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
회귀자 사용설명서 133화
마녀 사냥(3)
이토 소우타의 재판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문장은 단순했지만 의미하는 바는 컸다. 미쳐 날뛰는 상황에 처해 있었던 린델 시민들은 이게 바로 정의라며 술잔을 부딪쳤고 실리아에 있는 인원들은 갑작스러운 소식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물론 재판을 열어달라고 한 것은 이토 소우타였지만 저 멀리 린델과 실리아의 있는 인원들이 그 소식을 알고 있을 리가 만무.
우리 쪽에서도 굳이 녀석이 재판을 원했다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없었고 이토 소우타 역시 그 소식을 실리아에 전하지 않았다.
저번에는 내가 피해자가 되었으니 이번에는 자신이 피해자가 되겠다는 심산.
그렇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놈이 재판을 받는다는 사실 그것 하나뿐이다.
일본 내 여론을 조작하겠다는 고약한 심보는 이미 카스가노 유노가 어느정도 막아주고 있었으니까.
‘가해자.’
사실 대부분의 민중에게 이런 속사정이야 알 바가 아니다.
오로지 녀석이 가해자의 입장으로 법정에 선다는 것, 선량한 이기영이 살인미수혐의로 붙잡혀 재판을 진행한다는 것.
‘이걸로도 충분해.’
지금 당장은 이걸로도 충분하다.
아마 재판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재판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피해자 이기영에게 해를 끼친 가해자인 이토 소우타의 처벌 수위에 대한 문제지만, 이 재판의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이들은 이 자리가 정치 싸움의 장이 될 거라는 것을 대충은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바로 그게 이지혜가 불안해하고 있는 이유였다.
“조금 갑작스러워서 준비가 잘 됐는지 모르겠네요, 오빠.”
“충분해, 지혜 누나. 법관들과 이야기도 잘 되어 있고 교황청측과도 나쁘지 않잖아?”
“초조해서 그래요. 오빠가 뭘 숨기고 있는지 대충 알 것 같지만 나도 신경 쓰이는 게 있으니까. 준비해 놓은 보험이 있다고는 해도 그게 맞아 떨어질 지는 확신할 수 없고… 아마 재판은 그저 명목에 불과할 수도 있어요. 이곳의 재판은 현대랑은 조금 다르니까요. 자신을 변호하면서 무슨 말을 할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걱정되는 게 당연하잖아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우리 이토 소우타 상은 똑똑하니까.”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지혜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걱정하고 있는 모습은 처음. 뭔가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나쁘지는 않다.
이지혜가 가닥을 잡고 있다는 건 녀석 역시 어느 정도 가닥을 잡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거니까.
“믿을게요.”
“응. 믿어도 돼, 누나.”
불안하기는 했지만 피어오르는 불안을 떨쳐내기로 마음먹은 모양.
딱 좋다. 이지혜가 최대한 신경을 쓰지 않았거나 못했다는 건 그만큼 일이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어떤 걸로 이쪽을 털어올지 나름대로 궁금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계산이 되어 있다는 거다.
굳이 혼자서 이중 삼중으로 함정을 판 이유는 최대한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이쪽에 궁금한 것이 많은 표정에는 슬그머니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마침 재판을 기다리기도 지루했고 일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역시 궁금해?”
“궁금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신경 쓰지 말라고 해서 신경 쓰지 않고 있을 뿐이에요. 본래 함정이란 건 그렇게 파야 되는 거니까. 제가 빨빨거리면서 움직이는 게 방해된다는 거 아니었어요? 아무래도 여럿이 움직이면 눈에 더 띌 테니까.”
“정확히 말하면 그건 아니야. 아마 일반적인 상황이었으면 우리 지혜의 도움을 받는 게 더 좋았겠지. 조금 더 완벽한 함정을 만들 수 있었을 테니까. 내가 굳이 누나한테 비밀로 하고 일을 진행시킨 이유는 이토 소우타에게 내가 조심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야. 그게 바로 보험이고. 누나 생각은 어때? 일이 어떻게 진행될 것 같아? 아니… 이 질문부터 먼저 할게. 단순한 심증으로는 어디까지 닿을 수 있었어? 내 본래 계획이 뭐였을 것 같아?”
잠깐 고민하던 이지혜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일단은….”
“응.”
“이토 소우타의 정치생명을 완전히 끝내는 것부터… 교황파와 황제파 둘 모두에게 놈을 격리시킨 이후에 천천히 끝내려고 했겠죠. 수단은….”
“수단은?”
“아마 오빠가 현재 일본에 풀고 있는 마약. 그 외에도 몇 개 보이는 게 있지만 나머지는 그저 시선을 끌기 위한 가짜라고 생각했어요. 노예매매나 장기밀매 암시장 운영 같은 헛소문은 대부분 날조된 정보니까.”
“알고 있었네?”
“물론 물증은 하나도 없어요. 그냥 흐름상 그리고 심증으로… 그렇게 되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죠. 당연히 혼자만 알고 있었던 거예요. 따로 뒤를 캐지도 않았고, 설사 뒤를 캤다고 해도 움직임이 제한적인 제가 알기에는 무리가 있었을 거예요. 마약이라는 명확한 증거로 지금까지 이토 소우타가 했던 범법행위를 한 대로 묶어 완전히 끝장내자는 게 계획 아니었나요?”
“조금 더 쉽게 말해줘, 누나.”
“이토 소우타가 운영하고 있는 야마토 길드가 실리아에 마약을 풀고 있다는 날조된 정보로 놈을 끝장내는 게 본래의 계획.”
“그래, 그게 첫 번째야. 그럼 내가 왜 이 건을 누나나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을까.”
“조심해야 되니까. 여러 가지 이유야 있겠지만 가장 확실한 정답은 이거네요.”
“그것도 정답이긴 해, 누나. 그렇지만 아까 말했듯이 여기서 중요한 건 이 일에 내가 최대한 조심스러워 한다는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는 거야. 가장 신뢰하고 믿고 있는 나의 대리인에게도 알리지 않을 정도의 묵직한 한 방을 준비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거지.”
“그거….”
“물론 실제로도 내가 날조한 정보들은 묵직한 한 방이야. 이기영 살인미수 사건도 그냥 거쳐 가는 통과의례에 지나지 않고…. 만약 도시 내에 새로운 물약이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면 놈은 마약유통 죄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겠지. 도시 내에 불법적인 물약을 유통했다는 죄를 뒤집어쓰는 거야. 이게 첫 번째 루트였어.”
“이해했어요.”
“여기에서 경우의 수가 하나 더, 이번에는 놈이 그 물약의 존재를 알아 차렸을 경우를 생각해 보자고.”
“네.”
“내가 지금 유통하고 있는 물약이 수상하다고 생각한 것도 모자라 함정이라는 것을 깨닫고 뒤를 조사해 봤을 경우야. 개인적으로는 이 편이 조금 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 무려 본인이 먼저 재판을 열어달라고 말했으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마 찾기 어려울 거야. 이건 나와 카스가노 유노만 알고 있는 정보거든…. 놈이 유능하다면 도달하거나 정보를 날조할 수 있겠지만 아마 조사하는 내내 진땀을 뺐을걸. 아까 말했듯이 이건 지혜 누나조차 관여하지 않았던 작업이었으니까. 뒤를 캐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거야. 증거가 나오지 않으니 수상하다고 생각했겠지. 예를 들면….”
잠깐 뜸을 들이자 이지혜가 급하게 입을 여는 게 보였다.
“예를 들면 준비하고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는 거?”
“응.”
“대충 무슨 뜻인지 알겠네요. 근데 만약에 이토 소우타가 두 번째로 예상하고 있었다면요? 오빠가 자신을 물약 건으로 보내버리려고 하는 것도 이미 알고 있고…. 오빠의 다음 수까지 알고 있다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
“내 다음 수가 뭐일 것 같은데?”
“제가 오빠라면 카스가노 유노한테 죄를 뒤집어 씌었을 거예요. 카스가노 유노랑 이토 소우타를 쌍으로 묶어 보내 버리는 게 가장 합리적이고 할 만한 생각이겠죠. 이토 소우타가 법정에서 현재 실리아에 물약을 유통하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이기영와 카스가노 유노라고 발언한다면 빠져나갈 구멍은 카스가노 유노밖에 없잖아요?”
“푸핫.”
“거짓증언을 해서 둘 다 보내버리는 게 맞죠. 그렇지만 카스가노 유노는 여기서 버리기 아까워요, 오빠. 만약 제 생각이 맞다면 차라리 지금 이라도 계획을 수정하는 게 나아요. 화난 건 이해하지만 미친놈한테 그 무녀를 소비하는 건… 수지에 맞는 장사는 아니에요.”
“내가 그 정도로 쓰레기로 보여?”
“그저 제가 오빠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했을 뿐이에요. 그게 제일 합리적인 선택이니까요.”
“네 말이 맞아. 확실히 합리적이기는 하지만 나는 카스가노 유노를 버릴 생각이 없어. 정말로 이토 소우타가 물약의 뒤를 캐는데 성공해서 이후에 있을 재판에 내가 물약을 유통하고 있다는 정보를 들고 왔다고 치자. 그래서 내가 위기에 빠졌다고 쳐.”
“네.”
“애초에 전제부터 잘못됐어, 누나.”
“무슨 뜻이죠?”
“이거 마약 아니야.”
“뭐라고요?”
“이거 마약 아니라고…. 정확히 말하면 내가 마약이라고 말하면 마약이 되고, 마약이 아니라고 증언하면 마약이 아니게 되는 물건이야.”
“아….”
“이토 소우타가 이 물약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면 이 물약은 마약이 될 거야. 녀석은 순식간에 마약사범이 돼서 목이 잘려나가거나 치명적인 타격을 입겠지. 반대로 이토 소우타가 물약을 유통한 증거를 들이 밀어 나를 마약사범으로 몰면 이 물약은 마약이 아니게 될 거야.”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 거죠?”
“왜 그런 게 가능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이 물약의 성분을 검출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어. 이 대륙에서 연금술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어, 누나. 이 물약은 내가 만든 오리지널이고 내 머릿속을 열어 보지 않는 한 레시피도 알 수가 없거든.”
“아….”
“누나한테만 살짝 말해줄게….”
“네.”
“이 물약에 베이스가 되는 촉매가 뭔지 알아?”
“…….”
“성수야.”
“뭐라고요?”
“성수라고. 신성제국 베니고어 왕국에서 정식으로 취급하고 있는 성수. 이토 소우타가 이 물약을 마약이라고 말하는 순간, 거기서 게임은 끝이야. 성수로 만든 물약을 마약이라고 말하는데 이게 신성모독이 아니고 뭐겠어? 푸하흐하하하핫. 이 물약의 존재에 대해서 알았다고 해서 뭐 어쩔 건데? 지가 뭘 할 수가 있겠어. 이 물약이 성수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죽어도 알지 못할 텐데.”
“…….”
“푸하하하하핫.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마약사범이 돼서 죽는 게 마음 편할 거라는 거야. 괜히 상황을 뒤집어 보겠다고 나한테 마약을 유통했다 어쨌다 하는 순간 이단심문관들이 출동할 거라고! 푸허하핫. 쿨럭 쿨럭. 그래, 그 새끼 똑똑한 거 나도 인정해, 지혜야.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토 소우타가 똑똑하든 멍청하든 내가 만든 물약이 일본에 들어간 순간부터 게임은 끝난 거야. 그놈은 연금술사가 아니거든.”
“아….”
“어차피 선택지는 정해져 있었다는 이야기야. 푸하하하히하핫! 그래서 내가 녀석이 최악을 선택했다고 말한 거였어, 누나. 내가 유통한 물약으로 나를 공격하려고 마음먹은 게 맞다면 번지수를 잘못 잡았다, 이거야. 이단으로 가족부터 길드원까지 싸그리 뒈지는 거라고…. 여긴 신성제국이니까.”
조용히 나를 바라보는 이지혜가 시야에 비쳤다. 아마 지금 그녀 나름대로 머릿속으로 정보를 정리하고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많지만 일단 대표적으로는 두 가지.
첫 번째로 이토 소우타가 이 물약에 대해 모르고 있을 경우. 준비한 것은 야마토 길드가 마약을 유통하고 있다는 날조된 증거. 이름하야 마약유통범 엔딩이다.
두 번째로 이토 소우타가 이 물약에 대해 알고 있고 나를 마약 유통범으로 몰아갈 증거를 가져왔을 경우, 준비한 것은 이 물약의 레시피. 담담하게 이 위대한 물약을 배포한 것은 나라고 이야기하면 된다. 이름하야 신성모독범 엔딩.
어느 쪽을 선택하든 녀석에게 펼쳐진 것은 지옥.
웃음을 참기가 힘들 정도였다.
“푸하흐허하하하핫!”
최근에 빵 터질 일이 꽤나 많다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지사.
그런 나를 바라본 이지혜의 얼굴이 묘하게 붉어졌다.
“오빠.”
“응?”
“오빠 정말로 섹시하네요.”
“네 취향이 이상한 거야.”
“끝내주는 쓰레기이기도 하고요. 정말로 매력적이란 말이야.”
“…….”
두 번째 발언에는 왠지 모르게 말문이 막힌다. 슬쩍 시계를 보니 꽤나 시간이 많이 지난 상황, 법정으로 향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자 이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무리하러 가자, 지혜야”
“정말로 기대되네요, 기영 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