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
회귀자 사용설명서 083화
세 번째 직업(9)
굉음이 들려오기도 전에 모두가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허… 형, 형님….”
“이거… 어떻게 할 수 있었던 겁니까.”
심지어 김현성조차 말이다.
“직업의 특성입니다.”
“아….”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다는 얼굴들이다. 조금은 불안했던 감정도 잠시였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 드리자면 유전 정보값이 같은 촉매를 활용한 생체 실험의 결과물이라고 말하는 게 맞겠군요.”
“거, 무, 무슨 소리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조금만 더 쉽게 풀어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여러 가지 마법을 압축해 놓은 리모컨과 반응을 해주는 텔레비전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지금 제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리모컨이고 저기서 팽창하고 있는 거대한 괴물의 팔이 티비인 셈이라고 할 수 있겠죠. 사실 서로 반응할 수 있는 촉매만 있으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준비하는 과정이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요.”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다시 한번 놀랍다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저런 표정을 짓는 게 당연할 것이다.
나 역시 처음 결과물을 만들어냈을 때는 놀라는 수준을 넘어 당황스러울 정도였으니까.
다시 한번 살짝 정보를 바라보자 괜스레 자랑스러워졌다. 내가 만들 결과물이라고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름-이기영]
[칭호-용병여왕의 정부]
[나이-25]
[성향-용의주도한 전략가]
[직업-생체 연금 소환사-고유 영웅 등급]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종류의 직업입니다. 무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대륙에서도 이런 종류의 연금 방식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모든 연금술사가 당신의 결과물을 본다면 여러 미사여구로 찬사를 보낼 것입니다. 당신의 놀라운 업적의 영향으로 직업의 등급을 고유 영웅 등급으로 상향조정합니다. 지력이 4 오릅니다. 마력이 3 오릅니다. 만들어낸 생체연금의 결과물을 소환수로 판정합니다. 소환수에 대한 미약한 통제권을 부여합니다.]
[직업효과-기초 마법 지식 습득]
[직업효과-기초 연금 지식 습득]
[직업효과-중급 연금 지식 습득]
[직업효과-특수 소환 지식 습득]
[능력치]
[근력-20/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민첩-21/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체력-25/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지력-64/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내구-20/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행운-45/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마력-15/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장비]
[라무스 터커의 연금학개론-영웅 등급-연금술사 전용]
[마력 방패의 반지-희귀 등급]
[특성-마음의 눈]
[총평-어떻게든 최악의 상황을 면하려는 노력은 눈에 띕니다만 너무 발버둥 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최악의 상황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으니까요. 그것과는 별개로 당신의 노력에는 찬사를 보냅니다. 한계가 찾아올 때까지 있는 힘껏 발악해 보도록 하세요.]
그동안 능력치가 전체적으로 많이 올라갔고 직업 효과로 특수 소환 지식을 얻었다.
사실 얻었다는 표현도 이상하다.
내가 정립한 이론으로 내가 만든 지식이었으니 말이다. 눈에 띄는 것은 고유 영웅이라는 직업 등급.
모두가 궁금해하는 표정이었기 때문에 살짝 웃으면 입을 열었다.
“직업의 이름은 생체 연금 소환사이며 직업의 등급은 고유 영웅 등급입니다.”
“아.”
“고유 영웅 등급 말이요?”
“응.”
왠지 모르게 조금 기가 죽은 것 같은 박덕구의 얼굴. 정보를 확인한 뒤에는 어째서 녀석이 저런 표정을 하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희귀?’
박덕구를 제외한 전원이 영웅 등급의 직업을 얻은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꼬맹이인 김예리 역시 겨우 두 번째 전직 만에 영웅 등급, 보통 네 번째나 다섯 번째에 영웅 등급의 직업을 얻는다는 게 일반적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터무니없이 빠르다는 이야기가 된다.
뭔가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박덕구의 멘탈을 케어해주는 것은 이후라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일단은 팀원들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게 더 중요하니까.
“고유 영웅 등급이라니… 대단하시네요, 기영 씨.”
“희귀나 영웅, 전설 이외에 다른 종류의 등급이 또 있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아마도 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이가 기영 씨뿐이라는 말일 겁니다. 도시 내에도 고유 등급 판정을 받은 모험가들이 조금 있습니다. 그들 역시 기영 씨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뭔가를 발견했을 때 고유 등급의 직업을 받았습니다만… 후발주자들이 똑같은 행동이나 결과물을 만들어도 같은 직업을 부여받지는 않는다고 하더군요.”
“아.”
“쉽게 말하면 양산이 불가능한 직업군이라는 말이 됩니다.”
‘좋은데?’
특별하다는 것은 장점이 된다.
몸값을 미친 듯이 올릴 수 있다는 장점 말이다.
살짝 김현성을 바라보니 조금은 흥분한 듯 이야기를 쏟아내는 녀석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도시를 돌아다니며 마음의 눈을 켜 사람들의 정보를 확인해 봤지만 아직까지 고유 영웅 등급 판정을 받은 직업을 본적이 없었다.
내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만약에 그게 아니라면 김현성은 지금 미래의 대한 정보를 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느 한쪽으로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단점은 틀림없이 존재하지만 장점도 충분할 것 같군요. 제 생각에는 물약이나 호문클루스 쪽으로 성장 방향을 결정하지 않을까 생각했었지만….”
“사실 호문클루스 쪽으로 더 공부하면 어떨까 생각해 봤지만 아직은 지력이 낮아서 그런지 이해가 잘되지 않아서 말입니다. 키메라 쪽의 분야는 파고들만 하다고 생각했었지만 만들어진 키메라에 대한 통제권이 문제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정신지배를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이나 마력이 없어서 말입니다.”
“아….”
“만약에 키메라 전체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일부를 통제하면 어떨까에 대해서 생각해 보니 답이 금방 나오더군요. 아, 일단 저건 치우고 이야기 하겠습니다.”
다시 주문을 외우자 팽창한 괴물의 팔이 다시 축소되기 시작했다.
모든 마법의 효과를 되돌리는 정하얀의 리버스 주문의 개정판이었다.
“일단 방금 보신 것은 소환수가 아닙니다. 처음에는 생명체라고도 할 수도 없었던 것은 물론 자기 의지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습니다만… 전직 이후에는 감사하게도 소환수로 판정하더군요.”
“그렇군요.”
대단해 보이긴 하지만 사실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로 재료의 질이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것.
여러 가지 마법이 들어간 연성진을 우겨넣을 수 있을 정도로 품질이 좋아야 했다.
소모품으로 쓰기 힘든 것을 소모품으로 사용해야 된다는 이야기. 최소 희귀 등급 이상의 촉매들을 사용해야 한다.
두 번째는 유지 시간이 길지 못하다는 것.
계속해서 주인의 곁에 있어주는 여럿 소환수와 달리 내가 소환한 생체연금의 결과물은 그 유지 시간이 무척이나 짧다.
몸 전체를 연성하지 못한다는 것도 문제다.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지금으로서는 일부만 소환하는 것이 한계다.
마법이지만 공격 자체는 물리계열로 판정한다는 것도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후에 다른 몬스터의 촉매를 발견하면 다른 수가 생길 수가 있겠지만 일단 내가 파악하기로는 이 정도가 전부다.
내 판단보다 중요한 것은 김현성의 생각이다.
새롭게 얻은 직업과 능력이 앞으로의 여정에 도움이 되는가 되지 않는가가 제일 중요하다.
총평을 내려달라는 듯이 살짝 김현성을 바라보자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
“잘해내실 수 있으실 거라고 생각했지만 제가 상상한 것 이상의 결과물이군요.”
“감사합니다.”
“아직 조금 더 알아봐야겠습니다만….”
일단은 만족스럽다는 이야기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김현성뿐만이 아니다.
처음 능력을 시연할 때도 같았지만 파티원들은 전체적으로 무척 놀랐다는 표정이다.
여기저기에서 축하한다는 목소리가 들려와서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형님은 뭔가 해낼 줄 알았소. 크으… 완전 멋있습니다, 형님.”
“고맙다, 덕구야.”
“축하….”
심지어는 김예리 역시 조그맣게 입을 벌렸다.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 것은 처음.
슬쩍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팔을 올려봤지만 김현성 뒤로 후다닥 숨는 바람에 내 팔이 허공을 갈랐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던 바로 그때였다.
‘…….’
정하얀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뭔가 불안해하는 표정.
내가 김예리를 향해 손을 뻗었기 때문이 아니다.
‘들켰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내가 보여준 연금술의 매커니즘 방식이 자신이 걸었던 마법의 방식과 굉장히 유사하기 때문인지, 얼굴 한쪽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혹시라도 내가 자신의 마법을 발견한 것은 아닌가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사실 정하얀의 행동은 어느 정도 브레이크를 걸어줘야 하겠다고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적절한 타이밍이 아니었기에 일단은 말을 아꼈다.
“하얀아.”
“아… 네. 오빠.”
손을 꽉 잡아주니 뭔가 진정하는 것 같은 느낌.
뭔가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은 얼굴이 보였기 때문에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스스로 느끼게 만들어야 돼.’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행동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게 가장 베스트.
아직까지 성향이 변하지 않았으니 쿡쿡 찔리게만 만들어줘도 이런 행동을 자제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아침이라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겠군요. 기영 씨 역시 저희가 뭘 얻었는지에 대해서 알아야 하니까요.”
‘굳이 안 알려줘도 되지만….’
자신들의 입으로 설명하는 게 조금 더 편하다.
“원정이 만족스러웠나 보군요.”
“사실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다시 되돌아가야 되지 않을까 할 정도로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만….”
“…….”
“자세한 이야기가 듣고 싶군요.”
김현성이 말을 꺼내가 슬쩍 주변이 조용해졌다. 얼마나 개판을 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용한 분위기를 보니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라는 것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희귀 등급의 던전에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처음 던전에 진입한 이 후에 출발하기 전까지 3일이 걸렸습니다.”
“네?”
“하얀 씨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아.”
고개를 푹 숙이는 정하얀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말로 어떻게든 포장하기는 했지만 무슨 일이 있었을지 대충 예상이 간다.
이곳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했을 테니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던 것은 기본 옵션. 아마 던전 내에서는 울고불고 난리가 났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늦었구나.’
김현성이 이야기하는 삼 일이란 아마 정하얀의 멘탈을 다듬어 주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덕구 씨 역시 적응하는 데 무척 오래 걸렸습니다. 이전에 보여줬던 모습 외에도 다른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죠. 예리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경험이 적다고는 하지만 이상한 돌발 행동을 해서 파티를 혼란스럽게 했죠. 아마 희영 씨가 없었다면 더욱더 힘들었을 겁니다.”
“…….”
“…….”
‘들으라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호흡도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제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전멸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전방에게 화살을 쏘는 후위, 겁을 집어먹은 전위 때문에 후위가 위험해진 적도 많았죠.”
“끄응….”
“언제 전멸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저들에게 들으라는 소리가 아니라 나에게 그동안의 고충을 이야기하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것 같다.
‘…….’
마치 자식의 나쁜 행동을 배우자에게 이야기하는 우리네 아버지나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느낌.
아니나 다를까 박덕구나 정하얀의 고개가 더욱더 푹 숙여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가면 갈수록 자리를 잡아가더군요. 결과물도 나쁘지 않았고요.”
“네.”
“저희 역시 모두가 60의 능력치를 이뤘고, 영웅 등급의 직업을 얻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아….”
“조금 더 자세한 건 안에 들어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두?’
김현성의 말이 조금 이상하다고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 눈으로 확인한 덕구 녀석의 직업 등급은 틀림없이 희귀 등급이었기 때문이다.
‘이 돼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