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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29화 (128/1,590)

# 129

회귀자 사용설명서 129화

함정 카드 발동(2)

당연하지만 미적지근하게 끝낼 생각은 없다. 단순히 팔이 부러졌다든가 어깨가 탈골됐다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내가 놈에게 준비한 선물은 조금 더 묵직하다.

차희라가 미리 넣어놓은 마력에 슬쩍 내 마력을 흘리자 상상했던 것 이상의 결과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플 거라는 경고를 듣기는 했지만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다.

“아아아아아악!!”

오른팔에서 피분수가 튀어나온 것은 순식간.

차희라가 다급한 표정으로 이쪽의 팔을 잘라내는 것이 보였다.

물론 그녀가 나를 공격한 것은 아니다.

그녀가 내 팔을 잘라낸 것은 오히려 응급처치에 가깝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 그녀가 미리 심어 놓았던 마력이 폭주하듯 내 몸을 타고 올라왔으니 당연한 반응.

지금 팔이 잘리지 않았다면 그녀의 마력은 순식간에 내 뇌 속으로 파고들었으리라.

엄청난 격통이 몰려들기는 했지만 어처구니없다는 이토 소우타의 표정을 보니 고통이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주 진통제네, 진통제야.’

“이런 개!”

‘연기 좋고.’

정말로 다급한 표정의 차희라의 연기는 이 갑작스러운 사건에 조금 더 생동감을 더한다.

애초에 위험할 수도 있다고 반대한 쪽은 희라 누나 쪽이니 급한 게 당연할 것이다.

‘푸히하하하핫.’

큰 소리로 웃고 싶은 심정.

그렇지만 내 입에서 나온 소리는 고통에 찬 비명이다.

“아으아아아아아악!”

순식간에 팔이 떨어져 나갔다.

고통스러운 것이 당연하다. 아니, 지금까지 참아왔던 비명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리라.

그녀가 이쪽을 에스코트할 때부터 비집어 나오는 고통을 삼키고 있었으니 참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오히려 지금은 참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조금 더 큰 비명이 터져 나올 정도.

마치 신생아가 된 심정이었다.

졸지에 피를 뒤집어쓰게 된 귀부인 집단은 단체로 비명을 내지르며 내 주변에서 멀어지는 중.

깜짝 놀란 정하얀이 서둘러 내 쪽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사제를 찾는 커다란 목소리는 울려 퍼지고 주먹을 꽉 쥔 차희라가 소우타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

그 풍압만으로도 주변에 있는 것들이 사방으로 날아가 버린다.

“꺄아아아아악!”

“꺄악!”

“이런!!”

애초에 진짜 피해자인 척하려면 본인이 직접 몸을 움직이는 게 효과적이다.

조금 고통스럽기는 했지만 이게 합리적인 선택.

차희라의 주먹이 뻗어나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빤히 바라보는 이토 소우타의 일그러진 얼굴이 보인다.

짧은 순간이지만 나 역시 땅바닥에서 뒹굴며 최대한 입꼬리를 올렸다.

‘멍청한 새끼!’

콰지지지직!

큰 소리와 함께 차희라의 주먹이 놈의 안면에 틀어 박혔고 공중에서 몇 바퀴를 회전한 채 놈의 몸이 한쪽 벽에 틀어박혔다.

콰아아아아아앙!

“이 개 같은 놈….”

“쿨럭….”

연기가 걷힌 뒤에 눈에 보이는 것은 벽에 처박힌 채 피를 내뱉고 있는 이토 소우타와 녀석에게 다가가고 있는 차희라.

아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울 거라고 생각했다.

놈의 내구 수치는 그리 높지 않았으니까.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대부분의 사람들의 표정에 당혹스러움이 감돌지만 다시 한번 이쪽으로 시선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소리를 내지르며 파티장 내에 어그로를 끌고 있었으니 시선이 모이는 게 당연하다.

순식간에 사제들이 이쪽으로 모여들고 내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오, 오빠는 괜찮은 건가요? 오빠… 흐으으으으윽… 오빠아….”

“끄으으윽….”

“오빠아….”

“아으아아악!”

이 모든 상황을 알 리가 없는 정하얀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내 팔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중.

내가 생각해도 그림이 꽤나 괜찮다. 어느새 달려온 이지혜도 드레스를 찢어 내 팔을 지혈하고 있다.

‘명장면이네. 키야… 진짜 명장면이야.’

마치 전쟁 영화 속에서나 나올 것 같은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사제를 향해 뻔한 질문을 날리는 이지혜.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 분명. 분노를 표현하는 그녀의 연기력 하나는 발군이다.

“아니, 일단 치료를 해주세요. 떨어진 팔을 붙여야겠어요. 지금 뭐 하고 있는 겁니까? 멍하니 있을 때에요? 당장 사제를 불러오세요!”

“빨리 사제를… 사제를!”

“조금만 늦었더라고 팔 하나가 떨어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을 겁니다.”

“증상을 말씀해 주세요.”

“외, 외부에서 의도적으로 마력을 집어넣어 폭주시켰습니다. 다행히 차희라 님께서 서둘러 팔을 잘라내 몸까지 침식하는 것은 막을 수 있었지만 많이 고통스러우실 겁니다. 일, 일단은 팔을 봉합하는 게 먼저일 것 같군요. 더 늦기 전에 떨어진 팔에 있는 잔존 마력을 걷어내야 합니다. 누, 누군가가….”

“제, 제가 할게요. 제가.”

“부탁드려요, 하얀 씨.”

고맙게도 이쪽으로 달려와 준 사제의 소견은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중.

여기저기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떠들었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이미 들을 만한 사람은 전부 들었을 것이다.

오른팔부터 시작된 갑작스러운 마력의 폭주가 이 사태의 원인.

의도적으로 마력을 집어넣어 나에게 고통을 준 장본인이 누군지는 아마 뻔할 뻔자.

모두가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있는 바로 그 이름.

우리들의 아이돌.

‘이토 소우타.’

이 새끼가 범인이다. 빼도 박도 못하고 이 새끼가 무조건 범인이다.

강자로 분류되는 이들은 보통 고급 마력 운용 지식이라는 직업효과를 가지고 있다.

내 팔에 의도적으로 마력을 집어넣어 폭발시킬 수 있는 것은 이런 종류의 지식을 얻은 이들에게만 가능한 행동이다.

그게 가능한 것은 이 자리에 많아야 5명, 당장 생각나는 사람은 차희라와 빅터하르트 그리고 이토 소우타가 전부다.

애초에 빅터하르트는 이쪽에 마력을 집어넣을 여력이 없었으니 용의자는 둘, 사랑하는 희라 누나가 내게 그런 짓을 할 리는 없으니 범인은 이미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아마 녀석 역시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슬쩍 고개를 들자 정하얀이 열심히 떨어진 팔을 붙잡고 잔존 마력을 밀어내고 있는 것이 보였고 그 뒤로는 계속해서 피를 토하고 있는 녀석이 시야에 비쳤다.

“쿨럭… 우웨에엑….”

갑작스러운 공격이었지만 녀석이었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터.

조금은 아쉽게 됐다.

피를 토하고 있는 놈의 모습이 기분이 좋기는 했지만 녀석이 차희라에게 반격을 가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시나리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쾌하기는 마찬가지.

녀석의 주변에 있는 야마토 길드원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든 차희라를 견제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될 리가 없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막타를 넣고 싶은 심정이지만….

‘정황상 그건 힘들 거야.’

차희라의 앞을 막아서는 빅터하르트와 들이닥친 경비들을 보니 아무래도 여기까지가 끝인 모양.

조용히 차희라를 응시하는 표정의 빅터 영감의 표정이 구겨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만. 더 이상은 허용하지 않겠다.”

“비켜, 할아범. 내 용무는 할아범한테 있는 게 아니라 그 뒤쪽에 있는 개자식에게 있으니까.”

“이곳은 연무장이 아니다, 희라야.”

“지금 누가 먼저 개수작을 부렸는지는 할아버지도 잘 알고 있을 거 아니야! 그런데도 막아서고 있는 건 그 자식이 아니라 나인 것처럼 보이는데… 주변 경비들도 마찬가지고… 아직도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건가? 다른 증거가 필요해? 저 새끼는 현행범이야. 내 눈앞에서 우리 자기를 죽이려 한 죽어도 싼 놈.”

‘좋다.’

순전히 억지.

모든 게 억지다. 사실은 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이토 소우타가 아무리 미친놈이라고는 해도 모든 중역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 나에게 마력을 밀어 넣어 머리를 터뜨릴 정도로 정신이 나가지는 않았다.

침착하게 생각해 보면 범인이 이토 소우타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건 내 경우에도 마찬가지.

당연하지만 나 역시 신성제국의 왕성에서 놈의 길드원들을 살해할 정도로 정신을 놓고 다니지는 않는다.

‘그럴 만한 배짱도 없고….’

어처구니없게 당한 걸 그래도 돌려 준 셈. 증거만 있으면 이유 따위는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

저 멍청한 놈이 그렇게 했듯이 진실은 이쪽에서 만들어내는 거다.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느냐. 아무리 그가 이기영을 위협했다고 한들, 이런 자리에서 일을 벌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분명히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절차에 맞게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먼저다.”

“글쎄. 그건 생각하기 나름이지. 우리 자기 머릿속에 꽤나 고급 정보가 들어 있거든.”

“…….”

“물증이 없어서 확실하게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조금 파급력이 있는 정보라서… 나는 이토 소우타라는 놈이 어째서 이런 무리수를 던졌는지 충분히 이해가 가. 이렇게 해서라도 우리 자기 입을 막고 싶었을 거야. 우리 자기 입이 열리면 본인이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거지.’

내 생각보다 차희라가 혼신의 연기를 해주고 있다.

조금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흥분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제대로 잘해주고 있다.

‘장하다, 차희라!’

“무슨….”

“이런 자리에서 이런 일을 벌일 정도로 입을 막고 싶었다는 거야. 그럴 만한 동기가 있어. 내가 보증할게.”

‘물론 거짓말.’

“애초에 우리 자기를 위협하고 율리에나를 이용해 범죄자로 몰아붙인 것 역시 그 이유 때문이고….”

‘이것도 거짓말.’

“린델 테러 사건 역시 연관이 있다고 하면 설명이 돼?”

‘당연하지만 요것도 거짓말.’

“만약 그렇다고는 해도 죄를 벌하는 건 네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잊지 않느냐. 네가 사랑하는 이가 다쳐 흥분한 것은 이해가 가지만 부디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생각해다오. 그렇지 않다면… 나도 검을 들 수밖에 없다.”

빅터하르트는 꽤나 초조한 표정이다.

차희라의 놀라운 연기력에 혹시나 차희라의 말이 진실일 가능성에 대해서 떠올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곳에 오기 전 나와 나눴던 대화가 그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을 것이다.

‘딸 같은 아이다.’

그의 말을 고려하면 차희라에게 엄청난 신뢰를 보내고 있는 것 같지만 괜히 아들자식, 딸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다는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니다.

조용히 검을 올리고 있는 빅터하르트는 여전히 인상을 구기고 있는 것이 보여 슬그머니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대치해 봤자 떨어지는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희라 누나, 나는… 괜찮아….”

“자기.”

화들짝 놀라 뛰어오는 차희라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니 심장이 쿵덕쿵덕 거릴 지경.

지금 이 순간만큼은 김현성보다 차희라가 더욱더 소중하다.

왠지 모르게 우리 회귀자에게 미안해졌지만 아무튼 그렇다.

“괜찮아? 자기? 팔은?”

“괜찮아… 소란 피우면 안 돼. 누나….”

“응… 알겠어.”

흥분이 가라앉았는지 다시금 싸구려 연극 톤으로 되돌아가려고 하는 느낌.

경비들과 빅터하르트가 순식간에 이토 소우타를 에워싸는 모습을 보자 기분이 좋아진다.

“일단은 연행해야겠소. 이런 곳에서 그런 짓을 저지른 이유가 뭔지.”

“저는 이기영 씨를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일단은 절차대로 조사를 받게 될 거요.”

‘좋은 단어지. 절차라는 건….’

“네. 일단은 조사를 받겠습니다만 절대로 저는 이기영 씨를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죽이려는 의도로 접근 한 것도 아니라 위협한 적도 없다는 걸 이 자리에 있는 다른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나중에 따로 발언하실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겁니다. 일단은 함께 가시죠.”

“네.”

슬쩍 이쪽을 바라보는 녀석이 보였다. 잠깐이었지만 얼굴이 미친 듯이 일그러진 것을 보니 어지간히 화가 난 모양.

원래 저렇게 고고하고 부족한 것 없는 이들일수록 꿈틀거리는 애벌레한테 당한 것을 수치로 여긴다.

아마 지금쯤 속이 뒤집어져 있을 것이다.

나조차도 놈에게 뒤통수를 맞고 난 이후에는 화가 나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녀석의 경우에는 어떨지 확인할 수 없지만 모르긴 몰라도 지금 당장 나를 찢어 죽이고 싶을 거다.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이미 나는 조각조각 나 시체조차 찾을 수 없게 되리라.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게 천추의 한이라고 느낄 거라는 건 굳이 머리를 쓰지 않아도 예상할 수 있다.

나를 죽이고 싶다면 장소를 잘못 골랐다.

애초에 이런 정치 싸움으로 끌고 가지 말았어야 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불쌍한 놈아. 지금부터 시작이니까 기대해도 돼.’

여전히 나를 응시하는 녀석을 향해 무언가 메시지라도 전해주고 싶은 심정.

천천히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리자 짜릿한 쾌감이 등 뒤를 훑고 지나가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엿이나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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