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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85화 (84/1,590)

# 85

회귀자 사용설명서 085화

미친 늙은이(1)

분위기 자체가 무척이나 무거웠다. 갓난아기라도 지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으리라.

조금 머뭇거리던 이상희가 입을 연 것은 시간이 조금 지난 뒤였다.

“현재 파란의 2번 대와 7번 대를 제외한 모든 파티가 영웅 등급의 던전에 고립되어 있습니다. 생사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며 구조 신호를 확인한 것은 오늘 아침입니다. 이후에 따로 신호를 보내오지 않은 것을 유추해 보면 던전에 진입한 파티에 문제가 생긴 걸로 보입니다.”

‘이건가?’

“던전에 진입한 정확한 시기는 8월 14일, 마지막 연락은 오늘 아침 6시 40분 경이었습니다. 설호 씨?”

“네. 맞습니다. 정확합니다.”

8월 14일 이라면 우리가 파란으로 들어오기도 전이다. 대충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느낌이 온다.

‘원정 실패.’

길드나 클랜이 무너지는 아주 전형적인 상황 중에 하나다. 자유 도시 린델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도시 내에 떠돌아다니는 전형적인 격언들은 대충 들어왔다.

‘한 번의 원정실패는 소형 클랜을 휘청거리게 만들고 두 번의 원정실패는 대형 길드를 휘청거리게 만든다.’

그만큼 던전 공략이나 사냥을 나가는 게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격언이다.

저런 말이 나오는 게 당연할 것이다. 린델에서는 강자가 곧 집단의 재산이다.

원정 중에 실수로 저들이 죽거나 움직이기 힘든 상태가 된다면 그것은 곧바로 집단의 전력이 대폭 하락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의 클랜이나 길드는 원정 준비에 무척이나 많은 투자를 하는 편.

조금 질이 나쁜 길드의 경우에는 시험용 파티를 먼저 들여보낸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니 다른 말은 필요 없으리라.

만약 발견된 던전이 영웅 등급 이상의 던전이라면 조금 더 조심스러워야 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몬스터가 나오고 이 후에 보스 몬스터가 나오는 희귀 등급의 던전과는 달리 영웅 등급의 던전은 각 던전마다 그 메커니즘이 다르기 때문.

나 역시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여러 길드에서 만든 모험일지만 봐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일이다.

‘파란은 원정 실패로 무너진다.’

김현성은 이 상황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구조대를 보내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수순일 터.

버리기에는 던전 안에 들어가 있는 인적 자원이 무척이나 고급스럽다.

아니, 인적 자원 이전에 이상희에게는 던전 안에 고립되어 있는 이들이 하나하나 가족처럼 느껴질 것이다. 파란은 그 역사가 꽤나 오래됐으니까.

그녀의 성격이라면 무리하게 들어가고도 남는다.

문제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대한 것.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선택지에 대해 떠올리고 있는 도중에도 회의실에서는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간단한 브리핑이 끝난 뒤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탁상공론이지만….’

“다른 길드에 지원을 요청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붉은용병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현재 용병여왕의 부재로 인해 대답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답을 듣는 데 얼마나 걸릴지…. 만약에 한시가 다급한 상황이라면 원정대가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아무런 대책 없이 이렇게 들어가자는 말씀이십니까?”

“꼭 그렇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신호가 끊긴 것이 오늘 아침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대다수의 인원들이 생존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길드의 재산입니다.”

“당연히 구조대를 보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전력이 턱없이 부족해요. 공략이 아니라 구조가 목적이라곤 하나 사실 저희만으로는….”

“만약에 구조대를 구성한다고 한다면 은퇴하신 분들도 함께….”

“이미 모험을 떠날 몸이 아니지 않습니까. 허허. 솔직히 저는 행정일을 하는 데도 조금 힘이 듭니다.”

“그렇지만 숫자가 부족하지 않습니까.”

“부족하다니요? 7번 대도 있지 않습니까.”

“…….”

“7번 대는….”

“7번 대 파티도 우리 길드의 주요 전력이지 않습니까?”

‘미친 영감탱이들이….’

말을 아끼고 있지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고립된 파티를 구해내기 위해 구조대를 보내느냐 마느냐.

던전에 대한 정보는 길드 측에서도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이미 한 번 실패한 데이터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던전행은 틀림없이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무려 파란의 다섯 파티를 잡아먹은 던전을 황정연과 이상희, 우리가 함께 간다고 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생존자를 확인하는 게 고작일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것, 구조대를 파견해야 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었기 때문에 길드에서 구조대를 만들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아무리 이설호를 비롯한 이들은 위험한 곳에 자신의 몸을 던지기 싫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려고 그 비싼 돈을 주고 영입 한 것이 아닙니까. 그들도 틀림없이 도움이 될 겁니다.”

“아직 제대로 성장도 되지 않은 파티예요. 이설호 님.”

“황정연 님, 저도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주 작은 손이라도 필요한 시점이 아닙니까. 최소한 데려가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길드의 위기입니다. 함께 헤쳐 나가는 것이 당연하지요.”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이설호 님도 함께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늙고 노쇠해 움직이기 힘든 몸입니다. 그동안 길드를 위해 헌신하시는 분인데… 길드를 지켜야 하는 사람도 필요한 만큼 이설호 님께서는 길드를 지켜야 하지요.”

“아암 그렇고 말고요!”

“아마 저희가 간다고 해도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크흠….”

“흠흠.”

‘지랄하고 자빠졌네, 미친 새끼들이….’

돌아가는 분위기를 바라보니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가 나올 정도.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말을 맞춰 놓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호흡이 예술이다. 미친 늙은이가 계속해서 우리를 사지로 들이밀려고 하는 것을 보니 이번 기회에 꿀을 빨려고 제대로 마음먹은 모양. 애초에 이상희나 황정연 그리고 우리가 함께 던전에 들어간다고 가정한다면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것은 이설호 저 늙은이다.

‘늙고 노쇠하기는 개뿔.’

첫 만남 당시에 이쪽을 향해 살기를 풀풀 날리던 게 엊그제 같다.

스탯 역시 나쁘지 않은 것이 눈에 보인다. 늙은 것은 맞지만 절대로 움직이기 힘든 몸은 아니다.

집구석에서나 밖에서는 여포처럼 군림하는 기운찬 늙은이가 대중교통을 안에서는 노쇠해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

굳이 저 난리를 치는 이유는 뻔할 뻔자. 위험한 곳에 몸을 던지기 싫은 것이다.

‘한탕 하고 싶다 이거지?’

구조대를 보내느냐 마느냐라는 논쟁에 우리 파티가 참가하는가 참가하지 않는가에 대한 프레임이 덧씌워졌다.

“아직 7번 대 여러분들이 들어가기에는 적절한 곳이 아니에요.”

“허허허. 뭔가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아직 린델에 들어온 지 1년도 안 된 이들입니다.”

“그렇지만 파란의 일원이기도 하지요. 저들도 엄연히 길드원입니다. 안 그래도 많은 특혜를 받고 온 이들입니다. 이번에도 특혜를 줄 수는 없습니다.”

“특혜가 아니라 당연한 상식이에요. 도시 내에 있는 그 어떤 길드도 1년도 지나지 않을 파티를 영웅 등급의 던전으로 보내지 않습니다. 아, 하나 있기는 하네요. 시험용 파티를 집어 던지는 길드들이 대부분 그런 식이죠.”

“시험용 파티라니요. 말씀이 조금 지나치십니다. 어디까지나.”

“그만.”

여기저기 오고가던 탁상공론을 가로막은 것은 이상희였다.

“7번 대는 길드 하우스에서 대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설호 씨, 정연 씨의 말이 맞습니다. 현성 씨를 비롯한 다른 분들이 아무리 성장이 빠르다고 해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이거지.’

“이곳에서 함께 길드를 지켜주도록 하세요.”

“그렇지만….”

“그렇지만은 없습니다. 이건 제가 내린 결정입니다. 나머지 인원은 지금부터 원정 준비를 서둘러 주세요. 목표는 공략이 아니라 구조입니다. 다른 분들은 지금부터 곧바로 타 길드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알겠습니다.”

김현성이 노린 게 이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상적이라면 이상적인 방법이다.

구조대를 파견한 이들이 죽거나 커다란 상처를 얻고 되돌아 왔다고 가정한다면 김현성 파티는 단숨에 파란에서 가장 유력한 세력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말하자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중형 길드 하나를 꿀꺽 할 수 있다는 이야기.

물론 여러 가지 처리해야 될 문제들이 있기야 하겠지만 복잡한 과정을 스킵한다고 가정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많다.

‘사실 꼭 그런 것만도 아니지만….’

반대로 생각하자면 이상희나 황정연 같은 이들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도 문제가 되는 부분.

이후에 김현성 왕국에서 일해줄 훌륭한 일꾼 두 명을 이렇게 잃는다고 생각하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미친 늙은이야 어디서 뒈져 버려도 상관하지 않겠지만 그녀들은 이쪽에 충분히 호의적이다.

시간이 조금 걸리기야 걸리겠지만 안전하게 권력을 승계 받는 선택지도 나쁘지는 않은 옵션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김현성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

녀석의 생각을 알 수 없다는 게 무척이나 답답했다. 물론 아예 예상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나라면 조용히 떨어지는 꿀을 받아먹는 선택지도 분명 염두에 두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김현성이라면 아마….

“저희도 함께 가도록 하겠습니다.”

저런 소리를 내뱉을 거라고 생각했다.

“네?”

“저희도 함께 가도록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마음은 감사하지만… 이건.”

회귀자를 지지해줘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당연히 김현성을 응원해 줄 수밖에 없으리라.

조금 고민하기는 했지만 결정을 내리는 것은 순식간.

사실 황정연이나 이상희를 사지로 내몰았다면 아무리 나라고는 해도 찜찜했을 것이다. 그녀들에게는 여러 가지로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까.

“현성 씨 말이 맞습니다. 저희도 함께 가는 게 옳습니다.”

‘불안하지만….’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던전의 공략 방법을 알고 있을 수도 있고, 이 던전행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수도 있다.

녀석은 착하기는 하지만 분명히 무골호인은 아니다.

다시 한번 숨을 크게 들이 마신 뒤에 입을 열었다.

“최근 파티원 전체가 눈에 띄는 성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전원 세 번째 직업으로 영웅 등급의 직업을 얻었고, 주요 능력치는 60대 초반, 하얀이 같은 경우에는 70대에 이르렀습니다.”

“그게….”

“정말인가요?”

“허….”

“말도 안 돼….”

“당연히 이 정도로도 부족하다는 건 압니다. 영웅 등급의 던전에 들어가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합니다. 그 누구보다 저희가 그걸 가장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희 역시 파란의 구성원입니다. 계약서에 사인하는 것으로 맺어진 인연이지만 저는 그 인연이 결코 가볍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저희의 작은 손이라도 빌려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중간에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무리하지 않고 통제에 따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작은 손이라도 보태는 것을 허락해 주셨으면 합니다.”

살짝 고개를 숙이자 곧바로 반응이 터져 나왔다.

멍청하게 보일 수 있는 행동이기도 했지만 나쁘지는 않다.

“꼭 함께 가고 싶습니다.”

“허허. 무척 감동적입니다.”

나를 향해 눈웃음 짓고 있는 미친 늙은이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이상희 님, 기영 씨와 현성 씨가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데려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미 세 번째 전직까지 마쳤다면 틀림없이 도움이 될 겁니다. 허허.”

저 늙은이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치우는 것이 맞다.

아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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