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
회귀자 사용설명서 118화
무녀(1)
“하늘을 나는 감상은 어때.”
“기분 좋아, 누나.”
조금 무섭기는 하지만 나쁘지 않다. 광활한 대륙을 한 번에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특권처럼 느껴질 지경.
다른 대중교통 수단과는 다르게 승차감이 좋지 않다는 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멀리서 보이는 광경은 마치 해외여행이라도 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웅장한 자연환경, 거대한 폭포, 거대한 나무, 거대한 숲과 커다란 절벽.
지구에 있는 관광명소를 전부 둘러본 기억은 없지만 장담컨대 내가 지금 위에서 보고 있는 것들은 지구에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으리라.
“웅장하네.”
“몬스터가 있는 곳이니까. 지구처럼 무작정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잖아? 몬스터가 없었으면 아래에 있는 나무들도 진즉에 벌목되고 개간됐을 거야. 귀중한 자원이니까.”
차희라의 말이 맞다.
관광 산업조차 없는 이곳의 생태계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정말로 몬스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녀석들이 자연의 수호자들 인 셈.
어떤 작가가 인간을 지구의 암 세포에 비유했다고 들은 적이 있다.
아주 약간은 공감할 수 있는 발언이라고 생각해 보면 이곳에 살고 있는 몬스터들은 암 세포들을 박멸하는 백신인 셈.
모르긴 몰라도 몬스터가 없었다면 내가 보고 있는 자연환경도 싸그리 쓸려나갔으리라.
‘관광 사업은 할 만하려나….’
그 와중에도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조금 당황스러워졌다.
“오빠….”
정하얀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계속되는 차희라와의 대화에 소외감을 느꼈는지 나를 꽉 안아오는 것이 느껴진다.
정하얀의 손을 살살 쓰다듬어 준 것은 당연지사. 이렇게 참아주는 것만으로도 대견했기 때문이다.
“…….”
아마 보통 때였다면 일을 벌여도 제대로 벌였으리라.
단순히 저주받은 신단 정하얀 회귀사건의 공이라기보다는 정하얀 본인이 양해해 주는 느낌.
어째서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예상이 가는 게 없는 것은 아니다.
‘차희라가 내 목숨을 구해줬기 때문인가.’
아마 그럴 확률이 높다.
대륙은 위험하다.
도시 안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은 물론, 외부로 나간다면 그 위험이 조금 더 가시화된다.
정하얀 역시 대충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때의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가 바로 그녀였으니까.
알 수 없는 여러 요소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선택했던 것이 던전 안에서 영원히 함께 사는 것.
회귀 사건 이후에 나를 감금하는 루트가 사라졌다면 정하얀은 현재 선택을 해야 되는 시기에 놓여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불안하지만 오빠를 지켜줄 수 있는 여자.’
라는 걸로 차희라를 판단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아니,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조용히 있을 이유가 없다.
‘이용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일 수도 있어.’
정하얀이 점점 성장하고 있다는 건 기쁜 일.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한 일이기도 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흐른다. 반나절을 넘게 날아온 이후에 눈앞에 보이는 것은 자유 도시 린델과는 전혀 다른 풍경.
“와아아아아아아….”
나를 꽉 붙잡고 있는 정하얀이 탄성을 내질렀다.
“워….”
“처음 보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당연.
거대하고 고딕한 건축물, 노을빛에 반사되고 있는 거대한 신전, 조금 멀리서 봤음에도 불구하고 그 웅장함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응. 멋지네.”
우리 말고도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있는지 공중에서 날고 있는 그리폰이 몇 마리 보인다.
아마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자유 도시의 길드 마스터들이 집결하고 있을 것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신성제국 베니고어의 주민들이 보였다.
내가 상상하는 중세 시대의 양식 보다는 조금 세련된 것 같은 느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럽다거나 비위생적이라는 느낌은 없었다.
“이곳의 문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뒤떨어지지 않았어. 오히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편이지. 주민들과 귀족들 너나 할 것 없이 자신들의 문화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고 그 자부심에 걸맞은 무력이나 지성도 갖추고 있는 편이야. 실제로 신성제국에는 나 정도 되는 강자들도 눈에 띈다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 같….”
“너무 멍청하게 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자기. 제국민들을 아래로 보는 플레이어는 명이 그리 길지 않거든.”
“충고 고마워, 누나.”
차희라의 말이 맞다.
대충 마음의 눈으로 병사들의 스탯을 확인해 봐도 결코 린델 내에 있는 이들에 비해 수준이 떨어진다고 말할 수 없다.
물론 개개인을 비교해 봤을 때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력이 더 우수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인구의 차이가 있으니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무력을 갖추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내 상상을 뛰어 넘는다.
특히….
‘차희라 정도 되는 전력도 보유하고 있다면….’
이들을 무시하며 신성제국을 침범하는 미친 집단은 없을 것이다. 과거에는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그런 놈들이 없는 것을 보면 정신 차리지 못하고 날뛰는 원숭이들은 전부 죽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저기 레스토랑은 꽤나 먹을 만해. 저기는 정말로 맛있고 우리 세컨드도 같이 가는 게 좋겠네. 저어기 보이는 곳이 대장간은 생각보다 질 좋은 물건이 많아. 가끔 영웅 등급 판정을 받은 무구들이 나오기도 하고, 가격도 린델에 비하면 저렴하다니까. 아, 수도에 뿌리내린 플레이어들도 있어. 허가 받기가 조금 까다롭지만 일단 자리를 잡으면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데 믿을 수가 있어야지.”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똑같네.”
“뭐, 그렇지.”
생각보다 차희라가 수다스럽다.
오랜만에 나들이에는 즐거워 보이는 게 느껴진다.
당연하지만 나와 함께이기 때문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워낙 기분이 자기 좋을 대로 확확 바뀌는 성격이니 오랜만에 수도를 둘러볼 수 있다는 게 신나는 것이리라.
“그리고 저곳이 우리가 당분간 지낼 왕성, 물론 저기서 하루 종일 보내지는 않을 거야. 저 안은 조금 따분하거든.”
자신의 수도 관광 계획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와중에도 그리폰은 계속해서 성 쪽으로 날아가고 있는 상황.
차희라가 해주는 말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마음의 눈으로 사람들을 훑어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착륙장으로 보이는 곳에 그리폰이 내려앉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제국민 병사들이 시야에 비쳤다.
물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화려한 중갑을 입고 있는 할아범.
차희라를 향해 방긋 웃는 모습을 보니 사이가 나쁘지는 않은 모양이다.
“오랜만이다, 희라야.”
“할아버지도 오랜만이네. 생각보다 정정한가 봐. 아직도 현역?”
“물론. 그것보다 소문이 자자하던데… 어디 보자 이쪽이 용병여왕의 정부로 소문난 남자인가.”
“이기영이라고 합니다.”
마음의 눈을 발동시키는 것은 당연지사. 전체적인 할아범에 스펙이 곧바로 시야에 비쳤다.
‘빅터하르트, 74살, 능력치는….’
차희라 이상.
아마 차희라가 말하는 강자는 이런 사람을 말하는 것이리라.
괴물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무력. 손바닥으로 내 머리를 후려치기만 해도 머리통이 날아갈 것이다.
보기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갑옷을 입고 있는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 이쪽을 위 아래로 살피는 얼굴이 눈에 보였다.
“음 잘 부탁하네. 그 뒤에는….”
“우리 자기. 두 번째 애인.”
입술을 까득 깨물며 정하얀 역시 입을 열어왔다.
심기가 불편해 보이기는 했지만 일단은 제대로 고개를 숙이고 자신을 소개하는 모습.
“정하얀입니다.”
‘잘한다. 우리 하얀이.’
“젊은이가 생각보다 능력이 좋구만….”
“그러니까 내가 여기까지 데려왔지. 괜히 붙들고 다니겠어? 뭐, 우리 자기야 나중에 차차 설명해 주면 될 것 같고… 할아버지, 오랜만에 대련 어때?”
“됐다. 또 왕궁을 시끄럽게 만들 생각은 없으니. 나중에라도 시간이 나면 상대해 주마. 쯧. 너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구나.”
“그동안 몸을 제대로 움직일 일이 없었을 뿐이야. 근데 이번에도 우리가 첫 번째로 온 건가?”
“아니, 아쉽지만 두 번째. 자유 도시 실리아에서 온 이들이 한참 전부터 기다리고 있는 도중이었다.”
“누구.”
“카스가노 유노.”
“무녀?”
“그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매일 늦게 오던 여자가 별일이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며 앞서 나가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빅터 할배는 이쪽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는 않은 모양.
사실 이쪽이 조금 더 편하다.
단지 용병여왕의 정부라는 이유로 주목받는다는 것은 움직이기 귀찮을 수도 있으니까.
차희라와 빅터 할배가 대화를 나누자 정하얀은 무척이나 신난다는 듯이 이쪽에 달라붙어왔다.
뭔가 말이라도 걸어주고 싶었지만 일단은 차희라와 빅터의 대화를 엿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 당연지사.
권력자들의 별것 아닌 대화는 나 같은 사람들한테는 아주 좋은 정보가 된다.
‘카스가노 유노?’
아마도 일본에서 대형 길드를 운영하고 있는 인물.
차희라가 그다지 적의를 드러내지 않고 있는 걸로 봐서는 최소한 야마토 길드는 아니다.
계속해서 머릿속에 새로운 정보를 저장하고 있었던 바로 그때였다.
저 멀리서부터 조금 수수한 복장을 하고 있는 여자가 모습을 드려낸 것.
‘일본인?’
아니 수수하다기보다는 단정한 느낌. 그녀의 중심으로 몇몇의 인원들이 그녀를 보좌하듯 따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앞에 있는 여자는 조용히 두 눈을 감으며 걸어오고 있다.
마치 눈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길게 땋은 머리는 땅바닥까지 닿을 것처럼 보였고 차분해 보이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인상적이었다.
[플레이어 카스가노 유노의 상태창과 잠재 능력을 확인합니다.]
[특성 본질과 과거와 미래를 꿰뚫어 보는 눈이 특성 마음에 눈에 저항합니다.]
‘제기랄….’
순간적으로 고개를 숙여버렸다.
이런 경우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 오만 생각이 전부 드는 것이 당연지사.
상대방에게 내가 자신을 훔쳐보려고 했다는 정보가 가지는 않았을지 걱정하기가 무섭게 곧바로 상태창이 변화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플레이어 카스가노 유노가 자신의 상태창과 잠재 능력을 스스로 개방합니다.]
‘이건 또 뭐….’
[플레이어 카스가노 유노의 상태창과 잠재 능력을 확인합니다.]
[이름-카스가노 유노]
[칭호-조용한 무녀]
[나이-20]
[성향-타락한 구도자]
[직업-무녀-전설 등급]
[직업효과-기초 마법 지식 습득]
[직업효과-중급 마법 지식 습득]
[직업효과-고급 마법 지식 습득]
[직업효과-고급 주술 지식 습득]
[직업효과-고급 점성술 지식 습득]
[능력치]
[근력-13/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민첩-20/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체력-17/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지력-89/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내구-15/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행운-00/성장한계치 전설 이상]
[마력-96/성장한계치 전설 이상]
[장비-없음]
[특성-본질과 과거와 미래를 꿰뚫어 보는 눈-전설 등급]
[총평-전설 등급의 무녀입니다. 근력이나 민첩, 체력과 내구 모두 형편없는 수준이지만 행운과 지력, 마력의 잠재 능력이 높아 후위로서는 무척 좋은 스탯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 이하의 스탯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혹시 비슷하다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플레이어 이기영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사람이니까요. 전설 등급의 특성, 본질과 과거와 미래를 꿰뚫어 보는 눈과 직업의 효율도 좋다고 할 수 있지만 뭔가에 오염된 탓인지 상태가 좋아보이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다지 가까이하는 것을 추천드리지 않겠습니다.]
‘뭐야…….’
전설 등급의 특성, 전설 등급의 직업 그리고 전설 등급의 잠재 능력치.
누가 봐도 강자로 분류할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다.
특히나 행운 잠재 능력이 이렇게 높은 사람을 본 것은 처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바닥을 찍고 있는 스탯이 무척이나 신경 쓰였다.
물론 그것보다 더 신경 쓰였던 것은…
‘뭐야….’
눈을 감은 채로 이쪽을 향하고 있다는 것.
‘…뭔데?’
심지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