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
회귀자 사용설명서 151화
마를린 영애(1)
할 일 없이 푹 쉬는 여행길이 됐어야 했다.
‘후우….’
사실 몸이 편한 거야 당연하다.
문제는 계속해서 고민을 하게 만드는 상황이었다. 어째서 갑작스럽게 마음의 눈의 등급이 진화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예상이 가는 게 있기는 하다.
어디까지나 가설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김현성 때문일 거라는 게 합리적인 판단.
‘상태창.’
[플레이어 이기영의 상태창과 재능수치를 확인합니다.]
[이름 - 이기영]
[칭호 - 용병 여왕의 정부, 베니고어 신성제국의 명예주교]
[나이 - 25]
[성향 - 용의주도한 전략가]
[직업 - 생체연금소환사 - 고유 영웅 등급]
[직업 효과 - 기초 마법 지식 습득]
[직업 효과 - 기초 연금 지식 습득]
[직업 효과 - 중급 연금 지식 습득]
[직업 효과 - 특수 소환 지식 습득]
[능력치]
[근력 - 21/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민첩 - 22/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체력 - 30/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지력 - 72/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내구 - 22/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행운 - 60/성장한계치 영웅 이상]
[마력 - 33/성장한계치 일반 이하]
[장비]
[저주를 내리는 검 율리에나 - 전설 등급 - 주인의식]
[라무스 터커의 연금학개론 - 영웅 등급 - 연금술사 전용]
[마력방패의 반지 - 희귀 등급]
[특성 - 마음의 눈 - 전설 등급]
[총평 - 이제 조금 사람 구실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셨군요. 나름대로 높다고 할 수 있는 지력 능력치와 높은 행운 능력치가 인상적입니다. 나머지 능력치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쓰레기지만 마력 스탯이 30을 넘었다는 것은 그래도 칭찬할 만합니다. 물론 그중에서도 고유 영웅 등급의 직업과 전설 등급의 아이템이 가장 눈에 띄지만요. 한계는 있겠지만 열심히 발버둥 쳐보도록 하세요. 아주 작게나마 응원을 보내드리도록 하죠.]
‘조금 우호적인데.’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총평이 조금 우호적으로 변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죽으라고 말했던 처음과는 다르게 뭔가 이쪽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는 듯한 느낌.
물론 이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나야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마음의 눈’ 등급이 상승한 것은 김현성에게 충성을 맹세한 효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볼 정도였다.
‘타이밍이 그랬으니까.’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김현성이 회귀자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저 그런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시간을 역행한다는 게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김현성의 상태창에 보이는 칭호 중에 하나인 ‘알타누스의 회귀자’.
어쩌면 김현성이 시간을 역행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초자연적인 존재? 초월적인 존재? 어쩌면 신일 수도 있다.
이 시스템을 만들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녀석임은 물론 일반 사람이 사용할 수 없는 힘을 이쪽에 뿌려주는 녀석일지도 모른다.
그 정도는 되어야 시간을 되돌렸다는 게 현실성이 있다.
‘문제는….’
녀석이 어째서 김현성의 시간을 되돌렸는가.
정답은 간단.
원하는 것이 있어서 되돌린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 원하는 게 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말하자면 우리 회귀자는 초월적인 존재의 사랑을 받고 있는 선택받은 사람인 셈. 어쩌면 이번 등급 상승은 그 존재의 선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열심히 해왔다는 위로와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느낌의 선물 말이다.
[특성]
[마음의 눈 - 전설 등급]
[자신과 타인의 상태창과 숨겨진 재능 등급을 열람할 수 있습니다. 전설 등급의 특성이지만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대다수의 기능이 잠겨 있습니다.]
[추가 - 자신과 타인의 숨겨진 고유기벽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유기벽이란 플레이어가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종류의 능력치이며 오직 플레이어 이기영만이 가지고 있는 전설 등급의 마음의 눈으로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대다수의 기능이 묶여 있다는 것만 봐도 답이 나온다.
앞으로도 열심히 해준다면 하나하나 제한을 풀어준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모든 것이 내 가설이고 뇌 내 망상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암요! 충성을 다하겠습니다요! 감사합니다! 신이시여!’라고 생각해도 별 상관은 없다는 거다.
중요한 것은 내가 새로운 능력을 얻었다는 것. 이게 가장 중요하다.
사실 고유기벽과 특성이 뭐가 다른 것인지, 겨우 이걸 보는 게 뭐가 중요한지에 대해 고민해 보기는 했지만 내 생각보다 더 쓸 만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특성이 시스템이 내린 힘이라면 고유기벽이란 시스템에 의지하지 않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힘이고 성향 외의 성격이다.
대부분의 특성은 긍정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지만 고유기벽은 그렇지 않다.
무척 부정적일 수도 있다는 거다.
[플레이어 이기영의 고유기벽을 확인합니다.]
[거짓말쟁이의 유혹]
[상대방을 유혹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만듭니다. 위험한 이성에게 사랑받을 확률이 증가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처럼.
물론 이런 것도 있다.
[플레이어 정하얀의 고유기벽을 확인합니다.]
[핏물이 넘쳐흐르는 사랑]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 모든 걸 바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목숨이나 양심까지도. 대상이 연관되어 있는 특정 상황에서의 각성 확률이 올라갑니다. 부작용을 조심해 주세요.]
결론적으로 나는 주변 사람들을 이전보다 조금 더 다룰 수 있게 됐다는 거다.
이 고유기벽이라는 게 개인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알 수 없지만 정하얀과 나만 봐도 대충 답이 나온다. 의외로 맞아 떨어진다.
정하얀이 내가 관련되어 있는 일이라면 상상이상의 힘을 내는 것도, 묘하게 이쪽에게 이상한 인연들이 꼬이는 것도 개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분류할 수 있다.
아무튼 간에 다른 사람들이 여행을 즐기는 와중에도 이쪽은 얻은 것들을 열심히 굴릴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능력치에 대해 연구하고 현 상황에 대해서 분석 아닌 분석을 하느라 정신적으로 조금 지쳐 있는 상태.
본래 몸 비우고 마음 비우고 쉬려고 했던 걸 생각해 보면 상상이상으로 피곤해 지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도 좋아.’
마음의 눈에 있는 제한이 전부 풀린다면 어쩌면 한 대상에 관해 거의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리라.
어쩌면 마음도 읽을 수 있을지 모르고 거의 모든 정보를 손에 쥐게 될지도 모른다.
‘베니고어 여신님! 알타누스 님! 저는 우리 회귀자에게 충성을 다하겠습니다요! 더 주셔도 됩니다! 더 베풀어 주세요!’
괜스레 속으로 다시 한번 외쳐봤지만 그다지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여신님의 목소리 대신 들려온 것은 정하얀의 목소리. 내 얼굴을 바라보는 정하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빠, 조금 피곤해 보여요.”
“아. 잠을 못자서 그런가…. 조금 피곤하네. 캐슬락은 얼마나 남았지?”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들었어요. 아니… 거의 다 왔어요.”
“그거 다행이네.”
“저, 저기 오빠.”
“응?”
“저… 그… 캐슬락이 마를린 영애가 있는 곳 맞죠?”
“아… 응.”
“어디서 들었는데… 그… 남자들은 백인을 좋아한다고….”
‘박덕구 이 새끼….’
왠지 모르게 저런 말을 흘린 건 박덕구일 것 같은 느낌.
며칠간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캥기는 게 있는 모양이다. 어째서 정하얀이 마를린 영애를 의식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상황이 하나 있기는 하다.
‘편지… 읽었나?’
그러고 보니 편지를 읽은 이후에 잠든 정하얀을 그대로 놔두고 방을 나섰다. 만약 정하얀이 마를린 영애의 편지를 읽었다면 쓸데없는 오해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것.
심지어 상담 차 박덕구를 찾아갔고 박덕구가 이상한 소리를 했다면 일이 복잡해진다.
안 그래도 머리 아픈 일이 많은 상황에서 정하얀까지 날뛰는 건 그다지 반가운 일은 아니다.
‘이 돼지가 오랜만에….’
아직도 방에 있는 보트를 사용하고 싶은 모양. 처음부터 안심시켜 주는 게 중요하다. 김현성이 조혜진을 보고 느낀 게 있는 만큼 슬쩍 정하얀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마를린 영애와는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안심해도 돼.”
“아!”
저주받은 신단 회귀사건 이후에 정하얀이 사고를 치는 횟수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하얀은 정하얀이다. 지속적인 멘탈 관리가 필요하다.
굳이 고유기벽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형님! 밖으로 나와보쇼. 누님도!”
“응?”
“캐슬락에 다 온 것 같소. 크으….”
“그래.”
정하얀의 손을 꽉 잡은 채로 밖으로 나가니 시야에 비친 것은 바위로 쌓아올려진 커다란 성벽.
“와….”
“거, 가관 아니요?”
“장관이겠지.”
그야말로 장관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광경이다.
딱딱하고 견고한 성벽. 무척이나 높아 보이는 성벽은 그 어떤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성벽 때문에 안쪽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게 조금 답답하기는 했지만 저것만으로도 이미 마음을 뺏긴 것 같은 느낌이다.
린델이 은근슬쩍 현대화가 되어 있고 신성제국의 수도가 지나치게 화려하다고 했다면 눈앞에 보이는 성벽과 성은 내가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있었던 판타지 세계의 영지 그 자체.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게 될 정도였다.
“멋지네.”
“역시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아, 현성 씨.”
“저도 들은 이야기지만 과거의 캐슬락은 신성제국 베니고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고 합니다.”
“음.”
“끊임없이 몬스터들을 막아내기 위해 고안된 높은 성벽이 공화국의 침략을 막아주는 벽이 된 셈이죠. 물론 지금은 몬스터들이 성벽을 들이닥치는 일이 없다고는 하지만 캐슬락의 제국민들은 저 벽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들었습니다.”
“그럴 만하군요. 위치도 위치니까요. 국경과 가장 가깝기도 하고… 커다란 숲을 옆에 두고 있으니… 아! 그렇다면 최근에야 숲의 상태가 조금 이상해지기 시작한 겁니까?”
“네. 자세한 사항은 확인해봐야겠지만 캐슬락에 체류하고 있는 용병이나 자유민들의 생환율이 지속적으로 내려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가끔 숲 밖으로 튀어나오는 몬스터들도 보이고요. 정확히 뭔지는 알 수 없지만 별로 좋은 징후는 아니죠.”
‘정확히 뭔지는 알 수 없기는….’
이미 준비를 다 하고 가는 주제에 저런 말을 하는 것도 조금은 우습다.
‘귀여운 놈.’
슬그머니 정하얀의 머리를 쓰다듬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마차는 캐슬락을 향해 가는 중, 가까이서 보면 볼수록 성벽이 조금 더 높아진다.
익숙한 인형이 보였던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아….’
수많은 기사를 대동한 채 오랜만에 보는 마를린 영애가 이쪽을 마중 나온 것.
이쪽이 간다는 것은 아직 정하지 않은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저렇게 나와 있는지 무척이나 신경 쓰였다.
그다지 정하얀을 기분 나쁘게 하고 싶지는 않은 심정.
김현성도 슬쩍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저들이 우리를 마중 나온 게 나 때문이냐고 묻는 듯한 느낌.
우리 회귀자에게 유능함도 보여주고 싶고 정하얀의 멘탈도 다듬어주고 싶은 상황.
한 가지를 선택하면 한 가지를 포기해야 되는 극한 상황이지만 선택지는 정해져 있었다.
“이기영 님!”
눈물을 흩뿌리며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는 마를린 영애가 보였으니까.
‘시바… 하얀아, 이번엔 진짜 아니다.’
슬쩍 김현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정하얀에게 들으라는 듯이 말이다.
“간다고 말한 적은 없었는데… 아마 멀리서 저희가 오는 것을 봤던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큼. 일단은 인사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네.”
마차에서 살짝 내린 뒤에 손을 흔든 것은 당연지사.
“아! 마를린 영애!”
적당히 악수를 건네려던 찰나, 속도를 줄이지 않고 무식하게 이쪽으로 달려오는 여자가 시야에 비쳤다.
“이기영 님!”
오랜만에 만난 장거리 커플처럼 나를 꽉 안아 버리는 그녀의 모습에 당황한 것은 당연지사.
기사들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이 철없는 아가씨를 밀쳐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내버려 둬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하….’
정하얀은 여느 때처럼 입술을 깨물고 있었고 조혜진과 김현성은 놀랐다는 표정.
들어본 적이 오래된 것 같은 꼬맹이 김예리의 목소리가 괜스레 크게 들려왔다.
“바람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