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
회귀자 사용설명서 058화
회귀자 버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현성이 데리고 온 꼬마 김예리 그리고 내가 데려온 선희영은 김현성 파티에 들어오게 됐다.
파티의 멤버를 정하는 것은 오롯이 칠 번대의 파티장 김현성의 권한이었지만 행정팀의 몇몇은 조금 아니꼽다는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다.
사전에 행정팀과 충분한 협의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독단적으로 일을 진행시킨 셈. 물론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배경에는 김현성이 고작 1년차라는 현실이 가장 컸을 것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이쪽이 만들어낸 결과에는 무척이나 놀랍다는 반응이었지만 역시나 미친 늙은이들은 그걸 굳이 표현하지는 않았다.
여러 클랜과 길드에서 군침을 흘리던 선희영의 영입, 저들이 입을 닥치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것도 무척 싼값에.’
어느 클랜이나 길드로 들어가지 않을 거라고 말했던 그녀가 파란으로 간다는 소식에 파란의 주가가 올라간 것은 당연지사.
안 그래도 주목받고 있던 김현성 파티는 자유 도시 린델의 주목의 대상이 됐다.
이곳에 도착한 소환자들의 역사를 알 수 없지만 린델 내에서 신입 파티가 이 정도로 주목받았던 경우는 없었을 것이다.
“형님! 식사할 시간이요.”
“알겠다.”
방에서 여전히 실험에 몰두하고 있었을 때 박덕구가 슬그머니 문을 두드리며 이쪽으로 들어왔다.
최근 파티가 하루에 세 번 꼭 함께 식사를 했다.
새로 들어온 이들, 그러니까 선희영과 김예리와 가까워지기 위함이기도 했고 파티의 전반적인 상황과 앞으로의 일정을 회의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똘똘 뭉쳐 있는 네 명에 비해 새로 들어온 두 명은 조금 거리감이 있다.
의외로 정하얀과 선희영이 죽이 잘 맞는 느낌이지만 아직 친해졌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
낯을 가리는 김예리 같은 경우와는 아직 대화 한 번 해본 적이 없다.
‘눈치 빠른 꼬맹이.’
무슨 마법을 쓴 건지 아니면 권력자의 냄새를 잘 맡는 건지 김현성에게만 딱 달라붙어 있는 모습은 가관이다.
친해지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 같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차도가 없는 것은 꽤나 답답했다.
그렇게 여러 생각을 하며 널려 있는 것들을 정리하는 와중에 박덕구가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형님은 뭘 그렇게 매번 실험을 하고 있는 거요?”
“여러 가지야. 한꺼번에 하고 있는 게 많아서 뭐라고 말해주기가 애매하네.”
“그중에 하나만 좀 이야기해 줄 수 없소?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요. 매일 방에 처박혀서 실험하고 있는데 하나 정도는 알려줄 때도 되지 않았소?”
“글쎄….”
“거, 그러지 말고 하나만 이야기해 주쇼.”
“가장 최근까지 하고 있던 건 감정을 건드리는 물약이었는데….”
“그런 게 가능한 거요?”
“어디까지나 이론만.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돼.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욕구는 건드리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예를 들면?”
“성욕이나 수면욕, 식욕 같은 것들 말이다. 사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감정을 건드리는 건 아니야. 단순히 나른하게 만든다든가 몸이 피곤한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된다든가 하는 것이 전부고….”
“에이… 그럼 그건 감정을 건드리는 게 아닌 거 아니요?”
“그래서 인간이 재미있는 거야. 인간이라는 동물은 자기가 느끼고 있는 게 자기 감정이라고 믿기도 하거든. 예를 들면 근육이 이완되고 몸이 편안해지는 물약을 만들었다고 가정하자. 그곳에 마법적인 무언가를 첨가했다고 했을 때, 인간은 정말로 몸이 나른하다고 느낀다는 거야. 뇌가 몸의 신호를 멋대로 해석해 버리니까.”
“아아아아….”
“다른 경우에도 마찬가지야. 몸에 열을 가한다든가 심장이 조금 빨리 뛰게 한다든가. 조금만 툭툭 건드려줘도 쉽게 흥분하기도 하고 쉽게 짜증 내지.”
“거 왠지 무섭게 들리는데….”
“지력이 낮은 경우에는 조금 더 잘 먹힐 거야. 아니면.”
“아니면?”
“정신이 조금 불안전한 대상이라던가.”
“끙….”
뭔가 조금 겁먹은 듯한 표정이 시야에 들어온다.
물약 하나로 사람의 감정을 좌지우지한다는 소리가 무척 당황스러운 모양이다.
최근에 제법 재미를 보기는 했지만 사실 사용하기에 적절하지는 않다.
극적인 상황이 따라와 줘야 하고 여러 가지 재료들이 필요하다.
아직까지는 완전하게 써먹을 수 없는 상황.
사실 정말로 만들고 싶었던 물약을 개발하기 위한 시제품에 불과하지만 전혀 쓸모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으리라.
“농담이다.”
“엉?”
“농담이라고.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아아아아, 형님!”
“어디까지나 상상만 해보는 거야. 원래 모든 실험의 출발은 상상에서부터 시작하니까. 예컨대 아이디어가 중요하다는 소리지.”
“오! 그럼 엉뚱한 아이디어도 실현이 가능한 거요?”
“상황만 맞아 떨어진다면.”
“사랑의 묘약 같은 거 말이요?”
“그건 앞전에 말했던 물약에 연장선이잖아.”
“그럼 마시면 스탯이 오르는 물약은 어떻소? 아니면 투명해지는 물약이라든가. 아니면.”
“…….”
“괴물이 되는 물약. 그런 것도 가능한 거요?”
알고 말하는 건지 모르고 말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박덕구가 한 번씩 언급한 물약은 내가 연구 중에 있는 것들이다.
조금 놀랐다는 표정으로 놈을 바라보자 싱글벙글 웃으며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모습이 가관.
그중에는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들도 있었기 때문에 왠지 모르게 녀석을 다시 볼 정도였다.
‘이 새끼는 바보야, 천재야.’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할 아이디어를 쏟아낼 것 같은 느낌이다.
이론이고 나발이고 단순히 재미있을 것 같은 말을 꺼내는 것에 불과했지만 가끔 허를 찔러오는 것 같은 발언에 녀석의 말을 머릿속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길드 하우스의 지하에 내려가자 역시나 모여 있는 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오빠, 오셨어요?”
“기영 님.”
“앉으시죠.”
정하얀은 기분 좋게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선희영 역시 단정한 모습으로 조용히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김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반겼고 가장 나이가 어린 김예리는 아직도 이쪽을 경계하는 듯하다.
“좋은 아침입니다.”
“네.”
살짝 자리에 앉으니 곧바로 정하얀이 이쪽으로 식사를 가져왔다.
선희영 같은 경우에는 슬쩍 물을 따라 이쪽에 놓아주는 모습.
재미있게도 선희영의 성향은 변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이상적인 봉사자라는 성향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은 당황스러울 정도다.
아마 내 조언대로 그 행위 자체를 봉사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했겠지만 더 이상 이상적인 봉사자라는 성향은 그녀와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대신 직업에 변화가 생겼다.
[암흑사제-영웅 등급]
기존에 있었던 태양의 사제라는 직업이 암흑사제로 변경된 것.
아마 그때 있었던 일의 영향이라고 생각했지만 몇 차례 지켜본 결과 능력이나 스펙 자체에 변화가 생기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녀는 여전히 신성 마법을 외울 수 있었고 김현성 역시 그녀의 능력에 꽤나 놀란 표정이었으니까.
물론, 수련에 열중하는 정하얀 같은 경우에도 눈에 띄게 성장했다.
마력이 40대로 들어섰고 사랑스러운 회귀자 김현성 같은 경우에는 애초에 다른 설명이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오히려 성장 속도가 조금 느렸던 것은 박덕구.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는 내구 수치와는 다르게 근력이나 체력의 성장 속도가 조금 더뎠다.
특히 민첩 스탯 같은 경우에는 성장이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이 문제.
본인이 가장 답답해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사실 녀석의 심정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스탯이 오르는 게 시원치 않았던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다들 적당히 자리를 잡자 김현성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식사 시작하도록 합시다.”
“거, 맛있게 드쇼.”
“식사 맛있게 하세요.”
파티의 리더는 김현성이다.
존중을 보여야 하는 것이 당연, 적당히 고개를 끄덕인 뒤에 조용한 분위기에서 식사가 시작됐고 조금씩 잡담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녀석이 이쪽을 향해 슬그머니 입을 여는 것이 보였다.
“잠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당연히 주변이 조용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네?”
“오늘 아침에 부길드 마스터로부터 제의를 받았습니다.”
“무슨 제의 말이요?”
“던전 공략입니다. 저희 파티뿐만이 아니라, 근처에 있는 대형 길드의 파티들도 함께 들어가게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듣고 싶군요.”
조금은 뜬금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언젠가 사냥이나 던전을 갈 거라고 예상하기는 했다.
우리 파티는 아직 이곳에 막 들어온 신입이었고 빠른 성장이 반드시 필요했으니까.
파티는 현재 여섯 명으로 꼬맹이 김예리까지 함께 간다면 그럭저럭 하나의 파티의 모습을 만들 수 있었으니 타이밍상 나쁘지는 않다.
조금 의외였던 것은 다른 길드의 파티와 함께 들어가게 된다는 것.
만약에 던전에 간다고 한다면 회귀자만이 알고 있는 던전으로 가서 회귀자밖에 모르는 단물을 뽑아먹는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갑작스레 다른 불청객들도 함께 들어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배경에 대해서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내 질문에 김현성을 살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입니다. 저도 아주 자세히 전해 듣지는 못했지만 중견 파티 하나가 튜토리얼 던전 근처 지역에서 새로운 던전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근데 그게….”
“문제는 파티의 구성원들입니다. 길드에서 만들어진 파티가 아닌 여러 길드와 클랜에서 모인 친목 파티가 모임을 하는 도중에 발견한 던전이었기 때문에 어떤 길드의 소유로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조금 애매해졌죠.”
‘아….’
대충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간다.
“그들이 직접 공략에 참여하지는 않은 겁니까?”
“네. 일반 등급, 높아봐야 희귀 등급의 던전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와서 굳이 던전을 공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아마 길드 내에서 따로 보상이 갔을 겁니다. 공략이 완료된 던전의 지분도 일부 나누어 주기로 했고요.”
“직접 공략하기보다는….”
“각 길드와 클랜이 밀어주고 있는 성장 파티에 투자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겠죠.”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 각 길드의 구성원들이 모인 친목 파티가 우연히 희귀 등급의 던전을 발견했다는 소리가 된다.
문제는 이 친목 모임의 구성원들이 들어가기에는 던전의 등급이 다소 낮게 느껴졌던 것.
굳이 자신들이 들어가 드잡이를 하기보다는 현재 경험이 필요한 파티에게 양보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이가 좋은가 보네.’
소유권 분쟁이 없이 사이좋게 나누어 먹을 수 있게 된 것이 조금 신기했다.
사실 던전을 발견한 녀석들의 입장에서는 각 길드에서 보상도 받고 던전의 지분 중 일부도 받을 수 있으니 호재라고 할 만한 상황이긴 하다.
희귀 등급의 던전에 목을 매지 않는 것을 보니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위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
골드나 아이템 따위에 집착했다면 애초에 던전을 양도하지도 않았으리라.
“저희 파란 길드에서 한 파티가, 붉은용병 길드에서 한 파티 그리고 마도 길드에서 한 파티, 마지막으로는 검은백조 길드에서 한 파티가 나올 예정입니다. 희귀 등급의 던전이지만 던전의 규모가 조금 크기 때문에 모든 파티가 함께 움직이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아마 던전을 공략한 이후에는 각 파티의 기여도에 따라 아이템을 분배할 것 같기는 하지만….”
“기여도에 따라서 말입니까?”
“네. 그렇지만 이번 던전행의 목적은 아이템이나 재화가 아닙니다. 경험이죠.”
김현성의 계획이 어떤 것인지 대충 눈에 보인다.
이런저런 설명이 길기는 했지만 목적은 한 가지.
‘파티의 성장.’
당연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우리 회귀자가 그게 옳은 방향이라고 판단을 내렸을 테니까.
‘고맙다, 현성아.’
회귀자 버스에 단체로 탑승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