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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94화 (93/1,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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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 094화

우린 영원히 함께예요(8)

갑작스러운 저주로 한차례 실랑이를 겪은 이후에 서둘러 정하얀을 바라봤다.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더 심각해 보이는 얼굴.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성공한 게 맞아.’

다소 충격적일 수도 있는 이야기겠지만 그래도 나름 기승전결이 잘 버무려진 스토리다.

그녀가 감내하기에는 조금 힘들 수도 있겠지만.

‘이게 정답이야.’

틀림없이 정답일 것이다. 물론, 평소의 정하얀이라면 이런 돌발행동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던전에 들어온 이후에 계속해서 혼란스러워했던 것 역시 모두가 저주의 영향.

충격요법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나마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산발이 된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다.

물론 다른 이들도 별 다를 바 없지만 누가 봐도 정하얀의 상황이 가장 심각하다는 것은 알 수 있으리라.

일단은 정하얀의 손을 꽉 잡아주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다.

“싫어! 싫어!”

‘무슨 힘이….’

이쪽의 손을 뿌리친 이후에 곧바로 자해를 시도하려고 하는 모습.

스스로 목을 조르는 탓에 최대한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겼다.

켁켁거리기는 하지만 어떻게는 숨구멍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

손을 더 꽉 잡은 뒤에 다시 한번 입을 맞추니 천천히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아아아아….”

“…….”

“흐으으윽.”

혼란스러워하던 표정에서 깜짝 놀란 표정으로, 제대로 내 얼굴을 확인한 눈동자에는 눈물이 가득 차오른다.

“아아아아… 오빠아…. 오빠아….”

내 얼굴을 매만지는 것은 물론 온몸을 확인하려 한다.

저런 반응이 당연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마지막에 봤던 내 모습은 무척이나 처참했을 테니까.

“되돌아 왔어.”

“무슨….”

“되돌아 왔어요. 되돌아 왔어. 흐으으으윽… 되돌아 온 거야…. 되돌아 온 거야.”

“무슨 소리야, 하얀아.”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흐으으윽… 미안해요. 미안해요. 바보 멍청이라서 미안해요.”

‘좋아.’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 나는 잘…. 저주는 괜찮아? 혹시 뭘 본 거야?”

“아니에요. 저주 같은 게 아니에요. 다 제 잘못이었어요. 전부다. 미안해요, 오빠. 마음대로 해서 정말로 죄송해요. 흐으으윽… 미워하지 말아줘요.”

‘미워할 리가 없지.’

애초에 이쪽이 먼저 정하얀을 미워한 적은 없다.

물론 이번에는 정도가 조금 과했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그런 모습을 보인 것은 어디까지나 저주의 영향이다.

오히려 마모된 정신의 틈으로 환상을 우겨 넣을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할 지경.

이런 기회가 빨리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언젠가 한 번 정하얀은 사고를 치게 되어 있다. 물론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지만 정하얀의 성향상 폭탄이 터지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된 이야기.

그걸 지금부터 미리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일말의 책임감은 느끼고 있기도 하고….’

내가 뭔가 특이한 취향이나 구속당하는 걸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하얀에게 죄책감과 동정심 그리고 약간의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는 거야. 그녀와 가까워지면 죄책감에서 멀어질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녀를 버리지 않음으로써 자신에게 양심이란 게 남아 있다는 걸 자위하고 싶어서 말이야.

‘그럴 수도 있지.’

나 역시 저주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묵직한 목소리가 개소리처럼 들려온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너를 미워할 이유는 없어. 나는 네가 가장 소중하니까.”

반의 반 정도는 진심이다.

“어흐어으으으엉… 저도 오빠가 가장 소중해요. 가장 좋아해요.”

다시 한번 눈물과 콧물이 묻은 얼굴을 내 가슴에 푹 묻는 것이 보였다.

“되돌아 왔어. 돌아온 거야. 감사합니다, 신님. 너무 고마워요, 신님. 너무 감사합니다.”

“자꾸만….”

“아무것도 아니에요. 흐그윽… 오빠. 오빠. 어디 다친 곳은 없으신 거죠? 다리는….”

“멀쩡해.”

“흐으으으윽… 다행이다 팔도 괜찮아. 흉터도 없어. 흰머리도 없어. 아프지도 않아. 혀도 멀쩡해. 흐으으윽.”

물론,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있기는 있었다.

만들어 놓은 환상이 실감날 거라고는 생각하기는 했었지만….

‘회귀했다고 생각할 줄은 몰랐는데….’

만약에 이렇게 생각할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스토리를 우겨 넣는 편이 좋을 뻔했다.

예를 들면 차희라나 이지혜가 언젠가 내 목숨을 구하는 장면이라든가.

물론 각본상 들어가기 힘들기야 하겠지만 만약에 그런 장면을 넣었다면 정하얀이 그들에게 가지는 적대감이 무척 줄어들었을 것이다.

‘아쉽네.’

아마 이후에 따로 설명해 주는 것이 좋으리라.

“오빠… 흐으으으으윽….”

“이제 좀 진정됐어?”

“네… 조금은… 조금은요.”

“그럼 잠깐만 기다려 줄래? 다른 사람들도 챙겨야 할 것 같아서.”

“내. 물론이에요. 오빠.”

살짝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곧바로 얼굴을 붉히는 모습이 보였다.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회귀 전에 있었던 일이라도 떠올렸는지 어깨를 떨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은 애처로운 강아지 같아 조금 귀엽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아무튼 간에 정하얀의 모습을 보니 제정신을 되찾은 것은 물론 저주의 영향에서 조금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그동안의 실험으로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은 예상할 수 없었다.

아마 정하얀에게 맞춤으로 제작된 카운슬링의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다른 사람들한테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어.’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가장 상황이 심각했던 정하얀을 끌어올렸으니 다른 이들은 더 쉬울 것이다.

약물 치료와 마법적 효과를 적절히 사용하면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정신적으로 여유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이 당연.

슬쩍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니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는 장내가 시야에 들어왔다.

첫 번째와 같다. 비명을 지르고 있는 이들은 천천히 깨어나고 있었고 여기저기 주위를 둘러보는 이들이나 혼잣말을 하고 있는 이들이 보였다.

정신이 든 것처럼 보이는 황정연을 슬쩍 바라보자 어떻게 됐냐는 듯이 이쪽에 질문을 보내오고 있다.

‘결과는 대성공.’

그 자리에서 곧바로 연금 키트를 꺼내 연성진을 그리자 황정연이 머리를 붙잡으며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마치 길거리 약장수가 싸구려 물약이라도 팔려고 하는 모양새였으니까.

“기영 씨, 지금 무슨….”

“한 분씩 이쪽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네?”

“다른 분들은 일단 대기해 주시고 한 분씩 이쪽으로 와주세요.”

“일단 윽…. 설명을….”

“이상희 님부터 이쪽으로 와주세요.”

“마스터, 이쪽에 앉으세요.”

“자… 보자. 우리 부길드 마스터님. 정확히 어떤 증상을 겪고 계십니까?”

“네?”

“아. 아무래도 프라이버시가 관련된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 적어서 제출하시는 게 더 좋겠네요. 정연 씨.”

“네. 준비해 놓을 게요.”

“지금….”

“저주를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이상희 님. 일단은 마음을 편하게 해주시고 정확히 어떤 증상과 어떤 목소리가 들려주시는지 적어주셔야 합니다. 만약에 환각이 보이기 시작했다면 그것의 내용을 정확히 말씀해 주시는 게 도움이 될 겁니다. 환청이 많이 들린다면 반복적으로 들리는 문구에 대해서도 기술해 주셔야 되고요.”

“아….”

“2번 대 여러분도 통제에 맞게 제대로 줄을 서서 이쪽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필기구 모두 지참하시고 편하게 대기해 주세요.”

“…….”

모두가 의아해하는 것 같았지만 일단은 통제에 따르려고 하는 모습은 조금은 우습다.

뭔가 하나둘 나사가 빠진 것 같은 모습.

아마 황 간호사의 역할이 컸을 것 같기는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재미있는 모습이었다.

“아아. 그러시군요.”

“지금까지 죽였던 이들의 얼굴이 보입니다. 너도 곧 죽을 거라고 계속해서 귓가로 속삭이고 있습니다.”

“물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도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으니까요. 일단 물약을 처방받으시고 정신 치료는 잠시 후에 진행할 예정입니다. 누락된 항목이 보이긴 하지만……. 으음. 아, 혹시 어떤 식으로 죽였는지에 대해서도 서술해 주시면 무척이나 감사하겠습니다.”

“아, 그건….”

“말하기 힘든 부분은 글로 적어주셔도 됩니다. 자세히 기술하시는 게 더 효과적입니다.”

“제가 보증할게요. 효과가 있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황정연 님.”

역시나 황 간호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아, 다음 분은… 가현 씨. 지구에 홀로 남아 있는 남동생이….”

“네….”

“무척 힘드셨겠습니다.”

“흐으윽.”

“저도 지구에 여동생이 있습니다. 당연히 걱정되기는 하지만… 일단은 힘을 내는 게 중요합니다.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은… 심각한 우울증 증세를 보이시고 있는 것 같은데 완벽한 치료는 어려워도 마음의 짐은 덜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할까요? 기영 씨?”

“가방에 있는 14번 물약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정연 씨. 정신 처방도 곧바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가현 씨는 곧바로 치료에 들어가도 될 겁니다. 마법을 준비해 주세요.”

“네.”

성향이 온순한 이상주의자니까.

아마 약발이 꽤나 잘 받을 것이다. 가지고 있는 성향과 보이고 있는 환각과 환청의 종류, 이런 경우에는 더 치료하기가 쉽다.

‘남동생과의 아름다운 재회 이후, 누나는 힘내서 살아달라고 말하는 것으로 마무리.’

살아서 꼭 만나자라는 대사는 꽤나 잘 먹힐 것이다.

몇 가지 감동적인 연출이 있어야 하고… 취미가 독서니까 판타지 요소도 조금 섞어도 될 것 같았다.

‘동생의 목소리와 저주의 목소리가 서로 대립하는 부분도 넣어주면 효과적일 것 같네.’

당연하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위는 의료 행위라고 볼 수 없다.

엄밀히 말하면 카운슬링을 빙자한 사기에 불과하다.

완전히 치료가 되는 것도 아니고 환각과 환청이 들리지 않게 되는 것도 아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마모된 정신에 약간의 항생제를 넣어주는 것이 전부.

그렇지만 효과가 있다.

인간의 정신은 약하기도 하고 강하기도 하다. 이런 종류의 저주에 무척이나 맥없이 무너지기도 하지만 희망이 보인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기고 목소리에 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 여자의 경우에는 남동생이, 나와 같은 증상을 겪고 있는 남자의 경우에는 자존감이, 정하얀 같은 경우에는 내 존재 자체가 힘이 된다.

‘좋아. 좋아.’

모든 일이 잘 풀리는 느낌이다.

당연하지만 김현성에게는 사전에 그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치료 행위에 이쪽을 향해 놀랐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 당연.

심지어 황정연의 정신 치료를 받은 이후에 한결 나아졌다는 표정으로 자리를 뜨는 이들을 바라보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이렇게 공략하는 방법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는 눈빛.

회귀자의 입장에서는 아마 어처구니가 없을 것이다. 분명 자신이 생각한 공략 루트가 있었을 테니 말이다.

이 저주를 해주할 방법을 알고 있고 실제로 그걸 실행에 옮기려고 하고 있는 도중이었을 터.

하지만 방법은 달라도 목적지만 같다면 상관없다.

녀석도 그걸 이해하고 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되돌아 왔어…. 너무 감사합니다, 신님. 다시 되돌아오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로… 흐으윽….”

그렇지만 정하얀이 중얼거리는 소리에는 괜스레 심각한 표정을 보내고 있는 느낌.

‘걔 회귀한 거 아니야, 현성아.’

아무래도 모든 치료가 끝난 이후에 따로 설명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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