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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10화 (109/1,590)

# 110

회귀자 사용설명서 110화

과거 회상(2)

“꿈이구나….”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꿈이다.

살짝 몸을 일으켜 창문을 바라보니 그때의 굉음과 빛이 생생하게 눈에 보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머리를 흔들어보지만 마찬가지.

괜스레 침을 삼켜 넘기자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현성 씨, 회의 시간입니다. 이상희 님께서 파란에 남아 있는 파티원과 간부들을 모두 소집하셨습니다.”

“아… 네. 금방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예. 30분 안으로….”

“네. 30분 안으로 가겠습니다.”

괜스레 생각이 많아졌다.

1회 차에 있었던 일에 대해 꿈을 꿀 때는 항상 비슷한 아침을 맞는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보게 되고 이곳이 어디인지에 대해 상기하게 된다.

연스럽게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하니 거울에 비친 퀭한 얼굴이 보였다.

‘최근 잠을 자지 못했으니까.’

내 외부적으로 바쁜 일이 무척이나 많다.

본래 린델 테러사건은 1회 차에는 없었던 이야기.

심지어 아직 해가 전부 지지도 않은 시간에 그런 일을 저지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안일했어.’

이설호의 성정을 조금 더 염두에 뒀어야 했다.

이기영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의뢰를 해올 줄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부분.

덕분에 파란에서 입지를 다지는 데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정하얀이 중상을 입었다는 것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뼈아픈 실책이었다.

‘그녀가 없으면 안 돼.’

그녀는 향후에 린델을, 아니, 신성제국 베니고어를 대표하는 마법사가 된다.

이후의 전쟁에서도 정하얀이 보여준 모습은 상상 이상.

실제로 그녀가 죽지 않았더라면 전쟁은 인류의 승리로 마무리되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만큼 모두의 존경을 받는 린델의 대마법사가 보여준 모습은 그 어떤 영웅의 모습보다도 압도적, 장담컨대 그녀는 이번 회 차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으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최근까지 보여주고 있었던 성장 속도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재능.’

선천적으로 마법에 대한 타고난 사람. 그녀가 보여주는 성과들이 눈에 띄면 띌수록 린델의 천재 마법사가 만들어낸 업적에 대해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1회 차의 정하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원정이나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조건으로 마도 길드의 연구원으로 입단했고, 오랜 시간 세간에 그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사실 그녀의 성품을 생각해 보면 대충 어떤 인생을 살아갔는지에 대해서는 예상이 가는 것이 당연.

내가 알지 못하는 과거의 사건의 영향으로 사람들과의 소통을 거부 하고 마탑에 틀어박힌 것이다.

아마 그녀의 일상은 무척이나 단조로웠으리라.

하루 종일 마법 공부에 매진하고 잠이 드는 시간의 연속.

외부로는 일절 나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김아영 외에는 타인과의 대화를 거부하다시피 했으니까. 아마 예상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사회성이 부족해.’

그녀는 사회성이 부족하다.

그게 정하얀의 단점이라면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 많은 모험을 감수하면서 그녀를 동료로 들인 이유였다.

성장이라는 것은 한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인물이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각자가 고통을 겪으며 성장을 이뤄냈다.

어떤 이는 동료의 죽음으로, 어떤 이는 연인의 배신으로, 어떤 이는 죽을 고비를 넘기며 기연을 얻어 각자의 역할을 다 할 수 있게 된다.

정하얀 역시 마찬가지.

그녀가 강했던 이유는 어쩌면 마탑에 틀어박혀 소통을 거부한 채 마법에 열중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정하얀을 마도길드로 보내는 게 맞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녀의 마지막을 생각해 보면 성장보다는 멘탈을 보호해 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금에서는 가장 잘했다고 여겨지는 선택 중에 하나.

정하얀은 성장하고 있다.

외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내적으로도 말이다.

‘심지어는….’

연애도 하고 있다.

1회 차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모습.

조금 과하게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흠은 분명히 있지만 그래도 정하얀과 이기영은 계속해서 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정답이다.

이기영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미래는 피해갈 수 있다.

방금 꿈에서 봤던 최악의 엔딩은 지나칠 수 있다.

만약 이쪽이 케어해 줄 수 없는 부분으로 접근해 오더라도 이기영이 사전에 차단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그는 이제껏 봐왔던 종류의 인재들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인재이면서도 무척이나 유능하다.

생각하는 바가 맞을 것이다.

여러모로 생각해 봤을 때 이기영과 정하얀에게는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맞다.

자신이 없을 때도 이런 종류의 습격에 대비해 줄 수 있는 인재가 필요했다.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던 사람은 자신의 손과 발이 되어주었던 부관 조혜진.

창 한 자루를 가지고 적군을 헤집어 적에게마저 그녀를 신창이라 불렀다.

‘아마 지금쯤 린델에 들어와 있을 지도….’

고민을 했던 것도 잠시, 서둘러 얼굴을 씻고 밖으로 나가자 발걸음을 옮기자 익숙한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드의 안내인은 고개를 숙여왔지만 무척이나 휑한 길드의 내부는 파란의 몰락을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이미 지금은 길드의 형태를 하고 있다고 하기에도 힘든 상황.

다른 길드와의 동맹은 유지되고 있지만 길드가 의뢰소는 닫혀 있었고 이미 대부분의 평길드원이 빠져나가고 있는 상태였다.

심지어는 2번 대 파티의 몇몇도 타 길드로의 이적이 정해져 있는 상황.

이대로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난다면 실제로 린델에서 파란의 이름은 사라질 수도 있으리라.

최근에는 이기영 역시 붉은용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 역시 길드를 나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는 했지만 그건 아니라고 확실할 수 있다.

그가 바라고 있는 게 뭔지 대충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해주길 바라고 있는 거겠지….’

내가 파란의 실권을 잡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유능해.’

내가 알고 있는 이기영이라면 아마도 이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부로 파란을 내버려 두고 있는 이유는 파티의 리더인 자신에게 더욱더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 분명.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이해하고 있다.

마치 이쪽의 생각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느낌. 흘러갈 상황을 미리 파악한 이후 모든 안배를 준비해 놓은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발걸음을 뗀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방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현성 님.”

“네.”

“봐주셔야 할 서류가 있습니다.”

“아… 네.”

“오늘까지 봐주셔야 할 사안들이 있습니다만… 그… 이기영 님께서도 자리에 계시지 않아서….”

“기영 씨에게는 회의가 있다는 사실을 전했습니까?”

“네. 지금 이쪽으로 오시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어제는 붉은용병 쪽에서 정하얀 님을 간호하셨다고….”

“아. 그건 저도 들었습니다. 결재가 필요한 서류는 일단은 제 방에 놔주세요. 회의가 끝난 이후에 직접 확인해 마스터께 따로 말씀을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네. 길드원 확충에 관한 공고도 오늘 올려도 되겠습니까?”

“이건 직접 말씀을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회의실로 향하는 도중에도 이쪽에 여러 가지를 물어오는 모습.

이기영이 그리고 있는 그림이 뭔지 답이 나온다.

실제로 이기영이 병간호를 핑계로 자리를 비우는 사이에 많은 이들이 나를 의지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천천히 자리를 옮기자 회의실이 눈앞에 들어 온 것은 당연지사.

문을 열자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이상희와 황정연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눈에 띄게 초췌한 모습의 이상희와 그런 이상희를 바라보고 있는 2번 대의 황정연.

예전에는 꽉 찼던 회의실에 있는 사람은 단 세 명, 처참한 모습이었다.

“아… 오셨군요.”

“네.”

“기영 씨는….”

“지금 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다행이군요.”

“오랜만에 회의를 하는 것 같습니다.”

“네. 죄송합니다. 사실 조금 더 빨리 이런 자리를 만들었어야 했었는데… 여러 가지 일이 겹쳐서 경황이 없었습니다.”

힘이 없는 눈.

그렇지만 극복해 낼 거라고 생각했다. 1회 차에서도 그녀는 아픔을 딛고 일어났으니까.

“기영 씨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미리 말씀을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일단은 계속해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 굉장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파란에 남아 있는 여러분들을 생각했더라면 조금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습니다. 제가 없는 동안에도 길드의 버팀목이 되어주신 두 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 사실 쉬는 동안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파란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여러분과 파티원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길드를 해체시키고 여러분들을 타 길드로 보내 드리는 것이 여러분을 위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아니, 그게 맞는 방법일 겁니다.”

“…….”

“그렇지만 차마 아저씨… 아니, 마스터가 세운 이곳을 제 손으로 해체할 순 없었습니다. 두 분께 너무나도 죄송한 말씀이지만 부디, 이 길드에 남아주셨으면 합니다.”

“물론입니다.”

“네… 마스터와….”

“이제는 마스터가 아닙니다. 정연 씨. 저는 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맞습니다.”

“네?”

“저주받은 신단에서도 여러분들을 위험하게 만든 것은 물론, 마스터가 일어나 계실 때도 심지어 병상에 누워계실 때에도 단순히 직함만 달고 있었습니다. 이설호가 일본과 내통하는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들을 의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정 때문에 그들을 쳐내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위에 있는 사람으로 어울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 역시 기영 씨가 말했던 무능한 사람이란 범주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약 제가 다시 파란의 실권을 잡는다고 한들 이전과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을 겁니다. 제가 물러나는 것이 맞습니다. 힘드시겠지만….”

“저, 저는….”

뜻밖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조금은 예상할 수 있었던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제대로 말은 끝내지 않았지만 이미 황정연은 거절의 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이상희의 표정 역시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기영이었다면 이런 타이밍에 입을 열었으리라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

조금은 조심스럽지만 확고하게 입을 여는 게 좋을 수도 있으리라.

“정연 씨께서 별로 내키지 않으신다면….”

“네.”

“임시로나마 제가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 더 신뢰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아….”

“물론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일처리를 혼자 하는 것은 저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만… 두 분께서 제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게 도움을 주신다면 이전의 모습을 되찾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아….”

“아직 파란에 남아 있는 인재가 많으니까요.”

동시에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기영입니다.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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