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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30화 (129/1,590)

# 130

회귀자 사용설명서 130화

함정 카드 발동(3)

‘엿이나 먹어라.’

입에서는 웃음이 나온다.

이제 그만 웃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피식 피식 나오는 웃음은 참을 수 없을 지경.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위로와 걱정을 받고 있는 와중이었기 때문에 참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자꾸만 쿡쿡 거리게 된다.

“발, 발작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사제님들은 계속 주문을 외워주시고 마법사 분들은 혹시 몸에 폭주하는 마력이 있는지 확인해 주세요.”

“네.”

지금 내 상황이 어떤지 깨달은 이지혜가 발작을 일으키고 있다는 거짓말을 해준 덕분에 슬그머니 붙고 있는 팔을 잡으며 한 번 더 뒹굴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다가온 카스가노 유노도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사실 계속해서 이쪽에 있을 이유는 없다.

이미 몸은 회복되고 있었고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기보다는 안락한 내 방에서 쉬는 게 훨씬 더 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곳에서 생쇼를 하는 이유는 뻔하다.

‘우리가 피해자다. 이 새끼들아!’

라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자리에서 가장 찰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정하얀.

“으허어어어어엉 오빠아아아! 끄어어어엉….”

“괜찮아….”

“허어어어엉….”

눈물과 콧물을 전부 쏟아내고 있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서러워 보인다.

정하얀에게는 이 모든 상황이 백퍼센트 리얼.

사랑해 마지않는 오빠가 더러운 흉수의 손을 잡는 순간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죽을 뻔했으니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게 당연할 것이다.

누가 보면 내가 이미 숨어 끊어진지 오해할 만한 상황.

너무나도 서럽게 울고 있는 탓에 몇몇 마음이 약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난 귀부인들도 슬그머니 자신의 촉촉한 눈가를 닦아내고 있다.

카스가노 유노에게는 미리 언질은 해놨지만 그녀에게도 조금 익숙하지 않은 장면인지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

내 역할은 조금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만 보이면 끝.

물론 바닥에서 너무 진상 부리는 것도 좋지는 않다.

이지혜도 같은 생각을 하는지 분위기를 정리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느낌.

차희라가 나를 들쳐 업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이건 이거대로 또 그림이 된다.

내 몸과 옷에서 묻어 있는 혈액은 별로 상관하지 않는 모습.

순식간에 그녀의 몸이 피범벅이 됐지만 신성제국의 귀부인들과 귀족들이 보기에는 한없이 아름다운 모습이다.

지금 이 순간만은 그 어느 문학 작품보다 이 상황이 더 재미있을 것이다.

여자치고는 꽤나 넓은 등에 업히니 정말로 보호받고 있는 듯한 느낌.

여기저기를 만져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탄탄한 몸이라는 게 느껴진다.

박덕구처럼 쓸데없이 벌크업된 것이 아니라 근육이 완벽하게 압축되어 있다.

이런 몸으로 휘두른 무지막지한 주먹을 전력으로 맞았을 이토 소우타를 생각하니 괜스레 다시금 웃음이 나왔다.

‘죽지 않은 게 대단한 거야.’

아마 맞는 그 순간 전력으로 자신의 몸을 보호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를 토하는 것을 보면 녀석 역시 치명상을 입은 셈.

까놓고 말하면 내가 입은 대미지보다 이토 소우타가 받은 대미지가 곱절로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조금은 황급히 파티장을 빠져나간다.

정하얀도 계속해서 눈물을 닦으며 이쪽을 따라오고 있었고 이지혜는 장내를 진정시켜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여전히 입을 털고 있는 편.

내가 무사하다는 걸 확인했으니 계속해서 남아 작업을 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조금 섭섭하기는 했지만 그게 이지혜답다.

‘나한테 유리한 행동이기도 하고….’

아무튼 간에 이기영호는 전력으로 순항 중.

안락한 병실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고 있다.

병실에 도착하자마자 이쪽을 침대 위에 눕힌 차희라의 표정은 아직도 조금은 심각해 보인다.

사제들이 들이닥치고 다시 한번 치료가 시작되고 있는 와중에도 웃음을 참을 수가 없을 지경.

정하얀 역시 한발 물러나 나를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차희라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상태는?”

“많이 괜찮아진 것 같습니다, 차희라 님. 이대로 안정을 취하시면 다른 부작용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고했어. 이만 나가 봐.”

“네.”

“세컨드, 너도 나가.”

“싫….”

“하얀아, 오빠 방에 가면 두 번째 서랍장에 편지 하나가 있을 거야. 지금 가서 무녀한테 전해 주면 돼.”

“오, 오빠… 흐으으으으윽….”

“몸은 괜찮으니까 오빠 말 들어야지?”

“으… 응.”

“옷도 갈아입고 씻고 오면 돼.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그것만 전해준 다음에 계속 같이 있자. 착하지? 카스가노 유노한테도 이제는 괜찮다고 전해주고.”

“네. 네….”

차희라가 어째서 정하얀까지 나가라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 잠깐 동안 정하얀이 이 방을 떠나줬으면 좋겠다.

마침 그녀가 꼭 해야 할 심부름은 딱 좋은 변명거리인 셈.

아직도 눈에 한가득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에 조금 미안하기는 했지만 저렇게 걱정하고 있는 표정 앞에서 대놓고 웃음을 터뜨릴 수는 없지 않은가.

이미 사제들은 황급하게 방을 빠져 나갔고 정하얀도 못 이기는 척 천천히 병실을 빠져나간 상황.

그동안 꾹 참아왔던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푸히하하흐흐하하하하핫.”

“…….”

“푸하흐허허허헛. 쿨럭!”

“…….”

너무 심하게 빵 터져 기침이 나올 정도. 그런 나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는 차희라의 모습이 보였다.

“십년 묵은 체증이 싹 하고 내려간 기분인데. 누나, 이토 소우타 표정 봤어? 쿨럭. 푸흐흐흣.”

“…….”

“내 생각보다 훨씬 완벽했어. 진짜로… 사실 거기서 놈이 누나 주먹을 피하는 게 더 베스트였는데… 그건 좀 아쉽게 됐네. 거기서 때려 죽여 버렸으면 조금 더 일이 편해졌을 거야. 아니, 지금 생각해 보면 살아 있어서 다행이네. 아직 준비한 선물이 많이 남아 있는데 벌써 뒈지면 안 돼지. 누나도 조절한 거지? 아니면 그 새끼가 반응이 빨랐던 건가. 푸흡. 뭐 어찌됐든 괜찮았어. 쿨럭.”

계속해서 웃고 있는 와중에 차희라의 표정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왜 저래.’

당연히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차희라의 얼굴에는 미세한 분노마저 느껴졌으니까. 한참 동안이나 잠잠히 있던 차희라가 조용히 입을 열어왔다.

“자기.”

“응?”

“이게 웃겨?”

‘얘는 또 왜 저러는 거야.’

“이게 웃기냐고, 이 새끼야. 이토 소우타고 나발이고 네가 방금 뒈질 뻔했다는 건 인지하고 있는 거지?”

“안 죽….”

“안 죽었으니까 됐다는 개소리는 집어 치워. 조금만 늦었어도 넌 정말 뒈질 뻔한 거야. 어쩌면 평생 불구로 살아갈 수도 있었다고. 내가 팔을 잘라내지 않았으면….”

“그래서 희라 누나를 믿는다고 이야기했잖아.”

“그걸 말하는 게 아니야. 네 태도에 대해서야. 지금까지 살면서 여러 미친놈을 봐왔지만 너처럼 미친놈은 처음이다, 이 새끼야. 자기 목숨을 배팅하는 놈들도 가끔은 봤지만 너처럼 웃는 놈은 처음이야. 그렇게 뒈지고 싶어?”

“아니….”

“뒈지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 내가 직접 때려 죽여줄 테니까.”

“누나 왜이래?”

뭔가 평소답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강했다.

완벽한 몰카에 같이 웃음을 터뜨릴 줄 알았던 차희라가 이런 모습을 보이니 당황스럽기는 나도 마찬가지.

그렇지만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서는 어째서 그녀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대충 눈치챌 수 있었다.

‘허….’

용병여왕이 이런 모습을 보일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얘 설마….’

혹시라도 차희라가 이쪽에 진짜로 빠진 건 아닌지 생각하기는 했지만 일단은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이쪽에 목을 매는 그림은 아무리 상상해도 그려지지 않는다.

조금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최소한 이쪽을 걱정하고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아니, 그녀의 말대로 그녀가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청신호라고 할 수 있으리라.

“걱정했어?”

“입 닥….”

살짝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자 조용히 입을 다문 그녀의 얼굴이 한눈에 들어왔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누나.”

“너….”

“누나가 있었기 때문이야. 그래서 웃을 수 있었던 거야. 누나가 실수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 나는 목숨을 배팅한 게 아니야. 죽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너….”

“고마워, 희라야.”

잘 움직이지도 않는 한쪽 팔로도 그녀의 얼굴을 잡고 살짝 끌어당기자 어처구니없게도 그녀의 몸이 이쪽으로 딸려오기 시작했다. 조용히 입술을 가져다대니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그녀의 몸이 느껴졌다.

‘긴장했네.’

나도 믿기지 않지만 차희라는 지금 틀림없이 긴장하고 있다.

물론 그것도 잠깐, 자연스럽게 나를 갈구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내 생각이 반 정도는 맞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다친 팔을 꽉 잡은 모습은 가관. 어쩌면 덮쳐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아!”

“미, 미안.”

“아니야, 희라 누나.”

이런 반응은 또 색다르다.

본인도 본인답지 않은 행동을 했다는 걸 알았는지 조금 민망해하는 느낌. 필사적으로 말을 돌리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아무튼 생각대로 잘 됐다고 하니 다행이네.”

“응. 이 정도면 충분해. 상황을 확실히 뒤집었거든.”

“다른 생각은 있는 거 맞지? 일단 지르라는 대로 지르기는 했는데 자기가 알고 있다는 비밀이 뭔지 사람들이 전부 궁금해할 거야. 어째서 이토 소우타가 자기를 죽이려고 했는지에 대해서 알고 싶어할 거고.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별 다른 일 없이 풀려날 수도 있어.”

“그건 알고 있어. 신성제국에서는 분쟁을 싫어하니까.”

“대형 길드의 마스터를 처형한다는 것도 확실히 애매한 문제고… 교황청측이 야마토 길드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아마 일주일 정도 뒤에는 자기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모임장에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겠네.”

“걱정하지 않아도 돼. 누나한테만 알려주는 건데, 내가 따로 작업하고 있는 게 있거든.”

“뭐?”

“방금 전에 하얀이한테 심부름을 시킨 것도 관련된 일이라고 보면 돼.”

무척이나 궁금하다는 표정.

계속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미 알게 될 일이다.

조금 먼저 말해준다고 해서 계획이 틀어지지는 않는다.

그녀에게는 조금 쌩뚱 맞은 소식일 것이다.

“일본에 물약을 풀었거든.”

“뭐?”

“파란에서 카스가노 유노를 통해 일본으로 물약을 유통시키고 있어. 물론 대외적으로는 무녀와 파란은 이 물약과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취할 거고… 일본의 신생 클랜이 이 물약을 개발하고 유통하고 있다는 게 사람들이 알게 될 진실이 될 거야.”

“너… 이새끼….”

“물론 신생 클랜을 앞세워 이 물약을 유통시킨 진짜 흑막은 이토 소우타라는 소문도 퍼지게 되겠지. 그놈의 절차 때문에 놈의 움직임이 제한된 지금이 언론 플레이를 하기에 딱 좋은 시기라는 거지. 당연하지만 이쪽에서 직접적으로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지는 않을 거야. 들어놓은 보험이 조금 많거든. 진실은 아주 조금씩 조금씩 드러나게 될 거고… 그게 결국 놈의 목을 조르게 될 거야.”

“이토 소우타가 교황만이 아니라 귀족들에게도 이미지가 좋다는 건 알고 있는 거지, 자기?”

“그래서 더 좋다니까, 누나. 사람들은 악인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어. 오히려 이미지가 좋은 경우가 조금 더 작업하기 편해. 모르긴 몰라도 이토 소우타가 다시 사교계에 모습을 드러낼 때 즈음이면 놈에 대한 여론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어 있을걸. 재기가 불가능해질 정도로 이미지를 조져놓을 수 있어.”

“…….”

“원래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어 하는 게 뭔지 알아?”

“뭔데….”

“남 뒷담화 까는 거.”

조금은 당황스러워하는 차희라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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