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
회귀자 사용설명서 114화
어서 일해라!(4)
린델이 시끄러워질 정도였다.
혁신, 혁신 하고 외친 보람이 있다.
아마 이들에게도 현재의 파란의 시스템이 익숙할 것이다.
수많은 복지와 직원들의 편의를 생각한 꿈같은 회사.
지구에 있는 인간들 역시 머릿속으로는 그런 꿈같은 회사를 그린다.
물론 당연한 것들이 어떤 곳에서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지만 말이다.
경영학을 공부하고 창업을 하는 이 땅의 수많은 전문경영인 역시 어떤 기업에 인재들이 몰려오는지 알고 있다.
그렇지만 단순히 알고 있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천지차이.
최소한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방법을 실행하지 않는다.
개인의 욕심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노예들을 혹사시켜도 그 다음 노예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현실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회사의 내부적인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자본이 부족할 수도 있고 위태로운 회사의 상황 때문에 복지 자체가 힘들 수도 있다.
똑똑한 양반이 널려 있는 지구에서도 이 정도로 직원들에게 신경 써주는 기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나 위험이라는 특수성을 떠안고 있는 린델의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다.
붉은용병이나 검은백조 같은 대형 길드 같은 경우에는 사정이 좋긴 하지만 나머지 중소 클랜의 경우에는 그야말로 지옥 같은 것이 현실.
애초에 내가 한 행동도 혁신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인턴을 부린다는 것 자체가 그다지 좋지는 않으니까.
그렇지만 정당한 보상이 있기 때문에 이들이 더 필사적으로 일할 수 있다.
‘정직원만 된다면.’
그런 생각이 노예들의 가열로에 석탄을 집어넣게 한다.
굳이 설명하자면 애초에 혁신이란 단어도 프레임 씌우기와 말장난에 불과하다.
한번 심어진 이미지는 고착화되어 자리 잡고 앞으로 파란에게 변화가 생길 때마다 우리의 추종자들이 혁신을 외치는 앵무새로 변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건 이미지야.’
언론과 여론을 통한 프레임 씌우기가 집단의 모든 걸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으로 툭툭 책상을 치고 있을 때 옆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합격자가 꽤 됩니다.”
“시간이 조금 걸리겠군요.”
“네. 1차 시험으로 이미 한 차례 걸렀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습니다. 생각보다 능력 있는 지원자가 많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역시 부길드 마스터는 따로….”
“아뇨. 전부 직접 보겠습니다.”
상태창을 볼 수 있으니 이렇게 하는 편이 옳다.
“조금 무리하는 게 아니신지 걱정됩니다.”
“아닙니다. 길드의 일꾼이 되실 분들인데 직접 얼굴을 보는 게 맞습니다.”
“역시….”
“어차피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을 테니까요.”
인재를 솎아내는 방법은 간단.
아쉽지만 어중이떠중이들을 걸러내는 것은 시험보다 더 효과적인 것이 없다.
제국법에 관련된 시험이나 세금관리에 대한 문제들을 출제, 연금 기획실에 지원한 이들은 연금술에 대한 시험을 내는 것이 가장 좋다고 판단을 내렸고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단순히 소문만 듣고 몰려온 이들을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아쉬운 것은 순간의 실수 때문에 탈락하고만 인재이지만 현재는 이런 이들까지 품을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일단 곧바로 전력으로 써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더 중요하다.
“면접 지원자들은 전부 모였습니까?”
“네.”
“한 명씩 들여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면접은 저 혼자 진행합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자리에 슬쩍 몸을 앉히기가 무섭게 긴장한 표정의 남자가 방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똥이라도 마려운 표정.
아마 내가 직접 면접을 볼 줄은 몰랐던 모양인 것 같았다. 도시 내의 권력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과의 면접이라니 저런 얼굴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살짝 웃으며 저들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은 순식간. 능력치는 전체적으로 낮고 성향은….
‘나태한 이기주의자.’
이런 사람들을 골라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희영에게 걸리면 뼈도 추리지 못할 이런 놈들 말이다.
앞에 놓인 서류를 보니 이력은 그다지 나쁘게 보이지는 않지만 이런 놈들이 길드의 종양이 되는 거다.
파란에 다시 한번 미친 늙은이들을 부활시킬 이유가 없는 것이 당연.
아마 1년 뒤 정직원이 돼서 복지효과를 누리고 싶은 이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다.
“아. 김철수 씨?”
“네. 안녕하십니까.”
“아. 자기소개 하실 필요 없습니다. 기존의 면접과는 조금 다를 테니까요. 위기 대책 대응팀에 지원해 주셨는데….”
“네. 그렇습니다. 들어보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수호의 나무 클랜에서 잠깐 동안 팀장을 역임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아. 그렇군요. 들어본 적 있습니다. 인상적이군요.”
수호의 나무는 개뿔.
들어본 적도 없다.
아마 어처구니없게 사라져 버린 그저 그런 길드 중에 하나이리라.
두 눈으로는 열의를 불태워 오고 있기는 하지만 성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슬쩍 녀석을 바라보며 입을 열자 조금은 당황스러워하는 놈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간단한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네.”
“린델 전역을 덮친 재난 발생시 피난 대책을 설계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지금 말씀이십니까?”
“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린델의 인구를 전원 대피시켜야 합니다. 당신이라면 이 인원들을 어떻게 대피시키겠습니까.”
“아… 저… 일단은 마법을 사용하는 게 가장 올바른 방법이라고 판단해서….”
뭐라고 횡설수설 말하고는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대답과는 거리가 멀다.
‘멍청한 놈.’
어떤 종류의 위험으로부터 대피시켜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꼴은 가관.
성향 때문에 이미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고 있기는 했지만 솔직히 눈앞에 있는 지원자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린델의 3번 성문은….”
“네. 잘 알겠습니다. 만족스러운 면접이었습니다. 이만 나가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합격 여부는 이후 통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인상적이더군요. 수고하셨습니다.”
“아! 감, 감사합니다.”
정말로 적임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저 친구는 1년만 써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정답을 말했다고 생각했는지 입꼬리가 올라간 녀석이 나간 이후에는 바로 다음 사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제법 말끔해 보이는 여자. 그렇지만 몸 곳곳에서 고생한 흔적들이 느껴졌다.
‘나이도 있어 보이고….’
슬그머니 상태창을 열어보자 그녀의 정보가 시야에 비치기 시작했다.
‘이름 김미영, 39살, 성향은 노력하는 변호인.’
지력이 생각보다 괜찮고 심지어는 마력 능력치도 삼십이다.
이력은 꽤나 특이해 보인다.
중견 길드에서 일하는 도중 30살에 퇴직, 결혼한 이후에는 광장에 작은 잡화점을 열었고… 이후에 대해서는 제대로 기술되어 있지 않다.
대충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보이는 것 같은 느낌.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김미영 씨.”
“아… 네.”
“제국 법무팀에 지원해 주셨군요.”
“네.”
“이력이 조금 특이한데 있는 그대로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결혼도 하셨는데… 휴식기간이 조금 긴 것 같습니다. 5년을 쉬셨군요.”
“아… 네.”
표정이 금방 어두워지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부담스러울 것이다.
슬쩍 이쪽에서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남편 분은….”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군요. 유감입니다. 혹시 자녀분를 두셨습니까?”
“두 명입니다. 그렇지만 업무에는 지장이 생기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전에 있던 길드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셨나 보군요.”
“…….”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머릿속으로 그려진다.
아마 길드에서 일하던 도중 남편을 만나고 결혼에 골인하고 거의 동시에 임신한 것이 분명.
여러 가지 압박을 받은 이후 길드에 나온 다음에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그 사업마저 여의치 않게 되자 남편이 사냥을 나가게 됐을 것이다.
병에 걸려서 죽었는지 아니면 몬스터와 싸우다 큰 상처를 입어 죽었는지는 내 알 바 없지만 아무튼 간에 죽은 남편 때문에 생계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
당장 육아 때문에 다른 길드나 클랜에 취업할 수 없었고 그렇게 휴식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길드에서 기피하는 대상이 된 것.
그동안 어떻게 아이를 키워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절대로 쉬운 일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심한 경우 팔아야 하지 말 것을 팔았을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어딘가에 일용직에 몸을 담으며 상상하기 힘든 시간을 보냈으리라.
“휴식기간 동안에는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활동을 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건 거짓말.
“그렇군요.”
그렇지만 내가 저런 거짓말에 신경 쓸 이유는 없다.
이 여자는 내가 마음속으로 그리고 그려왔던 최고의 인재상이었으니까.
‘아주 좋아.’
아이가 있다는 게 흠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지만 다시 말하면 애들 쪽만 어떻게 해주면 길드를 위해 충성을 다할 노예로 변모한다는 소리가 된다.
똘똘한 그녀의 자식도 우리 길드의 일꾼이 되어줄 터.
휴식기간이 길다는 흠이야 일하다 보면 적응할 문제고 무엇보다 성향이 마음에 든다.
‘노력이라는 건 좋은 거니까.’
어머니는 강하다.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말이다.
“본인이 현역으로 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네. 물론입니다. 쉬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공부했고 제국법 1급 자격증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물론, 갱신해야 되긴 하지만… 필요한 업무를 처리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겁니다.”
“현재 저희 길드의 상황이 어떤지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네.”
“어째서 파란의 제국 법무팀으로 지원해 주셨는지 들어보고 싶군요.”
짧은 침묵 뒤에 천천히 입을 열고 있는 그녀가 시야에 비쳤다.
“제국법에 능통하신 이들을 필요로 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국법상으로도 다른 자유 도시와의 분쟁은 허용되지 않은 상태에서 최근 파란 길드가 겪었던 사건을 생각해 보면 일본 쪽에 정식으로 항의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파란 길드가 증거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 말입니다.”
“그렇군요. 만약 증거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법에 위배되지 않은 방향으로 압박을 넣을 방법을 생각하실 수도 있으실 겁니다. 현대의 법에도 허점이 있는 만큼 제국법에도 분명히 허점은 존재합니다.”
“방법은 있습니까?”
고개를 살짝 끄덕이지만 대답은 하지 않는다.
아마 더 듣고 싶으면 자신을 고용해 달라는 완곡한 표현일 터.
조금 마음에 든다.
“그렇군요. 음… 흥미롭습니다. 아니, 좋아요. 무척 좋습니다.”
“…….”
“함께 일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네?”
“당신을 고용한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1년간은 무급으로 일하셔야 될 겁니다. 물론 급여를 아예 안 드린다는 건 아닙니다. 미영 씨 같은 경우에는 조금 특별한 경우라고 하는 게 맞겠군요. 기본적인 생활비 같은 경우에는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이후에는 연봉 협상을 다시 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아! 그리고 미영 씨만 괜찮으시다면 법무팀의 팀장직을 맡기고 싶습니다만… 물론 인턴 기간 동안 성과가 있어야 가능할 겁니다.”
“네?”
“아이들은 길드 내 시설에 맡기고 출근하시면 됩니다. 현재 사시는 곳이 어딥니까?”
“그게… 저 외곽 쪽에….”
아무래도 빈민촌에서 살고 있는 모양. 문제될 것은 없다. 갈 곳이 없다는 건 더욱더 좋다.
“길드 하우스에서 거주하시는 게 좋겠군요. 아이들과 함께 거주하실 방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아….”
앉아 있는 테이블에 밑을 뒤적여 곧바로 근로계약서를 던지자 얼떨떨한 눈으로 계약서를 바라보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아마 나보다는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분야에 정통한 건 내가 아니라 그녀였으니까.
“읽어보시고 사인하시면 됩니다.”
“네… 네.”
무척이나 천천히 계약서를 살펴보는 그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뭔가 의심하는 듯한 표정이 환희로 바뀌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마 바빠질 겁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자녀분들을 며칠 동안은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길드에서 필요한 건 전부 준비해 드립니다. 교육부터 향후 진로까지 말입니다. 성과를 내주시면 제국의 수도로 유학을 보내드릴 의향도 있습니다. 물론 자녀분들도 파란에 입단한다는 전제하에 드리는 지원입니다.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을 겁니다. 김미영 씨.”
“네… 아… 네!”
“혹시 모험가로서의 교육을 원하신다면 길드에서는 간단한 검술 클래스와 마법 클래스도 지원하고 있으니 자녀분뿐만이 아니라 미영 씨도 함께 참여하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가, 감사합니다.”
사인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빈민촌에서 사는 것보다는 이곳에서 지내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다.
아니, 그녀의 자녀들을 생각해 보면 무조건 계약서에 사인하는 것이 맞다.
언제 정체모를 봉사자가 들이닥칠지 모르는 빈민촌에서 사는 것보다는 안락한 파란의 품이 더 좋을 것이다.
밍숭맹숭한 표정으로 그녀가 근로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것은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 것이 당연.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저 그럼 출근은….”
“지금부터.”
“네?”
“길드 로비에서 박덕구라는 사람을 찾은 이후에 자녀분들과 함께 길드 하우스로 오시면 됩니다. 짐을 정리하고 사무실로 올라간 이후에는 지금 들고 계신 근로계약서를 다시 작성해 주면 됩니다. 제가 법 쪽에 조금 무지합니다. 예전에 있던 걸 참고해서 만들어봤는데 아무래도 이상해 보여서 말입니다.”
“아….”
“퇴근 전까지 일을 끝낸 뒤에 제출하도록 해주세요, 미영 씨.”
혹시 자신이 실수한 것은 아닌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김미영의 얼굴이 보였지만 그녀에게 선택지는 없다.
희미하게 기뻐 보이는 얼굴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으리라.
“네!”
본디 일꾼을 부릴 때는 본인이 노예라는 자각을 하지 못하게 부리는 게 가장 이상적.
비장한 표정마저 감도는 김미영의 얼굴을 보니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같이 갈리자.’
“납득할 만한 성과가 있으면 1년을 채우지 않고도 정규직으로 전환해 드립니다. 납득할 만한 성과여야 합니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