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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64화 (63/1,590)

# 64

회귀자 사용설명서 064화

승차감(1)

“정말 너무한 것 같습니다.”

“네?”

“정유라 말입니다.”

“아아아아.”

“쯧. 성과에만 너무 집착하는 성격이랄까… 휘하에 있는 이들도 고생이 많을 겁니다.”

“그렇군요.”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아마 기영 씨를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저희 마도에서도 모두 정유라가 심했다는 말이 많이 나오더군요.”

“다행이네요. 혹시나 폐를 끼치지 않았는지 걱정했는데….”

“아뇨. 아뇨. 어딜 가나 분란을 만드는 이가 있는 법이죠. 함께 던전에 들어가면 인간성을 확인해 볼 수 있다는 격언을 이제야 실감했지 뭡니까. 최소한의 예의는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당분간 검은백조와 협연하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특히 정유라 저 여자와는 말입니다.”

“우리 붉은용병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입장에서는 이해가 아예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기영 씨가 사람이 좋아서 그런 겁니다. 다른 파티의 일까지 관여하는 건 월권입니다. 마지막까지 본인이 잘했다고 큰소리치는 꼴이라니…. 진심어린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에. 만약에 거슬렸다고는 하더라도 대화로 해결하거나 원정대장에게 말하는 것이 맞죠. 길드가 가지고 있는 힘이 자기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꽤나 많습니다. 실례되는 말이기는 하지만 만약에 파란의 위세가 예전 같았다면 입도 뻥긋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하하.”

“그건 그렇고 정확히 뭐라고 말한 겁니까?”

“이거 참… 말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걱정하지 않으시고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당연히 말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굳이 숨길 이유도 없었으니까.

“그게… 친목질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네? 정말입니까? 친목질이라고 말했습니까?”

“네. 던전 공략을 하러 왔는지 친목질을 하러 왔는지 모르겠다며… 말씀하시더군요. 그저 마도 길드 여러분과 친해지고 싶은 것뿐이었는데… 제가 긴장을 놓치고 있기는 한 모양입니다.”

“아뇨.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허, 친목질이라니 허….”

“또 이건 말씀드려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 용병여왕이 너를 여기서도 지켜줄 수 있을 것 같냐고… 말하시더군요.”

“미친년.”

격한 반응을 보일 줄은 알았지만 붉은용병의 이름 모를 검사가 불편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듣, 듣겠습니다.”

“들으라지. 그거 완전 정신 나간 년 아닙니까? 어디 지 주제도 모르고 용병여왕님을 걸고 넘어져? 지가 뭔데! 우리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거 아니야. 응?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기영 씨. 저 거지 같은 여자가 혹시나 이번 일로 해코지라도 한다면 제가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감히 어딜… 내가 진짜 어이가 없어서.”

“정말 그렇게 위협받으셨단 말입니까? 지금 당장 나가서 정식으로 항의하는 게 옳습니다. 어디 할 짓이 없어 범죄자들이나 하는 짓을….”

“아뇨. 아뇨. 정말로 괜찮습니다. 더 이상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쯧. 편견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도적 직군이나 암살자 직군 중에 저런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더군요. 도적은 신성 마법 받지 말고 뒤에서 붕대나 감으라는 소리가 괜히 나온 소리겠습니까. 다 저런 여자 때문에 나온 소립니다.”

“하하….”

적당히 말리는 듯한 행동이 중요하다.

취해야 할 포지션은 어디까지나 시누이의 포지션, 전위에 나서지 않아도 이미 어느 정도 분위기는 만들어져 있었다.

정유라는 우리 모두의 주적이라는 분위기 말이다.

방금의 대화뿐만이 아니다.

한차례 소동이 지나간 이 후에는 모두 내게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를 꺼냈고 마치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정유라에겐 한마디 내뱉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우리를 심판대로 올린 것치고는 지나치게 큰 대가를 치룬 것이다.

‘물론.’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정유라도 괜스레 이곳저곳 기웃거리고는 있었지만 소득이 없는 게 당연하다.

애초에 지나친 친목질이 좋지 않다는 발언을 한 것은 그녀라는 사실을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모두 뒤에서 내가 열심히 이빨을 털어준 덕분.

이미 여론을 관리하려고 해도 관리할 수가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 잘하는 게 중요한 거야.’

누가 봐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행동을 하고 있으니 웃음이 나오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녀가 발버둥 치면 칠수록 싸늘한 시선이 들어와 꽂히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특히나 용병여왕을 언급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붉은용병 길드 내에서의 평가는 완전히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오죽하면 원정대장이라고 할 수 있는 최영기가 파티원들에게 조금만 참아달라고 이야기했을까.

실제로 몇몇은 같이 던전 공략에 임할 수 없다며 성화를 냈으니 중재자의 입장에 서 있는 최영기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자, 그럼 다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정리하자면 이곳에서 정유라의 입지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비벼볼 수 있는 것은 앞으로의 공략에서 최대한 활약하는 것이겠지만 김현성이 풍겨오는 분위기를 보면 그것도 원활할 것 같지는 않다.

우리의 실수를 비집고 들어가 ‘그럴 줄 알았다’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터.

극단적으로 말하면 사고가 나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 그럼 저는 다시 가보겠습니다.”

“네.”

파티의 분위기 자체가 조금 달라졌다. 더 이상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기본.

김현성의 묘한 분위기 때문인지 모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확실히 녀석은 리더의 자질이 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고 분위기를 바꾸는 힘이 있다.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덕구 씨. 최대한 후방에만 집중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아, 알겠소.”

“예리야, 다른 곳은 상관없으니까. 검으로 상처가 난 곳을 집중적으로… 알겠지? 기왕이면 마력을 싣는 게 좋을 거야.”

“네…….”

“하얀 씨와 기영 씨는 잘하고 계십니다.”

“감사합니다.”

“희영 씨는 저를 봐주지 않으셔도….”

“네. 기억하고 있어요. 현성 씨.”

“좋습니다.”

다른 파티원들 역시 묘한 열의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차라리 빨리 괴물이 그 모습을 드러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세이프 포인트를 벗어난 것은 금방이었다.

언제 어디서 녀석들이 들어올지 모르는 만큼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궁수들이 눈에 띄었다.

정원이라는 이름이 붙기는 했지만 마치 거대한 정글 같은 느낌의 주변 환경이다.

어떤 것이 식물이고 어느 것이 몬스터인지 구분하는 것도 힘든 만큼 더욱더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 당연하리라.

나 역시 함께 상황을 살피고 있었을 때 김현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문을.”

“네.”

어째서 지금 주문을 외워야 하는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시키는 대로 하면 광명이 열릴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정하얀도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내 속도에 맞추기 시작한다.

“주여.”

“빼앗기지 않는 힘을.”

“지킬 수 있는 힘을.”

“불꽃을.”

“바람을.”

이런 식으로 목소리가 교차되는 것이 정하얀은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내가 주문을 외우는 속도에 맞춰 마력을 꾸역꾸역 담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치 화음을 쌓는 것 같은 느낌은 나도 꽤나 즐겁다.

촉매에 마력을 불어넣고 마력의 탑을 계속해서 쌓아간다.

“전투 준비합니다.”

최영기가 전투를 알렸다.

어째서 주문을 외워놓으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는 중형 몬스터.

심지어 첫 번째로 봤던 녀석보다 덩치가 더 크다. 전위들이 앞에 있기는 하지만 조금 움츠려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구어어어억!

우리 회귀자를 믿는다.

김현성이 앞으로 달려 나간 것은 바로 그때였다.

“당신 뭐하는 건가요?”

잘 됐다는 듯이 김현성의 꼬투리를 잡는 정유라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전혀 잘못되지 않았다.

괴물은 틀림없이 박덕구 쪽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김현성의 조언대로 선희영의 신성 마법이 박덕구 쪽에 쏟아졌다.

괴물의 거대한 주먹이 박덕구에게 떨어지기도 전에 괴물의 한 쪽 팔이 갈라지기 시작.

누가 저 팔에 상처를 냈는지는 뻔하다.

‘허.’

숨을 돌리기도 전에 김현성이 말 했던 것처럼 김예리의 화살이 팔 쪽에 쏟아졌다.

순식간에 팔 하나를 잃은 괴물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 공격을 막아내기 위한 준비를 하던 박덕구도 그 광경에 조금 당황한 모습이었지만 뭔가에 홀린 듯이 위치를 오른쪽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전위의 상황은 알 수 없지만 내 눈에는 마치 김현성이 박덕구가 움직여야 할 곳을 정해준 것처럼 보인다.

나머지 한쪽 팔로 박덕구를 찍어 누르려는 녀석이 방패를 부수려던 차, 그 팔마저 검에 찢겨져 나간다.

두 팔이 없어지고 훤한 몸통을 드러내고 있는 괴물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당연히 알고 있다.

“마법을.”

“화염.”

“폭풍!”

김현성의 입을 여는 타이밍과 거의 동시에 정하얀과 함께 주문을 외웠다.

내가 외운 화염 주문의 공격력을 키우기 위한 콜라보였지만 사실상 정하얀의 공격력 자체에 많이 의지하고 있는 주문.

식물거인의 발밑에서 올라온 화염의 폭풍은 녀석을 금방 집어삼켰고 녀석은 곧 거대한 비명을 내지르며 허물어졌다.

박덕구가 범위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 같지만 선희영이 박덕구를 마크하고 있으니 아마 괜찮을 것이다.

“다음.”

‘하….’

결코 김현성의 스펙이 높은 것은 아니다.

실제로 김현성의 능력치는 저들과 크게 차이가 없었으니까.

이건 스펙 이전의 문제.

경험, 센스. 뭐라고 정확히 정의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김현성이 우리를 이끌고 있다는 것 하나는 제대로 느껴진다.

양 갈래 머리 꼬마 김예리가 화살을 날려야 할 타이밍을 계속해서 말해주고 있었고, 박덕구가 움직이는 길을 인도하고 있는 느낌이다.

나나 정하얀 역시 마찬가지.

어떻게 공격을 해야 하는 건지 어떤 타이밍에 주문을 외워야 하는 건지 이끌어 주고 있다.

말로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야.’

라고 정확히 집어주는 것만 같다.

빠르게 다시 주문을 외우는 순간에 딱 맞춰서 빈틈을 드러내는 몬스터에게 다시 한번 마법을 퍼붓는다.

다른 파티가 굳이 박덕구를 도와주기도 전에 박덕구 스스로가 홀린 듯이 움직이고 있다.

‘귀신에 홀린 것도 아니고….’

사냥이 쉽다고 느끼기는 처음.

나와 정하얀이 하는 일이라고는 주문을 외우고 쏘고 주문을 외우고 쏘는 것밖에 없다.

물론 놈들의 공격 패턴이 무척이나 단순하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이었겠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주문 하나에 몬스터 하나가 쓰러지는 진풍경을 바라보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다른 파티 역시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몬스터에게 집중하고 있지만 갑자기 달라진 우리 파티에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정유라 같은 경우에는 조금 경악한 표정.

뭐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됐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본다.

‘회귀자 버스가 편할 거라고는 생각은 했지만….’

본격적인 라이딩은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 너무나도 편한 시트 때문인지 바지를 갈아입고 싶어질 정도다.

“다음.”

‘승차감 지리는데?’

마치 나도 함께 괴물 대열에 합류한 것만 같은 기분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런 게 버스구나.’

사실 버스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고급 세단도 이렇게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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