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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43화 (142/1,590)

# 143

회귀자 사용설명서 143화

집으로(3)

엄청나게 섭섭하게 느껴진다.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회사에서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랑하는 아내가 딴 놈과 노닥거리는 걸 보는 것 같은 기분.

심지어는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있었던 채라면 나름 상황이 맞을 수도 있으리라.

‘형이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무려 그리폰을 뽑아줬다.

물론 김현성이라면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스스로 얻을 수 있었겠지만 그걸 내가 조금 앞당겨 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대륙 전체를 통틀어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당연하지만 가져온 것은 이것뿐 만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리폰이 메인 메뉴이기는 하지만 그밖에도 준비한 선물이 많다.

현재 붉은용병의 길드원이 가져오는 물품은 작은 방 하나 정도는 가득 채우고도 남는다.

아이템을 비롯한 온갖 재화.

모두 내 개인 소유로 할 수 있었던 것들이지만 우리 회귀자를 위해 고개를 끄덕이며 내놓기로 결심한 것들이다.

나에게 보여주지 않은 환한 미소를 보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리폰을 주고 싶은 마음이 순식간에 달아난 것도 이상하지 않다.

‘이 새끼….’

이쪽을 바라보는 김현성이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반가운지 미소를 보이고는 있지만 이미 진실된 미소를 봐버린 뒤.

그래도 일단 손을 흔들어 주는 것이 당연한 선택이리라.

“기영 씨.”

“아. 현성 씨.”

박덕구처럼 헐레벌떡 뛰어오지는 않았지만 조금 빠른 발걸음을 옮긴 뒤에 이쪽을 꽉 안아주는 녀석을 보니 그래도 마음이 조금 풀리는 것 같은 느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옆에 있는 인형은 괜스레 신경 쓰였다.

“그리폰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오셨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미리 나와 있길 잘했군요.”

“이럴 필요까지는 없으셨는데.”

“아니요. 당연히 해야 될 일입니다. 기영 씨도 고생 많이 하셨을 테니까요. 여러 가지 일에 휘말렸다는 사실은 이미 전해 들어 알고 있었지만… 정말 잘 이겨내셨습니다.”

“하하.”

“야마토 길드의 이토 소우타는 어떻게 됐습니까?”

“들으신 대로 처형당했습니다. 여러 가지 혐의가 씌어져 있는 상태여서 빠져나올 수 있는 구멍이 없었을 겁니다. 사실 저로서도 사형은 면하게 해주고 싶었지만 바젤 추기경님의 뜻이 워낙 완강하더군요.”

“그렇군요.”

“제가 정확히 모르는 사정이 있는 모양입니다. 단순히 여신님을 모독한 것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기야 있는 것 같았지만 정확히는….”

별로 씁쓸해하는 반응은 아니다.

오히려 이토 소우타가 죽어서 다행이라는 것 같은 느낌.

김현성의 반응으로 미루어 봤을 때 이토 소우타가 미래에 그다지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놈이니까.’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자기 잘난 맛에 행동하는 녀석이었고 린델을 선제공격하기도 했었다.

물론 내가 바젤 추기경에게 보여준 것처럼 악마 숭배자가 되어 신성 제국을 뒤집을 음모를 꾸미지는 않았겠지만 미래의 녀석은 적어도 김현성의 인상을 찌푸리게 했을 것이다.

‘잘 죽였네.’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은 격.

은근슬쩍 김현성에게 이토 소우타에 대해 물어보니 곧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이토 소우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예. 아무래도 이야기를 하다 보면 타 도시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니까요. 그다지 질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이번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공공연연하게 퍼져 있던 소문이었으니 벌을 받은 걸로 봐도 되는 거겠죠. 기영 씨가 죄책감을 느끼실 일은 아닙니다.”

‘형은 그런 거 안 느낀다, 현성아.’

뭐 신성 제국의 뒤통수를 치거나 린델과 실리아와의 전쟁의 시발점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놈의 죽음으로 인해 회귀자가 그리고 있는 미래가 조금 더 아름다워졌다는 것.

1회 차에 어떤 개짓거리를 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한 사안은 아니다.

“현성 씨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저야 늘 똑같았습니다. 일단은 길드를 안정시켜야 했으니까요. 사실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을 때는 기영 씨가 맡기신 일이 대부분 끝난 상태여서…… 만약 기영 씨가 신성 제국으로 오지 않아도 된다는 편지를 보내주시지 않았다면 분명히 신성 제국으로 향했을 겁니다.”

“하하하. 걱정하실 만한 일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조금 순조로웠으니까. 혹시 들으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교황청으로부터 직위를 받기도 했습니다.”

“네?”

“물론 자유민의 신분을 보장해 주는 종류의 직위입니다. 바젤 추기경이 저를 마음에 들어 하셔서 말입니다. 명예주교라는 과분한 직책을 맡게 됐습니다.”

“아. 그렇군요.”

“아마 자세하게는 들어보신 적이 없으실 겁니다. 교황청 외부에 있는 사람에게 직위를 주는 것이 무척 오랜만이라고 들었으니까요. 정확히는 254년도 더 된 일이라 합니다. 직급 자체는 대주교님들과 동급이고 여러 가지 혜택도 있어서… 저희 길드에게도 도움이 될 겁니다.”

“아!”

아무래도 1회 차에서는 명예주교라는 신분을 얻은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

아니면 김현성이 그쪽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고.

그렇지만 직급이 대주교와 동급이라는 말이 나오자 현성이의 얼굴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당연한 반응이다.

이단심문관과 신성 기사단을 부리는 혜택 이외에도 신전에 관련된 혜택이 무척 많았으니까.

‘형이야, 이 자식아. 형 능력자라고.’

“이런 것까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는데… 상상 이상이로군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게 끝일 것 같지?’

슬슬 선물 보따리를 풀어볼까 생각이 든 것은 당연지사.

김현성이 급하게 말을 걸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뭔가 자랑이라도 하려는 것만 같은 모양새. 녀석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는 감이 온다.

아마 옆에 있는 사람을 소개하려고 하는 듯한 느낌.

녀석 나름대로는 성과라고 할 수도 있으니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가 가지만 괜스레 씁쓸해졌다.

“사실 저희도 조금 달라진 게 있습니다. 덕구 씨에게 이미 들으셨을지 모르겠지만 기영 씨가 없는 동안 새로운 분을 영입했습니다.”

“아… 이분이시군요.”

“네. 이번에 파란에 함께하게 된 조혜진 양이라고 합니다.”

김현성의 옆에 서 있는 사람은 긴 창을 들고 있는 여자. 조금 큰 키에 묶어서 뒤로 넘긴 머리는 왠지 모르게 옛날 무사를 떠올리게 했다.

뭔가 군인이나 기사 같은 느낌이라고 말하면 어울릴 것 같은 느낌.

이목구비가 뚜렷하지만 왠지 모르게 딱딱해 보이는 성격을 가지고 있을 것만 같았다.

‘실제로도 그럴 것 같고….’

“조혜진입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이기영 부길드 마스터님.”

“아아아. 조혜진 씨로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이기영이라고 합니다.”

“네. 듣던 그대로이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마음의 눈으로 녀석을 바라본 것은 당연지사. 곧바로 녀석의 정보가 내게 쏟아져 내렸다.

[이름 - 조혜진]

[칭호 - 캐슬락의 고집불통]

[나이 - 25]

[성향 - 고지식한 원칙주의자]

[직업 - 창술전문가 - 영웅 등급]

[직업효과 - 기초 창술 지식 습득]

[직업효과 - 중급 창술 지식 습득]

[직업효과 - 고급 창술 지식 습득]

[직업효과 - 고급 마력 운용 지식 습득]

[능력치]

[근력 - 75/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민첩 - 82/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체력 - 87/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지력 - 51/성장한계치 영웅 이하]

[내구 - 71/성장한계치 영웅 이하]

[행운 - 50/성장한계치 영웅 이하]

[마력 - 60/성장한계치 영웅 이하]

[특성 - 노력하는 자 - 전설 등급]

[총평 - 눈에 띄는 것은 없지만 성장한계치 이전에 그녀는 무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향과 특성의 영향으로 본인이 가지고 있는 한계치보다 더욱더 성장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플레이어 이기영이 지금까지 봐왔던 천재들과는 다른 유형의 천재입니다.]

‘눈에 띄는 게 없기는 개뿔….’

린델에는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이 정도의 능력치와 잠재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본 것은 처음.

차희라 같은 이들을 제외한다면 이정도로 가능성 있는 이는 본 적도 없다.

물론 전설 이상의 능력치는 없었지만 밸런스가 엄청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총평이 평가한 그대로.

그냥 대충 봐도 강하리라는 건 이미 알 수 있었다.

모든 능력치가 영웅 이상이거나 영웅 이하, 심지어 저 능력치로 행정에도 능하다고 하니 어떻게 본다면 반칙인 셈.

“린델에서는 처음… 뵙는 것 같군요. 물론 제가 이 넓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보지는 않았습니다만….”

“아. 네. 기영 씨 말이 맞습니다. 조혜진 씨는 린델이 아니라 캐슬락에서 활동하시던 분입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전에 있는 길드를 탈퇴하게 됐고 린델로 와서 파란과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캐슬락 말입니까?”

“네. 캐슬락입니다.”

캐슬락은 자유민이 자리 잡은 자유 도시가 아니다.

신성 제국의 안에 포함되어 있는 영토.

주변에 쓸 만한 사냥터나 던전이 많아 몇몇 자유민이 정착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조금 더 남쪽에 있고 몬스터 숲과 가깝다는 걸 생각해 보면 확실히 자리 잡기 나쁘다고는 볼 수 없다.

‘물론.’

단점도 분명히 존재하기는 한다.

일단 자유 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세금을 조금 더 많이 납부해야 한다는 것도 그랬고 여러 가지 제한되는 사항이 실제로도 많았다.

자유민은 제국법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린델 안에서의 이야기. 귀족이 다스리는 도시에 정착한다고 가정했을 때 자유민으로서 포기해야 하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마를린 영애가 캐슬락 출신이었나.’

내 기억이 맞을 것이다.

뭐, 사실 저 여자가 캐슬락에서 왔는지 도시락에서 왔는지는 내가 알 바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김현성이 조혜진을 1회 차에서 이미 알고 지낸 것처럼 보인다는 것과 실제로도 상당히 신뢰한다는 것.

칭호는 캐슬락의 고집불통, 성향은 고지식한 원칙주의자.

어딜 봐도 나랑 잘 맞을 것 같지가 않다. 대놓고 융통성이 없을 것 같은 느낌. 원칙은 개나 주라는 심정으로 활동하는 나와 궁합이 좋을 리가 없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눈치 없는 인간은 그녀에 대한 칭찬을 쏟아내기에 여념이 없는 중.

왠지 모르게 초조해진다.

‘얘는 진짜 안 맞을 것 같은데….’

단순한 예상이 아니라 확신이다.

물론 단순히 성향을 보고 추측한 것에 불과하지만 이런 유형의 인간은 나와 잘 맞지 않는다고 내기를 할 수도 있다.

“사실 기영 씨가 맡기신 일의 일부분도 혜진 씨가 도움을 주셨습니다.”

“아… 네. 그렇군요. 양이 조금 많았을 텐데 정말로 감사합니다.”

“아뇨.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정리해 주신 서류대로 처리했을 뿐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정말로 유능하고 착한 사람입니다. 아마 기영 씨도 함께 대화를 나눠보시면 제 말을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렇군요.”

“또 상당한 무력도 가지고 있고요. 길드의 요직에 곧바로 임명하고 싶었지만 기영 씨의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해 일단은 보류 중입니다.”

“아….”

그나마 이건 고맙다.

사실 이쪽에서는 거부할 사항도 아니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적어도 김현성이 나를 존중했다는 뜻이 되는 거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아닙니다. 아직은 제안이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그나마 저쪽에서 거절하는 그림은 조금 아름답다.

“이럴 게 아니라 빨리 길드 하우스로 돌아가도록 합시다. 예리와 희영 씨도 일이 끝나면 곧바로 올 테니까요.”

“네.”

“네. 마스터.”

누가 봐도 지금의 김현성은 기존에 있던 친구에게 새 친구를 소개시켜줘야겠다는 생각에 들뜬 모습.

자기 나름대로는 우리 둘의 시너지를 바라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대충 앞으로의 일을 예상할 수 있었다.

진짜 충신이 등장하면서 왠지 모르게 내가 간신의 포지션으로 물러날 것만 같은 느낌.

회귀자 옆에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남고 싶은 나에게는 위기라면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현성아, 형은 널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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