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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62화 (61/1,590)

# 62

회귀자 사용설명서 062화

던전 공략은 정치다(4)

민생을 돌보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구에서 높으신 분들이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스윽 한 번 시장을 둘러보며 친근감을 느끼게 해주면 그걸로 끝.

물론 나 같은 경우와는 상황이 다르다.

나는 저들의 위에 있다곤 할 수 없는 입장.

그렇다고는 해도 아예 효과가 없는 것이 아니다.

잠깐 쉬는 시간마다 이야기를 나누고 캠프를 차릴 때마다 열심히 챙겨준다.

원정 중에는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안 그래도 마도 길드 같은 경우에는 정하얀에게 이상할 만큼의 호감을 느끼고 있었고 붉은용병의 파티원들 역시 내게 호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살짝살짝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물론 정하얀과는 별개로 마도 길드의 파티원들을 관리하는 것도 필수다.

이쪽 편에 서게 될 좋은 여론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하하하. 거의 신성 마법과 효율이 비슷할 정도의 포션인 것 같습니다, 기영 씨.”

“과찬입니다. 사제님들이 들으실까 부끄럽군요.”

“사실 마법의 화력도 그렇게 밀리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이더군요. 어떻게….”

“마도 길드에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괜히 기분이 좋네요.”

“아뇨. 아뇨.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닙니다. 사실 평범한 마법사와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고 느껴서 말입니다.”

“아무래도 주문을 외우는 게 조금 더 오래 걸리거나 연성 마법진을 사용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기는 있습니다만 괜찮은 촉매만 있다면 효율이 좋은 마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효율이라고 함은….”

“적은 마력으로도 괜찮은 화력을 가진 주문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아아아아.”

“물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주문을 외우기 위해 들어가는 촉매의 비용이 제법 나가니까요.”

“혹시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약 30골드입니다. 주로 마력의 정수를 이용하니까요.”

“아! 마력의 정수.”

“네. 하급 마법을 사용하는 데 들어가는 정수의 비용이 30골드입니다.”

조금 놀라워하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그보다는 조금 질렸다는 표정.

말하자면 주문을 외울 때마다 30골드가 빠져나간다는 셈이 되는 거니 아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물론, 일반 등급의 마력의 정수 같은 경우에는 창고에 쌓여 있다. 차희라가 이쪽에 선물해 준 것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으니까.

“확실히 효율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군요. 그럼 혹시나 희귀 등급 이상의 마력의 정수는 한 번 사용하면 사라지는 겁니까?”

“예.”

“그건 조금 아쉽군요.”

“만약에 무한정으로 마력을 뽑아낼 수 있는 정수가 있다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현자의 돌이라고 부를 만하겠죠.”

“현자의 돌. 아아아… 현자의 돌이라….”

이런 주제들이 마법사들이 환장하는 대화라는 거다.

“만들 수는 있는 겁니까?”

“제가 공부하고 있는 책에서도 잠깐 잠깐 언급된 정도입니다. 아직 연구조차 제대로 들어가지 못했죠. 제대로 공부하기에는 아직 제가 부족하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꼭 만들어낼 겁니다.”

‘현자의 돌은 개뿔.’

“저… 혹시 연구가 시작된다고 한다면….”

“네. 물론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이것도 인연이니까요.”

보통 마법사가 되는 인간은 이런 종류의 인간이다.

연금술이라는 분야에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면 나와의 대화를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걸로 마도 길드의 마지막 녀석과도 제법 가까워졌다.

아무튼 간에 이 원정대의 던전 공략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고 우리 파티도 타 파티에 훌륭하게 녹아들고 있었다.

김현성이 내 생각을 알고 있는 건지 모르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얻어 가는 것들은 확실히 있다.

박덕구의 경우에는 탱커들의 커뮤니티로 들어가 여러 가지 노하우를 빼내고 있었고, 김예리 역시 꽤나 훌륭히 적응에 성공했다.

물론 아직까지 1인분을 하고 있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양 갈래 머리를 한 꼬마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애초에 스펙 자체가 뛰어난 선희영 같은 경우에는 적응하는 데 별 무리가 없어보였고 나 역시 그리 나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정하얀과 함께 마법을 쏘다 보니 별로 티가 나지 않는 게 원인이리라.

우리 여우 김현성 같은 경우에는 지나치게 나서지 않는 듯한 느낌.

힘을 숨기는 타입은 아닌 만큼 몸을 사리기보다는 움직일 기회가 없다고 하는 것이 맞으리라.

그만큼 원정대의 공략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그럼 잠깐 볼일 좀 보고 오겠습니다.”

“네. 아무래도 오늘은 이곳에서 묵을 것 같더군요.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아까의 대화를 다시 한번 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현자의 돌이라는 게 뭔지… 자세히….”

“네. 물론입니다.”

볼 일은 보기 위해 살짝 원정대가 있는 곳으로 벗어나 세이프 포인트에 도달했을 때였다.

‘그럼 그렇지.’

정유라가 슬그머니 이쪽으로 다가온 것.

슬슬 행동할 거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내 생각보다 조금 더 빠르다.

“경험을 하러 온 줄 알았더니 친목질이라도 하러 들어왔나 보네요?”

심지어 꽤나 직접적으로 물어와 조금 당황할 정도였다.

‘그렇게 거슬렸었나?’

어쩌면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다.

쉬는 시간마다 빨빨거리며 돌아다니고 여론을 휘어잡는 작업을 하는 것에 여념이 없었으니까.

자신과 내가 동류라고 생각했다면 정치적으로 위협을 받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공략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나는 모두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데 성공했으니까.

“하하하. 말에 가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유라 씨.”

“그야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것처럼 보여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기영 씨.”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잘 안 되는군요. 팀워크를 위해 친분을 다지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사전에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으니까요.”

“그 정도가 너무 과하니까 하는 소리예요.”

“무슨 말씀이신지?”

“적당한 긴장감마저 해치고 있다는 소리를 하는 겁니다. 너무 편한 모습을 보이는 건 좋지 않아요.”

“던전을 공략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 선은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아주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지 않습니까. 처음에 실수했던 저희 쪽의 전사 역시 무척 잘 적응해 주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분위기 좋게 공략에 임하고 있는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군요.”

정론이다.

“저기요. 기영 씨.”

“네? 유라 씨?”

“아직 이곳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모르나 본데… 던전이란 건 언제 어디서 무슨 위협이 있을지 모르는 장소예요. 아무리 쉬는 시간이라고 하기는 하지만 기영 씨가 분위기를 흐리고 있다는 거 정말로 모르시겠어요?”

“네.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파티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처음보다는 분위기가 좋아졌으니까요. 유라 씨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인상을 찌푸릴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물론 어느 정도 긴장해야 하는 건 저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원정 중에는 진지한 모습으로 임하고 있다는 생각했었는데…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정확히 요지를 모르겠습니다.”

실실 웃으니 붉어진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말은 정론이다.

그렇지만 표정을 살살 약 올리는 것처럼 지으니 금방 금방 반응이 오는 게 꽤나 재밌다.

모르긴 몰라도 내가 도발에 특화되어 있는 얼굴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파티 내에 있을 영향력 같은 걸 걱정하고 있지는 않을 테고…. 던전 공략의 보상으로 나올 아이템이 욕심나는 것도 저얼대 아니실 텐데…. 왜 이렇게 저희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희귀 등급의 아이템이면 당연히 탐이 나서 비벼보고 싶기야 하겠지만… 설마 검은백조 길드에서 밀어주고 계시는 정유라 님께서 그런 욕심을 낼 리가 없겠죠.”

아마 심장이 쿡쿡 쑤셔올 것이다.

“어쩌면 영웅 등급의 아이템이 나올 수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말입니다. 고작 좋은 장비 하나 먹자고 이러는 건 조금은 치사하지 않습니까. 저라면 차라리 양보하고 말았을 겁니다. 뭔 정치질을 그렇게 심하게 하시는지… 아, 혹시 제가 착각했다면 정말로 죄송합니다.”

얼굴이 무척이나 붉어져 있다.

물론 나 역시 영웅 등급의 장비가 등장한다면 눈이 돌아가기야 하겠지만 속물이 아닌 척하는 것은 굉장히 쉽다.

“혹시 정곡을 찔렀….”

“야.”

“네?”

“내가 우스워?”

“아뇨. 절대로 우습지 않습니다. 절대로 우스울 리가 없지요. 검은백조의 정유라 님이신데 말입니다. 그런데….”

“…….”

“왜 반말을 하고 그러십니까. 응?”

기가 차다는 얼굴이다.

갑작스러운 태세전환에 당황한 모양이다. 어차피 듣는 사람도 없고 보는 사람도 없다.

“저는 엄연히 파란 길드에 정식 파티에 등록되어 있는 길드원입니다.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안 되죠. 정유라 씨.”

“허… 차희라의 기둥서방이라더니 눈에 뵈는 게 없나 봐? 여기에서도 용병여왕이 너를 지켜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방금의 말은 저를 어떻게 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정유라 씨. 발언을 조심해 주셔야죠. 그리고 제가 믿고 있는 건 희라 누나가 아닙니다.”

“뭐?”

살짝 숨을 들이킨다.

내 입에서 다음에 나올 말이 뭔지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당연히 이곳에서 쓸데없이 드잡이를 할 마음은 없다.

괜한 다툼으로 이미지를 깎아 먹는 것은 최대한 지양해야 되는 일이었으니까.

대신 조금은 큰 목소리로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뭐?”

조금은 멀리 떨어져 있는 원정대가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말이다.

“너… 지금 무슨 개짓거리를….”

“정말 죄송합니다!”

한 번 더 크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사과의 말을 전하자 무척이나 당황스러워하는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그야 저런 표정을 보내는 것이 당연하다.

뜬금없는 타이밍에 나온 목소리였으니까.

그렇지만 어째서 내가 진심어린 마음의 사과를 보낸 건지는 대충 감이 온 모양.

표정이 구겨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무슨 일입니까?”

역시나 헐레벌떡 뛰어오는 최영기와 그의 친구들이 보인다.

심지어는 방금 전 대화를 나눴던 마도 길드 사람들 역시 눈에 띄기 시작한다.

물론 정하얀과 선희영을 비롯한 우리 파티원과 검은백조의 파티원도 보인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유라 씨.”

“너….”

“기영 씨? 이게 무슨 일 입니까?”

“아… 아니요. 별일 아닙니다.”

“네… 네. 별일 아니에요. 최영기 님.”

‘별일 아니긴….’

“저는 유라 씨에게 물어본 것이 아닙니다. 기영 씨,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고맙게도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붉은용병의 최영기는 이 일을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한다.

정하얀은 무슨 일인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지만 일단은 피해자가 된 내 모습에 조금 분노하는 모습을 보내고 있었다.

‘선희영은 왜 저래?’

선희영 역시 마찬가지.

피해자를 연기하는 것은 무척이나 쉬운 일이다.

특히나 힘의 차이가 명백한 이런 상황에서는 말이다.

“무슨 일입니까? 기영 씨.”

“그게….”

“…….”

“별것 아닙니다. 그저 조금 긴장하고 주의하라는 소리를 들었을 뿐입니다.”

“네?”

“아무래도 쉬는 시간 동안 여러분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처럼 보여서… 잠깐 긴장을 놓고 있었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제가 분위기를 흐리고 있다고 하셔서….”

“네?”

“저 나름대로는 분위기를 좋게 하자는 의도였는데… 아무래도 탐탁지 않아 하시는 것 같습니다.”

거짓 하나 들어 있지 않은 진실이다.

무척이나 황당해하는 정유라의 모습은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게 보인다.

순도 백 퍼센트의 진실이 밝혀지자 모두가 어처구니없어 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붉은용병의 최영기와 마도, 심지어는 김현성까지 조금은 무거운 눈빛을 그녀에게 보내고 있었다.

“죄….”

다시 한번 사과의 말을 보내려고 했던 바로 그때.

“사과할 필요 없습니다, 기영 씨.”

말을 막은 것은 사랑스러운 내 동생 김현성이었다.

‘얘, 화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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