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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61화 (60/1,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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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 061화

던전 공략은 정치다(3)

이런 종류의 정치에서는 주변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예컨대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다.

정치라는 것이 결국에는 여론 싸움인 만큼 다른 이들의 반응을 보는 것은 필수.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 보자면 사실 지금이 적당한 타이밍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미 확고한 지위와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 정유라와는 다르게 나는 가진 게 없는 파티원에 불과했으니까.

붉은용병이 나를 호의적인 시선으로 봐준다고 한들, 겨우 녀석들로는 커다란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다.

일단은 이 원정대에게 내 존재를 각인시키는 게 먼저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게 첫 번째 작업이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일단은 사과를 보냈다.

자연스레 시선이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 불편하실 거라는 건 압니다. 불안하실 거라는 것도 알고요. 처음 들어온 저희와 함께 원정을 떠나신다는 것이 불편하신 것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이건….”

“어떤 부분을 염려하시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부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진영에 구멍이 뚫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최대한 진심을 담는 것이 중요하다.

진심 어린 사과는 대중의 마음을 흔드는 좋은 방법이니까.

역시나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시야에 비쳤다.

이쪽은 최대한 존중을 보였다.

정유라 역시 조금 당황스러워하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도 한 차례 양보해야 되는 자리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미안합니다.”

심지어는 박덕구 역시 고개를 숙여오기 시작.

사실 사과해야 할 대상은 그녀가 아니다.

애초에 방금 일어난 일 때문에 그녀가 피해를 입은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어차피 뒈져도 우리가 죽고, 살아도 우리가 사는 상황이었다.

우리가 고개를 숙인 타이밍에 조금 무리해서라도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수 있겠지만 분위기도 읽지 못하는 바보는 아니리라.

“던전 공략은 장난이 아니에요. 사실 기회를 한 번 더 달라는 것부터가 마음에 드는 말은 아니지만… 한 번 정도는 더 지켜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슬쩍 고개를 숙이는 것이 당연하다.

왠지 모르게 감동받은 듯한 박덕구가 이쪽을 향해 입을 열어오기 시작했다.

“형님. 거… 정말로 뭐라 할 말이 없소.”

“아니다, 덕구야.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야. 겁먹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면 할 수 있을 거다.”

“형, 형님.”

등을 툭툭 두드려 두드리자 괜스레 훌쩍이는 녀석이 보였다.

만약에 이번 일로 뭔가 사고가 생겼다면 정유라의 말이 조금 더 설득력을 얻었을 수도 있다.

사상자가 생겼다면 빼도 박도 못하고 이쪽의 실책으로 되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단순한 사과의 말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졌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이 원정대는 아주 손쉽게 이 위기를 해쳐나갔다.

별 다른 부상자도 없었고 오히려 조금 여유 있는 모습으로 몬스터들을 정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 파티가 정말로 위험할 뻔하고 어떻든 간에 방금 일어난 일은 그저 해프닝이었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조금 침울해 보이는 박덕구에게 다가가 위로를 건네는 전위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와 행복해질 지경이다.

‘초보자 시절이 없었던 사람은 없거든.’

모두가 고달팠던 시절이 있다.

저들도 한때는 초보자였다.

실수 한 번 해보지 않은 이들은 없다.

특히나 탱커의 경우에는 더욱더 그럴 것이다.

파티의 앞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과 가장 전위에서 적을 막아야 한다는 스트레스.

자신의 실수로 동료가 죽을 수 있다는 것 역시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저곳은 그 모든 걸 짊어지고 싸우는 자리다.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공격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흘린다는 생각으로 하는 게 더 좋을 거야, 후배.”

“고, 고맙소.”

“언제 어디서라도 응? 하체에 힘을 꽉 쥐면서 버티는 게 중요한 거야 알겠지?”

“알겠소. 선, 선배….”

“방금 그런 상황을 우리끼리는 벌러덩이라고 부르기는 하는데… 중형이나 대형 몬스터들을 상대할 때는 모두 그런 상황을 겪기도 하거든. 푹찍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푹찍….”

“그래. 이 친구는 처음에 중형 몬스터와 마주쳤을 때는 겁먹어서 움직이지도 못했다니까.”

“어이, 내가 그거 말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

“사실 그렇게 벌러덩 넘어가 버렸다는 것도 용기가 있었다는 증거야, 형제. 겁먹지 않고 제대로 마주했다는 증거니까. 침울해하면 좋지 않아. 만약에 넘어 갔다고 해도 다시 중심을 잡고 끈덕지게 달라붙으면 돼. 네 파티원도 나약하지만은 않을 테니까. 뒤에 있는 동료들을 믿고 끝까지 버티는 게 중요해.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뭘 해도 할 수 있어.”

“고맙소. 형씨….”

“그러니까 힘내라고.”

“다음에도 넘어가면 안 된다.”

“그럼 앞으로도 평생 놀림 받을 거라고! 푸흐흣! 벌러덩이라고. 경험담이니까 새겨들어.”

자기들끼리 선배니 후배니 형제니 말하는 걸 보니 눈에 보이지 않는 전위들의 커뮤니티가 내 생각보다 조금 더 끈끈한 모양이다.

꽤나 귀족 직업으로 분류되는 것은 물론, 그 수가 그리 많지 않다 보니 자신들끼리 여러 가지 정보를 주고받고 있는 것 같았다.

덩치들에게 둘러싸인 박덕구를 보니 괜스레 흐뭇해진다.

서로 등을 두드려 주거나 근육을 과시하는 땀내 나는 우정에 굳이 합류하고 싶지는 않지만 멀리서 바라보기에는 나쁘지 않은 장면이다.

‘멍청한 년.’

나였으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을 것이다.

세상은 약자의 편이니까.

조금은 기분이 풀린 표정으로 이쪽을 향해 웃고 있는 박덕구는 꽤나 귀엽다.

“형님!”

“덕구야. 이것 좀 저분들에게 가져다주고 와라.”

“엉?”

“체력 포션이야. 시중에 파는 것 보다는 좋을 거다. 아마 여러 가지 가르쳐 주신 것 같은데 보답해 드려야지.”

“아. 그래야지! 고맙소, 형님!”

다시금 덩치 무리로 후다닥 달려가는 박덕구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런 게 사회 생활이라는 거다.

굳이 가치를 매기자면 5골드도 하지 않을 체력 포션으로 여러 가지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박덕구는 저들의 커뮤니티에서 조금 더 진득하게 붙어 있어야 했다.

그게 우리한테도 이득이니까.

김현성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박덕구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 형님이 주신 건데 말이요!”

“감사히 먹겠습니다. 기영 씨!”

“딱 봐도 이거 상당한 포션인데… 시중에 이런 게 나온 적이 있었나?”

“아니. 등급 판정을 받은 물약도 없는 마당에 무슨…. 파란에서 괜히 연금술사를 영입한 건 아닌 것 같네.”

물론 그 와중에 내 주가를 올리는 것은 덤이다.

아무튼 간에 파티는 조금씩 던전 내부로 진입하고 있었다.

발걸음을 옮기는 와중에도 덩치들은 박덕구에게 이것저것 조금씩 가르쳐 주기 시작했고 다음 몬스터가 나온 이후에도 별 다른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

함께 전위에서 싸우는 덩치 큰 형제들이 알게 모르게 박덕구를 배려해준 것.

쓰러지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거나 등을 두드려 준 것이 전부였지만 녀석은 점차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 익숙해지고 있었다.

물론 전혀 실수가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잔 실수들이 눈에 띄었고 그것이 정유라의 먹잇감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처음처럼 대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후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한숨을 쉬거나.

“조금 불안정한 것 같네요.”

그러나 별로 동조하는 사람은 없었다. 공허 속의 메아리라고 하는 게 가장 어울리리라.

“인원이 많아서 그런지 조금 복잡한 것 같네요. 조금 더 빨리 정리할 수 있었는데….”

“하하하. 그래도 안전하게 잘 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냥 아쉬워서 하는 소리예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뭔가 턱턱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저희가 완벽한 파티가 아니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만약에 같은 길드에서 나온 원정대였다면 손발이 조금 맞았겠지만 그런 게 아니지 않습니까. 아마 차차 나아질 겁니다.”

“네. 당연히 그래야죠. 나아지지 않으면 안 되죠. 평소 같지 않네요.”

“하하…. 그럼 잠깐 쉬었다 가도록 하겠습니다.”

“네.”

뭐, 대충 이런 상황이라는 거다.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최영기를 향해서였다.

뭐 별 다른 대화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한 번쯤은 이야기를 나눠봐야 된다고 생각했고 잠깐 캠프를 차린 지금이 적당한 타이밍이라고 여겼으니까.

“최영기 씨.”

“아! 기영 씨!”

역시나 반갑다는 얼굴이다.

당연한 반응.

용병여왕의 정부를 상대하는 거니까.

“고생하십니다.”

“아니, 아니, 아닙니다. 이리 앉으시죠.”

“차희라 님은 잘 지내십니까?”

“하하하. 안 그래도 그것 관련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정하얀은 여전히 마도 길드에게 붙잡혀 있는 상태다. 저쪽은 굳이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저희 마스터께서 얼마나 기영 씨를 챙겨달라고 말씀하시던지 이거 참. 하하.”

“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모로 챙겨드리지 못해서 죄송한 게 많습니다.”

“아뇨. 이해합니다. 이미 여러모로 배려 받고 있는 상태였는데… 다른 쪽으로도 그러면 조금 눈치가 보여서 말입니다.”

“아. 그….”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대충 눈치 채고 있을 것이다. 슬쩍 정유라 쪽을 바라보던 녀석은 이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방금 전은 죄송했습니다. 제가 조금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아뇨. 아뇨. 잘못은 저희 파티가 한 게 맞지요. 사실 이해해 주시고 있는 다른 분들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이 큽니다. 막아주셨을 때는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아닙니다. 처음에는 실수가 있기는 했지만 정말로 잘 적응해 주시고 있습니다. 역시 모두의 기대를 받는 신입답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기영 씨 때에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였습니다. 그나마 저희 마스터가 신경을 많이 써주셔서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죠.”

“하하하.”

“저희 마스터와 지구에 있었을 때부터 연인이셨다고 들었습니다.”

‘…….’

내가 모르는 새로운 설정이 등장해 조금 당황했지만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특히나 마스터께서 힘이 드셨을 때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마스터께서는 이기영 님을 은인이라고 말하시더군요.”

이것도 새로운 설정이다.

“네… 네. 분명히 그런 기억이 있기는 있습니다만….”

“마스터의 은인이라면 사실 제게도 은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용병여왕님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생각보다 좋은 종류의 설정이다.

‘고맙다, 차희라.’

이런 참신한 설정을 생각해 낸 차희라에게는 박수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물론 왠지 모르게 이쪽을 바라보는 정하얀이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아마 제대로 들을 순 없을 거다.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실 도움이라고 할 것도 없었고….”

“하하하하. 그게 도움이 아니면 뭐가 도움이겠습니까. 사실상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해주신 것이나 마찬가진데 말이죠.”

‘뭔 개소리야.’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해놨는지 알 수가 없을 지경.

그렇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나와 차희라의 과거가 아니다.

이 최영기라는 파티의 리더가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사람 좋은 녀석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내 생각보다 조금 더 좋아 보이는 것 같다.

어떻게든 이쪽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붉은용병에서 온 파티는 내 텃밭이나 다름없는 모양,

꽤나 심각한 갈등이 생겼을 때도 이쪽을 지지해줄 수 있는 확실한 기반이었다.

뭔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정유라를 바라보니 괜스레 입고리가 올라갔다.

그녀에게 소리칠 수 있다면 한마디 해주고 싶은 타이밍이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민생을 돌보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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