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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46화 (145/1,590)

# 146

회귀자 사용설명서 146화

내부 고발자(1)

김현성은 무언가를 받는다는 것에 익숙하지가 않다.

1회 차에서는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의 잠재능력이 높은 것을 생각해 보면 받기보다는 주는 쪽이었다고 생각하는 게 맞으리라.

그런 녀석이 예상치 못한 서프라이즈를 받았으니 좋아하는 것이 당연.

본인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커다란 웃음이나 함박미소를 짓고 있지는 않지만 삐질삐질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모습은 누가 봐도 기뻐하는 것 같은 표정이다.

‘좋아하네.’

관리가 잘되어 있는 흑색의 그리폰. 저런 표정을 하지 않았으면 내가 더 섭섭했으리라. 그 희소성 때문에 감히 값으로 측정할 수도 없는 물건. 이 대륙에서 하늘을 날 수 있는 이동수단의 위치는 전설 아이템에 비견된다.

그것 때문인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놀랐다는 표정을 보내오고 있었다.

“와….”

이 그리폰이 길드 소유의 물건이 아닌 내 소유의 물건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덜컥 선물한다고 말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뭐, 나한테는 무척 쉬운 일이지만 타인들에게는 확실히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이 선물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으로 얻는 것도 꽤나 많다는 걸 생각해 보면 더욱더 그렇다.

‘그만큼 길드 마스터와 부길드 마스터가 끈끈하다는 걸 보여주는 게 되는 거고.’

이를 테면 권력의 재확인.

‘우리 현성이한테는 내가 그만큼 충성하고 있다는 게 되는 거니까.’

충신 이기영의 이미지를 더욱더 확고하게 심어줄 수도 있다.

역시나 조금 부담스러웠는지 고개를 젓는 김현성이 시야에 비쳤다.

“저, 저는 괜찮습니다, 기영 씨. 마음은 감사하지만…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부담스러워 해야지. 이게 얼마짜린데….’

“부담 같지 않으셔도 됩니다, 현성 씨. 그 동안 받은 것이 많으니 보답하는 차원에서 준비한 것뿐입니다. 아! 저도 우연치 않게 받은 것이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물론 저런 반응도 예상하기는 했었다. 단순한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묵직하니까.

그렇지만 얼굴 표정은 누가 봐도 받고 싶다는 표정. 거절은 인사치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순식간.

이미 김현성은 못 이기는 척 선물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마치 삼촌들의 용돈을 애써 거절하는 학생의 심정. 어차피 줄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보여줄 수 있는 거절이다.

“율리에나 건도 있으니까요. 이렇게 부담스러워 하시면 제가 더 부담스럽습니다. 저도 제 그리폰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받으셔도 됩니다.”

“아….”

‘빨리 받아, 자식아. 어차피 받을 거면서.’

이미 받고 싶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졌다는 것은 누가 봐도 느낄 수 있는 부분. 결국에는 녀석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정 그렇게 말씀하시면 감, 감사히 받겠습니다.”

‘말 더듬지 말고….’

“정말로 부담 같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 그동안 저한테 선물해 줬던 것들을 돌려받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앞으로도 차차 갚아나가라, 현성아.’

“아뇨. 제가 받은 게 더 큽니다. 이 은혜는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그런 자세야. 그거라고!’

슬그머니 흑색 그리폰을 넘기자 김현성이 녀석을 쓰다듬는 것이 보였다.

선물을 받은 당사자가 기뻐하면 준 사람 역시 기분이 좋아진다. 김현성뿐만이 아니다.

박덕구와 선희영, 꼬맹이와 황정연, 이상희까지 모두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있다.

조금 스케일이 크다고 할 수 있는 선물 증정식은 여기서 끝, 파티 역시 금방 끝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내 생각보다 길드원들이 쌓였던 것이 많은 모양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늘 하루는 밤새도록 놀아야지. 아암! 현성 형씨. 그래도 되겠소?”

“그럼 내일 업무는 오후부터 시작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아….”

“농담입니다. 하루 정도는 쉬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기쁜 날이니 조금 취해도 될 겁니다. 혜진 씨도 이리로 와서 함께 어울리도록 하죠.”

“예, 마스터.”

사실은 오랜 비행으로 조금은 피곤한 상태지만 뭐, 하루 정도는 기분을 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아! 오빠. 이것도 한 번 먹어보세요.”

“응.”

“기영 씨, 다음 봉사 일정 말인데요.”

“네. 한 번 시간을 내서 나가도록 하죠.”

“그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먼저 말씀해 주시면 안 되나요?”

“이야기하자면 조금 깁니다.”

밤은 길고 시간은 많다.

밤새도록 천천히 술을 들이켜고 다시 한번 밀렸던 이야기를 나눈다.

김현성은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고 박덕구는 여전히 신나는지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는 상황.

조혜진은 적응하지 못한 듯싶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무척 무리에 잘 어우러졌다.

정하얀과 선희영은 이쪽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고 아직 미성년자인 김예리는 들어가서 자라는 김현성을 원망스럽게 바라본 뒤에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내가 지금 당장 걱정하고 있는 것들은 적어도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날이 밝아오고 있다고 느낀 이후에야 대충 축제가 마무리됐고 나 역시 기쁜 마음에 조금은 정신이 없는 상태로 눈을 감았다.

“…….”

툭.

툭.

툭.

창밖에서 들려온 소리에 잠을 깬 것은 시간이 조금 지난 이후.

‘조금 더 잤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해봤지만 왠지 모르게 무거운 느낌에 고개를 아래로 내릴 수밖에 없었다.

“아….”

정하얀이 이쪽에 몸을 반쯤 걸치고 있었던 것.

‘…….’

어제 분명히 방으로 데려다 준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 것 같은 상황.

어째서 정하얀이 이쪽에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취한 척 내 방으로 들어온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기억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뭐, 어찌되든 상관없지만 몸이 저려온다.

언제부터 이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이렇게 있었으니 팔이 저리는 것은 당연하리라.

원정을 나갈 때도 자주 마주치던 상황이라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색색거리며 자는 척하는 정하얀을 보니 조금 더 이 자세를 유지해야 될 것 같았다.

툭.

툭.

그 와중에도 창문 밖에서는 계속해서 소리가 들려오는 중,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자 작은 새 한 마리가 계속해서 창문을 쪼아대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편지 왔구나.’

어제 마를린 영애에게 보낸 편지가 벌써 도착한 것이다.

‘좋아.’

답장이 빠를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내 생각보다 조금 더 빠르다. 궁금한 것이 많은 나로서는 환영할 만한 상황이다.

궁금증은 당연히 조혜진에 대한 것.

캐슬락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에 대한 것은 이쪽의 구미를 당긴다.

벌써부터 약점을 쥐고 흔들 생각은 없지만 그녀가 숨기고 있는 것이 뭔지 알아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하얀이 깨지 않게 슬그머니 창문을 열자 작은 새가 방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

한 쪽 발에 묶여 있는 전서를 손으로 쥔 이후에 대충 답장을 휘갈겨 다시 묶어 내보냈다.

조만간 찾아뵙겠다는 내용의 답장이니 아마 저쪽에서도 만족스러울 것이다.

조심스레 편지를 펼치자 마를린 영애가 보낸 편지가 시야에 비쳤다.

[헤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갑작스레 편지를 주셔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단 하루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남몰래 이기영 님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보내주신 이 편지는 마치 황량한 겨울바람에 버려진 제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시는 것처럼 와닿았습니다. 제 마음을 읽어주신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은 제 착각인지요?]

‘뭐 이렇게 사족이 길어?’

조금은 묵직하고 길게 써내려간 편지에 수많은 정보들이 적혀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 살펴보기는 했지만 대부분이 저런 종류의 글이었다.

몇 번이나 적었다 썼다는 반복한 흔적이 보이는 것을 보니 나름대로 공을 들이긴 들인 모양이다.

[귀족영애로서 이런 말을 드린다는 게 부끄럽기는 하지만 왕성에서 이기영 님과 함께 했던 꿈같은 시간들이 아직도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저 하늘을 날아가는 새처럼 저 역시 하늘을 훨훨 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요? 부디 제 마음만은 이 편지와 함께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도대체 얘는….’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을 지경.

둘이 함께 만난 적도 별로 없었고 서로 주고받은 이상한 느낌 따위도 없었다. 어디까지나 카트린 공작부인과 함께 보는 것이 전부였다.

물론 만난 횟수를 생각해 보면 바젤추기경 다음으로 많이 만나기야 했지만 소녀의 연심에 불을 지를 만한 사건 따위는 없었다는 거다.

최대한 매너 있게 행동하고 챙겨주려고 노력하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은 느낌.

어떻게 생각해도 조금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편지를 읽으면 읽을수록 적혀 있는 글귀들은 가관.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한 장을 넘기니 그제야 내가 원하는 내용이 보이기 시작했다.

‘좋아.’

[시간이 부족해 많이 조사하지는 못했지만 아마 이기영 님이 원하는 정보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급하게 자유민들을 불러 모아 조사를 진행했고 예전 조혜진 씨가 속해 있었다던 길드직원을 불러 그녀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계속해서 이야기를 듣다보니 작은바위 길드가 저희 캐슬락 영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지요.]

‘오.’

읽던 중 반가운 소리, 이러면 조금 더 편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조혜진 씨가 속해 있었던 작은바위 길드는 저희 영지의 감찰대의 조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가 얽혀 있는 조사이기는 했지만 주로 몬스터 부산물의 밀반입과 탈세혐의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조혜진의 성향을 생각해 보면 이런 일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일이 재미있어지는 것 같아 계속해서 편지를 읽어 나가자 역시나 내가 예상했던 내용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조사를 시작한 이유는 양심 있는 작은바위 소속의 자유민 한 분이 감찰대에 먼저 제보를 해주신 덕분이었습니다. 그때 당시에 저는 가문의 행사에 참가하기에는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들어서만 알고 있었지만 그 때 도움을 주신 분이 바로 조혜진 씨로 알고 있습니다. 작은바위 소속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양심을 위해 저희 영지로 직접 제보해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내부 고발자?’

조혜진이 어째서 린델로, 그중에서도 파란으로 왔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로서는 조금 머리 아파지는 문제다. 그녀의 행동 자체를 비난하거나 욕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옳은 행동을 했고 칭찬받아 마땅한 행동을 했다. 용기 있는 행동이었고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행동이다.

그렇지만 그녀의 전 길드원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

분명히 이야기가 나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부 자유민은 신성제국의 법을 꼭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자신이 제국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바로 그 이유.

그런 이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자유도시 린델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빠를 것이다.

이런 자유민들의 특성상 세금 문제에 대해서 인색해지는 경우가 많다.

사실 어느 정도는 다들 탈세를 하는 게 일반적이고 제국법을 무시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

조혜진이 속했었던 작은바위 역시 마찬가지였을 터. 아마 저것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몬스터 부산물의 밀반입과 탈세를 저지른 길드라면 다른 쪽에도 손을 댔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테면 이종족 노예 거래라든가….’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조혜진이 길드의 부패를 캐슬락의 영주에게 고발한 내부 고발자라는 것이다.

이후의 일이 어떻게 됐을지는 뻔할 뻔자.

아마 길드원들 사이에서 배신자로 낙인 찍혔을 것이고 욕이란 욕은 전부 얻어먹었을 것이다.

쓸데없이 일을 키웠다는 둥, 지만 깨끗한지 안다는 둥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물론 순식간에 집단에서 고립됐을 것이다.

‘그게 우리 사회니까.’

현대 사회에서 내부 고발자가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 떠올려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길드에서 쫓겨난 이후에도 타 길드나 집단에 들어가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집단에 피해를 끼치는 사람이 길드에 있으면 안 되니까.

심지어 그녀를 향해 박수를 보내고 엄지를 치켜 올린 사람들도 그녀와 직접적인 연관이 되는 것을 싫어했을 것이다.

‘파티도 맺기 싫었을 수도 있었겠네.’

백 퍼센트 장담할 수 있다.

파티사냥의 성과를 축소보고해서 이득을 챙기는 것 역시 오랜 관행이니까.

다시 한번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역시 내 생각대로 스토리가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작은바위 길드는 증거불충분으로 인해 처벌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만, 전 길드 직원에게 물어본 결과 조혜진 씨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해당 길드를 떠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캐슬락에서 자리를 잡지 못해 타 도시로 떠났다는 게 마지막입니다. 린델로 가셨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기영 님께서 혜진 씨를 알고 계실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죠.]

“맞네.”

양심에 따라 행동한 결과는 자기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말아먹은 것.

모든 집단의 입장에서 그녀는 폭탄 아닌 폭탄인 셈이다. 언제 길드의 치부를 드러낼지 모르는 위험 인물.

물론 개인적으로는 그녀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존중하지만… 내 입장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하…. 이거 큰일 났는데….’

생각나는 게 은근히 많은 나로서는 조금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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