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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07화 (106/1,590)

# 107

회귀자 사용설명서 107화

나는 너를 기억할 것이다(1)

“커허어어어어억!”

“이 금수만도 못한 자식.”

“꺄아아악!”

떨어져 나간 팔을 붙잡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고 있는 이설호가 눈에 들어왔다.

길드의 안내인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비명을 지른다.

허공에 흩뿌려지는 피는 마치 거짓말 같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팔을 붙잡고 뒹굴고 있는 이설호의 모습은 꽤나 가관.

그 와중에 이상희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누가 봐도 흥분한 모습.

이상희의 캐릭터와 어울리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저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가족 혹은 연인을 죽인 살인자가 바로 눈앞에 있다. 부처라도 눈이 뒤집힐 것이다.

화가 나는 이유도 그것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녀로서도 이설호는 믿고 싶은 사람이었고 실제로도 과할 정도의 믿음을 줬었으니까.

눈에 밟히는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동안 참아왔다는 것으로 그녀가 이설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가 설명이 된다.

“하아… 하아… 하아….”

“아아아아악! 나는… 죽이지 않았다. 내가 아니란 말이다! 상희야… 삼촌의 말을 믿어다오. 내가 그런 죄를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는 건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지 않느냐… 하아… 후우….”

“웃기지마. 나는 당신을 믿었어. 그… 그 신뢰에 대한 결과가… 이거야?”

“모함이다. 모함이란 말이다….”

모함을 외치는 앵무새가 되어버린 이설호가 질질 짜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당연하지만 동정심 따위는 들지 않는다.

오히려 무척이나 행복한 기분이 든다.

모든 걸 전부 잃은 비참한 늙은이를 보고 이런 마음이 드는 게 조금 우습기는 했지만 아마 아까의 정하얀의 모습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이건 모함이다. 모함이야! 나는 죽이지 않았어! 정연아! 너도 무어라고 말 좀 해보거라! 내가 승준이를 죽일 리가 없지 않느냐….”

“그 입 다무세요. 이설호, 당신이란 인간은 정말로….”

“그게 아니다… 그게 아니야. 정연아, 나는 절대로 마스터를 죽이지 않았다.”

“쓰레기 같은 인간. 길드 마스터가 당신에게 해준 것들이 얼만데…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나요.”

“내가 죽인 게 아니야! 흐윽….”

그 와중에도 주변에 있는 다른 늙은이들이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몇몇은 이미 태세전환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지만 쓸데없는 발버둥.

“저희는 정말로 몰랐습니다.”

“관, 관련이 없는 일입니다.”

‘관련이 없기는 개뿔.’

“모두 잡아들이세요. 예외는 없습니다. 전부 감옥에 가두도록 하세요.”

“이, 이거 놔! 모두 이설호가 시켜서 한 일입니다! 이상희 님! 일본의 길드를 끌어들인 것도 모두 이설호의 생각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모르는 일입니다!”

“길드 마스터의 죽음에 대해서는 정말로 모르고 있었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제발… 모두 저 노망난 늙은이가 꾸민 일입니다!”

“제 말 안 들립니까?! 저들 전부 잡아넣도록 하세요.”

길드의 경비들이 창을 들이밀고 저항하는 늙은이들을 모두 포박하기 시작.

여기저기에서 곡소리가 울려 퍼지고 모함을 외치는 앵무새들이 중창단을 만든다.

“모함입니다! 이건 모함!”

“거짓말입니다! 이상희 님! 제발 믿어… 아악!”

심지어는 이설호를 비난하는 자들도 들고 일어나기 시작.

가장 어처구니없는 것은 저 할배들 역시 이설호가 주승준을 죽였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물론 무척이나 확고한 증거가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저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즐거워졌다.

“저희는 모르는 일입니다! 이상희 님! 이설호가 마스터를 죽일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제발….”

이상희의 표정이 착잡해진 것은 당연지사.

순식간에 파란이라는 길드가 풍비박살이 났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이 옳다.

아무리 맑은 물들을 투입한다고 한들, 이미 썩은 물들이 자리 잡은 상황에서는 정화되기 어렵다.

한꺼번에 치워버리는 게 가장 옳은 선택이리라.

당분간은 조금 혼란스러울 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법이 옳다.

나도 모르게 히죽이려는 표정을 관리하기가 어려워졌을 때 옆쪽에서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뻔할 뻔자, 이설호였다.

“저… 더러운 연금술사 놈이! 세 치 혀로 파란을 농락하려 들어!”

“파란을 농락한 건 당신이 아닙니까, 역겨운 배신자.”

“나는 죽이지 않았다! 모두 네놈의 모함이 아니더냐.”

“끝까지 변명하는 모습이 참으로 우습군요. 차라리 죄를 인정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게 지금까지 신뢰를 줬던 구성원들의 대한 예의가 아닙니까.”

“죽이지 않았….”

“모든 범죄자가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결국 자신의 입으로 자백하게 되어 있습니다. 확고한 증거가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발을 빼니 정말로 당황스럽군요. 반성이라도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참작의 여지가 있었을 텐데요.”

“상희야, 한 번만 믿어다오. 딱 한 번만 더.”

“이상희 님, 이미 많은 믿음을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모함이다. 저 더러운 연금술사는 파란에 암 같은 존재다. 저놈을 죽여야 해. 저놈을 가두는 것이 맞아! 저 쓰레기 같은 놈은 언젠가 파란을 좀 먹는 괴물이 될 거다.”

“거 참, 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봐요, 이설호 씨. 당신이 파란을 위해서 한 게 도대체 뭐기에 이렇게 집착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길드의 주인은 당신이 아닙니다. 지휘부도 모르게 타 길드와 내통을 하고, 신입 길드원을 죽이기 위해 암살자를 고용하는 것은 물론 길드 마스터를 살해하기까지 한 당신은 파란에 대해 언급할 자격도 없습니다.”

“이놈이!”

“분란을 조장하는 것은 당신들 같은 고인 물입니다. 본래 보통의 사람들은 집단에 위기가 찾아오면 함께 해결하려고 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게 맞습니다. 그렇지만 당신 같은 종류의 인간들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아요. 아니 못할 겁니다. 그 누구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가장 소중하니까요.”

예전에 금 모으기 운동을 했을 때도 상류층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내놓지 않았다는 통계가 실제로 있다.

이설호는 딱 그런 종류의 사람이다.

계속해서 이상희를 바라보며 정에 호소하고 있기는 하지만 무척이나 충격 받은 이상희는 의자에 앉아 조용히 허공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

멘탈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그녀라면 충분히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현성이가 잘 케어해 주겠지.’

최근에 항상 붙어 다니고 있는 것을 보면 곧 도착할 김현성이 이상희의 정신을 잡아줄 것이다.

이상희는 굳이 이설호를 바라보지 않았다.

아마 계속해서 바라본다면 분노를 다스리기 힘들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간에 파란을 좀먹고 있었던 구태세력은 줄줄이 엮인 소시지처럼 포박된 상태로 지하로 끌려가기 시작.

계속해서 울려오는 곡소리가 무척이나 우스웠다.

거의 모든 게 정리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당연하지만 우리 길드의 구태세력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완전히 움직일 수 없게 된 썩은 물들을 정리하니 길드가 한결 깨끗해진 느낌이다.

지하로 발걸음을 옮기자 앵무새들의 비명소리들이 들려왔다.

경비원들이 아무 힘없는 고인 물을 무력으로 다루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도 속이 시원한 장면.

물론 질질 눈물을 흘리고 있는 구태세력들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는 명장면이었다.

주위를 계속 두리번거리자 옆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기영 님. 이설호 님에 대한, 아니 저들의 처리는 어떻게….”

아무래도 이곳 지하 감옥에 간수인 모양. 여자라는 게 조금 의외이기는 했지만 능력치나 성향을 보니 감옥을 관리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부길드 마스터님께서 결단을 내리실 때까지는 일단은 저 상태로 대기시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식수와 식량은 죽지 않을 정도로만 공급하도록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잠깐만 밖으로 나가주셨으면 좋겠군요. 범죄자들에게 따로 물어볼 게 있어서 말입니다.”

“따로 심문하실 게 남아 있으십니까?”

“네. 물론입니다. 아!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입구에 대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예.”

“지하 감옥이 꽤나 넓군요. 관리를 잘하신 게 눈에 보입니다.”

“별말씀을요. 감사합니다.”

“이곳에 있는 의자 하나는 잠깐 빌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물론입니다, 이기영 님.”

황급히 이쪽에게 인사를 하고 멀찍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니 눈치도 꽤나 빠른 것이 보였다.

의자를 질질 끌고 천천히 감옥의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각자의 감옥에 처박혀 있는 늙은이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쇠창살의 안쪽에서 이쪽에 구원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꼴을 가관.

여러 가지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를 욕하는 목소리도 들렸고 혹은 아첨을 하고 있는 자도 있다.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저들에게 용무는 없다.

용무가 있는 쪽은 이설호.

의자를 놓은 이후 자리에 앉으니 팔을 잃은 채로 허망하게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이설호가 한 눈에 들어왔다.

나를 바라본 녀석의 표정에 동요의 감정이 생긴 것은 당연지사. 곧바로 쌍욕이 귓가에 내리 꽂혔다.

“이… 이 개자식! 이 개자식!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이 더러운 쓰레기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니 고맙네, 미친 영감탱이.”

천천히 마력으로 주변을 차단하기 시작. 미약한 양이지만 나와 이설호를 위한 대화의 장을 마련하기에는 충분한 마력이다.

“무슨 말을….”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건 내가 할 소리야.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독하거든. 그리고 적에게는 자비가 없고… 푸핫. 넌 나를 정말로 화나게 만들었어. 정말로….”

“뭐….”

“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할 거다. 설호야, 너는 이 길드에 아무것도 남길 수 없게 될 거야.”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

“네가 내통했던 일본의 길드가 너희를 파란의 지하 감옥에서 꺼내줄 거다.”

“뭐?”

“길드 마스터를 살해한 살인범, 부길드 마스터 이상희의 기대를 배신한 파란의 범죄자 이설호는 공식적으로는 지하 감옥을 탈출한 게 되겠지. 물론 비공식적으로는 붉은용병의 지하 고문실로 가게 될 거다. 내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사제님 한 분이 너를 직접 맡아주실 거야. 기대해도 좋아, 영감. 인간의 몸이 얼마나 신기한지 직접 느껴보는 시간이 될 테니까. 신을 위해 봉사하는 사제가 얼마나 독한지에 대해서 느끼게 되겠지.”

“이… 이 개자식! 개자식!”

“너를 비롯한 이곳에 있는 늙은이들은 전부 끔찍한 모습으로 살해된 채 어딘가에 버려지게 될 거다. 물론 이 건은 증거를 인멸하기 위한 일본 길드가 너희를 처리한 것으로 포장되겠지? 푸하핫. 언론은 파란의 배신자 이설호를 대서특필하며 여기저기에 떠들어댈 거고 린델 내에 있는 모든 인간이 술자리에서 네놈이 얼마나 쓰레기 같은 인간인지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거다. 상처 입은 파란은 너의 이름을 잊기 위해 노력할거고 불과 반년이 지나기도 전에 네 이름은 천천히 잊혀질 거야. 모두에게서.”

“…….”

“네 죽음도, 네가 지금까지 파란에 공헌한 것들도, 네가 지금까지 이룬 것들도 모두 하나씩, 하나씩… 마치 처음부터 이설호라는 인간이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야. 넌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 되는 거야.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로 죽게 되겠지.”

“너… 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영감. 나는 너를 기억할 거니까. 내가 잘 알고 있는 사제님께서 너를 친절히 돌봐주실 때 나는 그 옆에서 조용히 너를 바라볼 거다. 네가 지르는 비명소리, 고통으로 일그러진 네 표정, 살려달라고 외치는 목소리까지 나는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 속에 담을 거야. 그 모든 과정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너를 바라보고 있을 거다.”

“이노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네가! 네가!”

“난 고통으로 일그러진 네 표정을 나를 위해 죽음을 무릅쓴 소중한 내 사람을 위해 바칠 거다. 네 목소리는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을 한 늙은이의 말로가 어떤 건지 상기시켜 주는 교훈이 되어 내 머릿속에 항상 울려 퍼지겠지. 넌 내 성장을 위한 양분이 되고 나는 그 양분을 소화시키기 위해 네 모습을 끝까지 지켜볼 거다. 아무 말 하지 않고 조용히 말이야….”

“…….”

입을 다물고 있는 이설호가 시야에 비쳤다.

조용히 의자에 앉아 허리를 굽히고 이설호를 바라보자 녀석 역시 이후에 일어난 일을 상상했는지 얼굴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이보게… 기영이….”

“…….”

“우리 거래를 하는 게 어떻겠나.”

“…….”

“이건 아니지 않나…. 아무리 우리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아. 너무 불명예스러운 죽음이 아닌가. 이건 조금 아니야.”

“…….”

“이렇게 죽을 수는 없네. 이렇게는… 흐으윽… 흐어어엉….”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는 것은 이런 종류의 인간들에게는 무척이나 가슴 아픈 일이다.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지 질질 짜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쩌면 앞으로 일어날 고통스러운 시간이 무서워서 일수도 있으리라.

나는 굳이 녀석을 향해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이후에 일어날 일을 예행연습이라도 하듯 입을 다물고 녀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

아주 조용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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