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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15화 (114/1,590)

# 115

회귀자 사용설명서 115화

어서 일해라!(5)

면접은 무척이나 원활하게 진행됐고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내 생각보다 우리 김미영 팀장 같은 인재가 많았다는 것은 조금 의외였던 부분.

당연하지만 그들을 기피할 이유가 없었다.

절박한 노예들이 일을 더 잘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애초에 떨어뜨리기 위해 괴상한 질문을 던진 이들 중 몇몇은 무척 억울하다는 반응.

나조차도 정답이라고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질문을 던졌으니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파란의 길드원 전원이 물에 빠졌다. 당신이라면 누구를 구하겠는가와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라.’

‘린델에 있는 모든 길드의 청소를 의뢰받은 당신, 얼마를 청구해야 적절한 금액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동료들과 함께 던전 탐험을 나섰다. 무조건 한 명이 탐험 중에 죽을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당신은 이 던전 공략에 임하겠는가, 임하지 않겠는가.’

‘당신의 5살 난 자녀에게 연금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한다면 뭐라고 설명하겠는가.’

같은 종류의 질문이었다.

다분히 혁신적인 이미지를 노린 어처구니없는 질문이었다.

어차피 떨어뜨릴 놈들에게만 한 질문이니 별로 상관은 없었지만 실제로 이 대답에 나름 괜찮은 해답을 보여 마음을 바꾸게 한 지원자도 있었다.

물론 지구에 있는 유명한 기업들의 면접 질문을 참고한 것뿐이었지만 효과는 나름 괜찮았다.

‘역시 파란!’

이라는 반응이 터져 나온 것이다. 망해가는 주제에 지들이 뭔데 혁신 기업 흉내를 내느냐는 비판적인 여론도 있기는 했지만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꿈의 직장의 이미지는 그런 논란을 잠재우는 데 일조했다.

아마 면접 이후에 시작되고 있는 후처리가 꽤나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최종 탈락자들 같은 경우에는 따로 면담을 진행하도록 해주세요.”

“어떤?”

“어째서 본인이 떨어졌는지에 대해 궁금해할 겁니다. 이력서 대충 보시고 대충 대답해 주시면 됩니다. 아. 귀하의 지원에 감사드리며 어쩌구 하는 서신도 하나 넣어서 보내주세요. 아마 큰 힘이 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좋습니다.”

탈락자들까지 케어하는 아름다운 길드. 탈락한 이유조차 모른 채 집으로 쓸쓸히 돌아가야 했던 타 길드와는 다분히 다른 행보였다.

물론 나의 영원한 친구 언론인들을 이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째서 파란은 다른가?]

라는 타이틀로 인터뷰 형식의 기사를 내보냈고 내가 당황스러울 정도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혁신 추종자와 혁신 앵무새들이 슬그머니 날개를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하지만 비전투직군 면접 이후에 있을 전투직군에게 잘 보이기 위한 이미지 관리에 불과했다.

이쯤 되니 사건이 터진 이후에 파란을 매정하게 버렸던 잠재적 배신자 여러분들도 다시금 연락을 해오기 시작.

물론 그들의 재입단은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었다.

‘철새는 필요 없지.’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놈들과 함께 일할 바에야 사랑스러운 일꾼들 몇몇을 뽑는 게 더 좋다.

새롭게 합류한 노예들은 파란이 썩 마음에 드는 모양.

물론 바쁘기는 했지만 이들은 길드의 편의시설에 즐거워했고 미친 듯이 일에 몰두했다.

성과를 내면 보상을 받는다.

이 간단한 논리는 김미영을 비롯한 다른 이들의 분화구에 기름을 집어넣은 격.

적응을 거친 이후 기존에 자리해 있던 직원들을 위협할 정도로 몰두하니 묘한 경쟁심이 형성돼 시너지 효과까지 일으키고 있었다.

모든 것이 원활해지고 있는 상태.

그럼에도 불구하고….

‘뒈질 것 같다.’

내가 바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루 일과는 간단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는 정하얀의 병문안을 핑계로 슬쩍 그녀의 병실에서 눈을 붙인다.

이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몸을 가눌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정하얀의 바로 옆자리에 누워 잠을 잔 적이 있을 정도로 궁지에 몰린 상황.

정하얀이 만약에 깨어 있었다면 오히려 좋아했을 거라는 생각으로 자위할 수밖에 없었지만 일어난 이후에는 왠지 모를 자괴감까지 느낄 수 있었다.

잠깐의 휴식시간을 보낸 이후에는 공방으로 들어가 곧 상품으로 출원할 환상물약에 대해 연구하는 시간을 가진다.

새로 뽑은 연금술 기획팀이 무척이나 수고해 주고 있기는 하지만 애초에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보니 내 부담은 줄어든다고 하기에는 힘든 부분.

아직 2차 전직에 머물러 있는 이들은 연구원들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그 이후에는 회의를 진행, 길드에 대소사를 정리하고 디테일한 업무지시를 내린다.

황정연에게는 특히 일을 조금 더 주고 김현성을 원망하는 시간을 가진다.

다음에는 조금 유동적으로 홍보 전략, 미래 기획, 제국 법무의 일을 번갈아 하는 것은 물론 전투직군의 인사 기획까지 마무리한다.

아직까지 인턴들이 할 수 없는 일을 내 선에서 최대한 마무리하는 것이다.

물론 원망스러운 김현성의 결재가 필요한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도 빼 놓을 수는 없다.

“김현성… 나쁜 새끼….”

나도 모르게 다른 생각을 하며 중얼거리자 옆쪽에서 곧바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미영 씨. 최근 잘해주시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부길드 마스터.”

“자녀분들은 좀 어떻습니까?”

“덕, 덕분에 무척이나 즐거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뭐,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나야말로 더 고맙지.’

아이를 맡아주는 것 정도로 이런 인력을 부릴 수 있다는 건 무척이나 아름다운 사실이다.

내가 뽑은 인원들 중에서도 김미영은 사실상 에이스.

면접 당시에는 그냥 한 번 던져본 것뿐이었지만 1년 뒤에는 김미영이 정말 김미영 팀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아뇨. 오히려 저희 길드로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네. 일단은 여기….”

“아.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은 이만 퇴근하도록 하세요.”

“그렇지만 수정 사항은….”

“저도 지금 마스터에게 결재를 받으러 가야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습니까.”

“아. 감사합니다.”

툭툭 어깨를 두드리자 묘하게 붉어진 얼굴이 보였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네, 부길드 마스터.”

김미영이 나간 이후에는 슬쩍 서류들을 정리해 몸을 일으킨 것은 당연지사.

내 선에서 처리하기 무리라고 판단하는 일들은 아무래도 이 길드의 최고 권위자의 허락이 필요하다.

사실 이런 결재도 필요 없지만 만약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나 대신 덤터기를 쓸 최고 권위자가 필요하다는 거다.

다시 말하면 위험성이 높은 일들은 결재를 받는 게 옳다는 것.

그렇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천천히 집무실로 올라가고 있을 때였다.

“어?”

시야에 비친 것은 붉은용병 길드의 일원, 혹시나 저번 같은 암살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까 고려한 차희라가 나에게 붙여놓은 이들.

어째서 저들이 이곳에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기가 무섭게 눈앞에 있는 용병 하나가 입을 열어왔다.

“오랜만입니다.”

“네. 오랜만이군요. 여기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마스터가 와계십니다.”

“희라 누나가요?”

“네. 현재 파란의 길드 마스터인 김현성 님과 대화를 나누시는 중입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집무실 문이 벌컥 열리기 시작.

내가 오는 걸 감지라도 했는지 무척 빠른 반응속도였다.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조금은 오랜만에 본다고 말할 수 있는 차희라. 싱긍벙글 웃고 있는 표정이 왠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자기 왔네?”

“누나?”

“마침 잘됐네. 안 그래도 자기랑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기영 씨도 들어오시죠.”

“아. 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해지는 것이 당연지사.

보통 차희라가 김현성에게 단독으로 말을 거는 경우는 내가 알기로는 없었다.

파란과의 협상은 대부분 나를 중심으로 진행된 것이 사실. 물론 김현성이 길드 마스터가 됐다는 걸 생각해 본다면 둘이 만남을 가지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마치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김현성의 표정을 보니 정말로 불안해졌다.

‘무슨 일이라도 터진 건가.’

지금까지 우리 원망스러운 회귀자의 표정을 많이 살펴봤지만 저런 표정은 또 처음.

나라 잃은 표정이라는 게 가장 적절한 표현이리라.

이상한 것은 차희라의 표정은 나쁘지 않아보였다는 것, 아니, 오히려 무척 기뻐하고 있는 듯한 얼굴이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이런 분위기가 형성된 연유를 알 수가 없으니 내 쪽에서 불안한 것은 당연.

조금 눈치를 보고 있었을 때 김현성이 내 질문에 대답해왔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닙니다. 다만 모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도중이었습니다.”

“중요한 모임입니까?”

“네. 혹시 들으신 적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설명해 드리는 것이 좋겠군요. 사실 저희가 아직 알 필요는 없습니다만 신성제국 베니고어에서는 매년 각 자유 도시에 소속된 대형 길드의 마스터를 초청해 파티를 즐기는 행사를 열고 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사교회인 셈이죠.”

“네.”

분명히 들은 적이 있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차희라에게 들었던 것으로 기억.

당연하지만 우리와는 별로 관계가 없는 이야기다.

초대받는 것은 어디까지나 붉은용병이나 검은백조 같은 대형 길드였고 우리 파란 같은 경우에는 이제 막 새로 시작하는 길드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차희라의 표정을 보니 왠지 모르게 무슨 말을 해올지 예상이 간다.

기다렸다는 듯이 차희라 역시 입을 열어왔다.

“당연하지만 이번에도 우리 붉은용병과 검은백조 쪽은 신성제국의 초청을 받았어.”

“아….”

“용병여왕님께서 이번 모임에 이기영 씨를 데려가고 싶다고 파란 길드에 정식으로 요청하셨습니다.”

“요청이라기보다는 간곡한 부탁이라는 게 맞겠지.”

“아!!”

‘붐바야!’

일이 어떻게 된 건지 깨닫는 것은 순식간.

어째서 김현성이 나라 잃은 표정을 하고 있는지도 깨달을 수 있었다.

‘시바! 희라 누나, 사랑해!’

다른 건 다 필요 없다.

중요한 것은 이 업무의 지옥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

차희라에게 없던 애정도 생겨날 지경이다.

그녀의 탐스러운 붉은색 머리에 입이라도 맞추고 싶어 참기 힘든 것은 물론 자꾸만 올라가려고 하는 입꼬리를 숨길 수가 없었다.

“그렇군… 요.”

표정 관리를 하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잘 안 된다.

신성제국의 수도로 들어가 차희라와 함께 파티를 즐기고 여유로운 유랑 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건 상상 만해도 오줌을 지릴 것 같은 이야기.

안 그래도 휴식이 너무나도 그리웠던 참이다.

‘희라 누나….’

“사실 지금 저희 길드에서 전체적인 업무를 총괄해 주고 있는 기영 씨가 빠진다면… 상황이 무척 힘들어질 수도 있겠지만 수도로 들어가 다른 이들이나 유력한 인사들을 만나고 오는 것도 도움이 될 겁니다.”

계속해서 입을 열고 있는 김현성의 표정이 무척 처참해 보였다.

내가 내 능력을 과신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지금 길드가 돌아가고 있는 이유가 내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기영이라는 인간을 업무와 등가교환하고 있는 셈.

이런 상황에서 내가 빠진다면 일이 어떻게 될지는 뻔할 뻔자.

아마 그 막대한 업무와 길드 마스터에게 쏟아질 것이다.

‘정의는 승리한다.’

김현성의 입장에서는 나를 보내기 싫은 것이 당연할 터, 그렇지만 이번 기회에 사교계에 발을 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나쁜 교환은 아니다.

그게 녀석의 표정이 복잡 미묘해지고 있는 이유이리라.

“용병여왕님께서는 기영 씨가 거부한다면 굳이 데려갈 생각이 없다고 말씀하시기는 했지만….”

“감사히 다녀오겠습니다.”

“네… 그게 맞겠죠.”

항상 붉은용병에게 도움을 받고 있는 파란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이런 간단한 부탁은 들어주는 게 당연.

김현성에게 일을 떠맡기고 싶어서 이러는 것이 아니다.

“그럼 결정된 건가요? 현성 씨?”

“네. 오히려 저희 쪽에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차희라 님. 이런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요.”

“그런 것치고는 표정이 많이 씁쓸해 보이시네요.”

“아무래도 기영 씨가 길드에서 하는 역할이 무척이나 많다 보니…. 하하. 기영 씨가 자리를 비우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머리가 아파오는군요.”

‘어떡하긴 뭘 어떡해. 나 대신 네가 갈리는 거지.’

어떤 식으로든 정의는 승리하게 되어 있다.

그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고생 좀 하시게. 바깥양반.’

내조는 끝났다.

그동안 고생한 안사람도 잠깐이나마 인생을 즐길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 * *

“거, 누님은 괜찮은 거요? 희영 누님?”

“네. 어째서 일어나지 않으시는 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어요.”

“…….”

“그거 건강하다니 다행이지만 아무래도 이렇게 안 일어나니 조금 걱정이 되는데… 근데 숨이 고른 것을 보면 확실히 건강하긴 건강한 모양이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정말로 건강하니까요.”

“…….”

“그건 그렇고 그 이야기 들었소? 이번에 형님이 제국 수도인가 어디인가 하는 곳으로 간다는 것 같던데.”

“아. 덕분에 길드에 비상이 걸렸죠. 자리를 좀 오래 비울 것 같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아마 그런 것 같더오. 그 용병여왕이랑 함께 간다는 것 같은데. 그 불여우 같은 여자가 혹시 형님을 건드리지는 않을….”

“아… 안 돼!!”

“어?”

“하얀 씨?”

“자, 자세하게 설명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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