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
회귀자 사용설명서 142화
집으로(2)
집이라는 건 좋다. 사태가 해결된 이후에 왕성에서 지내는 것도 즐겁기는 했지만 내 방과 내 집이 더 편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
물론 닥쳐올 업무 스트레스가 두렵기는 했지만 아마 지금쯤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됐을 거라고 생각했다.
김미영 팀장과 나름대로 유능하다고 할 수 있는 행정팀의 박중기, 박덕구를 연모하는 우리 황정연이 나 대신 열심히 갈렸을 거라고 생각하니 괜스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모두가 어떻게 지내고 있었는지 궁금한 것은 당연지사.
김현성과 박덕구, 선희영과 김예리 꼬맹이까지.
일단은 우리 파티원이 가장 생각나기는 한다. 항상 생각했었는데 은근히 정이든 모양.
오랜만에 단체로 나들이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던전이나 들어가 볼까.’
단체로 실리아 여행을 하는 것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물론 시간을 낼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잠깐의 여유를 갖는 다는 건 좋은 일이니까.
나는 하얀색 그리폰의 이름을 화이트폴이라고 이름 지었다.
별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얀색이니 화이트 폴, 딱 적당한 이름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리폰 위에 올라타는 것은 여전히 불편하기는 했지만 이쪽을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는 녀석의 모습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작은 산 하나를 넘으니 시야에 비친 것은 자유 도시 린델.
작게 보였던 린델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 보인다.
‘도착했네.’
린델로 돌아온 것이다.
물론 도착한 장소는 붉은용병 길드의 착륙장. 아직 파란 길드에는 그리폰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정하얀은 아쉬운 듯이 내 등에 떨어져 그리폰에서 내렸고 나는 화이트 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쿠룩.”
확실히 귀여운 놈이다.
“잠깐 맡겨도 괜찮지, 누나?”
“물론.”
“다른 그리폰도 잠깐 맡아줘. 아직 우리 길드에는 이 아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어려운 일은 아니야, 자기. 그것보다 하룻밤 쉬었다 가는 건 어때?”
“아냐 됐어. 길드부터 먼저 들려야지.”
“그래? 그거 아쉽네.”
“내일이나 모레에 한번 들릴게. 여유가 있으면… 해야 될 이야기도 조금 있으니까.”
살짝 아쉬워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별다른 생각은 없는 모양.
말은 저렇게 하지만 차희라도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다.
길드를 오래 비운 것은 그녀 역시 마찬가지니까.
그렇게 나와 정하얀은 붉은용병 길드를 나섰다. 짧다고 하면 짧고 길다고 하면 긴 시간이지만 역시 린델은 평소와 같다.
광장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도 여전했고 파티원을 구하는 사람들 역시 여전하다. 사냥을 나가려 분주한 이들도 보였고 테라스에 모여 수다를 떠는 사람들도 보였다.
‘좋네.’
묘하게 익숙한 인형이 시야에 비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저 새끼….’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는 녀석의 뒷모습이 왠지 모르게 익숙한 것은 당연지사.
심지어 그 옆에 있는 여자의 뒷모습도 익숙하다. 긴 머리를 가지고 있는 모습은 분명히 우리 길드의 마법사.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해맑게 웃고 있는 옆모습을 보니 어지간히 행복한 모양이다.
“아!”
옆에 있는 정하얀도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는지 깜짝 놀랐다는 목소리로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리라.
저 둘이 벌써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옆에서 바라보기에 굉장히 친근해 보였다.
입꼬리를 올리며 녀석의 이름을 불러 보는 것이 당연. 화들짝 놀라 뒤를 바라보는 놈의 얼굴이 보였다.
“덕구야!”
“어?”
뒤를 돌아본 녀석의 얼굴이 점점 밝아지는 것이 보인다.
무슨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을 보는 것 같은 반응.
관 뚜껑을 발로 차고 나온 사람을 봐도 저런 표정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평상시와 같은 얼굴이 활짝 펴지는 것은 순식간. 그 이후에는 전체적으로 얼굴이 일그러진다. 기분이 나쁘다거나 분노를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울음을 참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것도 꽤나 필사적으로.
“형, 형님!”
기세는 마치 핸들이 고장 난 8톤 트럭. 이쪽을 향해 무식하게 달려오는 모습이 마치 황소나 코뿔소가 돌격해 오는 것처럼 보인다.
얼마나 반가운지 인정사정없이 끌어안을 기세에 살짝 몸을 피하는 게 좋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나 역시도 놈이 반갑다.
결국에는 내 쪽에서 먼저 좋지 않은 선택을 해버렸다.
“형니임!”
살짝 팔을 벌리자 조금 더 감동한 것 같은 느낌. 녀석이 이쪽을 꽉 껴안자 갑작스레 숨이 턱 막혀왔다.
‘시바… 괜히 껴안았나.’
허리가 부러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
그렇지만 나 역시 덕구 녀석의 등을 두드렸다. 사나이들의 뜨거운 포옹을 주변인은 무척이나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지만 박덕구는 별로 의식하지 않는 모양. 심지어는 나를 붙잡고 빙글빙글 돌고 있다.
‘이 새끼는….’
결국에는 한참이나 광장을 빙글 빙글 돈 이후에야 녀석은 나에게 입을 열었다.
“형님! 아니, 왔으면 왔다고 말이라도 좀 해주지….”
“푸하하핫. 아마 다른 사람은 다 알고 있었을 거다. 그리폰 날아오는 거 못 봤어?”
“아! 그럼 그 하얀색 그리폰에 타고 있던 게 형님이었소?”
“응.”
“우리 형님 출세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던 것 같은데… 크으…. 그것보다 뭐 힘든 일 있었소? 아주 얼굴이 반쪽이 된 것 같소.”
“그런 거 아니다. 오히려 최근에는 조금 더 편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형님이 무슨 그 뭐시다냐…. 그 누명을 썼다고 신문에서 그러던데 가슴이 얼마나 철렁했는지 아쇼? 이제 그건 다 해결된 거요?”
“물론. 애초에 밝혀질 이야기였어. 별거 아니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편지 받아서 알고 있었던 것 아니었어?”
“아니, 물론 대충 알고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는 거기 상황을 모르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가 있나. 갈 수만 있었다면 가고 싶었는데 그때마다 편지가 오니까… 아, 그냥 무사하겠구나 싶었지. 신경 쓰여서 밤에는 잠도 못 잤다니까.”
“푸하하핫.”
“거, 웃을 일이 아니요. 형님. 진짜로. 말은 안 해서 그렇지 현성 씨도 달려가려고 했다니까. 아, 그러고 보니 누님을 깜빡했구만. 잘 지냈소?”
이건 조금 기쁜 소식이다.
“네. 덕구 오빠. 저, 저희는 잘 지냈어요.”
“아니지. 이럴게 아니라 빨리 길드로 돌아가야지. 형님이 돌아왔다는 걸 알면 모두 다 기뻐할 거요.”
“그보다 너는 정연 씨랑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살짝 황정연을 바라보며 입을 열자 박덕구 녀석이 우물쭈물거리기 시작했다.
강원도 연애 박사치고는 묘하게 부끄러워하고 있는 듯한 느낌.
황정연도 고개를 숙인 채로 얼굴을 붉히는 걸 보니 내가 없는 동안 둘 사이에 뭔가 진전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 그보다 빨리 길드로 돌아가요. 기영 씨. 오랜만에 보니까 저도 좋네요.”
“큼. 빨리 갑시다.”
왠지 모르게 말을 돌리려고 하는 모습은 조금 귀여워 보였다.
덕분에 길드로 돌아가는 길이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정하얀과 황정연은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며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물론 이쪽은 박덕구와 대화를 나눴다. 대부분은 길드에 관련된 이야기.
“희영 씨랑 예리는 잘 지냈어?”
“희영 누님은 매일 똑같은 것 같고… 예리 고 꼬맹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소.”
“응?”
“원래 그 나이 때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지 않소. 사실 나는 매일 봐서 잘 모르겠는데 길드에 다른 사람들은 엄청 많이 컸다 합디다. 아, 그리고 엄청 빠르게 강해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아마 보면 깜짝 놀랄 거요.”
“아아아….”
“별로 궁금하지 않은가보오 형님은.”
“아냐. 예리의 성장이 빠를 거라는 건 대충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너는 어떤데, 덕구야?”
말을 하면서 대충 마음의 눈으로 박덕구를 살펴보니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은 능력치가 시야에 비쳤다.
그동안 괴물들을 많이 봐서 인상적이지는 않지만 착실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 같은 느낌의 능력치.
[플레이어 박덕구의 상태창과 재능수치를 확인합니다.]
[이름 - 박덕구]
[칭호 - 없습니다. 조금 더 노력하셔야겠네요.]
[나이 - 23]
[성향 - 단순무식한 열정가]
[직업 - 강철방패병 - 희귀 등급]
[능력치]
[근력 - 67/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민첩 - 34/성장한계치 희귀 이하]
[체력 - 70/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지력 - 27/성장한계치 희귀 이하]
[내구 - 71/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행운 - 23/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마력 - 22/성장한계치 일반 이상]
[총평 - 근력과 내구와 체력이 높아 괜찮은 성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70 스탯을 넘어선 내구 능력치와 체력 능력치가 눈에 띕니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마력이 아쉽기는 하지만 열심히 노력한다면 상위 플레이어로 올라갈 수 있을 겁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도 여전히 마력이 너무 아쉽네요.]
‘내구 능력치가 70….’
나쁘지 않은 수치다. 아니 훌륭하다. 애초에 60의 능력치에 다다르면 성장이 쉽지 않다는 걸 감안해 본다면 주요 스탯 70은 절대로 낮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했구나.’
녀석 나름대로도 필사적으로 움직였을 것이다.
주변에 있는 다른 천재들을 따라가야 하는 입장이었으니까.
물론 그래도 따라가기에는 무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타고난 재능의 한계치는 바꿀 수 없다는 것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왠지 이 돼지는 해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뭐… 그렇게 대단하지는… 그냥 다른 사람 하는 만큼만 열심히 했지.”
“그래?”
“매일 하던 훈련이요. 능력치가 오르긴 올랐고 여기저기 많이 배우려고 그때 봤던 선배들도 찾아가고 해 봤지만 뭐 그렇게 성장한 것 같지는 않소.”
“어느 정도인데?”
“내구랑 체력은 70이 넘었고 근력은 아직 67이요. 마력 능력치는 죽어라 안 오르고….”
“잘하고 있다.”
“응?”
“잘하고 있으니까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는 거야.”
“아….”
“굳이 다른 사람이랑 비교할 필요 없다, 덕구야. 너는 너대로 열심히 하면 반드시 보답 받는 날이 올 거다. 고민하는 건 좋지만 너무 깊게는 파고들지 말고. 정 힘들면 따로 찾아와. 우리랑 같이 시작한 다른 자유민의 능력치나, 비전투직군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보면 네 성장이 얼마나 빠른지 대충 이해할 수 있을 거야.”
“형, 형님.”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라는 명언도 있으니까.”
내가 말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양심이 찔리긴 찔린다.
노력이 인간의 기대를 너무나도 쉽게 배신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단순한 녀석은 뭔가 감명 받은 것 같은 느낌. 또다시 감동의 도가니에서 녀석이 헤엄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내가 지시한 일은 전부다 처리되어 있어?”
“아아아. 아마 그럴 거요. 사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형님이 뽑은 김미영이라는 사람이 본인의 업무 외에도 다른 업무까지 컨트롤한다는 거 아니겠소.”
“그거 다행이네.”
“뭐, 물론 형님이 직접 확인해야겠지만… 우리 형씨도 문제가 없는 것 같아 보였으니까.”
“다른 특이사항은?”
“아! 이걸 이야기 안 한 것 같은데…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다는 거 아니요?”
“새로운 사람?”
“우리 형씨가 직접 데리고 온 사람 같던데 파란에 입단한 지 좀 지난 것 같소. 착하고 친절한 양반인데 강하기까지하고…. 아! 형님이 없는 동안 행정 총괄 책임자로 길드를 정리해 주기도 했고… 우리 형씨랑 얼마나 궁합이 잘 맞는지 매일 붙어 다닌다니까.”
“…….”
왠지 모르게 조금 불안해졌다.
“또?”
“뭐라고 표현해야 될지는 잘 모르겠는데… 설명하자면 막 문무를 겸비한다는 느낌이요. 똑똑하기도 하고 싸움도 잘하니까.”
내 빈자리를 누군가가 채웠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새로운 사람이 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김현성과 친하다는 말에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철렁했다.
‘시바… 현성아.’
불안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온갖 인재를 알고 있는 김현성이 파란으로 인재들을 끌어 들일 거라는 것은 이미 예상했지만 그 시기가 생각보다 빠르다.
그중에는 1회 차에 잘 알고 지내던 사람도 있을 것이 분명.
나는 알지 못하는 유대를 쌓아온 사람들이 등장할 수도 있다.
김현성의 최측근인 나로서는 조금 불안한 이야기라는 거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저 멀리서부터 김현성이 보였다. 옆에는 한 명을 대동한 채로 말이다.
창을 들고 있는 인형과 무척이나 활발한 대화를 하고 있는 중, 입꼬리를 올리며 활짝 웃고 있는 김현성이 시야에 비쳤다.
“아… 저기 형씨가 마중 나온 모양이요. 형님.”
박덕구가 열심히 옆에서 입을 열었지만 귀에 잘 들어올 리가 없다.
어째서인지는 뻔할 뻔자.
누가 봐도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은 김현성 때문이었다.
‘형한테는 그렇게 웃어준 적 없었잖아. 이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