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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77화 (76/1,590)

# 77

회귀자 사용설명서 077화

세 번째 직업(3)

항상 북적거리던 길드 하우스의 2층이 묘하게 조용하니 왠지 모르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정이 들었나 보네.’

파티원들이 떠난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감정을 느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물론 없으니 외롭다 정도의 수준을 벗어났다고는 볼 수 없다. 단순히 환경이 갑작스레 바뀌었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이리라.

오히려 조금은 즐거운 느낌도 있다.

그동안 묘하게 불편한 점이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긴 했으니까.

항상 이쪽의 동태를 살피는 정하얀이나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박덕구, 함께 봉사활동을 나가자고 하는 선희영 때문에 개인 시간이 무척 부족했다.

차라리 김예리가 이쪽에 말을 걸어오지 않는 게 고마울 지경. 만약 그 꼬마까지 난리를 피웠더라면 사생활 같은 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당분간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해야 되기는 했지만 뭔가 휴가를 얻은 듯한 기분도 든다.

‘절박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없지만.’

김현성이 목표로 했던 세 번째 직업이나 능력치의 상승을 꾀하기 위해서는 이쪽도 저쪽만큼이나 절박하게 움직여야 한다.

도대체 내 뭘 믿고 성장을 따라올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의 생각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나 역시 그렇게 나쁜 상황이라고 보기에는 힘들었으니까.

영웅 등급의 연금 장비들과 수많은 촉매와 자재, 이미 성장하는 게 확정된 상황이나 다름없다.

능력치 같은 경우에는 문제가 없긴 하지만 그 능력치가 지력이라는 게 문제다.

애초에 다른 능력치는 올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선택지가 없는 상황.

그렇기 때문에 세 번째 전직은 무척 중요했다.

전투 능력으로 비비는 건 어차피 생각도 안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순 연구직으로는 파티를 따라다니는 것은 무리가 있다.

천천히 올라가며 여러 가지 가능성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구체화시키지 않았던 문제에 대한 해답들이었다.

연금술사라는 개성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도 최소한의 전투 능력을 갖출 수 있는 방안이다.

‘일단은 호문클루스….’

사실상 연금술사를 선택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마력의 소비 없이 소환수와 비슷한 존재를 다룰 수 있다는 건 이쪽에 무척이나 유리했으니까.

실제로 라무스 터커의 연금학개론에서는 호문클루스를 굉장히 심층적으로 다룬다.

[호문클루스라는 것은 여성의 태를 빌리지 않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생명체를 의미한다. 학파마다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조금씩 그 의견이 다르기는 하지만 최소한 필자는 호문클루스를 만들어진 생명체라고 정의하겠다.

물론, 키메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유에서 유를 창조하는 키메라와는 다르게 우리 연금술사가 다루는 호문클루스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개념이다.]

호문클루스란 만들어진 인공생명체를 의미한다.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당연히 모른다.

심지어 터커의 책에도 이론 외에는 아무것도 적혀져 있지 않다.

키메라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기는 하지만 유전자를 조작하는 개념인 키메라와 만들어진 생명체인 호문클루스는 엄연히 그 성질이 다르다.

어쩌면 터커에게도 호문클루스는 미지의 영역이었을 수도 있으리라.

아니, 만약 실제로 생명체를 탄생시켰다고 한들, 자신이 새로운 생명을 만들었다고 떠들고 다녔을 리가 없다.

그건 일종의 신의 영역이라고 봐도 무방하니까.

‘두 번째는 물약.’

이 세계에서 포션이라고 불리는 물약이다.

기껏 물약으로 전투 능력을 갖출 수 있는지에 대해 묻는다면 당연히 고개를 젓겠지만 이건 단순한 내 상상력에 기반한 이론의 일종이었다.

‘마법을 포션에 담을 수 있는가?’

이 대륙의 마법의 원리는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마력의 탑을 쌓고, 이미지하기 위해 주문을 외운다.

완성된 주문은 팔이나 특정신체에 머무르고 사용자의 주문 시동어와 함께 발동한다.

머무르는 주문을 신체가 아니라 포션이나 특정 물건에 담는 것은 불가능한가?

그런 실험이다.

물론 일부 아이템에는 마법이 담겨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런 종류의 아이템은 사람이 만든 아이템이 아닌 어디까지나 본래 완성되어 있는 완공품이었다.

실제로 어떤 마법학파는 아이템에 마법을 인챈트하지만 그 효과가 미비하기도 했고, 효율이 좋지 안다고 알려져 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에 연구가 중단된 것이다.

만약에 연금 마법을 사용하는 연금술사가 연성진을 활용해 1회용 마법은 담을 수 있다면 내게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상업적으로도 무척 뛰어난 성과를 얻을 것이 분명하다.

‘세 번째는 키메라.’

유전자나 세포 따위를 조작해서 소환수를 만드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사실상 가장 간단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기는 하다.

이 세계에서도 몬스터라는 생명체는 흥미의 대상이었으니까.

단순히 키메라를 제조하는 것은 쉽다.

몇몇 몬스터는 굉장히 유사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유전자를 섞어 실험에 들어간다고 해도 틀림없이 몬스터는 살아 있을 테니까.

그렇지만 그것을 컨트롤 하는 것은 연금술사의 영역이 아니라 흑마법사의 영역이다.

내가 가진 마력으로는 만들어진 키메라를 컨트롤할 수 없다.

물론 아직 성체가 되지 않은 녀석을 잡아 배양한 이 후에 키우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 방법이 제대로 먹힐지가 문제다.

내가 키운 키메라에게 잡아먹히고 싶지는 않다.

‘그밖에도….’

생각해 놓은 방향은 많다.

이건 내게 있어서 생존이 직결된 문제였으니까.

위험성은 높지만 내 신체를 직접 손볼 생각을 해본 적도 있고, 실제로 현자의 돌을 연성하는 방안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효율이 좋게 나오지 않을 것 같기도 했고 아직까지 내가 다루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한 부분도 있다.

미루고 있지만 성장 방향을 어느 정도 결정하고 움직여야 할 시기다.

회귀자 일행을 따라가려면 발바닥에 땀이 날 때까지 뛰는 것도 중요하지만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단기간에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험과 실패를 반복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한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면 되고 연구가 막히면 조언을 구하는 것은 상식이다.

마법과 연금술은 갈래는 다르나 어찌됐든 뿌리는 같다.

다른 종류의 직업 모두 마찬가지.

각자의 해석이 존재하는 만큼 그들의 도움을 받는 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리라.

‘마도 길드가 낫겠지?’

확실히 나쁘지 않은 선택지.

현자의 돌의 연구에 끼어 달라며 아우성을 쳤던 그들이라면 이기영 연구실의 충실한 일꾼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여러 생각을 하며 식당에 들어갔던 바로 그때였다.

“오늘은 혼자 드시나요?”

“아.”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고개를 돌리니 시야에 비치는 것은 조금 나이가 어려 보이는 여자였다.

“아! 인사를 드리는 건 처음인가요. 파란 5번 대의 파티장을 맡고 있는 황정연이라고 해요.”

“아. 반갑습니다. 저는….”

“알고 있어요. 7번 대 파티의 연금술사 이기영. 맞죠?”

“네.”

“공포의 정원은 잘 다녀오셨나요?”

조금은 뜬금없는 질문.

그렇지만 그녀가 어째서 이런 질문을 했는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발견자.’

눈앞에 있는 이 황정연이라는 여자가 던전을 발견한 뒤 우리에게 양보한 사람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들었던 대로 눈치가 빠르시네요.”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물론 칭찬이죠. 사실 조금 죄송하기도 하네요. 정말로 좋은 경험을 하고 나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조금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솔직히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어요. 검은백조에 있었던 친구가 죄송하다고 전해 달라는 걸 지금에서야 말씀드리네요.”

“아! 아닙니다. 이미 사과를 받기도 했고 모든 일이 원만하게 해결 됐으니까요. 오히려 제 부족함을 깨닫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기분이 또 좋네요. 모두의 기대를 받는 7번 대 파티와 이야기를 나눈 건 처음이네요. 기뻐라.”

조금 텐션이 낮은 얼굴과 목소리다.

엄청나게 느긋하게 보이는 얼굴이라고 하는 게 가장 어울리리라.

얼굴은 조금 젊어 보이기는 했지만 왠지 모르게 옛날 생각이 나게 만드는 분위기.

현대에 살고 있었던 여성에게 어울리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뭔가 양갓집 규수 같은 느낌의 인상이었다.

“사실 원정에서 돌아온 지는 조금 오래 됐었는데 7번 대 여러분들이 워낙 똘똘 뭉쳐 있어서 말 걸기가 쉽지 않았지 뭐예요.”

“아. 그렇군요.”

“다 같이 모여서 회식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타 파티 여러분은 원정에서 돌아올 생각도 하지 않으시고… 길드가 바쁘긴 바빠졌으니까요. 모두가 여유가 없으셨던 거겠죠.”

“아아아. 듣기는 했습니다. 영웅 등급의 던전에 들어가셨다고….”

“네. 그보다는 뭔가 고민이 있으신 듯한 표정인데….”

“흠….”

누가 봐도 마법사 같은 외형을 하고 있다.

아마 같은 유형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의 고충이라고 생각했던 모양.

굳이 조용히 있는 후배에게 말을 거는 성격과 던전의 소유권을 양보한 것을 보면 오지랖이 꽤나 넓은 것 같기는 했다.

물론 그 오지랖이 이쪽에 무척 도움이 되는 이야기인 것은 당연지사.

굳이 마음의 눈으로 능력치를 확인하지 않아도 그녀가 능력 있는 마법사라는 것은 눈치챌 수 있다.

굳이 숨기지 않은 마력은 그녀의 수치를 대충이나마 짐작하게 했고, 눈에 깃든 총명함도 눈에 띈다.

여유로운 성격도 아마 그녀가 가지고 있는 마력 특유의 영향이리라.

‘쓸 만하겠는데….’

굳이 마도 길드에 지원을 요청할 필요도 없을 것 같은 느낌.

그녀에게 여러 가지 물어봐도 상관은 없으리라.

“네.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최근에 조금 방향을 잘 잡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말입니다.”

“네네. 이해해요. 그럴 때가 다 있죠.”

“선택지가 꽤나 많은데 사실 어느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할지도 감이 오지 않아서….”

“그것도 이해해요. 누구나 겪는 일이니까요. 특히나 기영 씨 같은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겠네요.”

“네?”

“용병여왕과 하얀 씨 사이에서 고민하는 거 맞으시죠? 한쪽은 지구에서부터 사귀고 있었던 연인이고 한쪽은 이곳에서 생사를 함께한 쪽이라니…. 선택하는 게 어려운 게 당연하잖아요?”

“예?”

“사실 일부일처나 일처다부가 당연시 되던 현대의 윤리관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그럴 때는 두 명 모두 선택하는 게 정답일 수도 있답니다.”

“…….”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순식간일 것이다.

무척이나 황당하다는 내 표정을 보고 있을 테니까.

천천히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가고 있던 황정연이 황급히 입을 닫았다.

“아. 그 이야기가 아니었군요.”

“네.”

“죄, 죄송해요.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시고 있는 것 같아서 당연히 그럴 줄….”

“…….”

조금 민망하다는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이 분위기를 어떻게든 수습하려는 것 같았지만 뭔가 잘 안 되는 느낌.

어디에선가 뭔가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 것 같다.

‘닮았는데….’

인상도 다르고 생김새도 전혀 다르다. 아니, 인종 자체가 다른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상상하고 있는 얼굴은 산적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돼지였고 눈앞에 있는 여자는 현모양처 같은 이미지였으니까.

그렇지만 왠지 이 여자에게서 박덕구와 비슷한 향기가 난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닮았어.’

뭔가 연관되면 피곤해질 것 같은 그 느낌도 같다.

자리를 피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 앞에서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정신 좀 봐. 죄송해요. 드라마를 본 지가 너무 오래 되서… 저도 모르게.”

“아… 네.”

“너무 사이좋은 두 분이니까요. 사실 하얀 씨와 기영 씨를 볼 때면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때가 많아서… 특히나 하얀 씨가 기영 씨를 정말로 좋아하시는 것 같던데… 그래서 그런 마법까지 걸고 다니시나 봐요.”

“네?”

“위치 추적 마법이요. 제가 이렇게 함께 있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정보 정도는 들어가고 있을 텐데….”

“음?”

“부끄러워하지 않으셔도 돼요. 직접 신체 부위도 넘겨주셨잖아요? 로맨틱해라.”

“…….”

“…….”

“혹시… 모르고 계셨나요?”

“…….”

“못 들은 척해주시는 건… 안 되겠죠?”

무척이나 황당한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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