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
회귀자 사용설명서 149화
너는 내가 왜 섭섭한지 몰라?(1)
“저는….”
말하기 전에 한 번 정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대답을 하고 싶은 지는 뻔할 뻔 자.
나로서는 당연히 그녀가 필요 이상의 권력을 얻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쳐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렇지만 이쪽이 너무 티 나게 그녀를 밀어내고 싶지 않는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은 심정.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시도는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김현성에게 괜히 권력욕심이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싶지는 않으니까.
‘일단은 이쪽에 의견을 물어왔다는 것 자체가 좋은 일이니까.’
“그전에 정확히 어떤 요직에 앉히려고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길드 비서실장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번 물어보는 것은 당연지사.
애초에 어떤 요직에 앉힐 건지에 대해 말해오지 않았다. 김현성 자식도 조금 캥기는 것이 있는 것이다.
“사실 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있는 도중입니다만….”
“네.”
“괜찮다면 길드 비서실장의 자리에 앉히는 것은 어떤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네?”
“길드 비서실장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 사실 여러 가지 생각은 해봤습니다만 아마 기영 씨도 무척 편해질 겁니다. 지금까지 맡으신 일이 많았으니까요. 혜진 씨가 여러 방면으로 도와줄 수 있을 겁니다.”
“으음….”
“아마 일을 어떻게 처리하셨는지에 대해 확인해 보신다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네….”
“상상하기 어려운 부분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렇군요.”
솔직히 반대. 무조건 반대다.
어떻게 반대를 해야 할지 이야기를 꺼내던 찰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뭔가 초조해하고 있는 듯한 표정의 김현성.
‘아.’
어째서 녀석이 저런 표정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첫 번째는 별로 탐탁지 않다는 듯한 내 표정. 두 번째는 나와 긴밀한 상의 없이 그녀를 높은 자리에 앉히려고 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
물론 지금 이렇게 물어오고는 있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혼자 저런 생각을 하고 바로 제안을 했다는 게 내심 신경 쓰이는 것 같았다.
‘귀여운 새끼….’
무척 좋아하고 동감하며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던 서프라이즈가 탐탁지 않은 내 표정에 막혀버린 셈.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선물의 주인공인 내가 그다지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자 당황한 것이다.
아니 기뻐하기는커녕 불편해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속이 꽤나 초조해 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실수했다고 생각한 표정이 눈에 보이는 것은 당연지사.
김현성은 독불장군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1회 차에 녀석이 어떻게 실패했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수도 없이 많이 맞아온 뒤통수 덕분인지 파티원의 멘탈과 상태에 대해 굉장히 많이 신경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특히나 나에 관해서는 더욱더.
내가 신성제국에 갔을 당시 나라 잃은 표정을 보였던 녀석의 얼굴을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김현성은 독재자가 아니다.
파란의 길드 마스터는 어디까지나 김현성이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있는 녀석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언제나 인지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상적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뭐, 아무튼 간에 녀석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의 명단에 정점에 있는 것은 나다.
‘그렇지.’
다시 한번 김현성의 표정을 살핀 뒤에 입을 열었다.
“글쎄요….”
“아.”
“확실히 혜진 씨가 유능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조금 시기가 이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더 지켜보는 게 맞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아! 일단 현성 씨 생각은 이해합니다. 업무에 눌려 있는 저를 생각해서 그런 결정을 내렸고… 그… 나름대로 합리적인 결정이기는 합니다.”
“네….”
“그렇지만 그 갑작스럽게 그녀가 길드 비서실장에 자리에 앉는다면 다른 길드원들에게 위화감을 심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것은 아닌지…. 길드 직원 입장에서는 아마 회사에 지금까지 전혀 관련도 없는 CEO가 나타나 갑작스레 실권을 쥐는 것처럼 비춰질 겁니다.”
“저도 물론 그런 생각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만 기영 씨가 잠깐 자리를 비웠을 때는 충분히 잘 어우러졌다고 생각해서….”
“저만 보지 못했군요….”
“아.”
직접적으로 말을 하진 않았지만 기분 파악 상해부렀스 스킬을 시전하는 것이 당연.
무척이나 섭섭하다는 얼굴로 김현성을 바라보자 조금 움찔거리고 있는 녀석의 얼굴이 보였다.
‘조금 섭섭하다, 현성아.’
물론 연기다.
아까보다 조금 더 당황하고 있는 듯한 느낌. 별것 아닐 거라고 생각한 질문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어디까지나 김현성이 나를 배려해 주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 상황에 조금은 입꼬리가 올라가기는 했지만 굳이 표현하지는 않았다.
살짝 한숨을 쉰다든지, 괜스레 말을 줄인다든지 조금 기분이 상한 척 해도 효과는 충분하다.
조혜진의 임명을 놓고 대화를 나누는 이 자리가 점점 더 미묘해 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아뇨. 저는 현성 씨를 믿습니다. 지금까지 옳지 않은 선택을 한 적은 없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조금 무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아마 제가 모르는 무슨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니라….”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저한테 물어 주신 것은 감사합니다만 어디까지나 클랜의 길드 마스터는 현성 씨니 조금은 마음대로 하셔도 괜찮습니다.”
“조금 오해하신 게 있으신 것 같습니다.”
“아뇨. 아뇨. 오해가 아닙니다.”
“그, 어디까지나 기영 씨가 힘들어 보이셔서 개인적으로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당장 임명할 생각도 없고 일단 혜진 씨가 많이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보니….”
“그렇군요.”
“네.”
저렇게 나올 거라고 예상은 했다.
본래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하는 말의 대부분은 ‘너를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이전의 태도를 풀어주지는 않았다. 화를 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짜증을 내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계속해서 묘하게 섭섭한 태도를 보내자 무척이나 답답해하는 녀석의 얼굴이 보였다.
너무 당기기만 해도 안 좋다는 말은 연애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통용된다.
‘내가 왜 이러는지도 모를 거다.’
굳이 예를 들어 표현하자면 ‘오빠는 내가 왜 섭섭한지 몰라?’라는 필살기 아닌 필살기를 시전한 것.
물론 효과는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
우리 회귀자가 마음 고생하는 게 조금 가슴 아프기야 했지만 열심히 밀고 당기면서 조혜진의 등판 시기를 최대한 늦춰야 했다.
“그 현성 씨… 제가 이전에 말씀 드린 것은 머릿속에서 지워주셔도 됩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니까요. 혜진 씨가 일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시면 부담 없이 임명하셔도 됩니다.”
‘부담 팍팍!’
“아!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오해하고 있는 건 없습니다. 현성 씨 입장에서는 충분히 생각하실 수 있는 이야기니까요.”
‘오해하고 있다! 현성아! 나는 너를 오해하고 있어!’
“별로 섭섭한 것도 없습니다.”
‘형 섭섭하다! 진짜 너무 섭섭하다.’
슬슬 돌려 까며 열심히 입을 터는 중. 말은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아마 김현성 입장에서는 임명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녀석이 아무리 바보라고는 해도 이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으니까. 아마 머릿속으로는 무척이나 고민하고 있으리라.
‘시간은 대충 늦췄다고 봐도 되겠네.’
어차피 조혜진이 높은 요직에 한자리 단단히 차지할 것이라는 것은 이미 확정된 사실이다.
나 역시 그녀를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권한을 줘야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기는 하다.
능력 있는 사람을 썩히는 건 아까우니까.
내부고발자라는 그녀의 이미지도 도움이 된다. 그녀가 파란에서 정상적으로 자리 잡는다면 조혜진이라는 사람은 대중들에게 홍보 효과가 될지도 모른다. 힘세고 똑똑하고 이미지 좋은 사람을 단순히 파티원으로 쓴다는 건 무식한 일.
어디까지나 문제는 그녀가 등판하는 시기다.
사실 지금 상황은 그녀와 내가 줄다리기를 하는 파워 게임이라고 볼 수도 없다.
단순히 지레짐작한 내가 혼자 쉐도우 복싱하는 상황에 불과하다. 뚜렷한 수가 있는 건 아니지만 만약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문제들이 해결된다면 나는 그녀를 그 누구보다 열심히 부릴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것도 개처럼.
“흠. 저는 이만 일어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성 씨.”
“네?”
“식사도 어느 정도 끝났고. 슬슬 캐슬락으로 갈 준비를 해놔야 되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일단 기본적인 물품은 제가 지시해 놓겠지만 혹여나 추가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지시해서 서류로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그….”
슬슬 나가야 되는 타이밍, 슬쩍 방문을 열자 길드 직원들이 시야에 비쳤다.
“저. 기영 씨!”
김현성이 커다란 목소리로 이쪽을 부르며 내 팔을 잡은 것은 그때.
왠지는 모르겠지만 순식간에 이쪽으로 시선이 집중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심지어 얼굴을 붉히고 있는 길드 직원들도 눈에 띄는 중.
대부분의 여자직원들은 작은 비명을 내지른다.
‘뭐야.’
“저… 아직 할 말이.”
뭔가 주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것이 당연하리라. ‘내가 맞다고 했잖아’라는 작은 소리가 어디에선가 들려왔고 ‘어머, 어머.’ 하는 소리도 들려온다.
심지어는 ‘여자친구 분들은 연막이라고…’라고 말하는 소리도 들린다.
저들이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지 깨닫는 것은 순식간.
‘이게 아닌데… 시바….’
“그… 제가 잘 못 생각한 것 같습니다. 기영 씨.”
‘알았으니까. 팔 좀 놔.’
“다른 뜻이 있었던 게 아니라 정말로 기영 씨가 부담을 느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이상하게 들리잖아.’
꺄악! 하는 까마귀 우는 소리에 서둘러 문을 닫은 것은 당연.
김현성이 다시 한번 입을 열어오는 것이 보였다.
“기영 씨 말대로 시기는 조금 늦추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당황스러우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길드로 돌아오자마자 이런 이야기를 드린 게 제가 생각해도 타이밍이 조금 이상했던 것 같군요.”
“아니 그게….”
“기영 씨도 혜진 씨를 알아갈 시간이 필요하겠죠. 다른 길드원들이 위화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합니다. 물론 기영 씨도 위화감을 느낄 수 있고요. 조금 당황하시는 게 당연하고 섭섭해하시는 게 당연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 같은 느낌.
이상한 오해가 생긴 것 같기는 했지만 나쁘지는 않다. 정하얀만 인간관계에 서툰 것이 아니다.
나보다 많은 생을 살아온 회귀자 역시 인간관계에는 꽤나 서툴다.
굳이 비유하자면 녀석은 기차 같은 느낌. 유연하지 못하고 성격자체가 단순하다.
‘선의의 중재자.’
사실 1회 차에서 오만가지 사건을 다 겪었을 녀석이 제대로 된 인간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
처음 튜토리얼에서 만났던 표정과 지금의 표정이 다르다는 것을 보면 김현성은 확실히 이전에 잊어버렸던 것을 되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쁘지 않네.’
정이 많은 회귀자라는 건 좋다.
내가 녀석이었다면 이런 애매한 상황에 이렇게 직구로 사과하진 않았을 것이다.
‘정말 나쁘지 않아.’
나는 녀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뇨. 정말로 괜찮습니다, 현성 씨.”
반 정도는 진심이었다.
‘형이 용서해 준다, 쨔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