 오늘은 오지도 않을 것 같은데… 괜히 일 한다고 개지랄을 떤 것 같단 말이야. 이제 여기 안 오면 어떡하지?”
“아마 오겠지. 오늘 하루는 아플 수도 있고.”
“사제가 아픈 게 말이 돼?”
“그날일 수도 있으니까. 아무리 사제라고 해도 자연의 섭리는 거스를 수 없는 거 아니겠어?”
“그것 참 말 되네.”
‘어?’
뭔가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혹시나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다시금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오고 갔다.
‘아….’
“거, 엿 같네…. 배고파 죽겠는데… 몸은 나른하고….”
“잠깐 저거 못 보던 얼굴인데….”
“아….”
정확히 자신을 지칭한 것 같지는 않지만 괜스레 움츠려 드는 것은 당연지사.
대충 손으로 얼굴을 가린 이후에 광장을 빠져나갔다.
어째서 도망쳤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저곳에 계속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사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저들의 대화를 더 이상 듣기 싫어서였지만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당신이 저들을 길들인 겁니다.’
그 남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왔다.
손바닥이 뒤집히듯 계속해서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광경들이 눈에 보인다.
“싸게 해줄게.”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네.”
“그야 그 남자 따라간 걸 알고 있는데… 당연히 알고 있지.”
“푸핫.”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연인은 이제 연인들처럼 보이지 않는다.
창부와 창부를 찾는 중년이다.
“겨우 이거야?”
“죄… 죄송합니다.”
“애새끼들이 빠져가지고….”
“아악!”
아이들과 함께 있던 남자 역시 어린이들을 돌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길거리에 있는 부랑자들은 싸구려 럼주로 목을 축이고 있었고, 다수가 소수를 핍박하거나 남자가 여자들을 희롱하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길거리에 토악질을 한 이후에 그대로 내버려 두는가 하면 누워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이를 못 본 척 지나치는 이들도 시야에 비쳤다.
“어이!”
지금까지 들을 수 없었던 욕설은 무척이나 당황스러울 지경.
‘당연한 거야.’
어느 곳이나 똑같다.
굳이 흔들릴 이유는 없다.
어떤 곳에서도 질 나쁜 사람은 존재한다.
일부로 전체를 판단한다는 건 최대한 지양하는 것이 맞다.
그렇지만 불현듯 찾아온 생각에 마른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그 남자의 말이 맞다면?’
정말로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거라면?
‘내가 본 것이 일부고 그가 본 것이 전체였다면?’
지금까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자신이었다면.
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하게 얽힌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입장에 있었을 때는 전혀 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그들도 어딘가에서는 가해자일 겁니다.’
그의 말이 맞다.
약자라고 생각했던 이들도 어딘가에서는 가해자. 어느 곳에서는 가해자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화가 미치지 않은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저들보다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피해자가 되지 않았던 것은 좋은 옷을 입고 강자들의 집단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과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어째서 그 남자가 위험할 거라고 말했는지 깨닫는 것은 그 순간.
‘나가야 해.’
지금은 자신 역시 이 사회의 구성원이다. 마른 침을 한 번 삼켜 넘기며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을 때였다.
“찔리기 싫으면 움직이지 마.”
등 뒤로 목소리가 들려온 것.
가래가 들끓는 것처럼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그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날붙이의 존재였다.
“네… 네?”
“씨불년….”
“…….”
“걸려들어도 이런 월척이 걸려들었네. 그렇게 후드로 꽁꽁 싸매고 있으면 여잔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무… 무슨 짓을….”
“알면서 물어보는 거야? 아니면 몰라서 묻는 거야?”
“이… 러지 마세요.”
“이런 밤에 혼자 돌아다니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는 거지?”
“살… 살려….”
“죽이지 않을 테니까 안심해도 돼. 죽이면 쓰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대충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날붙이를 등에 대고 있는 손길이 느껴졌으니까.
주문을 외워야 한다고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생각하면서도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었고 처음 겪는 상황에 다리가 떨렸다.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철퍽 주저 않았을 때 뒤에서 머리를 후려치는 손길이 느껴졌다.
“꺄아아아아악!”
자연스럽게 몸이 옆으로 넘어간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머리카락을 붙잡는 억센 손길이 느껴졌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눈알을 굴렸지만 시야에 들어온 남자들은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이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도… 도와….”
알고 있는 얼굴들도 보인다.
배식시간에 모습을 보였던 사람들도 눈에 보인다.
함께 웃고 떠들던 이들이다.
분명히 이런저런 사연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고, 모두가 순박한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다.
잘못된 일이었으니까.
그렇지만 누구 하나 도움의 손길을 뻗어오는 사람들은 없었다. 시선을 피하거나 손가락질하면서 웃거나.
보여주는 반응은 모두 같았다.
“이러지 마세요. 살… 살려주세아아아악!”
복부를 후려치는 주먹.
억센 손길이 그대로 뺨에 휘둘러져 온다.
입안이 터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공포 때문인지 비명조차 나오지 않을 지경이다.
주문을 외우려고 신성력을 일으키자 커다란 주먹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아아아악!”
“…….”
“이러지 마세요. 이러지… 누군가 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여기 있는 놈들이 다 나 같은 놈들인데 뭘 도와달라고 말하고 그래. 너… 신입이지?”
“아… 아니에요.”
“그걸 알면서도 여기 들어오셨어? 그것도 혼자. 푸흣. 나 잡아먹어 줍쇼. 하는 거야, 뭐야.”
빈민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이 남자가 말했던 지역이 광장의 서쪽 지역을 깨닫는 것은 순식간.
어째서 이곳이 들어오면 안 되는 지역이라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봉사가 있는 날이면 항상 걸어 다니던 곳이었으니까.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커다란 얼굴이 바로 앞으로 드리운다.
“좋은 가격에 팔 수 있을 것 같은데….”
화상으로 문드러져 있는 한쪽 얼굴. 여기저기가 썩어 문드러진 것처럼 보였다.
입과 몸 전체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헛구역질을 하게 될 정도였다.
“우욱.”
“아가씨, 내가 역겨워?”
“아… 아니.”
다시 한번 고개가 돌아간다.
왼쪽 뺨에 통증이 느껴지기도 전에 목을 조르는 억센 손길이 느껴지기 시작.
숨을 쉬기가 힘든 와중에도 몸 전체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통증이 느껴진다.
“내가 역겨워?!”
“아아아아악!”
“내가! 내가 역겨워?!”
“살… 살려. 누가… 도와꺄아아악!”
‘죽을 거야….’
“앞으로 더 역겨운 꼴을 당하게 될 텐데 비위가 이렇게 약하면 안 되지. 응? 지금보다 더 한 곳으로 팔려가게 될 텐데 말이야. 물론 그전에 우리랑 즐거운 시간도 보내고 응? 그렇게 될 거야.”
‘도와줘.’
“제발 도와….”
“아가씨. 뭘 자꾸 도와달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는데… 여기서 누가 아가씨를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 도움이 필요하면 근처 클랜 자경단한테 가서 도와달라고 해야지. 여기에서 아가씨를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다들 지 살기 바쁜 연놈들이라고….”
“제발….”
“병신 같은 년. 푸흐흐흐.”
‘도와줘….’
무척이나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기대하는 표정으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이들은 누군가를 구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위험할 겁니다.’
“안… 안 돼.”
‘그들도 어딘가에서는 가해자일 겁니다.’
“도와줘요. 누군가… 제발….”
‘도움이 필요한 것은 일어서려고 하는 사람이지 누워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잘못했어요. 제발… 도와줘.”
‘저들을 개돼지로 만든 게 바로 당신이야.’
“구해줘요. 잘못했어요! 제발! 아아아악! 그만! 그만!”
“그러게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사제님.”
“아….”
“가난한 자들이 전부 착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고개를 돌리자 시야에 들어온 것은 가장 보기 싫었던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