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
회귀자 사용설명서 155화
작은바위(2)
짧은 데이트가 끝났다.
덕분에 정하얀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캐슬락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대충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를 테면 시장 조사.
물가가 어느 정도 되는지, 물건의 시세가 높은지 낮은지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 있었다는 거다.
전체적인 평을 굳이 설명하라고 한다면 아주 만족스러웠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캐슬락의 상태는 훨씬 괜찮았다.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고….’
린델 주변에 있는 사냥터들은 이미 대부분이 포화 상태.
물론 일자리가 많기는 하지만 그만큼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도 많다.
그에 비한다면 캐슬락은 아직도 일자리가 넘치는 상황이니 어떻게 생각해 보면 새로 떠오르는 도시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자원은 풍족하고 자유민도 이미 어느 정도 터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보니 전략적 요충지뿐만이 아니라 경제적 요충지라고 하기에도 충분했다.
‘생각보다 더 쓸 만한데….’
몇몇 토지를 매입해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해볼 정도.
상인과 모험가는 모두 활발하게 움직이고 생활필수품에 대한 수요도 충분하다.
조금 재미있었던 것은….
‘위험 징후?’
큰일이 터질 도시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것.
김현성의 말대로라면 앞으로 한 달 이내에 이 도시에 무슨 일이 터진다.
우리 회귀자는 몇 가지 자료를 근거로 캐슬락에 위험이 닥칠 것이라는 것을 내게 이야기 했고 그게 우리가 캐슬락으로 원정을 떠나온 이유였다.
그렇지만 캐슬락의 분위기는 평화 그 자체.
사람들은 김현성이 말했던 징후에 대해서는 쥐뿔도 신경 쓰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애초에 징후 자체가 김현성이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누가 봐도 현재의 캐슬락은 여유롭다.
아마 1회 차에서도 비슷했을 것이 분명. 지금 같은 분위기로 대비 하지 않고 있다가 갑작스러운 사고에 펑 하고 터져 버렸음이 틀림없으리라.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죽었을 거고….’
마를린이나 작은바위도 예외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운이 좋은 거지.”
“네? 뭐라고 하셨어요? 오빠?”
“조금 둘러보고 나니까 이쪽에서 유통되고 있는 포션 수준을 알 만할 것 같아서. 그런 의미에서 이야기한 거야.”
“아! 오빠가 만든 포션을 사람들이 쓸 수 있어서 운이 좋다고 하신 거군요!”
“응. 이전에도 말했지만 캐슬락에는 사제가 부족하거든. 이곳에 있는 포션의 품질은 형편없어. 내가 만든 포션에 비한다면 더욱. 솔직히 말해서 어린애 장난이라고 하기에도 약간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거든.”
“그렇군요.”
“물론 연금술사의 전체적인 수준이 올라간 게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수요가 많으니 저런 저 품질의 물건들도 팔린다는 거네. 캐슬락은 좋구나….”
“그렇군요!”
“작은바위 길드에서도 포션을 만들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는데.”
“그렇군요!!”
계속해서 긍정의 외침을 날려주고 있는 정하얀에게는 살짝 웃어주며 발걸음을 옮기자 작은바위 길드가 시야에 들어왔다.
‘꽤나 화려하네.’
길드 하우스 자체는 파란 이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 꽤나 넓은 부지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건축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누가 봐도 괜찮은 자제가 들어간 듯한 느낌. 전체적으로는 과시한다는 인상이 강했다.
‘붉은용병도 이 정도는 아닌데….’
녀석이 내가 생각한 그대로의 인간이라는 거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을 중요시하고 자신의 야망에 충실한 녀석이다.
곧바로 안으로 들어가자 이쪽으로 쏟아지는 시선들. 굳이 어색해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당당한 쪽이 좋으니까.
이쪽으로 향하는 길드 직원의 인사에 대충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이쪽으로 온 안내원과 이야기를 나눈 뒤에 응접실로 향하니 오랜만에 보는 우리 정욱 씨가 시야에 비쳤다.
물론 옆쪽에 있는 몇몇 길드원도 보인다. 능력치는 나쁘지 않은 수준, 무력시위라도 한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세가 흉흉하다.
대로변에서 별로 좋지 않은 사건을 함께한 뒤로는 처음.
역시나 그다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당연하지.’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그야말로 개망신을 당했다.
야망이 있는 만큼 체면 역시 중요히 하고 있을 것이 분명. 녀석 같은 성격이라면 마음속에 꿍쳐두고 있는 게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 그래서 뭐 어쩔 건데.’
갑을 관계가 명확한 상황에서 굳이 을 흉내를 낼 필요는 없다.
그건 지구에서도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거 오랜만이군요.”
“네. 파란 부길드 마스터. 오랜만입니다.”
“하하하. 이거 첫 만남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이렇게 보니 반갑군요.”
“네. 아주 반갑군요. 이기영 씨.”
“하하하. 표정 좀 푸시죠. 작은바위 마스터. 누가 보면 원수라도 만난 것 같습니다.”
“…….”
“이거, 이거 마음 상하겠습니다. 정욱 씨. 계속 그렇게 바라보시면 아무리 저라고 해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
“중요한 회의니까요. 하하.”
“중요한 회의를 앞둔 사람치고는 꽤나 여유롭군요, 파란 부길드 마스터. 낮부터 한가롭게 데이트라니… 준비하고 있었던 이쪽이 바보가 된 기분입니다. 아무리 요즘 린델에서 위명을 떨치고 계시다고는 하나….”
“네. 네. 네….”
“저희 캐슬락은 린델의 하청업체나 부하가 아닙니다. 예의를 지키는 것이 맞지 않지 않습니까, 이기영 씨.”
“조금 날이 서 있는 것 같군요, 정욱 씨. 하하하.”
“저는 지금 장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파란 부길드 마스터.”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입니다.”
“무슨 오해를….”
“중요한 회의라고 한 것은 어디까지나 작은바위에게 드리는 말씀입니다. 저에게는 별로 중요한 회의가 아니죠. 그렇고말고요. 하하. 이런 회의에 들어오기 전에 제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데이트를 하고 들어오는 것도 실례가 된다는 겁니까? 푸흐흣.”
“당신….”
“그리고… 이거 뭐 미행이라도 하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저야말로 우리 정욱 씨에게는 조금 실망할 것 같습니다. 이거 엄연히 프라이버시 침해가 아닙니까.”
황당하다 못해 일그러져 있는 얼굴이 보였다. 아직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이토 소우타가 그립네.’
야망이 많은 녀석이 이렇게 권력 냄새를 맡지 못해서야… 문제가 있고 생각하는 게 맞다.
이미 이쪽에서 여러 가지 힌트를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저런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단단히 미움 받은 모양. 이정도 길드를 키운 녀석치고는 생각하는 범위가 무척 좁다.
‘어….’
미움 받을 짓을 하기는 했지만 어쩌면 나를 싫어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 테면….
‘마를린 영애?’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 권력욕이 높은 남자가 철없는 귀족영애를 출세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어디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니까.
녀석과는 제법 재미있게 얽혀 있는 것이 많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조혜진에 이어서는 마를린인가.’
이쪽이 계속해서 히죽히죽 웃고 있으니 저쪽에서는 확실히 기가 차는지 곧바로 입을 열고 잇는 것이 보였다.
“이만 돌아가 주시죠. 마를린 영애의 주선으로 한 번쯤은 만나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역시나 예의를 모르는 사람과는 일하고 싶지 않군요.”
“아, 이대로 돌려보내시는 겁니까? 작은바위 길드 마스터?”
“정중하게 말씀 드렸습니다. 파란 부길드 마스터. 저희 작은바위는 파란과 그 어떤 거래도 트지 않겠습니다. 아니 작은바위뿐만이 아닙니다. 캐슬락에 있는 모든 길드와 클랜이 파란과 일하는 걸 원하지 않을 겁니다.”
“이거 후회하실 텐데 말입니다.”
“두 번은 정중하게 말씀 드리지 않을 겁니다. 억지로 쫓겨나기 싫으시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지요.”
“저야말로 두 번은 정중하게 말씀 드리지 않을 겁니다. 작은바위 길드 마스터. 조금 흥분하시기 전에 일단은 제 이야기를 조금 들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
“허락한 걸로 알고 그럼. 푸흡. 천천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기요. 송정욱 씨. 혹시 지구에서 말입니다. 이런 경우를 보거나 들은 적 있으십니까? 젊은이나 예술가들이 말입니다. 특정 지역에 모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지금 무슨….”
“일단은 들어주시죠. 푸흐핫! 어떻게 된 건지 영문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간에 우연하게 모인 젊은이들과 예술가들은 천천히 지역과 거리를 발전시키게 됩니다. 저마다의 방식은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뭐, 벽화도 그리고 유니크하면서도 독특한 컨셉의 가게들을 열기도 하고 자신들만의 축제나 문화를 만들어 가면서 점차 변화시키죠.”
“…….”
“언론은 금방 그 지역에 집중합니다. 예술가들이 일군 지역! 좋은 레스토랑이 많은 동네라면서 떠들어 대고… 푸흐흣. 자칭 셀럽이라는 SNS 스타나 연예인들은 예술가들과 젊은이들이 만들어낸 곳을 제 집 드나들 듯 돌아다니고 점점 더 유명세를 얻습니다. 아마 이런 상황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그래서… 지금 그 일과 저희가 처한 상황이 무슨 상관이라는 겁니까.”
“이런 곳은 말입니다. 처음에는 꽤나 그럴 듯하게 비칠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마지막에는 결국 가슴 아픈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겁니다.”
“…….”
“빵 하고 들어와 버리거든요.”
“뭐….”
“거대 자본이나 대기업 말입니다.”
“그….”
“아무것도 하지 않고 꿀을 빨게 된 건물주들은 곧바로 임대료와 월세를 올리고 지금의 영광을 만들어낸 젊은 예술가들을 쫒아냅니다. 쫓겨난 젊은 예술가들은 피눈물을 흘리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죠. 그들은 철저한 을의 입장에 있으니까요. 뭐 설명은 길었지만 결국에 그런 이들은 자신의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다는 겁니다. 무척이나 허무하게 말이죠.”
일그러진 얼굴이 보인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대형 프렌차이즈 기업들과 돈 맛 좀 보고 싶은 자영업자들이 달려들고 결국 젊은 예술가들의 거리는 대형 자본을 가지고 있는 현 기득권이 차지하게 되죠. 여기서 문제! 지금 이 상황에서 젊은 예술가는 누구고… 거대 자본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은 누구일까요?”
파들파들 떨리는 입이 보인다.
“당신들의 삶의 터전을 뒤흔들 수 있는 자본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동공이 흔들리고 있다.
“시장 경제를 뒤흔들 수 있는 제품을 가지고 있는 게 누구일까요?”
손끝이 움찔거린다.
“붉은용병과 검은백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교황청의 추기경에게 임명된 명예주교이면서 캐슬락의 영애와 아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건 과연 누구일까요?”
당연히 반응은 곧바로 나온다.
납작 엎드리든지 아니면 발끈하든지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저들은 후자를 선택한 모양.
그나마 길드 마스터인 작은 바위의 송정욱은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뒤에 있는 녀석들은 시뻘건 얼굴로 큰 소리를 내뱉으려 입을 열고 있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말이… 왜 안 돼.”
순식간에 얼굴이 창백해진 것 같은 느낌.
마치 위협이라도 받은 듯이 벌벌 떨고 있는 얼굴. 공포에 질린 듯한 표정.
당연하지만 내가 한 말에 벌벌 떨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저들의 시선이 누구를 쫓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저들의 시선이 머무른 곳은 내 뒤쪽에 조용히 서 있는 정하얀.
‘어우… 시바. 소름 끼쳐.’
내가 봐도 무서운 표정으로 저들을 노려보고 있는 정하얀이 시야에 비쳤다.
‘역시 결혼 생각은 취소하는 게 좋겠다.’