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148화 (147/1,590)

# 148

회귀자 사용설명서 148화

내부 고발자(3)

정확히 1회 차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잠재능력이 높은 것을 생각해 보면 김현성이 무력이 높았을 거라는 건 이미 확정된 사실이다.

조혜진이 현성이의 부관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1회 차의 김현성이 이끌던 길드는 앞뒤가 꽉꽉 막힌 걸로도 모자라 고지식의 끝판왕이었음이 분명할 것이다.

만약 나나 이지혜였다면 그런 집단을 흔드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을 것이 당연.

우리 회귀자가 실패한 이유를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뒷공작에 면역이 없는 인간들을 터는 일이야 간단하니까. 나 말고도 이런 인간들이 많으니 커가는 데 우여곡절이 많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은 정진호한테 한 방 맞았을 것이고 높은 확률로 이토 소우타한테도 괴롭힘 당했을 것이 틀림없다.

‘형 없었으면 어떡할 뻔했니, 현성아.’

아니, 어쩌면 이설호한테도 꽤나 험한 꼴을 당했을 수도 있으리라.

이설호에 의해 이토 소우타가 린델 내에 자리 잡았다고 가정하면 녀석 역시 큰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을 테니까.

슬쩍 옆을 바라보자 나를 바라보고 있는 김미영 팀장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혹시 따로 지시를….”

“아뇨. 괜찮습니다. 아직까지는 두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으니까요. 아, 그래도 보험은 들어놔야 하니 제국의 감사원이 들이 닥쳤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장부나 자료들은 만들어 놓는 게 좋겠군요.”

“아! 네, 알겠습니다.”

“김미영 팀장님이 있어서 아주 든든합니다.”

“감, 감사합니다.”

“휴일에 갑작스럽게 시간을 뺏어 죄송합니다. 그럼 나가볼 테니 푹 쉬도록 하시지요.”

“아닙니다. 도움이 됐다면… 네.”

김미영에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조혜진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일단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녀를 컨트롤해야 되는 것은 내게 있어서는 숙제나 다름없다.

파란이 조혜진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미 확정된 일.

김현성은 그녀를 신뢰하고 있고 1회 차의 인연을 생각해 보면 그 신뢰가 깨지지 않을 확률이 높다.

또 조혜진이 가지고 있는 성장 가능성과 무력을 생각해 본다면 그녀를 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어떻게?’

품어야 하느냐에 대한 것.

‘한번 작업 쳐볼까.’

완벽하게 이쪽에 끌어들이는 방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정하얀 같은 반 의존 상태가 되게 만드는 것.

그렇지만 그녀를 이쪽으로 당겨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자의식 과잉이다.

정하얀이나 선희영이 이쪽의 설계로 치명적인 부작용을 떠안게 된 만큼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고 싶지는 않다.

‘성공 확률도 낮을 거고….’

그녀의 성향을 생각하면 금방 답이 나온다.

김미영 팀장에게 대충 인사를 한 이후에 밖으로 나가고 난 이후에는 왠지 모르게 길을 잃은 듯한 느낌.

‘아무런 생각하지 않고 쉴 수 있었으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해 봤지만 갑작스럽게 생긴 일과 이놈의 성격 때문에 마음 편히 쉴 수가 없다.

물론 목적지를 정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지금 이 시점에 가야할 곳은 한 군데밖에 없었으니까.

‘현성아.’

파란의 최고 권위자인 김현성에게 앞으로의 계획과 조혜진의 처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맞다.

앞으로 미래가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김현성. 그 미래를 바탕으로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도 김현성이다.

‘이게 무슨 휴일이야.’

일어난 이후부터 무척 바쁜 상황.

“길드 마스터는 계십니까?”

“아마 지금 집무실에 있으실 겁니다.”

“아, 네.”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다.

녀석 역시 이것저것 처리하고 계획할 일이 많았는지 집무실에 틀어박혀 있다는 훈훈한 소식이 들려왔다.

일 이야기를 하기에는 딱 좋은 타이밍이기는 하다.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고 적당히 집무실의 문을 두드리자 ‘들어오세요’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연 이후에 시야에 비친 것은 책상에 반쯤 걸터앉은 김현성.

마찬가지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조혜진이 시야에 비쳤다.

“아….”

선객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마침 잘됐군요. 안 그래도 기영 씨를 부르려던 참이었는데.”

“네.”

“혹시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뇨. 아직입니다.”

“그럼 함께 식사라도 하는 게….”

“네, 물론입니다.”

‘생각보다 신경 쓰이는데….’

어째서 정하얀이 내가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것을 보면 거품을 물고 달려드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나는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조혜진이 김현성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무척 신경 쓰인다.

혹시라도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조금 짜증이 날 지경.

정하얀의 경우에는 혹시 내가 다른 여성과 무슨 짓을 한 건 아닌지 신경 쓰였던 것이리라. 가끔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과거의 나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앞으론 더 조심할게, 하얀아.’

마음속으로 정하얀에게 사과를 보내니 김현성이 이쪽에 입을 열어왔다.

“뭔가 용무라도 있으셨습니까?”

“네. 별건 아닙니다만….”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일단 이쪽을 바라보는 눈에도 두 눈 가득 애정이 들어가 있기는 하다. 물론 당연한 반응이다. 그리폰을 선물로 준 것 이전에 김현성은 나를 신뢰하니까.

“별것 아닙니다. 그저 앞으로의 계획이나 일정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어서….”

“아.”

“혜진 씨 덕분에 길드의 안정화도 어느 정도 마무리 되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아무래도 원정을 나가도 괜찮을 것 같더군요. 슬슬 본업으로 돌아갈 시간이라…. 현성 씨도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 것은 아닌지가 궁금했습니다.”

“네. 사실 생각하고 있는 바가 있습니다.”

‘그럼 그렇지.’

“확실히 미리 말씀을 드리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기영 씨 같은 경우에는 여러 일을 역임하고 있으니까요. 미리 스케줄을 뺄 시간이 필요하겠죠.”

“네. 현성 씨 말이 맞습니다.”

당연하지만 김현성은 원정에서도 날 버릴 생각도 없다. 지난 던전에서 내 가치를 입증하기도 했고 어떤 원정이든 내가 있는 게 이득이라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다른 마법사들에 비해 공격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하얀의 멘탈 관리라든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라든가, 전체적으로 파티를 케어한다든가.

생각보다 내가 해주는 일이 많다고 느꼈을 것이다. 연금소환술사로서의 성장도 지켜보고 싶을 테니 지금 이 타이밍에 뒷방 늙은이가 되지는 않을 거라 확실할 수 있었다.

내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원정에서 빠지는 상황, 아득바득 달라붙어 챙길 건 챙겨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단 확실하게 정해진 건 없습니다만 기영 씨 말이 맞습니다. 여러 가지 사업으로 자금을 확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영 씨 덕분에 여유가 생겼으니 지금쯤 나가 보는 게 괜찮겠죠. 안 그래도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많았는데 미리 말씀을 드리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네. 네.”

“일단 다음 목적지는 캐슬락이 될 것 같습니다.”

“…캐슬락 말입니까?”

“네.”

‘마를린 영애가 좋아하겠네.’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만 캐슬락에서 몬스터들의 이상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고 하더군요. 아마 근처에 있는 던전의 영향을 받거나 영웅급 네임드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흐음….”

“확률은 적지만 몬스터 웨이브의 징후일 가능성도 있고요. 캐슬락 근처에는 사냥터도 많은 만큼 그쪽 주변으로 원정을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기영 씨 생각은 어떤지 들어보고 싶군요.”

“아. 제 생각도 현성 씨와 마찬가지입니다. 확실히 좋을 것 같군요. 린델 근처가 아니라 캐슬락이라는 게 조금 의외이긴 합니다만… 혜진 씨가 캐슬락 출신이라고 하셨으니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좋아 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 부길드 마스터. 주변 지리 같은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말씀을 드리지는 않았지만 안 그래도 기본 물약의 판매를 조금 확장시킬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원정이 먼저이기는 하지만 타 길드들과 공급 계약을 맺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더군요. 캐슬락에서도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길드들이 많지 않습니까?”

“네…. 부길드 마스터. 린델에 비해 규모가 크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시장 자체는 좋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길드와 클랜이 원정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니까요. 린델에 비해 사제도 부족할 겁니다.”

‘그렇다 이거지.’

슬쩍 옆을 보니 표정이 좋지 않은 조혜진이 시야에 비쳤다.

대답을 하면서도 캥기는 것이 있는지 입술을 깨물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아무래도 그녀 또한 캐슬락으로 간다는 사실은 전해 듣지 못한 모양이다.

껄끄러운 인연을 마주치기 싫은 것이 당연하기는 했지만 김현성은 그녀를 꼭 데려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번 원정이 그만큼 힘들 거라는 건가.’

답은 우리 현성이가 말해준 것에 있다. 단순한 던전 공략일 수도 있고 영웅급 네임드 몬스터의 레이드 일수도 있다.

‘몬스터 웨이브일 확률도 있고….’

지금 이 시점에서 벌어질 미래의 일을 수습하기 위해서 캐슬락으로 향한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는 부분.

캐슬락으로 향하다 보면 대충 가닥을 잡을 수 있겠지만… 어찌됐든 이쪽이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 파티의 질을 올리기 위해 가는 거니까.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조혜진에 대해서 더 파고들 여지가 있다는 것.

‘이게 최고야.’

작은바위의 수뇌부들과도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으리라. 어디까지나 사업차 방문했다는 느낌으로.

갑작스레 말이 없어진 조혜진을 김현성은 조금 안타깝다는 눈으로 바라보기는 했지만 마음을 바꿀 생각은 없어보였다.

“원정 준비는 언제 하면 되겠습니까? 현성 씨.”

“음….”

고민하고 있는 회귀자를 향해서는 먼저 입을 열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야 되니까.

“내일 곧바로 출발하는 건 어떻습니까? 물자들 같은 경우에는 이후에 조달받을 수 있지만 물약의 유통에 대해 개인적으로 알아봐야 할 게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렇게 되는군요. 사실 한두 달 안으로 출발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습니다만… 그렇게 해도 나쁠 건 없어 보입니다. 지낼 곳이 문제긴 하지만.”

“숙소는 따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캐슬락 영주의 따님과 조금 친밀한 사이라… 아마 영주성을 빌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마를린 영애라면 양팔을 벌려 환영할 것이다.

식당에 도착해서 식사를 하는 와중에도 대화 주제는 대부분 캐슬락 원정에 대한 이야기.

조혜진은 최대한 말을 아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김현성은 그런 조혜진을 배려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건 이미 확정된 상황이네.’

계속해서 캐슬락에 들어가지 않을 수는 없으니 어차피 한 번쯤은 들어가야 되겠지만 그 시기가 지나치게 빠른 것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린델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해 볼 때 아직도 조혜진은 캐슬락의 뜨거운 감자일 확률이 높다.

그 외에 대화는 조금 평범했다. 일상적이었고 나쁘지 않아 것 같았다.

김현성은 조금 의식적으로 조혜진을 칭찬하는 것 같았고 나에게 그녀의 좋은 점을 어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식사가 거의 다 끝나갈 때쯤에는 어째서 녀석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해왔는지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다.

조혜진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먼저 입을 열어온 것이다.

“어떻습니까? 기영 씨?”

“네?”

“혜진 씨 말입니다.”

“나쁜 사람 같지는 않습니다. 능력도 있고 성품도 괜찮습니다. 어째서 현성 씨가 그녀를 영입했는지 잘 알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가지고 있는 무력과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생각하면 그녀는 어디에서나 탐낼 만한 인재입니다.”

“다행이로군요. 혹시나 불편해하지 않으실까 걱정했는데.”

‘불편하면 불편하다고 대놓고 말하겠냐, 눈치 없는 자식아.’

“시기가 조금 빠른 느낌은 있지만 어제 말씀드린 것처럼 혜진 씨를 요직으로 임명하고 싶습니다만… 기영 씨 생각이 궁금하군요.”

오늘 나를 부르려고 한 이유가 바로 이거일 것이다. 뭔가 기대하고 있는 듯한 눈빛. 이쪽의 의사를 존중해준 건 기쁘지만 조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

“저는….”

말하기 전에 한 번 정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