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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65화 (64/1,590)

# 65

회귀자 사용설명서 065화

승차감(2)

이미 다른 사람들의 입은 벌어질 대로 벌어져 있는 상황.

그야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할 것이다.

김현성이 현재 보여주는 모습은 이곳에 들어온 지 1년도 안 된 사람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단순히 스탯이 높다는 의미가 아니다.

김현성은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스탯의 약 2배가 넘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근접직군이 아닌 내가 뭐라고 평가를 내리기는 힘들겠지만, 다시 말하면 자세하게 알지 못하는 내가 봐도 특별하다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였으니 다른 말은 필요 없으리라.

붉은용병의 최영기를 비롯한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뻔할 뻔자.

‘괴물.’

혹은.

‘천재.’

얼굴에 전부 드러나 있다.

물론 고평가를 받는 것은 김현성뿐만이 아니었다.

나와 정하얀이 보여주고 있는 마법의 화력도 상상 이상.

사실 나 같은 경우에는 반 이상을 정하얀에게 의지하고 있었지만 화력의 제한을 두지 않아도 되는 마법은 착실히 놈들에게 틀어박히며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박덕구를 케어하는 선희영의 존재와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김예리도 마찬가지다.

이제야 완벽한 한 팀이 된 것 같은 모습.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사냥을 하는 이 일련의 과정이 재미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퍼즐이 딱딱 맞춰졌을 때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사냥을 통해 느낀다는 것은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다.

애초에 느낄 수 있다는 게 당황스럽다.

사랑스러운 회귀자가 나서서 파티를 이끌어 주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로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다르긴 다르네.’

적어도 내 기준으로는 완벽한 파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주문을 계속해서 외우는 동안 슬그머니 정유라를 바라보자 무척이나 당황한 듯한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그러시겠죠.’

애초에 그녀의 알 수 없는 자신감의 근원은 사냥에서 기여한다.

여론이 자신을 어떻게 판단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원정대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악역의 포지션에 섰다는 것이 계획이었을 것이다.

어차피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던 간에 대외적으로 이미지가 나빠졌다는 건 바꿀 수 없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악역을 자처했기 때문에 던전의 공략이 가능했다는 언론 플레이는 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 모든 계획이 망가지고 있는 것을 보니 웃음이 나올 것 같다.

“다음.”

뭔가에 홀린 듯이 주문을 외우고 마법을 던진다.

거대한 녀석들이 하나하나 쓰러져 갈 때마다 왠지 모르게 찌릿찌릿한 뭔가가 올라온다.

정유라의 표정이 구겨질수록 이쪽의 입꼬리는 올라간다.

결국에는 눈앞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이 바닥에 쓰러졌을 때, 장내에는 묘한 침묵이 가라앉았다.

대부분 방금 전에 있었던 전투가 정말 실화인 건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김현성을 보고 있다.

길어진 침묵이 부담스러웠는지 최영기가 먼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천재가 정말로 있기는 있는 모양이로군요.”

“과찬이십니다. 여러분을 보고 흉내를 내본 것이 전부입니다.”

“아닙니다. 저는 물론 이곳에 있는 그 어떤 사람도 흉내 낼 수 없을 겁니다. 단순하게 스펙이 좋다기보다는 뭐랄까. 경험이 무척 많은 전사 같은 느낌이라고 하는 게 어울리겠군요. 솔직히 조금 자괴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현성 씨에게도 파티원 분들에게도 말입니다.”

“그런….”

“파티원 분들도 전체적으로 많이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솔직히 파란이 비싼 가격을 들여 여러분들을 영입했을 때는 조금 무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긴 들었지만 지금의 모습을 보니 올바른 판단이었다는 게 피부로 느껴집니다. 파란이 예전의 위세를 되찾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겠군요.”

“부끄럽습니다.”

“하하하. 혹시나 나중에 잘되시면 잊으시면 안 됩니다.”

최영기 같은 인재는 절대로 잊지 않는다.

‘나중에 잘해줄게.’

당연하지만 우리 파티를 다시 보고 있는 것은 최영기뿐만이 아니다.

뭔가 얼떨떨한 느낌이기는 했지만 좋은 모습을 보여준 박덕구나 김예리에게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오죽하면 몬스터의 사체를 수습하는 일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

연구에 쓸 만한 것들이 나올까 싶어 사체를 뒤적거려 봤지만 아직까지 나온 것은 없었다.

이렇게 모두가 훈훈해진 분위기 속에서 유일하게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것은 정유라 밖에는 없다.

‘어떻게 나오려나.’

가장 궁금한 것은 역시나 그녀의 노선.

이번에도 선택지는 두 가지다.

앞으로의 좋은 관계를 위해 납작 엎드리거나 아니면 이전의 태도를 고수하든가.

물론 첫 번째 선택지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이전의 자신이 했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철회해야 될 정도로 낯짝이 두꺼워야 했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존심을 아무렇게도 않게 던질 수 있을 정도로 졸렬해야 했다.

쉬워 보이기는 하지만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물론 나 같은 경우에야 아무렇지도 않게 집어 던질 수 있는 것들이지만 보통 사람에게는 의외로 던지기 힘든 것들이다.

특히 지금의 정유라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다.

정말로 위에 있는 이들은 자신들이 가치로 여기고 있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자존심을 던질 줄 안다.

국민을 위해 고개를 숙이는 정치인이나 기업가들이 그렇다.

뒤에서는 개돼지라고 욕을 하는지 설치류라고 하는지 내 알 바 아니지만 적어도 눈앞에서는 사과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지만 애매한 위치에 서 있는 자들은 그 쉬운 걸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자기 자존심이 가장 중요하고 고개를 숙이는 것을 수치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지만 이런 차이야말로 나 같은 형태의 인간을 일류와 이류로 판단하는 척도다.

‘넌 어느 쪽일까. 유라야.’

복잡해 보이는 표정.

‘넌 일류일까 이류일까.’

구겨져 있는 얼굴.

슬쩍 입을 여는 그녀를 보며 나는 그녀가 아직 이류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너는 정치하면 안 되겠다.’

애초에 견적조차 나오지 않는 싸움.

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길게 보고 있었던 내가 괜스레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놀랍기는 했지만 갑자기 튀어나오셔서 조금 깜짝 놀랐어요.”

“무슨 말씀을.”

“만약에 포지션을 바꾸실 생각이었다면 이쪽에 말씀이라도 해주셔야 되는 게 맞지 않나요? 물론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았지만 당황할 저희의 입장도 생각해 주셨으면 해요.”

“정유라 씨, 지금….”

“제 말이 틀렸나요? 현성 씨 때문에 저희 쪽 진영이 흐트러졌잖아요. 다른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야 조금 깜짝 놀라기는 했습니다만 저희가 대처하지 못할 정도의 돌발 행동은 아니었습니다. 검사 하나가 앞으로 나선다고 해서 무너질 진영도 아니었고요. 오히려 파란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여 준 덕분에 더욱더 쉽게 승리를 가져갈 수 있었던 겁니다. 그 정도도 모르시진 않을 텐데요.”

“물론 공이 아예 없었다고 말씀드리는 건 아니에요. 제 말은 단지 조금 당황스러웠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은 거라고요. 그리고 애초에 이렇게 움직일 수 있었으면 처음부터 그렇게 해야 하지 않았나요?”

훌륭히 지랄을 해주는 모습은 너무나도 훈훈하게 느껴질 정도다.

“아직 저희 파티원들이 던전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게 움직였습니다. 특히 덕구 씨나 예리가 조금 힘들어해서 말입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을 마친 것 같아 움직여 봤는데… 미리 말씀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정말로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사과를 받으려고 말씀드린 게 아니예요, 현성 씨.”

그 알량한 지위와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일장연설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시선이 좋게 갈 리가 없다.

내가 사전 조작을 하지 않았더라도 이쯤 되면 자기 스스로의 목을 조르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물론 그녀의 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김현성이 돌발 행동을 한 것도 사실이고 그것 때문에 정유라가 놀랐다는 것도 사실로 포장할 수 있을 테니까.

만약에 정유라와 김현성의 상황이 서로 뒤바뀌어 있다고 가정하고 정유라가 혼신의 연기력을 활용해 본인이 피해를 받았다는 것을 어필해 본다면 비벼볼 수 없는 상황도 아니다.

그러나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정유라는 모두의 질타를 받고 있던 국민비호감이었다.

좋은 시선이 가는 게 이상한 일이다.

“말씀이 조금 심하신 것 같습니다, 유라 씨.”

“지가 뭔데 자꾸만 저러는 건지 몰라.”

“잘했다고 칭찬해 주지는 못할 망정 기를 죽이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아무리 파란의 파티가 질투가 난다고 해도 저건 아니지.”

“쯧. 아니, 방금 같은 상황을 보고 뭐라고 하는 게 말이나 됩니까. 정신 차려야 할 건 현성 씨가 아니라 유라 씨 같습니다.”

“방금 뭐라고 하셨나요?”

“몇 번이라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정말로 참다 참다 한마디 던진 겁니다. 왜 이렇게 꼬투리 못 잡아서 안달인 줄 몰라.”

“저는 어디까지나 원정대를 위해서 말씀드린 거예요.”

“원정대를 위하긴 무슨… 퍽이나 위하고 있겠다.”

“당신은 가만히 있는 게 원정대를 위하는 겁니다.”

특히나 거친 말을 쏟아내려는 붉은용병 같은 경우에는 그 행동이 조금 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을 보니 확실히 정유라의 정치 생명이 끝났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얼굴이 새빨개져 있는 모습.

검은백조의 다른 이들이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하려고 하지만 수습될 리가 없는 상황.

심지어는 계속해서 중재를 해왔던 원정대장 최영기의 표정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사실 나도 대놓고 정유라를 비난하고 싶었지만 그런 포지션을 취할 수 없었다는 게 천추의 한이다.

그래도 뭔가 불을 지피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것 같은 느낌이다.

어떻게 말을 꺼내는 것이 좋을까 필사의 고민을 해봤지만 사실 이야기를 꺼내는 게 쉽지는 않았다.

나는 어디까지나 피해자의 입장에 서야 했으니까.

일단은 김현성의 허락을 얻어내는 게 필수.

슬쩍 김현성을 바라보자 이쪽을 바라보는 두 눈이 보였다. 직접적으로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내가 말하고 싶다고 하는 걸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대놓고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형이 한마디 해도 되지? 형 말 잘하니까, 현성아.’

눈빛을 보내니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는 얼굴이 보였다. 허락이 떨어졌으니 입을 여는 것은 순식간이다.

“조심스럽게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목소리가 나옴과 동시에 여러 사람의 시선이 쏟아져 내렸다.

“네. 물론입니다.”

사람을 놀린다는 건 꽤나 재밌다.

그동안 여론이라는 벽에 숨어서 그녀를 지켜보는 일도 상당히 재미있었지만 확실히 대놓고 놀리면서 도발하는 쪽이 조금 더 취향에 맞는다.

“사실 무척이나 죄송스럽습니다. 열심히 한다고는 했지만 조금은 폐를 끼친 것 같아서….”

“아, 아닙니다.”

“특히나 검은백조 분들에게는 정말로 죄송합니다. 정유라 씨께 특히나요.”

묘한 표정을 보내니 금방 반응이 온다.

“사실 저희 현성 씨를 비롯한 많은 파티원들과 이야기를 나눠 봤습니다. 애초에 경험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저희가 이 던전 공략에 합류했다는 사실은 대충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파란 길드에서 희귀 등급의 던전을 갈 수 있는 파티가 저희밖에 없었던 이유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저희 파티의 스펙으로는 여러분들께 폐를 끼치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영 씨.”

“아뇨. 이 부분은 정말로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공략 외적으로도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금 부족했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정유라 씨가 탐탁지 않게 생각하시는 것 같았고요. 조금 더 열심히 해보자 파티원들끼리 마음을 다 잡았지만 방금 사냥이 끝난 뒤의 상황을 지켜보니 정확히 뭐가 문제인지 알 것 같습니다.”

괜스레 불안해하는 정유라의 얼굴이 보였다.

내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기라도 할 줄 아는 모양이다.

물론 그런 선택지도 나쁘지 않기는 하지만 정답은 그게 아니다.

한 번 숨을 내쉰 뒤 천천히 말을 잇자 조금 당황스러워하는 이들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저희가 분란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네?”

“저희 파티가 아무래도 이 원정대의 분란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아….”

“탐탁지 않으시리라 생각은 했었지만 사실 이 정도로 불편해하실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만들려고 온 게 아니었는데…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아닙니다.”

“이런 던전 공략에 있어서 원정대의 분위기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선배님들의 수기에도 그런 내용이 적혀 있었고요. 무척이나 아쉽기는 하지만… 더 이상 폐를 끼치며 실례되는 행동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런 게….”

여기저기서 당황스러운 목소리들이 튀어 나왔다.

사실 마지막 발언도 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파티장이 해주는 것이 옳은 것 같은 느낌.

곰곰이 고민하던 김현성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저희 파란 파티는 이곳에서 돌아가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호흡 좋고….’

내 생각을 이해해 주고 있다는 게 꽤나 기특했다.

물론 김현성의 말이 끝난 뒤에 분위기가 조금 더 급변한 것은 당연지사.

“아니, 파란에서 이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문제는 다른 쪽에….”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누가 분란을 일으켰는데….”

내 방패막이 되었던 여론이 이제는 창이 되어 검은백조를 찌르기 시작한 것이다.

최영기 역시 고민이 많은 것 같다.

그렇지만 붉은용병에서 온 녀석이 할 수 있는 말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욱 열심히 해주셨습니다. 실수가 있기는 했지만 당연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고요. 분란을 일으키는 쪽은 오히려 다른 쪽입니다.”

‘운율 좋고, 가락 좋고.’

“정유라 씨.”

“…….”

“이런 말씀을 드려 정말로 죄송합니다. 그동안 고생한 건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원활한 공략 진행을 위해 양해해 주셔야 할 부분이 생긴 것 같습니다.”

“지금 무슨….”

“던전에서 나온 부산물의 일부의 소유권을 인정할 수 있도록 배려해 드리겠습니다.”

“정말로….”

“원정대에서 나가 주시는 걸 건의하고 싶습니다.”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던 장면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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