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
회귀자 사용설명서 100화
구태세력(1)
길드 하우스에 막 도착한 원정대가 서둘러 짐을 풀고 지하로 내려갔다.
길드 마스터의 시신을 확인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 것이다. 잠깐 고민했지만 나 역시 내려가는 것이 맞다.
바로 이지혜와 대화를 나누고 싶기는 했지만 길드의 내부적인 상황을 살핀 이후라도 늦지 않으리라.
살짝 이지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 역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이쪽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고 있는 모양. 나도 대충 이지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예상이 된다.
‘천생연분?’
아마도 시스템이 말한 영혼의 단짝이라는 말은 이걸 뜻하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대화가 잘 통하기도 하고….’
생각하는 패턴이 굉장히 비슷했으니까.
실제로 그녀를 파란으로 불러들이지 못한 건 내가 한 실수 중 최악의 실수였다.
조금 더 곁에 두고 써먹었어야 했다.
‘쩝.’
물론 지금의 포지션도 나쁘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
아무튼 간에 길드의 외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지혜와는 여기에서 잠깐 작별.
슬쩍 인사를 해오는 이지혜를 지나친 뒤 길드 하우스의 지하로 내려가니 무척이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공간이 보였다.
하얀 꽃이 가득 차 있는 공간에 한 남자가 관 안에 누워 있다.
조금은 나이가 들어보였고 얼굴에 있는 수많은 상처로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짐작하게 했다.
턱을 뒤덮은 수염과 머리 곳곳을 뒤덮고 있는 흰머리.
‘40대?’
어쩌면 50대로 볼 수도 있으리라.
마력의 영향으로 노화가 느렸기 때문에 정확한 나이는 가늠할 수 없지만 대충 보기에도 연배가 많아 보인다.
무척이나 편안하게 눈을 감은 모습, 아니나 다를까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흐으으윽….”
“마스터….”
“흐으윽… 아저씨, 아저씨. 끝까지 살아주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아저씨… 흐으으윽….”
나는 공감할 수 없는 슬픔이다.
조용히 바라보기만 하고 있는 나는 씁쓸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주변을 가득 메운 눈물은 다른 이들이 얼마나 슬퍼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저씨?’
그중에서도 가장 격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이상희였다.
이곳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들어온 이후에는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보통 인연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이미 죽어 있는 시신을 끌어 앉고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은 가족이 죽었을 때의 반응과도 비슷해 보였다.
‘혹은 연인이라든가.’
나이 차를 생각해 보면 설득력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것 같은 반응이다.
혼자 있게 해주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리라.
2번 대의 몇몇이 조용히 위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보였다.
우리 7번 대 역시 마찬가지다.
김현성 같은 경우에는 이상희를 위로해 주고 싶은지 여전히 옆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눈물 바다가 된 상황에서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는 박덕구나 조용히 고새를 숙이고 있는 김예리도 위로 올라가는 것이 보인다.
“편안한 곳으로 가셨을 겁니다.”
선희영이 시신을 향해 신성력을 밀어 넣고 고인에 대한 예의를 갖춘 뒤 위로 향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
내 팔을 꼭 붙잡고 있는 정하얀과 함께 위층으로 몸을 옮겼다.
“하얀아.”
“네? 오빠?”
“혹시 이상한 거… 느끼지 못했지?”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예요?”
“마력의 흐름이라든가… 아니면 시신에서 보이는 흔적 같은 것들. 나는 마력에 민감하지 않으니까 혹시나 하고 물어본 거야.”
“아… 네. 이상한 건 발견하지 못했어요. 뭘 알아내려면 조금 더 자세히 봐야 될 것 같은데… 아무래도 멀리서 잠깐 본 게 전부라서….”
“으음….”
죄책감이 느껴지는 얼굴.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자 그제야 기분이 좋아진 듯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괜스레 생각이 복잡해졌다.
정하얀은 마력에 민감하다.
지금 가지고 있는 마력 능력치와는 관계없이 잠재 능력이 전설 이상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패시브 같은 능력이다.
그런 정하얀이 아주 작은 마력의 유동이나 대상에게 남아 있는 잔존 마력을 눈치채지 못한다는 것은 적어도 길드 마스터의 죽음이 마법으로 인한 타살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끄응….’
위층으로 올라가자 모여 있는 2번 대원들이 시야에 비쳤다.
길드 주점에 각자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
황정연을 중심으로 몰려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 살짝 운을 띄우자 이쪽을 반기는 이들이 보였다.
던전에서의 성과라면 성과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아, 기영 씨.”
“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아니요. 저희도 그렇지만 아마 이상희 님에 비한다면….”
“두 분이 무척 사이가 좋으셨던 모양이군요.”
“네. 무척이나 상심이 크실 겁니다. 튜토리얼 때부터 함께하셨다고 했으니….”
“튜토리얼 때부터 말씀이십니까?”
“네. 그러고 보니 7번 대 여러분은 잘 모르시겠군요. 파란 길드는 이상희 님과 길드 마스터인 주승준 님이 만드신 길드입니다. 튜토리얼부터 함께한 두 분이 린델에 들어오신 이후에 처음 자리를 잡으셨죠. 그때 당시에 이상희 님이 성인이 아니라고 하셨으니 무척 오래된 일일 겁니다. 햇수로 따지면 15년 정도.”
지금 이상희의 나이가 33살인 걸 생각해 보면 당시 이상희의 나이가 18살이라는 소리가 된다. 이계인들이 이곳에 처음 들어온 게 20년 전 정도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거의 초기 멤버라고 봐도 되리라.
“오래됐군요.”
“네. 저희도 파란에 들어온 지는 오래 되지 않기 때문에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하지만 이상희 님께서는 마스터를 아버지처럼 따르셨습니다. 실제로 마스터께서 저주에 걸리셨을 때는 직접 던전으로 들어가시려 했으니까요.”
“아….”
“항상 함께 움직이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처음 길드를 만드셨을 때도… 처음 던전이나 사냥을 나가셨을 때도 말입니다. 절대로 이상희 님을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아마 마스터가 없으셨다면 지금의 이상희 님은 없을 겁니다.”
살짝 고개를 돌려 황정연을 바라보니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저도 조금은 씁쓸하네요. 이상희 님 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파란에 꽤나 오래 있었거든요. 주승준 님은….”
“네.”
“훌륭한 사람이었어요. 남들을 위해 희생할 줄 아시고 무엇보다 저희를 많이 아끼셨죠. 굳이 길드의 규모를 늘리지 않으신 것도 너무 규모가 커지면 길드원 한 분, 한 분에게 신경 쓰기 어렵다는 이유였고…. 실제로 모든 길드원이 승준 님을 좋아했으니까요. 5번 대 같은 경우에는 아저씨만 보고 이곳으로 이적할 정도였다니까요. 물론… 지금은 없지만.”
“…….”
“그래도 사람과 헤어지는 게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영 적응되지가 않네요.”
주승준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이 사람의 인성이 무척이나 좋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뿐만이 아니다.
“강하셨죠.”
‘유능해.’
무척이나 유능한 사람이었다.
안 그래도 파란의 상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의구심을 느끼고 있었던 상황.
이상희는 강하지만 이상적인 리더가 아니다. 인품이 좋다고는 하지만 겨우 그것만 가지고는 하나의 집단을 이끌어갈 수 없다.
파란은 주승준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던 중앙 집권 체제의 길드였다.
머리가 없으니 몸이 흔들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이설호 같은 구태세력이 날뛰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설호도 처음부터 함께한 사람입니까?”
“네.”
‘역시.’
“설호 씨 역시 튜토리얼부터 함께하셨다고 들었어요. 전투요원으로서 많이 활약하셨고 파란이 자리 잡으시는 데 많이 기여하셨죠. 물론, 마스터와는 사사건건 부딪쳤지만 그래도 두 분 사이는 좋으셨다고 알고 있어요. 이상희 님과도 마찬가지고요. 물론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아… 그렇군요. 무척 신뢰하셨겠습니다.”
“네. 보시는 것처럼… 아마 설호 씨도 가슴 아플 거예요.”
“글쎄요. 정말 아플지는….”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탁자를 툭툭 두드리자 조금은 긴장한 표정의 황정연이 시야에 비쳤다.
“저. 여러분들은 잠깐 위로 올라가 주시겠어요? 저는 기영 씨랑 좀 더 이야기….”
“물론입니다, 황정연 님. 편하게 나누시죠.”
아무래도 묻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모양이다.
슬쩍 정하얀을 바라보자 자신도 올라가야 하냐는 듯 애처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살짝 고개를 저으니 곧바로 얼굴이 환해지는 게 보였다.
“방금 무슨 이야기하신 건가요? 기영 씨.”
“아뇨. 그냥… 타살에 대한 가능성을 접어두고 계신 것 같아서 말입니다.”
“타살이요?”
“네. 물론 단순한 망상입니다.”
“…….”
“정연 씨도 저랑 비슷한 생각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아뇨. 사실은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가능성을 배제한 건 아니지만… 주승준 님의 시신을 보고서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건가요?”
“네.”
“저도 그렇습니다. 대충 보기에는 외상도 없고 그 어떤 마력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맞지, 하얀아?”
“네, 오빠.”
“그렇지만 이 대륙에서 사람을 죽이는 방법이 꼭 마법만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가능성 정도는 열어두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살인 동기라고 할 만한 것은 없지만 길드 마스터와 저희가 함께 없어지면 이득을 볼 만한 사람이 몇 명 있지 않습니까. 아, 이것도 동기라고 할 수 있군요.”
“네. 확실히 맞는 말이에요.”
“뭐가 됐든 시신을 조사하면 분명히 나오는 게 있을 겁니다. 정연 씨가 이상희 님을 설득하시는 게….”
“네. 당연히 말씀을 드리기는 하겠지만….”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겁니다. 혹시나 저희가 발견할 수 없었던 잔존마력이 전부 날아갈지도 모르니까요. 만약에 저희가 조금만 더 늦었다면 시신을 확인할 시간도 없었을 겁니다. 아마 살인자들이 장례를 서둘렀을지도 모르죠. 그렇게 되기 전에 도착할 수 있게 돼서 정말로 다행입니다.”
“네.”
“혹시 다른 것을 발견할지도 모르니 부검에는 저와 선희영 씨도 함께 들어가는 게 좋겠군요. 연금술이나 신성력이 사용됐을지도 모르고… 아무튼 모든 가능성을 열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후우… 조금 심정이 복잡하네요.”
“네?”
“같은 길드원이었던 사람을 의심해야 한다는 게 말이에요. 이상희 님도… 마찬가지시겠죠?”
아마 황정연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이설호 그 늙은이와 튜토리얼 때부터 생사고락을 함께 했다면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그럴 리가 없어.’
그렇게 자위한 시점에서부터 상황은 마무리.
의심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 찾아오는 것이다.
우습게도 가장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타인에 가까운 나.
가끔은 안에서 보는 것보다 밖에서 보는 게 훨씬 잘 보이는 법이다.
계속해서 테이블을 두드리며 머리를 굴리고 있었던 바로 그때였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십니까?”
매우 불쾌한 목소리였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보기 싫은 상판대기가 시야에 비쳤다.
“글쎄요.”
이설호와 그를 따르는 똘마니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