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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40화 (139/1,590)

# 140

회귀자 사용설명서 140화

판결(2)

“여신님의 성수를 마약이라 모독하고 폄하한 녀석에게 무척 잘 어울리는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오….”

“온몸이 악마에게 오염되었으니 정화의 의식이 될 겁니다.”

“아주 좋은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함부로 처형을 했다간 녀석의 몸 안에 있는 악마의 기운이 왕성을 오염시킬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게 맞지요. 그렇게 하는 게 맞습니다! 역시 이기영 신도님입니다.”

대충 던져본 것치고는 무척 반응이 좋다.

중세 시대 마녀들이 당한 형벌 중 하나였던 돌을 묶어 바다에 빠뜨리는 것을 생각해 보면 비슷한 형벌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모양.

저들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기야 하겠지만 일단 바젤 추기경은 기뻐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흐음. 괜찮은데.’

이토 소우타의 경우에는 이설호와는 다르다.

이미 완전히 궁지에 몰렸다고 하지만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는 만큼 기회가 있을 때 처리하는 것이 옳다.

굳이 처형 날짜를 기다리거나 두고 볼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

바젤 추기경 같은 경우에는 나보다 더 급할 것이다.

‘보고 느낀 게 있으니까.’

미래에 일어날 일을 생각해 보면 한 시라도 기다리기 싫은 것이 당연하다.

“무, 무슨….”

당연하지만 이토 소우타는 무척이나 당황스럽다는 반응. 아까까지만 해도 이쪽을 바라보며 저주를 퍼붓던 모습이 거짓말 같다.

슬슬 현실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멍청이.’

저주에 노출되었다고는 하지만 납작 엎드려도 모자랄 상황에 미쳐 날뛰는 것을 보면 자존심이라는 것은 어떨 때는 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커다란 목소리로 입을 여는 바젤 추기경을 본 녀석의 얼굴이 다시 한번 창백해졌다.

“지금 당장 청동 조각상을 가져와라! 청동 조각상이다!”

“네!”

“안이 비어 있는 청동 조각상을 가져 와라! 성수로 가득 채운 청동 조각상이다!”

“명을 받듭니다.”

추진력 하나는 굉장히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년에 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신의 계시를 받을 사람으로 바젤 추기경을 선택하는 것이 옳았다는 생각을 해볼 정도.

나름대로 품위와 기품을 지키는 성격인 줄 알았는데 내면에 불같은 성정이 있다.

물론 나무라는 것은 아니다.

그런 바젤 추기경의 성정은 이쪽에 무척 긍정적으로 흘러가고 있었으니까.

“이단 심문관들은 바로 저 악마 숭배자를 바로 세워라.”

“네.”

“재판은 빠르게 진행하도록 하겠다. 아니 재판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악마 숭배자에게 죄의 여부를 묻는 것부터가 가당키나 한가. 단순한 처형식이 될 것이다.”

“제길… 제길!”

“지금에 와서 지은 죄를 후회한다 해도 이미 늦었다, 악마 숭배자. 신성기사단은 어지러운 장내를 정리하는 게 좋겠군.”

“네. 알겠습니다.”

“동상이 들어오기 위한 공간을 만들어 놓는 게 좋겠어. 그래. 이쪽이다. 이쪽이야!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은 모두 이 처형식의 참관인이 될 것이다. 범죄를 저지른 것은 물론 신을 배신한 악인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 여신의 눈과 입이 되어 이 처형식을 증언할 것이다.”

보면 볼수록 은근슬쩍 이 양반이 마음에 든다.

바젤 추기경을 선택한 것은 단순히 우연이었지만 이렇게 앞뒤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종류의 인간은 언젠가 다시 쓸 일이 있는 법.

만약 바젤 추기경이 승진이라도 하는 날에는 그와 상당한 친분을 가지고 있는 나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된다.

‘잘해줘야겠어.’

신성한 포도주를 몇 병 정도 더 챙겨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전 법정이었던 현 처형장의 문이 열리기 시작.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커다란 동상이다. 커다란 날개를 가지고 있는 남자의 동상. 어떤 이인지는 당연히 알고 있다.

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나 역시 어느 정도 신학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 했으니까.

‘라르켈.’

베니고어 여신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천사다.

저런 동상 안에서 숨을 거둘 수 있는 게 나름대로 괜찮은 최후인지 최후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대충 보기에도 무척이나 아름답게 만들어진 동상은 성인 남성 두 명이 한꺼번에 들어가기에도 충분해 보였다.

무슨 용도로 사용했던 동상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등 뒤에 문이 있는 것을 보면 고문 도구로써도 사용했었던 모양.

어쩌면 단순히 물품들을 저장하기 위한 용도일지도 모른다. 물론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나와 별로 관계가 없는 이야기.

동상의 안쪽에 성수를 들이 붓고 있는 사제들의 모습이 조금 더 중요하다.

마치 미리 연습이라도 해본 것처럼 절도 있는 움직임으로 안쪽에 성수를 들이 붓는 모습이 묘하게 성스러워 보인다.

물론 이토 소우타에게도 그렇게 비치지는 않을 것이다.

“미친… 이런 미친놈들! 미개한 놈들이! 쿨럭….”

“…….”

“마를린 영애! 카트린 공작부인! 쿨럭! 이 미친 짓을 두고만 보고 계실 겁니까? 제임스 대법관! 신성한 법정에서 쿨럭. 처형식이라니! 제정신입니까? 카스가노 유노! 정녕 지금 조국을 배신하는 것인가!”

“무슨 조국 배신이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여기는 지구가 아니에요. 이토 소우타 씨. 우리는 지금 자유 도시 린델과 실리아의 소속되어 있는 제국민입니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요. 모두에게 공평한 이 사회는 죄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평등합니다.”

“이기영 너… 쿨럭….”

“그러게 왜 그러셨습니까. 어째서 악마와 결탁하신 겁니까.”

“아니다. 나는 그런 게 아니야. 모두다 네놈이 꾸민 일이 아니냐….”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습니다. 이토 소우타 씨. 본래 있잖습니까. 한순간에 잘못된 선택이 이런 결과를 만드는 겁니다. 여신님을 적으로 돌리지 않으셨어야죠.”

정확히 말하면 나를 적으로 돌렸으면 안 된다는 말. 아마 놈은 내 말을 알아들었을 것이다.

“베니고어 여신님께서는 적을 용서하는 경우가 없으십니다. 오직 자신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신도들에게만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너… 너!”

“절대로 자신을 적대하는 이들을 용서하지 않으시죠.”

“쿨럭… 너….”

“회개하기에는 너무 멀리 오셨습니다, 이토 소우타 님. 좋은 곳으로 가실 거라는 거짓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동안 숱하게 많은 죄를 저질러왔으니 천국으로 가시기에는 무리가 있겠지요. 다음 생에는 부디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렸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조금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카스가노 유노의 방 문 앞에서 당한 걸 되갚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 녀석이 내 뒤통수를 때렸을 때는 결과가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거다.

“풉.”

녀석이 웃어줬던 것처럼 똑같이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꽁꽁 묶여 있는 모습이 가슴 아프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인과응보, 악인으로서 딱 어울리는 최후라고 볼 수 있으리라.

바젤 추기경도 나와 같은 마음인지 엄숙하게 입을 여는 것이 보였다.

“죄인이 간교한 혓바닥을 놀리지 못하도록 입을 막아라.”

“네.”

“이 미개한 놈들! 이거 놓지 못해? 이거 놓으란 말이다!”

저항하고는 있지만 꽁꽁 묶인 녀석이 뭔가를 할 수 있을 리가 만무.

결국에는 입에 재갈을 문 채로 주변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 우리를 저주하고 있을 것이다.

“읍! 읍!”

당연하지만 계시자 바젤 추기경은 저런 눈빛에 동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분노를 보내며 조용하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판결! 죄인 린델 테러 사건의 가해자 야마토 길드의 길드 마스터 이토 소우타는 자유 도시 린델 시민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줬을 뿐만이 아니라 개인의 욕심으로 인해 수십 명의 사상자를 만들었다. 뿐만이 아니다. 제국 왕성에서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르며 신성 제국의 손님을 위협하고 암살하려는 죄를 저질렀다. 분쟁을 최소화하라는 제국 협정을 깬 제국의 죄인이다.”

“…….”

“그러나.”

“…….”

“죄인 이토 소우타의 처형을 판결하는 것은 앞선 이유가 아니다. 그는 악마와 내통해 신성 제국을 좀먹을 계획을 세웠으며 자유 도시 실리아에 불법적인 약물을 거래하고 노예매매나 장기밀매 같은 천인공노할 죄를 저질렀다. 신성한 법정에서 베니고어 여신님의 성수를 마약이라 모독했고 거짓된 증언으로 여신님과의 맹세를 배신했다.”

“…….”

“이단심문관의 심문에 불복한 것을 악마 숭배의 증거로 채택하여 천인공노할 죄인 이토 소우타를….”

“…….”

“사형에 처한다.”

바젤 추기경이 입을 다물자 주변에 있는 이들이 박수를 보내기 시작.

당연히 올바른 판결이다.

사지가 꽁꽁 묶인 채로 동상 위로 배달되는 이토 소우타는 최대한 발버둥치고 있었지만 애초에 다 죽어가는 마당에 달리 저항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어떻게든 저 동상 안으로 들어가기 싫은지 몸을 비틀고 있지만 녀석의 몸은 결국 어둡고 비좁은 문 속으로 구겨져 들어간다.

“읍! 읍!”

풍덩 하는 작은 소리가 들려오고 동상이 닫힌다.

몇 번 벽을 치는지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리지만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녀석은 저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후회하고 있을까 아니면 억울해 하고 있을까.

괜스레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놈은 나를 죽이려고 했고 나는 그걸 되갚아 줬다.

그게 전부니까.

쿵-

최후를 직접 지켜볼 수는 없었지만 뭐,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결과물.

쿵-

딱 좋다.

쿵-

‘물론 악인치고는 미적지근한 감이 없지 않아 있기는 하지만…’

나름대로는 마음에 든다는 이야기다.

안쪽에서부터 울리는 쿵쿵거리는 소리가 사라진 것은 약간의 시간이 지난 이후. 화려한 인생을 삶과는 다른 초라한 최후였다.

나는 주변인들과 대충 인사를 한 이후에 발걸음을 옮겼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정의는 승리했습니다.

여신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따위의 형식적인 이야기.

몇몇은 기도를 드렸고 몇몇은 녀석의 악행에 대해 떠들어댔다.

이지혜와 차희라는 그들 나름대로 할 일이 있는 모양.

오늘만 날이 아니니 다른 이들과는 천천히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을 것이다.

살짝 정하얀의 손을 잡고 혼란스러운 저곳을 빠져나가니 얼마 지나지 않아 옆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을 걸어온 사람은 조금 의외라고 할 수 있었지만 소식 자체는 기분 좋은 소식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왕성에서는 그리폰을 내릴 것이라는군.”

“그렇습니까? 듣기 좋은 소식이로군요.”

“그렇다네, 젊은이. 뿐만이 아니라네. 바젤 추기경이 말한 대로 여러 가지 보상이 예정되어 있다는군. 대표적으로는 수만 골드의 금화와 아이템이 지급되겠지. 왕성에서는 자네만을 위한 방이 생길 것이고 온갖 사치품을 사용할 수 있을 게야. 어쩌면 작위로 수여될지도 모르고… 교황청에서 그대에서 직위를 내리는 것은 거의 확정된 사안이겠지.”

“아주 좋습니다.”

“기분이 좋은가? 아니 만족스러운가?”

“물론입니다. 빅터하르트 님께서도 나쁜 소식은 아닐 겁니다. 영감님이 걱정하셨던 실리아와 린델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선에서 모든 일이 정리됐으니까요.”

“전쟁이 문제가 아니야. 죄 없는 사람들이 죽….”

“빅터하르트 님. 야마토 길드의 길드원은 죄 없는 이들이 아닙니다. 이토 소우타는 엄연히 범죄를 일으킨 범죄자이며 신성모독을 일으킨 것은 물론 악마 숭배 혐의도 있는 악질적인 인간입니다. 야마토 길드에 있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죠. 그의 손과 발이 되어 주었던 이들입니다. 말조심하셔야 됩니다.”

“…….”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만약 양보한 것이 저였다면 저는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겁니다.”

“자네 말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네. 내가 모르는 사정이 분명히 있겠지. 그렇지만 방식이 너무 지나쳐.”

“아니, 빅터하르트 님은 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적이라는 생각이 들면 자비를 베풀지 말아야 합니다. 자비는 강자가 약자에게 가질 수 있는 감정이지 약자가 강자에게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자네를 약자로 보겠는가. 자네는 이미 약자가 아니야.”

“제가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아마 빅터하르트 님은 평생 저를 이해할 수 없으실 겁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질세. 나는… 젊은이를 좋아할 수 없을 것 같군.”

“그렇지만 사이좋게는 지낼 수 있을 겁니다.”

싱긋 웃으며 입을 열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빅터하르트가 보였다.

나쁘지 않은 반응이다.

“어떻습니까? 함께 술이라도 한 잔 하시는 게. 굉장히 좋은 포도주를 가지고 있는데 말입니다.”

“일 없네.”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슬쩍 자리를 뜨는 빅터하르트의 뒷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혹시나 이쪽을 적대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는 했지만 눈에 적의는 없다.

황제파 측에서도 나는 나름 버릴 수 없는 인물일 테니 빅터하르트의 입장에서도 나와 가깝게 지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영감의 눈은 왠지 모르게 이쪽을 짜증나게 만들긴 하지만….

“하얀아.”

“네?”

“같이 포도주나 마실까?”

“좋, 좋아요!”

그런 사소한 것 따윈 상관없다.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니까.

살짝 뒤를 바라보자 묵묵히 그 자리에 서 있는 동상이 시야에 비쳤다.

‘고맙다,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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