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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39화 (138/1,590)

# 139

회귀자 사용설명서 139화

판결(1)

마치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은 상쾌한 기분.

벌써부터 이단 심문관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녀석을 보니 그간 해왔던 고생이 보답 받은 것 같아 괜스레 즐거워졌다.

당연하지만 나보다 더 기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여신의 계시를 받은 전사, 바젤 추기경.

얼굴에는 묘한 기쁨의 흔적이 묻어 있다. 자신이 봤던 암울한 미래를 뒤바꿀 수 있었으니 부여받은 임무를 달성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잘했다! 잘했어!”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니지. 아직 좋아하기는 이르지! 지금 당장 자유 도시 실리아로 신성기사단과 이단 심문관들을 파견하겠다. 제시카 대주교는 정식으로 신성기사단의 파견을 진두지휘하라.”

“네, 추기경님.”

“성전이다. 성전이야.”

앞서 말했던 사실이기도 했지만 바젤 추기경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이토 소우타의 죽음이 아니다.

자유 도시에 뿌리내린 악마 놈들을 색출해 그 뿌리까지 뽑아내는 것.

이런 빅 이벤트에 빠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 것이 당연지사.

슬그머니 카스가노 유노 쪽을 바라보자 내 마음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바젤 추기경님, 혹시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희 요조라 길드도 함께 해도 되겠습니까?”

“아!”

“악마의 끄나풀들이 언제 자유 도시 실리아를 탈출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한시가 급한 만큼 틀림없이 도움이 될 겁니다.”

“오… 고맙습니다. 카스가노 유노 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여신님께서는 절대 이번 일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내가 길드 마스터였다면 파란도 이단 심판 행렬에 참가시켰겠지만 우리 현성이와 덕구는 해야 할 일이 많다.

김현성은 몰라도 마음 약한 덕구는 이런 일을 힘들어 할지도 모른다.

“저희 검은백조도 힘을 보태드리도록 하지요.”

“붉은용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자유 도시인 만큼 요조라 길드의 허가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괜찮다면 병력을 보내고 싶습니다.”

“물론입니다. 여러분.”

‘캬아.’

물론 검은백조와 붉은용병 역시 이 빅 이벤트에 참가하는 것이 옳다.

무려 대형 길드 하나가 통째로 지도에서 없어질 타이밍.

저들이 지금까지 모은 재화나 아이템 골드 등을 생각해 보면 파이를 나누고 나눠도 먹을 것이 있으리라.

1등 공신인 내게 어느 정도 지분이 떨어질 것은 굳이 말이 없어도 알 수 있는 부분.

일단 카스가노 유노가 먹는 것은 대부분이 이쪽으로 들어오게 되어 있다.

이지혜도 이쪽에 챙겨줄 것이 있을 것이고 붉은용병 역시 이쪽에 많은 것을 챙겨줄 것이다.

안 그래도 파란에서 하고 있는 여러 가지 사업이 자본 문제로 보류되어 있는 상황.

환상물약에서 나온 골드와 야마토 길드에서 나온 것들을 대충 합치면 사업을 몇 번 말아먹어도 골드가 남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러분이 있어 신성 제국의 미래가 밝습니다.”

“당연히 해야 될 일입니다. 바젤 추기경님. 신성 제국에 뿌리내린 암덩이를 뽑아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작은 손을 보탤 수 있어서 무척 다행입니다.”

“허허허.”

“요조라 길드에 서신을 보내 놓도록 하겠습니다.”

“이거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여유를 부려도 될 상황은 아니지만 여러분들 덕분에 조금 침착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후우….”

나 역시 슬그머니 자리를 옮기는 게 좋다.

괴성과 비명을 지르며 이단심문관들의 포박에 저항하고 있는 이토 소우타는 이미 아웃 오브 안중이다.

녀석과는 한 번쯤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순서상 이게 먼저다.

‘공적은 챙겨야 하니까.’

잠깐의 통쾌함보다는 뭘 받을 수 있을지 계산하는 게 더 옳은 행동.

슬그머니 발걸음을 옮기니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지사.

특히나 바젤 추기경은 무척이나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았다.

“아. 이기영 신도!”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어내신 것 같습니다, 추기경님.”

“큼… 큼….”

“며칠 전부터 표정이 굉장히 좋지 않으신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좋은 표정을 하고 계신 것을 보니 이제야 조금 안심이 됩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일단은 가장 큰 짐은 덜었습니다. 이기영 신도님 덕분입니다. 허허허.”

“하하. 제가 한 것이라고는 여신님의 뜻에 따라 움직인 것밖에는 없습니다. 이 모든 게 베니고어 여신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저희 파란 길드도 이 성전에 참가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아직까지는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죄송하다니요? 이기영 신도님이야말로 이번 일에 가장 큰 공신이십니다. 이기영 신도님이 아니었다면 저 악마들을 색출해 낼 수 있었겠습니까? 허허.”

내가 한 게 많기야 많다.

악마에게 오염될 뻔한 도시를 환상물약으로 치료한 것은 물론 이토 소우타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에 일조했다.

신성한 포도주로 바젤 추기경에게 여신의 계시를 선물했고 이 재판에서도 확실한 증거들을 내밀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이거 정말 부끄럽습니다.”

“아닙니다. 마땅히 칭찬받아야 할 업적을 이룩하셨습니다. 게다가 파란 길드의 세력이 축소된 것은 야마토 길드 때문이 아닙니까? 일단 내정을 다스리는 것이 먼저지요. 이기영 신도님의 마음은 누구보다도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건 단순한 말뿐인 칭찬이 아니다.

목구멍에서 ‘보상 줘’라는 말이 맴돌기는 했지만 일단은 생글 생글 미소를 보내자 곧바로 추기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황청에서 보상이 있을 겁니다.”

“아.”

“아니, 교황청뿐만이 아닙니다. 신성 제국을 위해서 커다란 일을 하셨으니 왕성에서도 보상을 받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다른 분들에게도 모두 말씀을 드리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아! 혹시나 원하시는 게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보상을 바라고 한 행동이 아닙니다, 바젤 추기경님.”

“허허허. 이기영 신도님의 마음이야 제가 모르고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하신 일에 대한 합당한 보상은 받으시는 게 옳습니다. 그래야 제 마음이 조금 편해질 것 같습니다.”

“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기영 신도님.”

“아닙니다. 하하하. 바젤 추기경님이 더 고생하셨지요.”

‘좋아.’

상황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추기경급의 사제가 저렇게 호언장담을 할 정도라면 내가 뭘 받을 수 있을지 어느 정도 각이 나온다.

정확히는 예상하기 힘들지만 아마….

‘장관급 대우?’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물론 선물 상자는 까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대형 길드의 길드 마스터 급의 대우를 받는다.

아직까지는 저들이 받는 특혜에 대해서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일단은 그리폰 지급과 왕성 내의 나만의 방이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

물론 부가적으로 다른 옵션들이 딸려 들어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달콤한데.’

이건 목숨을 걸 가치가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슬그머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상황에 기분 좋게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슬쩍 옆을 보니 이토 소우타가 이단심문관 헬레나를 비롯한 다른 이단 심문관들에게 포박당하는 중이었다.

주변은 무척이나 산만하다.

갑작스러운 싸움으로 일어난 장내를 정리하는 이들이 시야에 들어왔고 왕성 내에 남아 있는 야마토 길드원들을 체포하기 위해 분주하게 신성기사단이 뛰어 다닌다.

딱히 할 일이 없기는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함께 분주한 척을 하는 게 괜찮다.

“이거 놔라! 나는 죄가 없단 말이다! 이거 놔! 쿨럭. 쿨럭.”

“이 더러운 악마 숭배자 놈. 더 이상 혓바닥을 놀린다면 입을 뭉개버리겠다.”

“제기랄… 제기랄!”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이토 소우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중.

누가 봐도 비참한 모습이다.

한때 모두의 사랑을 받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길드 마스터 같지는 않은 모습.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것은 물론 아직까지 입에서 피를 토해내고 있다.

차희라의 발차기 한 방에 내장이 완벽하게 파괴된 것이다.

아직까지 삶의 끈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혹시라도 녀석이 그렇게 죽어버릴까 걱정한 사제들이 신성력을 밀어 넣고 있기 때문.

완전히 말렸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표정만 봐도 녀석이 얼마나 당황하고 억울해하고 있는지 눈에 보인다.

뭐가 문제였을까?

어디서부터가 실수였을까?

라는 의문을 떠올리고 있겠지만 아마 본인은 답을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녀석은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입장에 있었을 테니까. 기본적으로 놈과 나의 성향은 같다.

‘용의주도한 전략가.’

마음의 눈은 성향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해주지는 않지만 그동안 많은 타입의 인간들을 봐온 만큼 어떤 성향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대충은 이해할 수 있다.

단순히 성향의 네이밍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들 말이다.

애초에 인간을 한 가지 성향으로 파악한다는 것부터가 위험한 일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눈으로 보이는 성향에 가장 가깝다고 예상하고 있을 뿐이다.

예를 들자면 일단은 이기적인 야망가라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이지혜.

그녀 같은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권력욕이 강하다. 탐욕스러우며 목적을 위해서라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상태창으로 보이는 그녀의 성향처럼 마냥 이기적이지도 않다.

그녀가 자신을 완벽하게 숨기고 있다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기적인 야망가라는 성향 자체가 이지혜를 대변해 주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나랑 이토 소우타도 마찬가지지.’

우리 둘이 가지고 있는 성향은 용의주도한 전략가.

뒤에서 일을 꾸미는 것을 즐기고 한 가지 일에 들어가기 전 항상 여러 가지 변수를 상정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먼저 떠올리는 편, 녀석 역시 그럴지에 대한 확신은 없지만 아마 나와 비슷할 것이다.

물론, 녀석과 나의 차이점은 존재한다.

플레이어 이토 소우타는 자신의 몸을 던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나 역시 도박은 싫어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놈과 나의 차이점은 주사위를 던지는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가에 있다.

나였다면 율리에나 사건 때 길드원 대신 내가 상처 입었을 것이다.

나였다면 조금 무리해서라도 직접 몸을 움직여 나를 죽여 버렸을 것이다. 평판이나 주변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조금 적극적으로 움직였을 것이다.

본인의 이미지를 챙기기 위해 나머지 하나를 포기하지 못했던 것이 놈의 첫 번째 실수였다.

뒷수습이야 이후에 하면 그만.

그렇지만 녀석은 여러 가지 선택지 중 도박이라고 생각했던 선택지들을 과감히 무시했다.

이토 소우타에게는 자신의 안위와 평판이 가장 중요하니까.

녀석과 나의 차이점이 어디서 나올지는 뻔할 뻔자.

‘난 절박하거든.’

이미 가진 것이 많은 녀석에 비해 나는 선택지가 없다.

나에게 충성을 맹세해 주는 이들은 없고 녀석처럼 강하지도 않다.

매번 위험을 감수했던 나와는 다르게 녀석은 단 한 번도 이번 싸움에서 위험을 감수한 적이 없다.

‘그게 너와 내 차이야.’

그게 녀석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비명을 내지르고, 내가 녀석을 내려다볼 수 있는 이유다.

별다른 감정은 없다. 바젤 추기경과 함께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니 완전히 몸에 포박되어 있는 채로 꿈틀 거리는 녀석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죽여 버리겠다! 죽여 버리겠어!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 쿨럭. 쿨럭.”

들리지도 않는 개소리는 가볍게 무시.

조용히 입을 열자 곧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이거 아무래도 뇌 속까지 악마에게 오염된 것 같습니다. 바젤 추기경님.”

“네. 이미 뼛속까지 오염되어 있을 것이 분명할 겁니다.”

“이자의 처우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마 곧바로 처형이 진행될 겁니다.”

“지금 당장 말입니까?”

“네. 지금 당장입니다. 물론 적당한 방법을 생각해야 하겠지만… 아마 이 악마 놈에게 어울리는 형벌이 있겠지요.”

마침 나에게도 생각나는 형벌이 있다. 어울리는지 어울리지 않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신박하다면 신박할 수도 있는 방법.

조용히 입을 열자 표정이 밝아지는 추기경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성수에 넣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호오….”

“여신님의 성수를 마약이라 모독하고 폄하한 녀석에게 무척 잘 어울리는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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