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
회귀자 사용설명서 135화
진실 속에 섞인 거짓들(2)
‘알아 줬어!’
머리에 든 게 없는 병신이었다면 뭐가 자기의 목을 옥죄고 있을 지에 대해서 알지 못했겠지만, 조심성 많은 녀석이라면 틀림없이 눈치채 줄 거라고 생각했다.
말하는 타이밍도 나쁘지 않다.
아직 이쪽이 물약으로 녀석을 옥죄기도 전, 녀석의 입장에서는 먼저 선수를 친 입장이니 무척 좋은 타이밍처럼 느껴질 것이다.
회심의 한 방을 날리는 것 같은 오만한 표정을 보니 정말로 웃음을 참기 어려울 지경.
그렇지만 계속해서 심각한 척 연기하는 걸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자기최면을 외우는 것이 좋다.
‘나는 지금 위기에 빠졌다.’
잔뜩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것도 쉽지 않다.
‘연기 수업이라도 받을까.’
린델을 뒤지면 연기학원을 했던 사람이나 연기자 한 명쯤은 나올 지도 모른다.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며 최대한 웃음을 참고 있었을 때도 이토 소우타는 계속해서 회심의 한 방을 준비하는 중.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것을 느낀 것인지 관중들을 둘러보는 것이 보였다.
여유가 넘치는 모습은 누가 봐도 죄인이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녀석의 대리인단 중 한 명이 자그마한 물약을 꺼내는 것이 보였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메이드 인 이기영, 내가 생산한 제품이다.
“이 물약이 현재 일본에서 유통되고 있는 환상물약입니다.”
“재판과 관계가 없는 발언은 삼가주시길 바랍니다!”
이지혜에게도 미리 말해 놓기를 잘했다.
당황한 듯 책상을 쾅! 치며 일어서는 모습은 누가 봐도 켕기는 게 있는 것 같은 사람의 얼굴과 행동이다.
“이의 있습니다! 대법관님, 지금 저 사람은 본 재판과는 조금도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대법관님. 제가 지금부터 드릴 이야기는 틀림없이 이번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핵심적인 사안이며 빠뜨려서는 안 될 주제입니다. 존경하는 대법관님, 부디 발언을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토 소우타의 발언에 대법관은 고개를 살짝 저었지만 녀석이 심어놓은 법관 하나가 있는 모양.
슬쩍 대법관을 향해 귓속말을 하자 못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발언을 허락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아. 좋아.’
“말씀드렸다시피 이 물약은 현재 일본에서 유통되고 있는 환상물약입니다. 본격적으로 팔리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미 훨씬 전부터 암시장에는 암암리에 거래가 되고 있었습니다. 가격은 한 명에 20골드 정도, 비싸다면 비싸다고 할 수 있고 싸다면 싸다고 할 수 있는 가격입니다.”
“그래서 뭐가 문제란 말입니까, 피고.”
“문제는 이 물약의 효과에 있습니다. 존경하는 대법관님, 이 환상물약이라고 이름 지어진 그대로 인간에게 자기가 보고 싶은 환상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일종의 환각제인 셈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치명적인 중독성도 띠고 있지요.”
“이의 있습니다, 대법관님.”
“조금만 더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옆에서 딴지를 거는 타이밍이 장난이 아니다.
분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이지혜의 연기는 마치 극단에서 생활을 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
잠깐 동안 이지혜의 표정을 살피던 이토 소우타는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네. 여러분들의 생각이 맞습니다. 이 물약은 중독성을 띠고 있습니다. 마치… 마약처럼 말입니다.”
‘빙고.’
잘한다. 잘한다. 내 새끼!
응원이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문제는 이 물약을 우리와 어떻게 엮느냐에 대한 것.만약에 어거지로 엮을 생각이라면 번지수를 잘못 잡은 것 같지만 녀석의 표정을 보니 하고 싶은 말이 조금 더 있는 모양.
일단은 조금 더 지켜봐도 될 것 같았다.
“저희 야마토 길드에서는 이 물약이 암시장에서 팔리고 있을 때부터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물약의 출처에 대해서 알아내려고 굉장한 노력을 쏟아 부었습니다. 마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물약으로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은 물론, 자유 도시를 병들게 하려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했으니까요.”
“…….”
“처음 흔적을 발견한 것은 린델 테러 사건이 있었던 10월 1일이었습니다. 원고 측에서는 저희를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하고, 또 오해하고 있지만 저희 길드의 조사 결과 이기영 씨를 공격한 것은 자유 도시 실리아의 소형 길드 카케였습니다.”
‘이빨 한 번 잘 치네.’
“관련된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피고?”
“네. 그렇습니다, 대법관님.”
조심스럽게 녀석이 준비한 문서를 읽고 있는 대법관을 보니 아주 잘 짜인 날조인 모양.
아마 단기간 내에 소형 길드 카케에 대한 정보를 만들어내기 힘들었을 테니 이미 있는 길드를 희생양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소형 길드 카케는 불법적인 물건이나 약품과 같은 허락되지 않은 물건들을 유통하며 수익을 챙기는 범죄 길드입니다. 도시 내에 암암리에 퍼져 있기 때문에 자유 도시 실리아에서도 골칫거리라고 생각하는 집단이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추측이었습니다. 저희 길드가 가지고 있는 정보력으로도 어째서 카케 길드가 파란의 이기영 씨를 습격했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만 아주 작은 힌트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뭡니까, 피고.”
“린델 테러 사건이 단순한 테러사건이 아닌 마약 조직들 간의 영역 다툼이었다는 증거였습니다.”
‘캬아….’
“피고 그 말은?”
“예. 제가 말씀드린 환상물약을 일본에 유통시키고 있는 사람, 마약조직 간의 세력 다툼을 린텔 테러 사건으로 둔갑시킨 장본인. 그리고 신생 길드 요소가노소라의 주인이 바로 원고석에 앉아 있는 이기영 씨입니다.”
‘완벽해.’
정말로 완벽한 회심의 한 방이었다.
신생길드 요소가노소라의 주인인 것은 내가 맞다. 환상물약을 일본에 유통시키고 있는 것 또한 내가 맞다.
사실과 다른 것은 린델 테러 사건이 마약조직 간의 세력 다툼이라는 것.
진실 속에 교묘하게 날조를 섞은 것이 꼭 나를 바라보는 것 같은 기분.
문제는 저것들이 증거로 채택되느냐는 것이겠지만 일단은 내놓은 증거 자체는 퀄리티가 꽤 있어 보인다.
“지금도 원고석에 앉아 인상을 구기고 있는 이기영 씨는 미리 친분을 가지고 있었던 요조라 길드의 카스가노 유노와 결탁하여 신생 길드를 만들었습니다. 그 길드의 이름이 바로 요소가노소라입니다. 굳이 카스가노 유노를 끌어들인 이유는 암시장에서만 판매되는 물약을 정식으로 유통시키기 위해서였겠지요. 그리고 그들의 계획은 훌륭하게 적중했습니다.”
‘정답.’
“환상물약이라고 이름 지어진 마약을 의학 물약으로 속여 유통절차를 밟고 합법적으로 유통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마약은 아니지만, 정답.’
“며칠도 채 지나지 않아 저들은 몇 만 골드의 순이익을 남기는 데 성공했습니다.”
몇 만 골드뿐만이 아니다.
벌써부터 어마어마한 돈이 계속해서 이쪽으로 굴러들어오고 있다. 아무튼 간에 꽤나 놀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짧은 시간동안 이 정도로 진실에 근접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것도 움직임이 제한되어 있는 상태에서 날조된 증거를 만들면서까지 말이다.
확실히 놈이 유능하긴 유능한 모양.
살짝 표정을 구기자 놈이 더욱더 신나서 입을 여는 모습이 보였다.
“지난날에 있었던 율리에나 사건 역시 신성기사단과 저희 길드에서 따로 조사를 한 사실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조사 결과 또 재미있는 사실이 나오더군요. 저주를 내리는 검 율리에나에게 목이 꿰뚫린 카즈마 히로유키는 실제로 이기영 씨를 죽이려고 했었습니다. 정말로 주인의 위협을 감지한 율리에나가 카즈마 히로유키를 공격한 것도 틀림없이 사실입니다.”
“피고. 그렇다면 율리에나 사건에 대한 죄에 대해서는 인정한다고 말씀하기는 겁니까?”
“네. 길드원들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제 잘못이 맞습니다. 야마토 길드의 정길드원이었던 카즈마 히로유키가 가지고 있는 신분이 두 개였지만 일단은 저희 쪽의 길드원이 맞으니 제가 벌을 받는 게 마땅하겠지요.”
“그 말은….”
“네. 죽은 카즈마 히로유키는 카케길드의 일원이기도 했습니다. 린델에서의 암살이 미수로 끝나자 왕성 내에서까지 암살을 시도하려고 한 것입니다. 아마 카케 길드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겁니다. 마약조직의 분쟁이 거진 그런 것처럼 환상물약이 시중에 들어온다면 자신들이 판매하고 있는 약이 팔리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을 테니까요.”
“…….”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요소가노소라 길드를 운영하고 있는 이기영 씨를 제거하고 싶었을 겁니다.”
시나리오 한 번 대박.
이 정도면 극작가라고 불려도 될 정도로 손색이 없을 정도의 스토리 라인이다.
두 차례의 암살 사건을 마약 카르텔의 싸움으로 이끌고 가는 것. 누가 봐도 무척이나 재미있어질 만한 상황이었다.
“이기영 씨가 환상물약을 제작하고 유통하고 있다는 증거는 가지고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존경해 마지않는 대법관님. 환상물약은 사실 파란 길드가 저주받은 신단을 공략했을 때 중요한 역할을 해준 정신 치료 물약의 변형입니다. 파란 길드에서 판매하고 있는 저주받은 신단 공략일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상당부분이 환상물약과 유사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겁니다.”
“계속 말씀해 보세요, 피고.”
“파란의 공략일지를 보면 저주받은 신단이라는 던전은 일정 시간이 지날 때마다 점점 환청과 환각을 보게 되는 던전이라 기술되어 있습니다. 저희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환각과 환청을 억제할 수 있는 수단, 이기영 씨는 그 수단이 새로운 환각을 보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이론으로 탄생된 것이 바로 정신 치료 물약입니다.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환상물약과 다르다고 할 수 있는 점은 중독성을 띄고 있느냐 띄고 있지 않느냐는 것뿐입니다.”
“이의 있습니다. 대법관님! 피고는 가장 중요한 사건인 암살 미수 사건을 교묘히 배제한 이후에 다른 이야기로 말을 돌리고 있습니다. 지금 재판의 주요 명제는 환상물약 같은 것이 아니라 사교 모임 암살 미수 사건입니다.”
“아닙니다, 대법관님. 틀림없이 이 모든 일은 연관성을 띄고 있습니다. 사교 모임에 있었던 암살 미수사건은 베니고어 여신께 맹세컨대 제가 저지른 일이 아닙니다. 어째서 이기영 씨의 몸에 그런 이상이 생겼는지, 정확한 결론을 내리기는 힘들었지만 이 건 역시 카케 길드와 연관성을 띄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환상물약과 이기영 씨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언제 어디서 목숨을 노려져도 이상하지 않으니까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저희 야마토 길드와 저를 모함한 것 역시, 제가 환상물약의 뒤를 캐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암살 미수 사건 역시 본인의 자작극일 확률도 고려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다.
“본 재판이 환상물약에 대한 재판이 아니라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대법관님. 그렇지만 이 모든 일에 이 물약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추가로 이 물약에 대한 위험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원고석에 앉아 있는 이기영 씨에게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해 들어 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토 소우타는 완벽했다.
본인도 무척 만족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당연하지만 주변에 있는 관중들도 동요하고 있는 게 눈에 보인다.
녀석이 입을 털면서 계속해서 제시한 증거들은 누가 봐도 내가 나쁜 새끼라는 걸 가리키고 있었으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할 것이다.
완전한 날조라고도 볼 수 없다.
반 이상이 진실이다. 어떻게 이쪽의 뒤를 이렇게 잘 캘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작은 증거를 파고 파고 또 파고들어 결론에 도달한 녀석에게는 칭찬의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였다.
슬슬 말을 내뱉어야 하는 타이밍.
이토 소우타를 살짝 바라보니 한껏 입가를 비틀고 있는 놈의 얼굴이 보였다.
똥을 씹어 먹은 듯한 내 표정을 보고 자신이 이겼다고 확신한 것 같은 느낌.
당연하지만 나는 계속 인상을 구기고 있지 않았다.
찡그린 미간은 활짝 펴졌고 축 쳐진 입가는 한껏 올린다.
‘푸흡.’
녀석을 바라보며 미소를 보내고 고맙다는 표현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내 표정이 점점 변해가면 갈수록 당황하고 있는 녀석의 모습은 가관.
담담하게 입을 여는 순간 이토 소우타의 인상이 한 것 구겨졌다.
“제가 유통한 것이 맞습니다, 존경하는 대법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