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
회귀자 사용설명서 068화
언론(1)
자유 도시 린델 내에 있는 언론사들은 언론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그것이 정하얀과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물론 펜을 들고 싶은 자는 많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는 자들이라면 모두가 원하고 있는 이상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사회체계가 잡혀 있는 린델에서 언론사가 자신들 마음대로 기사를 쓸 수 없다는 이유는 아마 뻔할 것이다.
‘무서우니까.’
이 대륙은 기본적으로 무력이 지배하는 세계다.
사람 몇 죽는 일은 흔하고 대형 길드에 반하는 이들이 어떤 식으로도 그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아마 기사 하나를 쓰는 것도 굉장히 조심스러울 것이다.
흔히 말하는 권력자들의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살인 사건을 작성하는 기사를 쓸 때도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기사를 읽은 미친 살인마가 언론 클랜을 습격할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사실 린델 내에서 팔리는 신문을 처음 봤을 때부터 이해할 수 있었다.
기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여러 가지 일에 대한 공지가 대부분이었고 심지어는 대형 길드의 수장이 아침밥으로 무엇을 먹었는지에 대한 기사가 나가기도 했다.
당연히 어느 정도 자괴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게 언론인이라는 거니까.
직업의식을 가지고 일을 하는 이가 얼마나 되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 없겠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참된 언론인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의 사람이다.
돈이 급하고.
이기적이고.
주사위를 던질 수 있는 자.
흔히 기레기라고 말하는 종류의 언론인이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올 수 있는 자들이 필요했다.
사실 지금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배경 자체는 나쁘지 않다.
아주 예전에 들었던 린델의 모습과는 다르게 지금은 어느 정도 체계가 잡혀가고 있다.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사냥밖에 없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다르다.
여유가 있는 사람은 문화생활을 즐기고 있었고 실제로 식당이나 극장 같은 것들에 투자하는 길드도 많아지는 추세다.
대형 길드나 중형 길드의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 대중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찾아온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운이 좋다고 말할 수도 있다.
만약에 이곳이 초창기였을 때 내가 떨어졌었다면 이런 방향은 생각도 못 했을 거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무척이나 관심을 가진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사람들의 심심함을 달래주는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것.
안에 모여 있는 이들의 숫자를 생각해 보니 내 생각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많이 모이는 게 당연할 것이다.
저들에게는 이게 밥줄이니까.
“오빠, 대부분 와주신 것 같아요.”
“아, 그래?”
“네네. 몇 분 빼고는… 어떻게 할까요?”
“내버려 둬. 어차피 이번 일이 잘되면 따라오게 돼 있으니까. 그보다 정말로 고마워, 하얀아.”
“아, 아니요.”
“이번 일이 끝나면 꼭 보답해 줄게.”
“네!”
단기간 내에 이 정도로 해낼 수 있었던 것도 어디까지나 정하얀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춰준 뒤에 방 안으로 들어가니 모여 있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히 내가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시끄럽다고 생각했었는데 조금은 조용해진 것을 보니 조금 우스웠다.
저들이 내 눈치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티를 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일단은 살짝 웃으며 첫 인사를 건넸다.
“모두 반갑습니다.”
“아… 반갑습니다.”
“린델 일보의 김성경이라고 합니다.”
“정말로 반갑습니다. 파란 길드의 이기영이라고 합니다.”
자신들을 불러 모은 이유보다는 얼마를 줄 것인지가 더 궁금한 모양.
린델 내에서 이들이 돈을 벌어 살아가고 있는 방법은 이것뿐일 테니 무리는 아니리라.
이런저런 인사를 나누었다.
제법 번듯한 식사가 나오자 얼굴이 밝아지는 이들이 보였다.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도 좋기는 하지만 이런 시간도 확실히 필요하다.
“당연하지만 여러분을 모은 이유는 작은 기사를 써주셨으면 해서입니다.”
“대충은 예상했지만 역시 그렇군요. 하하하. 당연히 써드려야지요. 안 그래도 최근 최고 주가를 달리고 있는 파란의 파티가 아닙니까. 오히려 홍보를 해드릴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홍보는 개뿔.’
사실 기사를 낸다고 하더라도 홍보효과는 미비하다.
어차피 저들이 내는 기사는 영향력이라고는 쥐뿔도 없었다.
“겨우 네 명이서 튜토리얼 던전을 최단 시간으로 돌파하고 공포의 정원의 공략까지 성공적으로 마치셨다 들었습니다. 좋은 기사거리가 될 겁니다.”
물론 좋은 소스도 아니다.
어떤 파티가 어떤 던전을 공략했다는 건 굳이 기사로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니까.
사실 길드가 자체적으로 홍보를 하는 게 더 효과적일 거다.
“하하하하하하. 어떤 식으로 써드리면 되는지 방향을 결정해 주시면 최대한 맞춰서 써드리겠습니다.”
저런 말을 하는 놈들이 지금 린델의 언론을 이끌고 있는 놈들의 현 주소.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저런 말이야말로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대사였으니까.
“사실 써주셨으면 하는 기사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내용과 조금 다릅니다.”
“네?”
“검은백조에 정유라라는 여자에 대한 기사를 써주셨으면 합니다. 정확한 내용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기사의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별다른 내용을 첨가하거나 살을 붙이지는 않았다.
그저 던전 내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 담담히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
그렇지만 눈앞에 있는 이들의 표정은 점점 구겨지고 있었다.
저게 보통의 반응이다.
대놓고 말은 못 했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에 보인다.
‘저는 자살 희망자가 아닙니다.’
또는.
‘아직 더 살고 싶습니다.’
정도라고 하는 것이 맞으리라.
“그냥 있는 내용을 그대로 써주셔도 상관없습니다. 물론 살을 붙이는 것도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자극적으로 써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대중들은 자극적인 내용의 기사를 좋아하니 말입니다. 물론 골드는 섭섭하지 않게 챙겨 드리겠습니다.”
“…….”
“…….”
장내가 조용해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미 예상했던 반응이다.
“그,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네?”
“그런 기사를 써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떤 의도로 기사를 작성해 달라고 하시는지 대충은 이해가 갑니다만… 아무래도 내용이 조금….”
“검은백조를 대상으로 기사를 써주시라고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검은백조보다는 정유라 개인에게 초점을 맞춰주시는 걸….”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서로 눈빛을 교환하는 꼴이 가관이다.
자꾸만 대답을 회피하거나 이 자리에 있는 걸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아마 내가 파란의 이기영이 아니었다면 몇몇은 개소리하지 말라며 성화를 부린 뒤에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것이다.
“여러분이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압니다.”
“네?”
“아마도 안전이겠지요. 혹시 모를 보복이 두려울 거라는 건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괜히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닙니다. 이건 제 뜻이라고 하기보다는….”
“아.”
“차희라 님의 뜻이지요.”
물론 거짓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실 거라는 건 이해하고 있습니다. 검은백조뿐만이 아니라 정유라 개인의 보복도 무서우실 겁니다. 용병여왕님이 지켜주신다고 한들,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건 압니다.”
“…….”
“만약 기사를 작성하게 된다면 실명으로 작성하게 될 겁니다.”
“아….”
“아마 몇몇 분은 기사가 나갔을 때의 파장을 예상하고 계실 겁니다. 방법이야 어떻게 됐든 대형 길드를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는 것은 꽤나 파장이 클 겁니다. 사람들은 어째서 이런 사건이 터졌는지에 대해서 궁금해하겠죠. 판매율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갈 거고 그만큼 여러분은 많은 금화를 만질 수 있을 겁니다.”
“금화가 문제가….”
“기사를 읽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여러분들은 안전해질 겁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들어간 기사나 칼럼이 팔리면 팔릴수록 여러분들은 영향력을 얻게 될 겁니다.”
이해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야 당연하다.
지구에서도 언론에 종사하고 있었던 이들이 있을 테니까.
“힘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고 해서 대중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대형 길드 역시 세간의 시선은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지킬 것이 많은 만큼 함부로 행동할 수 없습니다.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이미 린델 내에서는 어느 정도 사회 체계가 잡혀 있습니다. 단순히 사냥이나 던전만으로 운영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이해할 수 있다는 표정.
그렇지만 내킨다는 얼굴은 아니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지만 조금 불안합니다. 아니, 솔직히 이 장소에 있다는 것도 굉장히 불편합니다.”
“붉은용병이 여러분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무서울 게 없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차희라 님께서도 심사숙고해서 결정해 주신 사안입니다.”
“그렇지만 실명으로 기사를….”
“그 부분이 중요한 겁니다. 혹시나 여러분들이 잘못된다면 검은백조 길드의 입장에서 비난을 피하기가 힘들 겁니다. 그렇지요. 당연히 그렇습니다.”
조금 불안해하고 있는 기자들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아마 당연할 것이다.
별것 아닌 바람에도 벌벌 떨어야 하는 게 저들의 입장이었으니까.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는 뻔하다.
아무리 붉은용병이 뒤를 봐주고 있다고 한들 대형 길드의 반하는 기사를 썼다는 건 아무래도 무서울 테니 말이다.
살짝 한숨을 쉰 뒤 곧바로 말을 이었다.
“어째서 그동안 린델 내에 있는 언론사들이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을까요?”
“그야… 보복….”
“네. 물론 보복이 두려우셨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수준 이하의 기사를 쓰셨던 것이겠죠. 물론,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활동해 온 것을 비난하거나 모욕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대륙은 철저히 힘의 논리로 돌아가고 있는 장소고 함부로 기사를 내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것도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네.”
“그렇지만 그건 정답이 아닙니다.”
“네?”
“힘의 논리로 돌아가고 있는 대륙 때문에 여러 언론이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그건 이유가 되지 못해요.”
“…….”
“여러분들이 노선을 정하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아마 지구에서도 기자 활동을 하신 분들은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언론이 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어느 쪽에 설 것인가. 어느 편에 설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굳이 정치로 예를 들자면 여당에 설 것인가 야당에 설 것인가 만큼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게 이런 배경에서 언론이 활동하는 데 커다란 힘을 실어주게 되지요.”
“파란과 붉은용병의 노선을 타라고 말씀하시고 계신 겁니까?”
“네. 물론입니다. 저희가 필요로 하는 기사를 써주시면 됩니다. 언론은 어차피 완벽히 자유로워질 수 없습니다. 반만 자유로워지시면 됩니다. 딱 반 말입니다. 파란과 붉은용병의 적을 비판하고 저희를 옹호해 주시면 됩니다. 대중들을 움직여 주시면 되는 겁니다. 다른 쪽으로 가신다고 해도 불이익은 없을 겁니다. 검은백조를 선택하시거나 아니면 타 세력으로 갈 수 있는 노선이 마련되어 있다면 그쪽으로 가셔도 됩니다. 물론, 간혹 목숨의 위협을 받으실 수도 있으실 겁니다. 외부의 압력은 일상이 될 겁니다. 그렇지만 그건 린델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던전에 들어가는 이들도, 전선에 서는 이들도, 모두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위협을 받으신 만큼, 더욱더 큰 것을 얻어 가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게….”
“금화.”
“…….”
“그리고.”
“…….”
“권력입니다.”
물론 저들이 권력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어 줄 수는 있다.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 사이로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