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
회귀자 사용설명서 144화
집으로(4)
길드 하우스로 돌아가는 도중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다.
대부분이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무엇을 했는지 밀린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기는 했지만 즐겁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
정하얀은 처음에 조혜진을 경계하는 듯 살펴보기는 했지만 이쪽과 접점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금방 관심을 꺼버렸다.
그저.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구나.’
정도의 생각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조금은 정하얀다운 행동이었다.
그렇지만 박덕구 같은 경우에는 다르다. 나를 볼 때까지는 아닌 것 같기는 했지만 조혜진에게 무척이나 긍정적인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 녀석과 가까워지기라도 한 모양인지 무척이나 친근하게 달라붙고 있는 모습은 가관.
물론 대화 내용은 나쁘지 않았다.
“거, 혜진 씨.”
“응?”
“우리 형님 어떻소?”
“듣던 대로 현명하신 분 같습니다. 사실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일을 이렇게 잘 정리한 사람이 누구인지 항상 궁금했었는데… 상상했던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기영 씨가 없었다면 아마 길드가 자리 잡기까지 시간이 더 오래 걸렸을 겁니다.”
“네. 마스터. 확실히…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양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제 얼굴에 금칠을 해주시는군요. 혼자만의 힘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입니다. 파란에는 유능한 사람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대충 이런 형식의 대화.
오랜만에 무척 즐거워 보이는 김현성과 재잘재잘 떠드는 박덕구를 보니 확실히 집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긴 든다.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사람이 하나 더 껴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가슴이 조금 아프긴 하지만 김현성이 기분 좋아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조혜진은 지금도 성장 중이다. 아직까지도 포텐이 터진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단순한 잠재능력으로 봤을 때는 미래에는 더욱더 강해질 여지가 많다.
특성 ‘노력하는 자’라는 것을 보면 이후에는 어쩌면 길드 마스터급의 강자로 성장할지도 모르는 일.
1회 차에 잘 알고 지냈다는 것을 가정해 본다면 녀석이 조혜진에게 호감을 갖는 이유도 당연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취해야 할 입장이라고 생각했다.
밀어내야 하는가, 받아 들여야 하는가.
합리적인 것은 당연히 후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길드에 도움이 된다.
앞으로 김현성 왕국이 점점 더 커질 거라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유능한 인간은 반드시 쓸 때가 있다.
문무 겸비, 그중에서도 무력과 잠재능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문제는 이쪽의 영향력이 적어지는 것에 대한 것. 그전까지 김현성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이런 라이벌이 등장하는 것이 별로 달갑지만은 않다.
‘김현성이 여자에 미치는 건 왠지 상상하기 어렵지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조혜진 같은 1회 차의 동료들이 계속해서 들어온다면 우리 현성이가 기존의 파티를 소홀히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는 한다.
상대적으로 전투 능력이 떨어지는 나와 덕구 같은 경우에는 공중에 붕 떠버릴 수도 있으니까.
물론 다른 쪽으로 생각해 보면 권력의 양분화는 필요하다. 너무 내 쪽으로만 권력이 쏠리는 것은 지양해야 될 일.
그렇지만 시기가 조금 빠르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생기는 것은 김현성 왕국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이후에도 늦지 않는다. 지금은 빠른 성장이 필요한 시기, 원칙이니 뭐니 따지고 들어갈 여유가 없다.
물론 조혜진이 내게 태클을 걸 것이라는 것도 모두 내 뇌 내 망상이다.
항상 최악을 생각하는 성격상 이것저것 경우의 수를 둔 것뿐이었지만 여태껏 본 적 없는 김현성의 웃음은 괜스레 신경 쓰였다.
‘일단은 하던 대로 하자.’
걱정을 미리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항상 그렇지만은 않다. 일단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강자가 우리 쪽에 들어왔고 그걸 기뻐하는 게 옳다.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기자 천천히 파란의 길드 하우스가 시야에 들어왔다.
어느 정도 환영을 받을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지만 벌써부터 무척이나 분주한 모습.
밖에 나와 있는 이들도 눈에 보이고 길드 직원들은 뭔가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뭐지?’
그게 파티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순식간.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선희영과 김예리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이상희까지 이쪽으로 달려와 차례대로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잘 다녀왔어….”
“예리도 오랜만이다.”
별말은 안 하고 있었지만 조용히 내 쪽을 바라보며 인사하는 꼬맹이.
“기영 씨! 드디어 오셨군요.”
“네. 희영 씨. 오랜만입니다.”
조금은 밝게 인사를 건네고 있는 선희영.
“수고하셨습니다. 부길드 마스터.”
“감사합니다. 이상희 님.”
길드의 고문으로서 인사를 건네는 이상희까지 말이다. 그밖에도 김미영 팀장도 이쪽에 반듯하게 인사를 건네 왔고 행정팀의 박중기도 기분 좋은 듯 미소를 지어왔다.
대체적인 반응을 보니 바쁜 시기를 무사히 넘겨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모양.
나에게 인사를 한 뒤에는 모두 정하얀에게 한 마디씩 건네기 시작하니 순식간에 분위기가 시끌벅적해졌다.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길드 마당에는 음식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누가 준비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뻔하리라.
아마 그리폰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지시했음이 틀림없을 터.
‘현성아….’
이 자식은 밀고 당기기가 뭔지 확실히 이해하고 있다. 물론 모든 섭섭함이 가신 것은 아니었지만 환영파티를 하는 데 기분 나쁜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정말로 집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 표정이 뭘 말하고 있는지 아는 모양인지 김현성이 살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시 한번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기영 씨.”
“환영합니다, 부 길드 마스터.”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짧은 파티가 시작됐다. 모든 길드 직원이 즐길 수 있는 파티였던 것은 당연지사.
물론 준비도 뒤처리도 저들이 하게 되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즐거워 보였다.
적당히 술에 취한 이들도 많이 생겼고 모두가 떠들썩하게 즐기는 축제.
생각해 보면 파란으로 온 뒤에 처음 즐기는 여유였다.
정하얀은 여전히 이쪽에 찰싹 달라붙어서 주스를 홀짝 거리고 있었고 박덕구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음식들을 입에 쑤셔 넣고 있다.
당연하지만 녀석의 옆에는 황정연이 자리하는 중. 둘이 조금 친해진 모양인지 마치 연인 같은 모습으로 주변을 휩쓸고 다니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취한 사람들이 하나둘 등장하는 것은 당연지사. 길드 직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끄으윽….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사실은 조금 부길드 마스터님을 원망할 정도였어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미영 씨. 아! 이제는 김미영 팀장님이라고 불러야 되겠군요.”
“네?”
“사실 미루고 미뤄왔을 뿐입니다. 김미영 팀장님이 얼마나 고생하셨는지는 제가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연봉 협상은 내일 마저 할 수 있도록 하지요.”
“아!!”
“조금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일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아이들에게 가는 지원도 조금 늘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 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동안 고생했던 행정팀을 챙겨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물론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김미영 팀장은 곧바로 고속승진. 옆에서 부러운 듯 바라보는 박중기를 보니 녀석도 어느 정도 챙겨주기는 해야 될 것 같았다.
“당연한 일입니다. 아. 그것보다는 조혜진 씨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네. 조금 딱딱하시기는 했지만… 좋으신 분이에요.”
‘평판이 좋네.’
아무래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는 모양.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옆쪽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이거 한 번 먹어보쇼! 형님!”
“하얀 씨도 한 번 드셔보세요.”
선희영과 박덕구가 이쪽으로 다가온 것. 자그마한 접시에 음식을 들고 온 것을 보니 아마도 맛있다고 가져온 것이리라.
“정말로 맛있어요, 기영 씨. 근처 식당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더….”
“아, 그렇습니까?”
“하얀 씨도 한 번 드셔보세요.”
“네. 감, 감사합니다.”
“정말로 맛이 끝내 준다니까. 깜짝 놀랐소. 정말로!”
녀석에 손에 들려 있는 것은 간단한 스튜였다. 지금까지 나왔던 화려한 음식과는 조금 다른 모습.
파란에서 식당을 책임지고 있는 셰프가 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뭔가 투박하다.
무심한 듯 두툼하게 썰린 소고기가 맛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는 원정 중에 간단히 먹을 음식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자신할 수 있다.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
“빨리 먹어보쇼! 아 빨리!”
“알겠다.”
박덕구의 성화에 이기지 못해 녀석을 한 숟가락 가져가는 순간 뭔가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색다른 맛이 슬그머니 고개를 치켜들고 일어섰다.
“맛있지 않소?”
‘맛있어.’
박덕구의 질문에 대한 답을 주지는 않았지만 내 표정이 설명하고 있을 것이다. 눈이 동그랗게 떠져 있을 테니까.
“누가 만든 거야?”
“우리 길드 마스터 형씨랑 이상희 님이 만들었소. 간이 주방으로 가더니 쓱싹쓱싹 하고 만들었는데 이게 웬걸! 입에서 살살 녹는 거 아니겠소? 업진살 살살 녹는다!”
“어?”
“살살 녹는다. 살살 녹아!”
“진짜 맛있네. 진짜로.”
“누님은 좀 어떻소?”
“맛, 맛있어요…. 덕, 덕구 오빠. 이게… 진짜로 맛있네요.”
정하얀의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패배감이 깃들여 있다.
“누님도 요리 좀 하는 거 아니요?”
“네? 네? 아… 그… 네! 조금 배운 게 있기는 있는데….”
누가 봐도 자신 없어 보이는 표정과 행동. 마지못해 간이 주방으로 향하기는 하지만 표정은 마치 동상 안으로 들어가는 이토 소우타의 얼굴과 흡사해 보인다.
단두대에 올라가는 사형수의 느낌.
정하얀이 오늘 만든 요리는 굳이 손을 대지 않는 게 좋아 보였다.
모두들 삼삼오오 짝을 이루며 각자의 방식으로 파티를 즐기고 있는 모습. 눈에 띄는 것은 한쪽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조혜진이었다.
조용히 우물우물 음식을 씹고 있는 모습. 어느 정도 이야기는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슬그머니 발걸음을 옮겼다.
단순한 성향 말고도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는 궁금했으니까. 마침 정하얀도 무한도전을 하고 있는 도중이니 딱 알맞은 타이밍이리라.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김미영 팀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발걸음을 옮기자 이쪽으로 시선을 보내고 있는 조혜진이 눈에 들어왔다.
“파란은 조금 어떻습니까?”
“좋은 곳인 것 같습니다. 들려오는 소문으로 대충 예상하기는 했지만 제 생각보다 더욱더 말입니다.”
“아.”
“특히 부 길드 마스터가 들어온 지금은 분위기가 조금 더 좋아 보이더군요.”
“매번 이렇지는 않습니다. 저도 이런 시간을 가진 건 처음이라….”
“이 길드의 구성원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길드 마스터와 부길드 마스터를 신뢰하고 있는지 눈에 보입니다.”
“아….”
“저 역시 튜토리얼을 함께 한 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륙에 들어온 이후에 여러 가지 이해관계나 사소한 사건들 때문에 갈라지는 것을 보면 파란 여러분들은 확실히 보기 좋습니다.”
별로 흐트러진 모습 없이 음식을 먹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입에서 나오고 있는 소리는 꽤나 감상적이다.
취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확실히 그리 나쁘지 만은 않은 모습.
그녀가 맨 처음 함께 했던 파티가 어떤 식으로 끝났는지, 그녀가 어째서 캐슬락을 나와 이곳까지 오게 됐는지 왠지 모르게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원래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특히 현성 씨가 기영 씨를 정말로 신뢰하는 것 같더군요. 기영 씨를 마중 나가러 가는 와중에도 계속 기영 씨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아.”
“평소에 잘 웃지 않으신다고 생각했는데 조금은 의외였습니다.”
내 입장에서는 조혜진이 하는 말이 더 의외. 모든 게 오해라는 것을 깨달은 건 순식간이다.
아직도 이상희와 같이 요리를 하고 있는 김현성을 바라보니 괜스레 입꼬리가 올라간다.
‘형은 널 믿었어! 이 자식아!’
회귀자를 향한 나의 충심이 제대로 보답 받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두말할 필요도 없다.
김현성은 나를 신뢰하고 있다. 1회 차의 인연만큼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