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회귀자 사용설명서 136화
세 번째 카드(1)
“제가 유통한 것이 맞습니다, 존경하는 대법관님.”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려고 하는 웃음을 애써 집어 삼켰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이 경기를 바라보고 있는 갤러리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중. 바젤 추기경은 담담한 모습이었지만 그 외에 다른 이들은 갑작스럽게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 당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선한 미소를 보내오고 있던 이웃사람이 어느날 마약사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마 대부분이 저런 표정을 보낼 것이다.
내 입으로 말하기엔 조금 그렇지만 제국 내에서 내 이미지는 하늘을 뚫을 수 있을 만큼 좋았으니까.
내게 뭔가가 있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이토 소우타는 다급하게 입을 열기 시작.
그렇지만 현재 대중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녀석의 발언이 아니라 내 입에서 흘러나올 진실이다.
“자신의 죄를 저리 담담하게 고백하다니 뻔뻔하기 그지없군요. 대법관님 더 이상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까? 현재 원고와 피고는 명확하게 뒤바뀌어 있는 상황입니다. 어서 저자를 구속하고 절차대로….”
“구속과 절차라뇨? 제가 유통한 것은 맞습니다만 저는 제 입으로 저의 죄를 인정한 적은 없습니다. 아직도 피고는 당신입니다.”
“자유도시에 마약을 유통한 것이 죄가 아니면 무엇이 죄라는 말입니까. 죄 없는 사람을 가해자로 몰아붙이려고 한 것도 죄라고 한다면 죄라고 말할 수 있겠군요.”
“그러니까 저는 지금 당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이 말입니다, 이토 소우타 씨.”
“보여 지고 있는 그대로입니다. 이기영 씨. 지금 자신의 입으로 자신이 마약을 유통했다고 증언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는 겁니다. 소우타 씨.”
“시치미를 뗄 생각이라면….”
“환상물약은 마약이 아닙니다. 마약이 아니에요.”
계속해서 웃음이 터져 나오려고 한다. 당황한 듯한 놈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쪽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려고 하는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단순한 허세가 아닌가에 대한 가능성 역시 생각해 보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조심성 많은 녀석이니 만큼 이쪽에 뭐가 있다는 것을 가정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존경하는 대법관님, 제가 유통한 환상 물약은 마약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지금 이 곳에 계신 제국시민 여러분들께 제가 유통하고 있는 환상물약에 대해 해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확실히… 이건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요.”
“대법관님!”
“발언을 허락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주 좋다.
“이토 소우타의 증언은 대부분이 사실입니다. 저주 받은 신단에서 저는 정신치료물약을 만들었고 실제로 그 물약에서 힌트를 얻어 환상물약을 만든 것 또한 사실입니다. 카스가노 유노와 요소가노소라라는 신생길드를 만들고 그 길드를 통해 물약을 유통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암시장에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은 제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아마 그것 역시 사실일 가능성이 크겠지요.”
“계속 증언해 주도록 해주세요.”
“당연하지만 사실보다는 사실이 아닌 증언이 더욱더 많습니다. 린델 테러 사건이 마약조직 간의 싸움이었다는 말은 거짓이고 죽은 카즈마 히로유키가 카게 길드의 일원이었다는 것 역시 거짓입니다. 물론 암살 미수 사건이 제 자작극이었다는 것 역시 거짓입니다.”
“대법관님!”
“피고는 잠깐 조용히 하도록 하세요. 피고가 이전에 발언했던 것처럼 지금부터 원고가 증언할 사항들은 이번 재판에서 아주 중요한 사안입니다.”
그동안 이쪽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온 대법관 역시 우리가 재판에서 이기기를 바라고 있는 모양. 말없이 나를 응원해 주는 모습을 보니 조금 더 힘이 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큰 거짓말은 환상물약이 마약이라는 발언입니다. 전혀 말도 되지 않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입니다.”
“근거가 있습니까?”
“정확히 말하면 환상물약은 치료 목적으로 만들어진 물약입니다.”
“치료말입니까?”
“네. 치료입니다. 저주 받은 신단에서 사용했던 정신치료물약처럼 환상 물약 역시 치료목적으로 만든 이후에 치료 목적으로 유통한 물약입니다. 피고는 카케 길드와 저의 영역 다툼으로 그간의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지만 사실은 전혀 다릅니다. 이토 소우타가 몸을 담고 있는 야마토 길드야말로 카케 길드와 함께 손을 잡고 있지요.”
야마토 길드와 카케 길드가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은 내 뇌에서 나온 오리지날 설정이다. 물론 당장 제출한 증거는 없지만 이런 식으로 이빨을 터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
“모두들 어디에선가 들으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내가 한 이야기니까.’
“이토 소우타의 야마토 길드가 노예매매와 장기밀매, 불법적인 약품을 취급하는 것은 물론 암시장까지 운영하고 있다는 소문 말입니다.”
“이의있습니다. 대법관님! 저 소문은 아무 근거도 없는 소문이며 제출할 증거들의 내용 역시 무척이나 빈약합니다.”
“가장 큰 증거는 잠시 후에 알게 되실 겁니다. 시작은 이렇습니다. 대법관님, 요조라 길드의 카스가노 유노가 저를 찾아 온 것부터가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아주 예전부터 일본에서 불법적으로 유통되고 있었던 마약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네. 환상물약이 아니라 진짜 마약이라고 부르는 물건 말입니다. 이미 자유도시 실리아는 불법 마약에 노출되어 있는 상태였고 많은 사람이 그 마약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그녀로부터 직접 전해 듣게 되었지요.”
“……….”
“그녀가 제게 의뢰한 것은 치료제였습니다.”
“아….”
“네.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대로 환상물약은 이제는 실리아에서 모습을 찾기 힘들어진 불법 마약의 치료제입니다. 저희 파란과 요조라는 마약중독자들을 치료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 불법 마약이 어디서부터 유통되고 있는지 알고 싶어 했습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무엇이 말입니까, 원고?”
“제가 지속적으로 암살 위협을 당한 것이 말입니다. 그들은 제가 진실에 다가가기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린델 테러 사건 이외에도 계속해서 저를 노리는 위협들이 많아졌지요. 사실 일본의 마약시장을 주무르고 있는 집단에 대해서 저희는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지만 계속되는 암살 시도 덕분에 많은 걸 알게 됐습니다. 재판 처음에 말씀드렸다시피 저를 암살하려고 한 것은 야마토 길드였습니다. 아 어쩌면 카케 길드였을지도 모르겠군요. 야마토 길드의 명을 받은 카케 길드의 길드원 말입니다.”
“모두가 거짓이고 궤변입니다, 대법관님. 환상물약이 기존 마약의 치료제라는 발언은 사실무근입니다. 애초에 중독성을 띄고 있는 환상물약이 어떻게 마약에 치료제가 될 수 있는지가 궁금하군요.”
“어째서 치료제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토 소우타 씨. 이미 환상물약은 저주 받은 신단으로 그 효과를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중독성이라뇨. 말조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환상물약이 약간의 중독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마약이라고 부르는 것은 와인 같은 기호 식품들도 마약이라 부르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건….”
“애초에 치료제로 나온 상품입니다. 어디에 있는 누가 의도적으로 유통을 막지 않았다면 벌써부터 유통되고 있는 물건이었겠지요. 재판관님, 이토 소우타가 저에게 지속적으로 위협을 한 이유는 환상물약이라는 치료제가 유통되는 걸 막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재판장님, 저희 길드에 있는 연금술사들은 환상물약에서 중독성과 환각을 유도하는 위드 성분을 발견했습니다.”
이건 확실히 놀랄 수밖에 없는 상황. 물론 확실한 증거를 잡기 위해 성분검출을 할 줄은 알았지만 거기에 포함된 촉매 하나를 정확히 때려 맞추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름대로 유능하다고 할 수 있는 연금술사들을 데려왔다고 할 수 있는 것은 확실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렇지만.
대륙에서 나보다 유능한 연금술사는 없다.
“성분검출도 이미 끝내 놓으셨군요. 조금 더 의문점이 생길 수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대법관님. 성분검출이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환상물약을 마약이라고 부른다니요.”
“위드 성분이 들어간 물약을 마약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이기영 씨.”
“이토 소우타 씨. 제대로 성분을 검출한 것이 맞습니까? 환상물약에 대해 제대로 파악한 것이 맞다면 지금 같은 말씀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아니, 나와서는 안 됩니다.”
“무슨….”
“환상 물약은 성수로 만들어진 물건입니다, 이토 소우타 씨.”
“…….”
“…….”
“…….”
녀석뿐만이 아니다. 마치 쥐라도 집어먹은 것처럼 순식간에 장내가 조용해졌다. 너무 재미있어서 웃음이 나오는 상황. 이 재판이 조금 묘해졌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이토 소우타의 표정은 이미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다. 급하게 고개를 돌려 바젤 추기경을 비롯한 종교인들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푸흡.’
그 꼴은 한 도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본래 치료제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이토 소우타 씨. 위드 성분이 들어간 것은 어디까지나 치료의 목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베니고어 여신님이 내린 성수가 몸에 조금이라도 해로운 성분은 전부 정화해 주시니 말입니다. 연금술사 입장에서는 조금 편했지 뭡니까.”
“…….”
“사실 따로 치료제를 만들 필요도 없었습니다. 여신님의 성수만으로도 정화작업이야 끝내고도 남지만 자유도시 실리아를 좀먹고 있는 괴물은 불법 마약뿐만이 아니었으니까요. 환상물약이 보여주는 것은 여신님이 저희를 위해 내려주신 선물입니다, 이토 소우타 씨.”
“……..”
“감히 여신님의 선물을 마약이라고 부르다니요. 이게 신성모독이 아니면 무엇이 신성모독이란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아직까지 몇몇은 입을 꾹 닫고 있는 상황. 그렇지만 조용했던 장내가 광기에 휩싸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와 무척이나 친밀하고 진한 관계를 유지했던 이단심문관장 헬레나의 입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튀어 나왔기 때문이다.
“신성모독이다!”
그녀가 입을 여니 주변에 있던 다른 이단심문관들도 광기에 전염된 것은 순식간. 여기저기서 곧바로 커다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신성모독이다! 신성모독입니다!”
“이단이다! 이단이야!”
“신성모독입니다!”
이단은 좀 너무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확실히 저런 편이 나에게는 도움이 된다.
‘푸흡.’
일이 너무 재미있어져 웃음이 나올 지경. 당황하여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진 이토 소우타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환, 환상물약이 성수로 만들어졌다는 걸 모른 무지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만약 알고 있었다면 절대로 그런 발언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존경하는 대법관님. 아니, 바젤 추기경님 제가 얼마나 베니고어 여신께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 변명하는 것이 낫다.’
“존경하는 사제님들 부디 제 무지함을 용서해 주셨으면 합니다. 절대 다른 의도는 없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종교인은 바젤 추기경이 맞다. 추기경급만이 종교재판을 열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녀석이 바젤 추기경에게 계속해서 비비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아쉽게도 바젤 추기경은 이쪽의 편이 된 지 오래다.
뭐, 그것과는 별개로 사실 녀석의 변명은 합리적이다.
환상물약이 마약이 아니라고 다시 발언하는 것은 놈이 지금까지 했던 증언을 자신이 부정하는 꼴. 다시 말하면 차라리 자신의 증언을 부정하는 게 더 살아날 확률이 높다는 것에 있다.
‘가능성도 있고.’
몰랐다고 한다면 변명의 여지는 분명히 있다.
‘문제는.’
내가 준비한 게 끝이 아니라는 것. 반전은 바젤 추기경이 이미 복용을 마쳤다는 것에 있다.
뭘?
내가 준비한 소중한 포도주를.
‘그것도 특상품으로. 푸흐하흐흐하흐핫.’
환상물약은 기본적으로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게 해준다.
당연하지만 저주 받은 신단 때처럼 약사의 특권으로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여줄 수도 있다. 어쩌면 몇몇 종교인 은 하늘에서 내려온 여신의 성수를 마신 이후에 본 것을 신의 계시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신앙심이 돈독한 우리 바젤 추기경님 역시 그건 마찬가지.
‘바젤 추기경님이 내가 선물한 포도주를 마신 이후에 뭘 봤을 것 같아? 머저리야.’
아마 녀석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바젤 추기경에게 어떤 장면을 보여줬을 것 같아? 응? 이 악마 숭배자 새끼야.’
“현 시간 부로 이 사건은 제국 법정의 권한을 벗어났다고 판단, 신성제국의 교황청 제2추기경의 권한으로 지금 이 자리에서 종교재판을 여는 것을 제임스 대법관에게 정식으로 요청하는 바이다.”
“그런….”
나와 바젤 추기경만이 알고 있는 작은 비밀.
‘악마 숭배자 이토 소우타!’
내가 녀석을 향해 던진 진심어린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