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
회귀자 사용설명서 105화
선동과 날조(1)
“넌 정말 너무 마음에 드는 쓰레기야.”
“…….”
계속해서 히죽거리고 있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설호와 야마토가 커넥션이 있었나 봐?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생각보다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네.”
“아직 이거다 할 정도로 확실한 건 없어, 누나. 그래도 영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는 거지. 설사 그 늙은 영감이 나를 죽이고 싶어 한들, 린델 내에 있는 길드나 집단이 누나를 무시할 수 있겠어?”
“우리 귀여운 자기, 아부 떠는 거야?”
아부 떠는 게 맞다.
“반 정도는….”
“솔직해서 좋네. 조금 더 해봐.”
“린델 내에서 누나의 눈치를 안 보는 사람은 없어. 외부의 미친놈들이 방아쇠를 당겼다고 생각하는 게 맞지. 혹여나 걸린다고 해도 이후의 일을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집단일 거라는 게 합리적인 판단,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높은 쪽을 골랐을 뿐이야.”
“이해가 되네. 야마토… 생각해 보니 그 재수 없는 년이 길드 마스터로 있는 곳이었지.”
“만난 적이 있어?”
“대형 길드의 마스터들은 정기적으로 한 번씩 모이게 되어 있어. 신성제국의 주최로 말이지. 꽤나 자주 마주쳤거든… 뭐, 아무튼 우리 자기가 그렇게 말해주면 조금은 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신성제국 내 길드들 간의 싸움은 금지되어 있는 건 알고 있지? 방법은 알아서 생각하겠다고 믿을게.”
“…….”
“이만 가봐. 자기도 바쁘니까. 우리 길드원들이 데려다 줄 거야.”
“응, 희라 누나.”
“저번에 보내준 명단은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어. 아. 그리고 정하얀은….”
“조금만 붉은용병에 맡길게.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만.”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자기. 기왕이면 조금이라도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기는 한데… 표정을 보니 그건 안 될 것 같네.”
“응.”
“그럼 나중에 또 봐. 다음에는 조금 더 로맨틱한 장소에서 만났으면 좋겠네.”
“그렇게 하자, 누나.”
손을 흔드는 차희라의 모습에 고개를 숙이며 천천히 밖으로 나가자 곧바로 이쪽으로 달려오는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붉은용병.’
아까 차희라에게 혼난 것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먼저 이쪽으로 달려들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무척이나 긴장하는 표정과 떨리는 얼굴, 잘 보이는 것은 물론 최대한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된다는 감정이 느껴져 조금은 재미있었다.
이런 강자들이 내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재미있는 이야기다.
“그… 이기영 님.”
“네.”
“길드까지 모셔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거절할 이유는 없다.
사실 이미 이 주변은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는 상태로 보였지만 혹시 나 남아 있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가능성은 낮지만.’
최대한 조심하는 것이 좋다.
박덕구와 정하얀 그리고 선희영은 붉은용병에 잠깐 이동해 있는 상태.
김현성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어쩌면 녀석은 습격자의 배후를 캐내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바쁘니까.’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기는 와중에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이 늙은이를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가장 비참하게 해치우는 방법일까.
혹은 어떻게 죽이는 것이 좋을까에 대한 이야기.
계획을 일부 수정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지만 최대한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싶은 만큼 그때의 상황에 맞춰 임기응변을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보였다.
‘동요하지 말고.’
흥분했다는 걸 보여주는 순간 싸움은 진거나 다름없다.
힘들 때 웃는 게 일류라는 명언은 개소리라고 생각했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입꼬리를 올리는 게 더 잘 어울린다.
“여기까지면 충분합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곧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혹여나 길드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요.”
“아.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아무래도 저희 길드니까요.”
슬쩍 운을 띄어 봤지만 별 다른 효과는 없는 느낌.
심지어 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적뒤적 꺼내며 공손히 건네는 모습 역시 시야에 비쳤다.
“그리고 이것을….”
“네?”
“필요하실 때 언제든지 구조 신호를 보낼 수 있도록 준비한 물건입니다.”
슬쩍 눈앞에 남자를 바라보자 무언가 엄청난 열망이 깃든 눈동자가 느껴진다.
아무래도 용병여왕에게 받은 꾸지람에 다른 마음이라도 굳게 먹은 모양. 어쩌면 나를 위한 전담팀이 구성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대해 떠올리자 조금 더 황당해지기 시작했다.
‘안전한 건 좋지만….’
이쪽이 행동하는 데 제약이 많아지면 오히려 귀찮아진다.
이 건은 이후에 차희라에게 말을 해두는 것이 좋으리라.
살짝 고개를 숙인 이후에 곧바로 길드로 진입하니 무척이나 어수선한 내부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미 상황이 끝났기 때문에 다들 방금 길드로 돌아온 듯한 눈치.
이미 린델 내에 있는 모든 상황이 완벽하게 마무리됐다는 반증이었다.
‘내가 차희라와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말이지….’
확실히 대처가 빠르다.
아마도 곧 린델의 모든 길드 마스터들이 모이는 회의 같은 게 열릴지도 모른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나 하나를 노린 테러였지만 실행된 장소가 문제였으니까.
물론 누가 그랬는지에 대한 증거를 찾기는 어렵겠지만 최소한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커지게 되리라.
이미 언론사에서는 이번 습격에 대해서 대서특필을 할 것이 분명, 지금 당장 여러 정보를 주지 못한 게 후회되지만 굳이 언론을 이용할 필요도 없다.
길드의 내부에 들어온 뒤에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몇몇 이들이 시야에 비쳤다.
우리 파티원이라고는 김예리밖에 없는 상황.
그래도 다른 이들보다는 내게 더 친근감을 느끼는 모양인지 반가운 얼굴이 감돌고 있었다.
이상희 같은 경우에도 눈이 퉁퉁 부어 있는 얼굴로 화들짝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황정연도 마찬가지였다.
“기영 씨! 어디 다치신 곳은?”
“몸은 괜찮습니다, 이상희 님.”
“정, 정말로 다행입니다. 아… 그, 하얀 씨가 다쳤다는 이야기는….”
“일단 고비는 넘겼습니다. 물론 후유증이 조금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더군요. 너무나도 정신이 없었던 터라 일단 붉은용병에게 맡겼습니다. 덕구와 희영 씨도 하얀이의 상태를 보기 위해 함께 붉은용병으로 향했습니다. 현성 씨 같은 경우에는 이제 곧 돌아오겠군요.”
“아….”
“아무래도 이곳보다는 그곳이 조금 더 안전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뼈가 있는 말.
굳이 이상희를 저격한 발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표정이 침울해진다.
물론 그런 이상희보다 더욱더 내 시선을 잡아 끈 것은 이설호와 그 똘마니들.
이설호야 무척이나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확실히 똘마니들은 표정 관리하는 것이 서툰지 왠지 모르게 불안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당연히 죽었을 거라고 생각한 놈이 멀쩡하게 살아서 돌아왔다.
어쩌면 지금쯤 자신들의 멍청했던 선택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잡아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놈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일단 이쪽이 습격당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공격의 우선권은 나한테 있다.
‘멍청한 새끼들.’
무능의 끝을 달리는 인간들.
백번 양보해서 이설호를 비롯한 똘마니들이 아무런 죄가 없다고 해도 이런 놈들과 함께할 수는 없다. 어떤 방식으로도 이들은 길드를 좀 먹는 자들이다.
살짝 입을 다물자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어오는 이설호가 다시 한번 시야에 비쳤다.
“허허허. 이것 참 정말로 불행 중 다행입니다. 정신없는 테러 속에서도 목숨을 구한 게 어디입니까.”
‘미친 늙은이.’
확실히 사람 속을 박박 긁는 재주는 있다.
“혹시라도 폭발의 여파가 몸에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검사라도 한 번 받아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기영 씨.”
“괜찮습니다.”
“참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그런 폭발에 휘말리다니요. 정체를 알 수 없는 폭도들에게 둘러싸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어찌나 가슴이 철렁하던지… 정말로 걱정했습니다. 안 그래도 많은 인원을 잃은 상황에서 파란의 새로운 인재를 잃는다는 건… 정말로 가슴 아픈 일이지요.”
진심 어린 걱정을 보내는 사람치고는 말투가 그리 진정성 있어 보이진 않다.
“최근에 악재가 겹친 것 같아 이 늙은이도 불안하기만 합니다.”
“…….”
그 와중에도 어물쩡 이 상황을 수습하려는 꼬라지가 가관이다.
어디서부터 운을 띄울까 고민하는 것도 잠시, 보는 것만으로도 욕지기가 올라오는 늙은이를 바라보며 입을 열자 입술을 꽉 깨무는 놈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단순한 폭도들이 아닙니다.”
“…….”
“아마 이후에 다들 듣게 되실 겁니다. 린델 내에서 일어난 일은 묻지마 테러가 아니었습니다. 습격 역시 폭도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잘 훈련된 암살자들이었죠. 틀림없이 저와 하얀이를 함께 노리고 있었습니다.”
“어째서….”
“아마 기영 씨가 가지고 있는 전설 등급의 아이템 때문이 아닐까 사료됩니다, 이상희 님.”
‘푸핫.’
물론 설득력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무리 주인 의식을 치룬 아이템이라고 해도 전설 등급의 아이템은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
어쩌면 주인 의식을 치르지 않았을 가능성이 대해서도 떠올려 본다면 욕심에 눈이 먼 미친놈들이 이런 짓을 벌였다고 해도 고개가 끄덕여지기는 한다.
그렇지만.
“아, 그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아….”
“제가 전설 등급의 아이템을 얻었다는 건 어디까지나 파란의 길드원들만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요. 물론 주인 의식을 치렀다는 것도 알려진 일이기도 하고요. 누가 정보를 흘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마 주인이 있는 아이템을 노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용병여왕이라는 적을 만들면서까지 말입니다.”
“정보가….”
길드 내에서만 공유해야 하는 정보가 빠져나갔다는 것에 대해 충격 받았다는 표정이 보인다.
‘순진한 아가씨야.’
파란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은 이미 예전에 깨끗했던 그곳과는 거리가 멀다.
“제가 습격당한 이유는 아마 제 호기심 때문일 겁니다.”
“네?”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굉장히 조심스럽지만 사실 저는 길드 마스터에 대한 죽음에 의문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아….”
“물론 저희 길드 마스터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는 것은 전에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 가는 것들이 있어서 말입니다.”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한 이설호의 표정이 보였다.
‘네가 아니구나.’
어쩌면 정말 이설호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습격당한 것은 어디까지나 이설호의 자존심, 혹은 길드를 일본에 팔아넘기려는 결론에 도달하려고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이설호는 우리 모두가 저주받은 신단을 클리어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하면 어차피 길드 마스터는 죽는 것이 확정된 상황. 생각해 보니 굳이 이설호가 길드 마스터를 살해할 이유가 없다는 것도 이해가 가긴 한다.
물론 일 처리를 조금 빠르게 하고 싶다거나, 개인적인 이유가 있어 살인를 저질렀을 수도 있겠지만….
‘자연사일 가능성이 커지네….’
저 표정이 연기가 아니라면 말이다. 사실 진실이 뭐든 간에 이쪽과는 하등 상관없는 이야기.
오히려 상황이 조금 재미있어졌다.
내 입장에서도 누명을 씌우는 쪽이 조금 달콤하게 느껴지니까.
“타살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길드 마스터가 숨을 거두던 그 순간에는 방에 아무도 없었고 저희가 원정을 나갔을 당시, 남아 있던 길드원은 타살에 대한 가능성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요.”
“무슨 소리를….”
개소리다.
“사실 외부에서의 적이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저희가 원정을 떠난 뒤에 일어난 일에 대한 내부 정보가 없어.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옳다고 판단했었죠.”
“…….”
“결과는 보시는 대로입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저는 몇 가지 단서를 얻을 수 있었고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와중에 습격을 받았습니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누군가로부터 말입니다.”
정말로 개소리라고 하는 편이 어울린다.
사실은 조금 더 치밀하게 접근하는 게 맞다. 만들어 놓은 증거와 물증과 심증은 많았지만 퍼즐을 맞출 시간은 확실히 부족했다.
길드 마스터의 시신을 부검하는 시간도 있어야 했고 조금 더 치밀하게 이설호를 구석으로 몰아넣었어야 했다.
그렇지만 상황이 크게 변했다.
왜?
내가 습격당했으니까.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흩어져 완성할 수 없었던 퍼즐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되는 틀을 얻을 수 있다.
살짝 코를 막는 것은 당연지사.
천천히 입을 여니 똥이라도 씹어 먹은 것 같은 이설호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아무래도 말입니다, 이상희 님. 파란에 역겨운 배신자가 있는 모양입니다. 길드 마스터를 살해한 범인이 말입니다.”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건 진실이 아니다.
‘선동과 날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