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
회귀자 사용설명서 131화
마녀 사냥(1)
할 일 없는 귀족들이나 귀부인들은 본래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개인적으로는 거의 모든 인간이 좋아할 만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착한 가면을 쓰고 있었던 이토 소우타가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죄 없는 일반인을 암살하려고 했다는 소식은 이 사교계를 뒤흔들 만한 이야기로 충분했다.
놈이 그저 그런 놈이었다면 이 정도로 파장이 있었을지는 의문.
서글서글하고 이미지 좋고, 사교계의 아이돌로 군림하던 놈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파장이 클 것이다.
차희라와의 대화가 끝난 이후 하루 종일 정하얀을 달래주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는 게 조금 아깝기는 했지만 들려오는 이야기에 기분이 좋은 것은 매한가지.
벌써부터 열심히 이지혜가 작업을 치고 있다는 소식은 나를 무척 기분 좋게 할 정도였다.
물론 나 역시 틈틈이 이빨을 털어놓기는 했지만 이런 종류의 뒷담화는 그 여자가 전문이니까.
‘오늘은 나도 같이 입 좀 털어 봐야지.’
아무튼 간에 오늘 이쪽을 찾아온 것은 꽤나 오랜만에 보는 카스가노 유노. 조용히 무릎을 꿇고 내게 조아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주인님.”
“물론, 생각보다 후유증도 없고 움직이는 데도 별 무리가 없거든.”
“그… 많이 고통스러우셨는지.”
“아프긴 했지만 별거 아니다. 사전에 진통제를 먼저 먹어두기도 했고… 사실 마력으로 내부를 뒤집는 듯한 느낌 때문에 별로 효과가 없기는 했지만… 그보다 유통 건은 어떻게 되고 있지?”
“주인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전부 처리했습니다. 이미 시중에 상품으로 나왔고 판매율도 좋은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오늘 기준으로 정확히 순이익 2만 골드를 넘어섰습니다. 그전에 암시장에 내놓았던 것은 제외한 수치입니다.”
“괜찮은데? 기간이 짧다는 걸 생각하면 나쁘지 않아.”
“네. 단순히 개인의 만족을 위해서 구매하고 있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고… 아마 조금씩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사옵니다.”
“나쁘지 않네.”
팔리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가격으로 책정한 것은 물론 잠깐 동안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해준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런 꿈도 희망도 없는 세계에서 팔려나간다는 그다지 이상한 이야기가 아니다.
저주 받은 신단에서 개발했던 정신치료 물약의 개량형.
문제는 이 물약이 가지고 있는 약간의 중독성에 있다.
약사와 함께 상의하면 큰 문제는 없지만 애초에 내가 약사인 상황에서 그 물약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이가 있을 리가 없다.
“들키지는 않았겠지?”
“네. 물론입니다, 주인님. 암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물건은 제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업장을 통해 세탁하고 있고 물약을 판매하고 있는 신생 길드 역시 절차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야마토 길드원들 중에서도 물약을 이용하고 있는 이들이….”
“그건 또 재미있는 소식이네. 야마토 길드에서 들려온 다른 소식은 없나?”
“정확히는 파악할 수 없습니다만 이토 소우타가 조사를 받게 된 이후에 길드의 분위기가 조금 바뀐 것 같습니다. 저희 길드와는 교역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고 계속해서 다른 길드와 접선을 하고 있는 상태이옵니다.”
“대처는?”
“저희 길드 역시 계속해서 타 길드와의 접촉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인님. 현재 일본 내에서도 이토 소우타의 여론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좋네.”
간만에 들려오는 훈훈한 소식.
이곳뿐만이 아니라 저곳에서도 놈의 여론이 좋지 않다는 건 무척 행복한 소식이다.
아마 같은 대형 길드인 요조라에서 직접적으로 녀석을 비난하고 있으니 나오는 반응일 터, 물론 일부 우익들 때문인지 요조라 역시 여론이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차피 일이 모두 끝나면 모두 해결될 이야기다.
“혹시라도 특이사항 있으면 계속해서 보고할 수 있도록.”
“네. 주인님. 계속해서 예의주시하고 있겠습니다.”
“아. 혹시 보이는 것은 없나?”
“예. 아직까지는….”
“좋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한 능력이군.”
“송구합니다. 벌, 벌을 내려주시옵소서.”
다시 한번 납작 엎드리는 모습이 보였지만 그녀가 원하는 벌을 내리기에는 그다지 타이밍이 좋지 않은 것 같은 느낌.
밖에서부터 차희라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자기? 카트린 공작부인이랑 약속 있다고 하지 않았나?”
“아. 곧 나갈 거야, 누나.”
조금은 불편한 것처럼 들리는 목소리였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조금 달라지기는 했지만 가장 변화한 것은 차희라와의 관계.
조금 이상한 모습을 보여줬던 저번의 일은 까맣게 잊어버린 것처럼 행동하고는 있기는 했지만 요즘은 부쩍 이쪽으로 말을 걸어오는 빈도가 잦아졌다.
특히나 카스가노 유노와 함께 있을 때는 티가 날 정도로 나를 찾았는데 아마 미래의 유노가 나와 맺어진다는 소리를 신경 쓰고 있는 것이리라.
‘티를 못 내고 있을 뿐이지.’
그녀는 자존심 강한 용병여왕이니까.
나 역시 차희라가 어째서 예전과는 조금 다른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개인적인 계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게 본래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물론 그녀 안에 내 존재가 커졌다는 추론 역시 내 설레발일 가능성도 있지만 정황상 이전보다 조금 더 크게 자리 잡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일이지.’
“이만 나가봐야겠군.”
“네. 뜻대로 하시옵소서.”
“네게는 항상 고맙다.”
용병여왕도 용병여왕이지만 카스가노 유노 쪽을 관리해 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천천히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는 것만으로도 정하얀처럼 행복에 겨워하는 모습.
확실히 카스가노 유노는 다루기 편하다.
난이도로 따지면 최하.
이미 나에게 자신의 몸까지 맡겼으니 다른 말은 필요 없다.
“즐거워 보이십니다, 주인님.”
“아. 너와 함께 있는 게 따분했던 것은 아니다. 카트린 공작부인과 함께 이토 소우타를 욕하는 게 즐거울 뿐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아, 신성제국에 인물들과도 계속해서 친분을 유지하고… 아무튼 다음에 또 보자구나.”
살짝 방문을 여니 차희라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잠깐 동안 무녀를 바라보는 모습은 조금 묘하게 느껴질 정도.
카스가노 유노는 고개를 숙일 뿐 별로 반응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차희라의 시선은 느낀 모양인지 조용히 그녀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아.”
“자기는 일 봐. 여자끼리 잠깐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괜찮지? 무녀?”
“네. 물론입니다. 저 역시 차희라 님과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요. 밀린 일이 있기는 하지만 잠깐이라면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거 잘됐네. 그럼 조금 있다 봐. 자기.”
“…….”
무슨 이야기를 할지 조금은 무섭기는 했지만 뭔가 연관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 것이 당연.
당장 약속이 있기도 했고 지금은 둘이 나누는 대화보다 내 즐거움을 나누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
잠깐 동안 빠져 있는 빅터하르트 영감을 대신해 나온 제국의 기사들과 함께 발걸음을 옮기니 정원에서 티타임을 가지고 있는 귀부인들이 시야에 비쳤다.
“아, 이기영 님.”
“반갑습니다. 카트린 공작부인 그리고 엘리제 백작부인, 아! 오늘은 마를린 영애도 함께 오셨군요. 다른 분들도 모두 오랜만입니다.”
“오늘 기영 님과 티타임을 가진다는 소리에 다들 참가하고 싶다고 하지 뭐예요? 몸은 조금 괜찮으세요?”
“사실 아직까지는 조금 움직이기 불편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우신 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야 있겠습니까. 지난번 일로 많이 놀라셨을 텐데… 이렇게 오늘 또 불러 주셔서 무척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희 역시 그때 당시에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밖에는 없는 걸요.”
“누구라도 무서워할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오히려 따로 찾아주신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렇게 모임에 초대해 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합니다.”
“아니요. 기영 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건 저희도 무척 즐겁거든요.”
즐겁지 않을 리가 없다.
화술이 그렇게 뛰어나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적재적소에 감탄하거나 박수를 쳐주는 것만으로도 할 일 없는 귀부인들은 신나 죽는다.
대화의 주제도 주제지만 현재 이 왕성에서 내가 제일 핫한 인물이다 보니 이들에게는 나와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우월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소문도 빠를 거고….’
집단 커뮤니케이션의 거미줄.
그 중심에 있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으니 왕성 내에 퍼지는 건 순식간.
사건 사고를 안주 삼아 차를 마시는 시간은 나 역시도 즐겁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부터 수다를 떨고 있는 누님들을 보니 미소가 지어질 지경.
이런저런 주제로 대화를 이끌어 나가기는 하지만 어차피 모든 대화의 결론은 녀석으로 귀결된다.
“참… 그렇게 안 봤는데 조금 무서운 사람인 것 같더라고요.”
“네네. 그렇죠. 설마 사교모임에서 그런 짓을 저지를 줄은 누가 알았겠어요? 아직도 그날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니까요.”
“엘리제 백작 부인께서도 역시 그러시군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교황청 측과는 사이가 좋은 것 같아서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사람 속은 알 방법이 없네요.”
“사실 제가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요….”
“아! 마를린 영애 뭔가 들은 게 있으신가요?”
“네. 조금은 민감한 이야기라… 교황청 쪽에 있는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랍니다. 여러분이라 믿고 말씀 드리는 이야기지만 꼭 비밀을 지켜주셨으면 좋겠어요.”
“네. 물론이죠.”
장담컨대 지금 내 앞에 있는 마를린 영애가 하는 이야기는 이 모임이 끝난 지 3시간도 지나지 않아 모든 왕성에 퍼지게 될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비밀이 될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이토 소우타, 그분이 교황청 쪽에 있는 아리엘 대수녀님과 그….”
“네에?!”
“쉬잇. 목소리 낮춰주세요. 엘리제 백작 부인.”
“부적절한 관계에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더라고요. 물론 정확히 확인되진 않은 이야기지만 한 밤중에 교황청에 들락날락 거리던 걸 생각해 보면 뭔가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
“사실 아리엘 대수녀님도 소문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시죠. 그렇게 웃는 얼굴을 하고 뒤로는 그런 짓을 하고 있었던 거네요. 어쩐지 이 모임 때 유난히 왕성에 들락날락거리고 계신다고 생각했어요.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었는데 설마 이토 소우타 그 사람과 관련되어 있을 줄이야….”
“교황청도 예전 같지 않으니까요. 아, 물론 신에게 봉사하는 그 분들의 마음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조금 안 좋은 행동을 하시는 분들이 있잖아요?”
“사실 이것도 실리아에 있는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이토 소우타 그 사람은 자유 도시에서의 평판은 그다지 좋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네?”
“아녀자들을 희롱한다든가 약자를 괴롭힌다든가 기사답지 못한 행동을 많이 보였다지 뭐예요. 대형 길드의 수장인 만큼 모두들 모른 척하고 있지만 요즘 영향력이 약해졌는지 최근에서야 그런 비판들이 나오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
“뒷세계의 주인이라는 말도 있고 암시장을 운영하고 이종족 노예들을….”
“어머… 무서워라.”
굳이 내가 입을 털지 않아도 녀석은 전력으로 쓰레기가 되어가는 중이다.
교황청과 구린 관계에 있다는 것은 물론, 삼류 파락호도 하지 않을 이상한 같은 소문들이 확산되고 만들어진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소문들은 대부분 진실이 되어 왕성을 떠들썩하게 만들 것이 분명.
나 역시 무척이나 즐겁게 대화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아. 저도 그건 들은 적이 있습니다.”
‘들어본 적 없다.’
“암시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이건 내가 퍼뜨린 소문이다.’
“어머… 정말인가요?”
“네. 다양한 물건들을 구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저희 자유민의 입장에서는 사실 야마토 길드의 성장 속도가 비정상적이라고 평가하는 호사가들이 조금 많습니다. 물론 그 길드가 이룩한 업적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던전 공략이나 다른 성과들에 비해 길드가 너무 커졌으니까요.”
“어머, 어머….”
“정확히 뭐라고 말씀드리기는 힘들지만 안 좋은 방법으로 덩치를 키우고 있다고 하더군요. 아, 물론 출처는 정확하지 않습니다만….”
오늘 이후로 출처까지 정확해질 것이다.
“그렇군요. 혹시 알고 계시다는 게… 관련된 일인가요?”
“네. 그렇지만 아직 말씀드릴 시기가 아닙니다. 저로서도 조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괜한 분란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돼서 말입니다.”
“이기영 님을 그렇게 다치게 한 걸 보면 그냥 흘러나오는 소문은 아닌 것 같아요. 뭔가 뒤로 켕기는 게 있겠죠?”
“참… 그 동안 그 사람이랑 같이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눈 게….”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니까요. 안 그런가요? 마를린 영애?”
“네. 카트린 공작부인 말씀이 맞아요. 아버지께도 단단히 말씀드려야겠네요.”
“저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남편한테 꼭 말해야겠네요.”
이래서 내가 여기 오는 걸 멈출 수가 없다.
이토 소우타가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면 어처구니없어 실소를 흘릴 정도의 상황.
시간이 조금 지나자 직접적인 비난이나 나쁜 말들도 튀어 나오고 있다.
“더러운 쓰레기.”
“그런 사람들 때문에 다른 자유민들도 욕을 집어먹는 거 아니겠어요? 물론 기영 씨를 말하는 건 아니지만….”
“아닙니다. 저도 충분히 여러분들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이해하다마다.
이렇게 재미있는 걸 어떻게 끊을 수 있단 말인가.
‘개 재밌어!’
내일은 또 어떤 소문을 퍼뜨릴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진다.
따뜻한 햇살과 맛 좋은 차. 무엇보다 재미있는 뒷담화.
‘이게 사람 사는 맛이지.’
이건 마약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