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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95화 (94/1,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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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 095화

우린 영원히 함께예요(9)

“조금 어떻습니까, 가현 씨?”

“조금 나아진 것 같아요. 환청은 여전히 들리지만 이전처럼 머리가 아프다든가 정신적으로 힘들지는 않네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전부 정연 씨 덕분입니다.’

같은 개소리는 하지 않았다.

내 가치를 최대한 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투 부분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힘든 처지인 만큼 그것 외에 외적인 부분에서는 충분히 유능한 척을 해야 한다.

“어떤 마법을 부리신 건가요?”

“하하하. 사실 완전한 마법과는 조금 거리가 멉니다. 그거 아십니까? 뇌는 연합 뉴런으로 이루어져 자극 처리와 가공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학적으로도 뇌를 중추신경계로 분류하고 있지요.”

“네? 그게….”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박가현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나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른다.

뇌에 대해서는 개뿔 알지도 못하고 심리학 전문가도 아니다.

그렇지만 나를 바라보는 이들의 표정이 변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본래부터 나를 과대평가 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전문지식을 조금 언급하니 눈이 동그랗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중추신경계는 타 기관과는 차별화된 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데노신 삼인산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산소를 공급해야 하는데…….”

대한민국에서 이딴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당연하지만 적어도 내 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냥 되는 대로 아무런 말이나 쏟아내고 있는 중이니까.

‘뇌 과학 연구소에서 일하다 온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알아듣는다고 해도 마법과 연금지식을 접목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개척한 분야.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를 잡은 것처럼 얻은 성과였지만 이빨을 털기에는 최적의 환경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아. 제가 조금 어렵게 설명했군요.”

“아… 아니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런 종류의 저주는 마법이나 저희가 알지 못한 방법으로 들어와도 결국에는 뇌에 관여한다는 겁니다. 마법이나 연금학이니 흑마법이니 신성력이니 해도 결과적으로는 뇌를 건드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아아.”

“저희가 환각과 환청을 듣는 것 역시 뇌가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저로서는 그 착각을 바로잡아 줄 수 있게 고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적어도 항생제를 투여해 줄 수는 있었죠.”

“어떤….”

“저희가 보고 듣는 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인식입니다. 인간의 몸은 정말로 신기하거든요. 물론 단순히 약물만으로 치료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닙니다. 마법이라는 학문은 생각보다 더 복잡하니까요. 연금학 쪽으로 풀어서 설명해 드리자면….”

“아아아… 그, 그렇군요. 네.”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이들이 보이지만 당연히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애초에….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지들이 어떻게 알겠어?’

뇌과학계의 권위자가 와도 내가 뭔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황정연이나 정하얀 같은 경우에는 귀찮은 질문을 해올 것 같기는 했지만 대충 뭉뚱그려 설명해 주면 자신들끼리 지지고 볶고 정확한 해답을 내놓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주 좋아.’

평판이 올라가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다.

사실 처음에 내가 길드로 찾아왔을 때만 생각해도 이런 상황이 생기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처음에 연금술사를 그만한 가격에 데리고 왔다고 들었을 때는 간부들이 미쳤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이렇게 보니까 정말 천, 천재가 들어왔네요. 하… 혹시 지구에서는 뭘 하시다가….”

‘천재는 개뿔.’

사기꾼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딱히 대단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혹시 연구소 같은 곳에서는….”

“뭐,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자세하게 알려드리기는 조금 어렵지만.”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기영 씨가 있어서 정말로 든든합니다. 천재, 천재하는 건 미디어에서만 나오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그런 사람이 정말로 옆에 있으니 신기하군요.”

“하하하. 그렇게 추켜세우시면 민망합니다.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잡지식이 많을 뿐입니다.”

“제가 지금가지 봐왔던 사람 중에 가장 똑똑한 것 같으신데요?”

심지어 박가현이라는 이 여자는 이쪽에 알게 모르게 호감을 보내는 느낌이었다.

같이 지구에 동생들을 놔두고 이곳으로 왔다는 공통관심사가 있기도 했고 뇌가 섹시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당연히 그녀의 마음에는 응해줄 수 없다.

정하얀의 얼굴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꽉 쥔 주먹과 입술을 깨물고 있는 이빨이 보였다.

‘아직 완벽하게 고쳐진 건 아니니까.’

아마도 정하얀이 내가 집착하는 것은 어떤 치료를 병행하더라도 평생 고칠 수 없을 것이다.

“과찬입니다. 정연 씨 앞에서 부끄럽군요.”

“아니에요. 저는 단순히 기억력이 좋을 뿐이니까요.”

뭐, 대충 정리해 보자면 저들은 지금 나를 몇 만 년에 한 번 태어날까 말까 한 천재 연금술사로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것.

“예전에 만났었던 다른 연금술사들은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저보다 더 머리가 좋은 연금술사는 아마 린델 내에 널렸을 겁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들은 지원을 받지 않았을 뿐이고 저는 출발이 조금 좋았다는 것뿐이겠죠. 사실 따지고 보면 모든 게 파란 덕분입니다.”

“겸손하시기까지.”

겸손이 아니라 진실이다.

물론, 몇몇 멍청한 놈이 있기야 하겠지만 적어도 한두 명은 특출한 이들이 있을 것이리라.

그렇지만 내가 아무리 이런 이야기를 해도 이미 확고하게 자리 잡은 이미지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

‘하늘이 내린 천재 연금술사 이기영.’

이미지가 확고하게 자리 잡는 느낌이었다.

인간은 보통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일을 잘하는 사람을 질투한다.

반대로 이해할 수 없는 업적을 달성한 이에게는 경외의 시선을 보낸다.

저들에게 있어서 내가 해낸 일은 이해할 수 없는 일로 느껴졌을 터.

던전행이 끝난다면 파란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것이다.

본래 파란의 실권을 쥐고 있었던 이상희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상희는 권력에 집착하는 성격이 아니다. 책임감은 있지만 중압감이나 부담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상황을 달가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특히나 저주에 걸려 있었던 상황에서 자신이 보여준 비상식적인 모습에 굉장한 자괴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길드원을 전부 죽일 뻔했어.’

라든지.

‘나와는 어울리지 않아.’

라고 자책하는 모습이 보였다.

잠깐 쉬고 있는 동안에도 김현성과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보였고 혼자 괴로워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인간은 보통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경외심을 보낸다.

지금까지는 나에게 그런 모습을 보내고 있었지만 앞으로의 던전행에서는 누구에게 경외심을 보낼지는 뻔할 뻔자.

잠자코 있었던 우리의 회귀자가 어떻게 움직일지 조금은 궁금해졌다.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그때였다.

“그 동안 정말로 죄송했습니다.”

“아….”

“아무리 저주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냉정함을 유지했어야 하는 제가 여러분들을 위험해 처하게 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고 변명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좋네.’

입을 연 것은 이상희였다.

확실히 마음에 드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사과할 이유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고개를 숙인 게 되는 거니까.

“현 시간부터 파티의 노선을 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생존자에 대한 구출보다는 공략이 중요하다고 판단, 공략을 마친 이후에 시신과 혹시 모를 생존자를 구출하도록 하겠습니다.”

‘드디어.’

무척이나 합리적인 판단이다.

죽은 자를 살리자고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을 수는 없는 노릇.

순서가 뒤바뀐 것뿐이지만 이상희의 저 말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렇지만….”

“물론 생존자들의 대한 수색도 멈추지는 않도록 하겠습니다. 대형을 변경하고 지금보다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네.”

“선두에는 현성 씨가 서도록 하겠습니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현성이 이상희를 구워삶은 모양이다. 아니, 녀석도 지금 이 시점이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저주의 영향을 받고 있는 파티원은 없다. 저주를 해주하기 위해 혼자서 고군분투했을 녀석을 떠올리자 조금 미안한 감정이 들기는 했지만 오히려 좋아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녀석의 입장에서는 걱정거리가 하나 날아간 셈.

이쪽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음을 보내고 있는 게 시야에 비쳤다.

천천히 일어서며 검을 갈무리하는 모습이 확실히 인상적이다.

뭔가 분위기 자체를 압도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위압?’

살기 따위가 아니다.

터벅터벅 걷고 있던 자세를 올곧이 잡자 너도 나도 몸을 일으키기 시작.

이곳에 있는 원정대원들이 뭔가에 홀렸다고 느낄 정도였다.

‘저게 맞아.’

저런 걸 이상적인 지도자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이상희도 당장 김현성을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보내고 있다.

김현성은 사실 조금 독단적이라고 볼 수 있다. 애초에 이 던전에 온 것 역시 파티원들의 의견을 배제한 김현성 혼자의 판단이라고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녀석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관철시키고 목표를 위해 똑바로 나아간다.

‘여기가 옳은 길이야. 함께 가자.’

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따르고 싶은 매력이 있다.

군주학에 대해서는 개뿔 알지도 못하지만 녀석은 내가 봤을 때 이상적인 군주라고 볼 수 있다.

다스리는 자로서는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이끄는 자로서는 내가 본 그 누구보다도 이상적이다.

“출발합니다.”

말을 내뱉은 이후에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순식간.

모두들 자리를 일으키고 곧바로 녀석의 뒤를 따른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던 김현성을 속도를 올리고 마찬가지로 다른 파티원들도 속도를 올린다.

중간에 갈라져 있는 길이나 방에 대한 수색은 무시.

커다란 길로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기는 녀석의 뒷모습은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간다.

몬스터를 염두에 두지 않는 것 같은 속도.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함정이나 언데드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혹시 모를 돌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 아니다. 단순히 길을 찾는 것 자체가 목적인 것 같은 느낌.

‘없는 건가?’

이곳에 다른 몬스터들이 없을 가능성에 대해서 떠올리는 것은 순식간.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저주받은 신단이라는 그 네이밍처럼 저주 자체를 수단으로 이용하는 종류의 던전일 수도 있다.

만약 그 가설이 맞다면 지금 김현성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뻔할 뻔자.

이 던전의 주인이자 우리에게 저주를 내린 술사일 것이다.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풍경이 조금씩 바뀐다.

갈래가 줄어들고 작은 방도 이젠 보이지 않는다. 빠르게 걸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도 커다란 규모의 신단의 끝에 다다르기에는 아직인 모양.

물론 몇 차례 저주가 쏟아지기는 했지만 크게 동요하는 이들은 없었다.

약발이 생각보다 잘 받았다는 증거이리라.

“언데드는… 없군요.”

“분명히 보고를 받았었는데….”

“아마 언데드를 봤던 것 역시 저주일 확률이 클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확정지을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그렇게 가정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경계를 늦추지 말아주십시오.”

“네.”

중간 중간 시체도 발견할 수 있었다. 파란의 전 길드원들이다.

저들이 어째서 죽었는지는 자세히 확인하지 않았지만 대충은 예상이 갔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든가 아니면 서로 죽고 죽였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상희는 조금 혼란스러워했지만 원정을 계속해서 진행하는 데는 무리는 없었다.

조금 안쪽으로 들어간 이후에는 무척이나 투박하게 장식된 자그마한 문을 볼 수 있었다.

천천히 문을 열자 시야에 비치는 것은 의자에 앉아 있는 여자.

창백한 얼굴을 한 채 눈을 감고 있는 모습.

곧바로 상태창에 새로운 정보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영웅 등급의 던전 저주받은 신단의 주인, 저주를 내리는 성녀 율리에나와 조우하셨습니다. 퀘스트가 활성화됩니다.]

[영웅 등급의 강제 퀘스트가 발동됩니다.]

[영웅 등급 퀘스트-율리에나 처치(0/1)]

끝에 다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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