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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11화 (110/1,590)

# 111

회귀자 사용설명서 111화

어서 일해라!(1)

“이기영 님, 여기 계셨군요.”

“아. 분명히….”

“평길드원 박중기입니다.”

“아아아아… 중기 씨, 네. 기억이 납니다. 무슨 일입니까?”

“길드 마스터께서 간부님들을 소집하셨습니다.”

“그렇군요. 일단 먼저 돌아가서 제가 가고 있다고 전해드릴 수 있도록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평길드원 치고는 민첩 수치가 높은지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저러니 전령 역할을 하는 것이 분명.

내가 가지고 있는 특성으로 한번 훑어보기가 무섭게 녀석의 정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민첩 능력치 영웅 이하….’

“나쁘지는 않네.”

“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희영 씨.”

“혹시 지금 들어가 보셔야 되는 건가요? 회의가 있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조금 천천히 들어가도 될 것 같습니다.”

“아아… 다행이네요. 그럼 커피도 한 잔 마시는 게 어떠세요?”

“그럼 가까운 카페에 들리도록 하죠.”

뭔가 일반적인 데이트 코스를 밟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굳이 헐레벌떡 뛰어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대충 무슨 일인지 예상이 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잠수를 타고 있었던 이상희가 드디어 마음을 굳힌 것.

아마 간부들을 모이라고 한 이유도 앞으로 파란의 미래나 공석이 된 길드 마스터의 자리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싶어서일 거다.

계속해서 한계를 느끼고 있었을 테니 아마 어느 쪽이든 결단을 내리는 것이 맞다.

이상희는 지도자로서 무능하다.

그 사실을 본인이 가장 잘 깨닫고 있을 것이다.

아마 내가 길드에 자리를 비운 동안 그 사실을 더욱더 실감하고 느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모든 행정팀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 자체가 일반적으로 일어나기 힘든 상황이다.

대놓고 이야기하자면 이미 무너진 길드가 박살이 나 지하로 가라앉고 있었던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멘탈이 반쯤 나간 이상희가 어떻게 수습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김현성이야 어느 정도 제정신을 유지하고 일어날 일에 대비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아마 녀석의 계획에는 보이지 않은 구멍이 송송 뚫려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회귀 전에도 칼밥만 먹고 살았을 테니 익숙하지 않은 게 당연. 그렇지만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다.

‘어차피 결과는 이후에 내가 만들면 되니까.’

파란이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김현성이 뭔가를 한다는 상황 그 자체가 중요했다.

무력과 지력을 모두 갖추고 있는 유능한 지도자, 우리들의 김현성.

내가 잠깐 길드를 비운 사이 내부의 인원들이 모두 김현성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리라.

‘일을 던져 놓은 건 미안하긴 하지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별말 안 하는 거고.’

적당히 자리를 옮겨 손 안에 있는 것을 살짝 들이켜며 선희영과 대화를 나누자 시간이 조금 흐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선희영과의 대화는 조금 재미있다. 내가 알고 있는 여자들 중 말이 가장 잘 통하는 상대를 꼽아 보아보라면 1위는 당연히 이지혜겠지만 선희영 역시 나와 잘 맞는 부분이 어느 정도 있다.

차희라처럼 뇌를 거치지 않고 말하는 스타일보다는 훨씬 낫다는 거다.

“슬슬 일어나야겠군요.”

“아. 조금은 아쉽네요. 정말 오랜만에 여유를 가진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희영 씨. 뭐, 앞으로 종종 쉬러 나오죠.”

“가끔 어울려 주시는 건가요?”

“네. 물론입니다.”

전형적인 서비스 멘트를 날린 이후에야 천천히 길을 걷기 시작.

사실 선희영과 함께 있는 와중에도 머릿속은 김현성이 잘해내고 있을까에 대한 걱정밖에 없다.

적당한 예인지는 모르겠지만 집안일에는 관심도 없었던 바깥사람에게 장을 보러오라는 심부름을 시킨 것 같은 느낌.

티가 안 나게 도와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도 잠깐해 보긴 했지만 김현성이라면 아마 잘해냈을 거라 믿는다.

‘잘했겠지.’

김현성은 바보가 아니다. 자신이 챙겨 먹을 수 있는 건 제대로 챙겨먹었으리라.

“그럼 회의 잘 마치고 저녁에 봐요.”

“네. 그렇게 하죠.”

조금은 느릿하게 걸었는데도 불구하고 길드에 도착한 것은 순식간.

아마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조금 빨라진 것 같았다.

녀석이 일을 잘 처리했을지 걱정됐기 때문이다.

선희영과 대충 인사를 마치고 난 이후에는 곧바로 길드 회의실로 향한 것은 당연지사.

대충 문을 두드린 이후에는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세 명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이기영입니다.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네.”

조금은 찹찹한 표정의 이상희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황정연, 그리고 이쪽을 바라보며 살짝 미소를 보내고 있는 김현성.

일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것을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좋아.’

“늦어서 죄송합니다. 중간에 약간 사고가 있어서….”

“아뇨. 괜찮습니다. 모임이 조금 갑작스러웠으니까요.”

“혹시 무슨 일로….”

대답을 한 것은 김현성이었다.

“이후의 파란이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상희 님께서 일선에서 물러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셔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아….”

‘좋네.’

“부족하지만 당분간은 제가 길드를 맡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상희 님께서 고문으로서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시는 입장에 서게 되실 겁니다.”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여진다.

‘나쁘지 않아.’

이상희를 고문으로 둔 것도 탁월한 선택이다. 이상희는 지도자로서 아쉬울 뿐, 그것이 그녀가 무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다른 부분에서는 너무 과하게 유능해 보이는 것이 문제.

아마 이상희라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유능함이 지도자로서의 무능함을 감추고 있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권력 이동에 혼란스러워할 평길드원이나 주변의 시선도 충분히 신경 쓴 것 같았다.

어차피 이상희는 성향상 많이 개입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

이런 인재를 썩힌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훌훌 털고 일어나서 빨리 일해야지. 우리 상희도.’

내 생각보다 김현성이 넙죽 잘 주워 먹은 것 같은 느낌.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어려운 선택을 하셨군요. 이상희 님께서도….”

“아닙니다, 기영 씨. 그동안 맞지 않고 있던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오히려 훌훌 털어버린 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그럼 이만 나가 볼까요?”

“네?”

“다른 길드원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하니까요. 중기 씨, 길드원들은….”

“미리 말씀하신 대로 모두 한곳에 있습니다.”

“그럼 바로 향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말을 해놓은 걸로 봐서는 준비를 해도 단단히 한 것 같은 느낌.

정말로 자신이 자리 잡고 있던 감투가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괜스레 입꼬리가 올라간 것은 당연지사.

계속해서 이상희와 대화를 나누는 김현성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지금의 발표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묻고 있는 것 같았다.

살짝 강당의 안을 바라보자 꽤나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조금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박덕구와 김예리 그리고 선희영 역시 가장 앞줄에 앉아 있다.

오늘의 나는 단상에 올라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차피 길드원들에게 인수인계가 되었다는 것만 말하는 것이 주목적 일 테니까.

“형님.”

“잘 지냈어?”

“거, 요즘 너무 바쁘신 거 아니요?”

“여러 가지 일이 있었으니까. 이제 조금 같이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 질 거다. 길드를 복구 하는 시간이 흐르고 나면 좀 더 여유로워지겠지.”

“빨리 그날이 오면 좋겠는데… 그것보다 거, 누님은 조금 괜찮소?”

“응. 어제는 잠꼬대까지 하던데, 뭐.”

“다행이구만.”

“희영 씨도 곧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말했으니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그것보다는 오늘 들려온 뉴스에 집중해.”

“안 그래도 전부 다 모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는데… 뭐 재미있는 뉴스라도 있는 거요?”

“직접 보면 알아.”

재미있는 정도가 아니다.

그동안 이곳에서 고생했던 보상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시간이 될 테니까.

이윽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이후에 단상 위에 이상희와 김현성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대충 인수인계를 하고 던지듯 자리를 물려줘도 별 상관은 없었을 것이다.

굳이 이런 자리를 만든 것은 이상희가 제대로 마무리를 하고 싶다는 반증이다.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자 오랜만에 듣는 차분한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오늘 여러분들을 이렇게 불러 모은 것은 앞으로 파란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지금 저희가 처해 있는 상황을 조금 더 효과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함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그동안 무거운 짐으로 느껴졌던 직책을 내려놓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조금 담담하게 보였다.

그렇지만 이곳에 앉아 있는 관중들도 담담해질 수는 없는 이야기.

파란의 초창기 멤버였던 그녀가 파란을 떠난다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불안해하는 듯한 목소리들이나 탄식 소리가 울려 퍼졌다.

“파란의 새로운 길드 마스터는 7번 대의 파티장이었던 김현성 씨가 어울린다고 판단, 저를 비롯한 파란의 지도부들 역시 전원 동의한 사항입니다. 혼란스러운 시기이라는 것을 이해합니다. 이렇게 여러분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 역시 전 지도부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부디 이 위기를 함께 해쳐나가 주셨으면 합니다.”

작은 박수소리가 울려 퍼진다.

좋은 연설이었다.

짧고 강렬했다.

굳이 온갖 미사여구를 붙이지 않은 것은 김현성에게 조금 더 시간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이상희가 슬그머니 자리를 비키자 살짝 몸을 일으켜 곧바로 단상으로 향하는 녀석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당연하지만 단상 위에 올라간 김현성은 그다지 긴장하거나 어색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무척이나 익숙한 듯한 모습.

‘아마….’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자리에 오른 적이 분명히 있었으리라.

“과분한 자리에 앉게 되어 영광입니다. 여러분이 우려를 표하시는 것처럼 이상희 님께서 갑작스럽게 자리에서 내려오신 것은 아닙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이런 생각을 많이 해오셨고 저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아직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파란의 창단 멤버셨던 이상희 님께서는 길드의 고문으로서 계속해서 길드에 남아 있으실 겁니다.”

‘좋아. 우리 현성이 아주 좋아.’

“파란은 커다란 아픔을 겪었습니다. 아마 지금 이 자리에 계신 평길드원 여러분이나 길드에 소속된 직원 여러분들께서도 오랜 시간 파란과 함께하셨을 겁니다. 그만큼 얼마 전에 있었던 사건에 동요하시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꽤나 장하다.

“새롭게 시작한다고 생각합시다.”

아니 무척 장하다.

“아무것도 없었던 허허벌판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합시다. 파란은 변화할 겁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될 거라고 말씀드립니다. 갑작스럽지만 인사와 향후 발전에 대한 계획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설마 이것까지 준비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슬쩍 시선을 돌려 이상희를 보니 본래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

둘이 언제 대화를 나눴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조금 이르다면 이르다고 할 수 있는 타이밍인 것은 확실했다.

사람들은 변화에 익숙하지 않다.

어쩌면 반발이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저들의 반발이 크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초창기에는 조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김현성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 천천히 열리는 녀석의 입을 바라보니 괜스레 가슴이 콩닥거렸다.

솔직히 기대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김현성이 내게 한자리 단단히 챙겨주는 것은 당연히 기대해 볼 만한 사실.

지금까지 내가 파티와 파란의 기여한 걸 생각하면 아마 꿀이 단지 째로 떨어지는 자리로 나를 안내해 줄 것이다.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본 것도 잠시 이윽고 김현성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일단 부길드 마스터에 이기영 씨를 임명합니다.”

‘사랑한다! 현성아!’

눈이 번쩍 띄어졌다.

기다렸던 것이 바로 이거다.

아니, 솔직히 이 정도까지 해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김현성 왕국의 2인자.’

나를 소중히 생각하고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김현성은 나를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당연하리라.

일어나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 이윽고 들려온 목소리도 나를 기분 좋게 한다.

“길드의 총무 역시 임시로 이기영 씨를 임명합니다.”

길드의 자금줄을 잡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많은 실권을 주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부길마뿐만이 아니라 총무까지.

조금 바빠지기야 하겠지만 이정도 업무는 충분히 감당해 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인원 충원을 위해 임시로 인사위원회를 꾸린 이후에 그곳의 위원장으로서 이기영 씨가 수고해 주실 예정입니다.”

이것도 좋다.

내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뽑을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이점이 있다.

“던전 공략 전략팀을 새롭게 신설해 임시로 이기영 씨가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건 시간이 조금 지난 이후.

“길드 미래 전략 본부와 피해 대책 위원회를 설립, 이기영 씨께서 초대 위원장으로 당분간 수고해 주실 예정입니다.”

‘잠깐.’

“전반적인 행정 업무를 아우를 수 있는 행정수석의 자리에 임시로 이기영 씨를 임명합니다. 상황이 안정화될 때까지 계속해서 수고해 주실 예정입니다.”

‘그만.’

“연금 전략 기획실을 만들어 그곳을 관리하는 실장직에 이기영 씨를 임명합니다.”

‘그만해.’

“홍보 전략팀을 신설, 이기영 씨가 임시로 길드의 홍보를 담당해 주실 예정입니다.”

‘제발 그만하라고, 이 새끼야!’

김현성의 입에서 계속해서 내 이름이 튀어나오고 있다는 것이 문제.

물론 내 이름 말고도 황정연이나 선희영의 이름 역시 중간 중간 튀어나오기는 했지만 그 와중에도 이해가 되지 않는 별 이상한 직책에 계속해서 내 이름이 언급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하던 이들도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

이쯤 되면 김현성이 내게 역을 먹이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으니 다른 말은 필요 없으리라.

“임시 위원장으로 이기영 씨를 임명합니다.”

‘알겠으니까 그만하라고….’

소리 없는 아우성.

녀석이 최초로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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