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
회귀자 사용설명서 122화
검은색 세계(3)
괜스레 자괴감이 엄습해 왔다.
그렇지만 일은 제대로 끝마치는 것이 옳다.
“몇 가지 시험을 해볼 생각인데….”
“물론… 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묘하게 기대하고 있는 표정을 뒤로 하고 천천히 입을 여니 이상하게 기뻐하고 있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악감정은 없다.”
“네. 저를 아껴주셔서 벌을 주신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벌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뭐, 어떻게 받아들이는 지는 네 마음이겠지… 일단 너는 지금부터 숨을 쉬지 못할 거다.”
“…….”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모습에 혹시나 이 무녀가 사기를 친 것은 아닌지에 대해 생각해볼 정도.
그렇지만 다시 한번 들려온 목소리에 내가 실수했다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마력을 담아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
조금 부끄러워진 것이 당연.
다시 한번 입을 여니 곧바로 숨을 한껏 들이마시는 그녀의 표정이 시야에 비쳤다.
“너는 숨을 쉬지 못할 거다.”
다량의 마나가 빠져나가는 것은 순식간.
이렇게 많은 마력이 빠져나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육체 제어권을 완전히 가져온다는 것치고는 싸게 먹히는 장사다.
저도 모르게 일그러지는 표정.
목을 붙잡고 켁켁거리고 있는 모습은 틀림없이 연기가 아니다. 자꾸만 이쪽을 향해 손을 뻗으며 뒹굴고 있는 모습은 그녀가 얼마나 괴로워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주… 인… 켁….”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공기가 몸속으로 들어가지 않는지 발버둥 치고 있는 듯한 모습.
눈에서는 자연스럽게 눈물이 흘러나오고 공기를 갈구하듯 혓바닥이 점점 더 앞으로 튀어나온다.
막 숨이 끊어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떠올렸을 때는 곧바로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여기서 죽는 것은 사양이니까.
“지금부터 숨을 쉴 수 있게 된다.”
시험은 이것으로 끝.
그녀와 나 사이에 있었던 나름대로 합리적인 계약은 성공적으로 완료된 것이 맞다.
지금까지 부족한 공기를 한꺼번에 마신 이후에는 토해내듯 말을 내뱉었다.
“감, 감사합니다. 주인님.”
뭐에 대한 감사함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간에 그녀가 그녀 자신에게 스스로 걸어놓은 주박은 완성됐다.
그것도 무척이나 완벽하게….
이쪽이 페널티로 가지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굳이 하나 설명하자면 그녀를 책임져야 되는 상황에 놓인 것 정도.
‘괜찮겠지.’
아마 방금의 장면을 주술을 걸기 전에 봤었다면 굳이 이런 귀찮은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째서 내 눈에 그 장면이 보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술의 효과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신체와 내 정신이 연결되는 과정에서 잠깐 동안 오류가 일어난 것이라고 하는 것이 맞으리라.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나를 꽉 안아줬던 무녀의 얼굴, 적어도 그녀가 내 목숨을 구해줬다는 것은 틀림없이 진실이다.
살짝 땅에 엎드려 있는 그녀를 일으키자 영문 모를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저 기뻐하고 있는 표정.
아까도 같은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양심이 쿡쿡 찔려온다.
‘앞으로 잘해줄게.’
1회 차의 이기영을 뛰어 넘을 수 있을 정도로 나쁜 짓을 했다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다.
순진한 사람 하나를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것 같은 느낌.
검은색 세계의 그녀의 표정을 본 이후에는 괜스레 더 미안해졌다.
‘시바….’
그러나 합리적인 선택이었고 결과도 나쁘지 않다. 결정적으로는 그녀가 가장 기뻐하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윈윈.
‘물론 합리화지만….’
정말로 믿을 수 있는 아군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한다면 양심의 가책은 저 멀리 하늘로 날려 버리는 게 옳다.
“뭐라고 말해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네?”
“일단은 고맙다.”
“그, 그게 무슨… 당치도 않습니다.”
무녀의 길다란 머리카락을 슬쩍 넘기자 눈에 띄게 붉어하는 얼굴이 보이는 상황.
살짝 웃으니 다리가 풀린 건지 자꾸만 주저앉으려고 해 황당했지만 일단은 스스로 이쪽으로 온 보상 정도는 해주는 것이 맞으리라.
“아, 저기 주인님….”
조용히 얼굴을 가까이 대자 눈을 꽉 감아오는 모습.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자 그대로 허물어진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뢰에 보답해 준 네 행동이 비할 바는 아니다. 그리고 검은색 세계에서 네가 나에게 베풀어준 온정에 비하면 미약하다.”
“아….”
“잠깐이었지만 나도 네가 봤던 것을 본 것 같다.”
“네?”
“그때. 네가 나에게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한 것이 맞나?”
“네. 맞습니다. 어, 어째서….”
“나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네 말처럼 운명적인 이끌림일지도 모르겠군.”
지나치게 기뻐하고 있는 얼굴.
듣기 좋으라고 한 소리가 맞다.
갑작스레 바깥이 소란스러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은 바로 그때.
‘정하얀?’
이쪽이 무녀에게 신체적 접촉을 했을 때의 정보가 정하얀에게 넘어간 모양.
잘 참는다고 생각했는데 또 그새를 참지 못하고 이쪽으로 올라온 것이다.
‘끄응….’
아직 이 여자와는 조금 더 할 말이 남아 있다.
그렇지만 정하얀을 계속해서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나에 대해서 타인에게 이야기한 적은 있나?”
“물론 없습니다.”
“다행이군. 그럼 오늘 만남은 여기까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당연하지만 나와 네 관계는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는다.”
“네. 알겠사옵니다.”
익숙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니 전 회 차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었던 모양.
나 역시 대충 고개를 끄덕인 이후에 곧바로 문을 여니 아까와는 다르게 쉽게 문이 열리는 것이 보였다.
정하얀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고민했지만 눈에 들어온 사람은 처음 보는 남자.
조금은 커다란 키에 허리춤에는 긴 검을 가지고 있다.
‘일본도?’
중세를 기반으로 한 대륙에서 일본도라니 기가 차는 것이 당연.
주문제작을 한 것은 아닌지에 떠올려 봤지만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이쪽을 내려다보는 남자에게 시선이 끌렸기 때문이다.
‘뭐야?’
마음의 눈으로 정보를 확인하자 순식간에 여러 가지 정보가 쏟아졌다.
[플레이어 이토 소우타의 상태창과 잠재 능력을 확인합니다.]
[이름-이토 소우타]
[칭호-실리아의 바람]
[나이-28]
[성향-용의주도한 전략가]
[직업-무사-전설 등급]
[직업효과-기초 검술 지식 습득]
[직업효과-중급 검술 지식 습득]
[직업효과-고급 검술 지식 습득]
[직업효과-고급 마력 운용 지식 습득]
[능력치]
[근력-81/성장한계치 영웅 이하]
[민첩-99/성장한계치 전설 이상]
[체력-61/성장한계치 희귀 이하]
[지력-89/성장한계치 영웅 이하]
[내구-66/성장한계치 희귀 이하]
[행운-34/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마력-75/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장비-바람의 검-영웅 등급]
[특성-바람의 검-전설 등급]
[총평-전설 등급의 클래스 무사입니다. 전체적으로 높은 능력치, 그중에서도 특히나 높은 민첩 능력치가 눈에 띕니다. 내구가 조금 낮은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민첩 위주의 검사인 그에게는 꼭 필요한 스탯은 아닙니다. 체력이 조금 떨어져 보이는 것은 가슴 아프군요. 전설 등급의 직업과 전설 등급의 특성을 얻은 것도 눈에 띕니다. 우리 플레이어 이기영과 같다는 건 성향밖에 없군요. 조금 더 분발하시기 바랍니다.]
‘뭔 만나는 놈들마다 전부 괴물이야.’
민첩 위주의 검사.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평범해 보이지는 않는다.
애초에 이 정도 스탯을 가지고 있는 이가 평범한 사람일 리가 만무, 차희라와 동급 혹은 그 이상.
한 길드의 길드 마스터로서도 부족함이 없는 능력치라고 생각했다.
조금 재미있었던 것은 성향이 나와 같은 용의주도한 전략가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힘을 얻은 것에 대해서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슬쩍 남자를 지나치려고 했을 때였다.
“…….”
“이기영 씨?”
내 어깨를 살짝 붙잡은 남자의 손이 느껴진 것.
“이토 씨, 무슨 일입니까?”
사랑스러운 무녀가 기분 나쁜 자식을 경계한 것은 당연지사.
그렇지만 이 자식은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며 싱글 싱글 웃고 있었다.
‘기분 나쁜데….’
“처음 뵙겠습니다. 야마토 길드의 길드 마스터, 이토 소우타라고 합니다.”
‘…….’
순간적으로 말문이 턱하고 막혀온 것은 당연지사.
순간적이지만 린델 테러 사건이 떠오른 탓이다.
폭음과 함께 화살과 칼날이 나를 덮치려고 들어온 기억은 트라우마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짜증 나는 기억이다.
그렇지만 침을 삼키며 악수를 내밀고 있는 손을 맞잡았다.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
‘짜증 나게….’
이곳은 안전하다.
분쟁이 완전히 금지된 이곳에서 녀석이 나를 해칠 수 있을 리가 없다.
뒤에는 믿음직한 무녀도 있고 내 허리춤에 있는 율리에나 역시 순간적인 기습을 한 번 정도는 막아줄 수 있을 것이다.
‘민첩 수치를 생각해 보면 그럴 확률은 적지만….’
일단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 어차피 야마토 길드에 대해 정식으로 항의하기 위해 이곳까지 온 만큼 최대한 정보를 뽑아내는 것이 옳다.
“저를 어디서 본 적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아닙니다. 본 적은 없습니다만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습니다. 최근에 있었던 린델 테러 사건의 중심이셨으니 말입니다.”
‘이 새끼….’
살짝 미소 짓는 모습은 가관.
시치미 땔 거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평온한 모습이었다.
‘용의주도한 전략가?’
아마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자유 도시의 중심에서 갑작스레 테러라뇨. 도시는 다르지만 지구에서 이곳으로 함께 넘어온 만큼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아… 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네.”
“린델 쪽에서 테러의 용의자로 저희 길드를 지목했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말입니다.”
‘어쩌라는 거야.’
지금 이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기에는 너무 불편한 주제. 적어도 희라 누나가 있는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옳다.
“이 이야기는 이후 따로 자리를 마련하는 게 좋겠군요. 지금은 타이밍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살짝 고개를 돌렸을 때 다시 한번 어깨를 잡는 손이 느껴진다.
당연하지만 나서준 것은 카스가노 유노. 조용하지만 묵직한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 손님한테 무슨….”
“아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을 뿐입니다.”
“무례한 행동은 삼가주시겠습니까.”
어디에선가 살기가 느껴진 것은 바로 그때.
‘제기랄.’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순식간에 희뿌연 막이 주위에 생겨나는 것이 보였다.
옆을 바라보니 카스가노 유노가 빠르게 주문을 외운 상황.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야마토의 개자식이 시야에 비친다.
여기서 미친 짓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린델 내에서도 테러를 일으킨 놈들이니 만큼 어쩌면 이곳에서 나를 확실하게 제거하고 싶은 것은 아닌지에 대해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카스가노 유노,
무녀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마법사인 만큼 대인전에서는 무리가 있다. 눈앞에 있는 무사 정도의 실력이라면 그녀의 방어막을 뚫어내고 내 목을 치는 데 얼마 걸리지도 않을 터.
‘현성아….’
왠지 모르게 김현성의 따뜻한 품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우우우우우우우웅!
자연스럽게 율리에나가 품에서 뛰쳐나오는 순간 눈에 보이는 것은 여전히 웃고 있는 이토 소우타의 표정.
“아….”
뭔가 잘못됐다.
“율리에나, 안 돼!”
소리를 질렀을 때는 이미 율리에나가 녀석의 옆에 있는 검사의 목을 꿰뚫어 버린 이후.
‘용의주도한 전략가?’
완벽한 외통수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제기랄.’
목에서 가래 끓는 소리를 낸 남자가 바닥에 허물어진 이후에 이토 소우타가 검의 손잡이를 잡으며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아니 아니… 이게 무슨 짓입니까? 기영 씨. 갑작스레 검을 날리시다니요. 그것도 성스럽고 위대한 베니고어 신성제국의 왕성에서 말입니다. 푸흡… 아끼는 부하가 한 명 죽어버리지 않았습니까? 푸흐흣….”
“…….”
“이 건은 정식으로 항의해도 되는 겁니까?”
“…….”
“아니면… 우리 야마토 길드에 대한 선전포고로 받아들여도 되는 겁니까?”
단순히 성향만 비슷한 것이 아니다.
행동 패턴 역시 굉장히 비슷하다.
사람을 약 올리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녀석을 눈에 담는 순간, 그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